제162편
추기경의 소환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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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펠로와 페라라는 입원했고, 유릭도 일주일을 입원하고 다음 일
주일 간 원거리 파견임무에서 제외되었다. 나도 부상당하고 싶다고,
다음부터는 나도 돌격조로 넣어달라고 악을 쓰던 카바냐는 프리
델라에게 몇 대 맞은 다음 시스터 제인과 함께 북부로 파견되었다.
유릭의 부상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돌아오자마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심한 고열에 시달렸다.
기절하듯 앓은 것이 이틀, 깨어나니 의사와 프리델라는 당분간 쉬라
는 통보를 던져주고 갔다. 쉬는 거 거절할 특무부원이 어디 있을까.
유릭은 더 묻지 않고 침대에 푹 파묻혀서 하루 종일 잤고, 다음날
도 종일 잤으며, 그 다음날에는 옆에서 자던 크리스펠로가 일어나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고 있기에 깨어났다.
“선생이, 약 먹으래.”
크리스펠로가 바이올린 활로 유릭의 침대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릭은 그곳에 놓인 대여섯 알 정도의 알약을 삼켰다. 오랜만의 휴
식, 그러나 그다지 즐겁지는 않은 휴식에 잠긴 채 병원 침대에 멍
하니 누워 있었다. 창밖으로는 녹음이 우거지는 한여름이었다. 매미
가 소나기처럼 쏴아아 울어 젖히고, 햇살은 공기를 으스러뜨릴 듯
강렬한 한 때였다.
“덥다....”
더위도 더위지만, 아직도 온 몸에 열기가 남아 있어 힘들었다. 목 안
쪽도 퉁퉁 부어 있고, 머리도 침대에 들러붙는 자석이라도 든 것처럼
묵직했다. 옆에서 ‘코코넬 종 장미 가꾸는 법’ 이라는 책을 읽고 있
던 페라라가, 그런 유릭이 안쓰러운 듯 물었다.
“괜찮아요, 유리?”
“그다지 좋지는 않네요. 하지만.....소위님이 더 다치셨잖아요?”
페라라의 부상은 중상중의 중상이었다. 본인은 방긋 방긋 웃으며 부
대로 복귀했지만, 의사가 달려와서 그를 진단하더니 기겁했다. 갈
비뼈 세 대가 부러지고, 팔도 부러졌다. 칼에 베인 자상은, 꿰매는 데
만 반나절이 족히 들어갈 정도였다. 베인 것뿐만 아니라 꿰뚫린 곳
도 있었다. 게다가 여름, 페라라의 상처는 더욱 고통스럽게, 더욱
느리게 아물 것이다.
크리스펠로가 바이올린에 턱을 대고 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번
끽, 끽 소리를 내며 음을 잡은 뒤에. 음이 어느 정도 잡히자 눈을
감고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유릭은 열기에 들뜬 눈을 감고 그 곡을
들었다. 페라라도 책을 덮고 푹신한 배게 속에 머리를 묻었다.
이름 모를 곡은 부드러운 옷자락처럼 너울거리며 입원실을 채웠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선율. 병원의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이 하나 둘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릭도 기억하는 곡이다. 지난번 관람했던
오페라, 바티스타에 나오는 곡이다. 크리스펠로는 악보를 볼 줄 모른
다. 그러나 한번 들은 곡은 결코 잊지 않고 바이올린으로 재현한다.
더욱 아름답게, 더욱 유려하게...... 그는 음악을 잊지 않고, 그의
연주는 잊혀지지 않는다.
운이 좋았어요 대위님.
입원 첫날, 유릭은 그렇게 크리스펠로에게 말했었다. 분명 그 곰늑대
는 크리스펠로보다 몇 배는 강해보였다. 유릭이 도울 수 없게 되는
즉시 카바냐를 불렀어야 옳다. 그러나 크리스펠로의 약점이라면,
자신이 약하거나 불리하다고 판단되어도 무작정 덤빈다는 것이다.
싸워야 한다, 이겨야 한다는 것만 알 뿐 다른 것은 생각하려 하
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서 끝까지 싸운 것이다.
입원실 문으로 간호사가 나타났다. 손에 봉투가 하나 들려 있었다.
환자 중 한 사람에게 온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전해주지 않고, 바
이올린을 연주하는 크리스펠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릭이 그런
간호사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그제야 분위기를 알아채고 급히 입
원실 안으로 들어와 유릭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
로, 대장장이 누이트의 편지였다. 펼쳐보니 참 간단한 말이 점잖게
적혀 있었다.
당장 와.
“........”
지난번에, 누이트에게 약간 작은 곰개에 의해 전사한 권총의 처참한
시신을 맡겼는데, 직접 가면 분명 두드려 맞을 거라 생각해서 에바를
시켰다. 에바는 군소리 없이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와 누이트의 말
을 전했다.
-나중에 직접 찾으러 오라고 하십니다.
-네가 가면 안 되는 거니?
-그러면, 매우 맞을 거라 하십니다.
즉, 유릭 대신 에바가 오면 다시는 수리를 맡기지 못하게 되거나 직
접 찾아온 누이트의 강철 같은 발길질에 으스러지도록 맞던가, 둘
중의 하나가 될 거라는 것이다. 지금 아주 중태라고 핑계 대 볼까,
했지만 어차피 찾으러 가기는 찾으러 가야 했기에 별 수 없다. 왜
특무부에만 들어오면 자상함과 다정함을 본부 밖으로 집어 던질까,
한탄하기도 했지만 이미 현실이니 더 이상의 푸념은 그만 두기로 했다.
흑마법사들로 이루어진 특무부의 무기는, 매우 당연하게도 특별 관리
된다. 직접 만들어 쓰는 단테를 제하고는, 모든 특무부원들은 특무부
소속의 병기담당, 속칭 ‘대장장이’ 에게 무기를 맡긴다.
특별히 제작된 무기가 하는 역할은 많다. 우선은, 흑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방식을 제한함으로써 철저하게 전투력 위주로 특화시킨다. 무
기에 새겨진 마법진과 문자에 의해 쓰는 마법은, 전투를 돕는 동시
에 전투 이외에는 마법을 쓸 수 없도록 제한하게 된다. 그것은 안전
망인 동시에 감시망이었다. 그리고 그 무기를 제작하고 관리하고
수리해 주는 것이 대장장이가 할 일이다.
현재 서부 특무부의 대장장이는 남부 출신의 누이트 만 중령이라는
늙은이였다. 근 30년 간 특무부 병기과에서 일해 왔으며, 앞으로 한
20년 쯤 너끈하게 현역으로서 서부 특무부의 병기 아낄 줄 모르
는 전투원들을 두들겨 팰 원기 왕성한 노인네였다. 다리도 짧고 허
리도 굵은 체격이라, 유릭의 가슴에 머리끝이 간신히 닿을 정도지
만 어깨도 훨씬 더 넓고 팔, 다리도 굵었다(힘은 아마 백 배쯤 셀 것이다).
유릭은 환자복 위에 제복 윗도리를 꿰어 입고 그를 찾아갔다. 갈아
입고 갈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아프게 보여야 조금이라도 덜 아
프게 맞지 않을까, 하는 갸륵한 기대 때문이었다.
“작살을 내 놨더군.”
대장장이의 작업실- 즉, 대장간의 문을 열기가 무섭게, 유릭의 이마
에 총구가 닿으며 아주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릭은 환자복의
칼라를 들어 보였지만, 누이트는 뺀질대는 것 하나만으로도 전 파난
을 평정하고도 남는 서부 특무부를 수 십 년간 봐 왔던 노인네였다.
당장에 그 발길질이 명치로 날아들어, 유릭은 병기과 문밖으로
날아갔다.
“뺀질대지 마라, 하사.”
“.....죄송합니다.”
유릭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제발 이 이 일격으로 뼈에 금이 가서 이
주일이나 삼주일 정도 파견에서 빠질 수 없을까- 대단히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머리 옆으로 누이트의 망치가 치명적인
각도로 날아들자 잽싸게 일어났다. 갈비뼈에 금가는 것과 머리가 깨
지는 건, 아주 다른 문제였다.
“부상이 심하다던데, 몸은 괜찮냐?”
“......별로요.”
그런 건 발길질 날리기 전에 물어 보란 말입니다, 라는 애통한 호소
를 하고 싶었지만 귀담아 들을 위인도 아니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들어준다 하더라도, 엄살 피우지 마라! 하고 주먹으로 뭉개놓
을 위인이기도 하기에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페라라는?”
“진짜 중태입니다.”
“크리스펠로는?”
“그 분이야, 중태에 빠져도 일주일 뒤면 경상이 되지 않습니까.”
“이번에, 별난 일이 꽤 많았다고 들었다. 부잣집 아가씨가 납치되고,
북부전선에 있어야 할 이교도의 사제가 나타나고."
“그런데 참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
적지로 파견되었던 동부 특무부마저도 쫓겨나고, 그 자리로 철십자
기사단이 들어가더군요.”
“철십자 기사단이?”
“그건 천사들의 강림과 비슷하죠. 악마과인 저희들은 근처도 가선 안
됩니다.”
평소라면, 벌써 초토화 명령이 내려졌을 텐데 동, 서부 모두 그 콜로
세움의 일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 각자의 본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난 번, 익스턴 광산에서의 일이 그러하듯 이번에도 철십자 기
사단이 파견되었다.
두 사건, 두 장소 다 분명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옛 왕국의 유적터이
며, 이안 블로드라는 흑마법사이자 이교도가 관여했다. 그곳에서
나타난 마령들의 모습도 아주 비슷하다. 수없이 많은 나비와 부유하
는 유령. 빛으로 쓴 듯한 무수한 마법의 문자들과 이교도들의 신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에 뜨이는 공통점은 바로 알렉산더. 그는 두
사건 다 끼어들었고, 그는 이교도들과 옛 왕국에 대해 회상하듯
이야기했다.
추기경이 의도하는 것이고 알렉산더는 그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알렉산더 혼자서 하는 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추기경이나 알렉산더, 두 사람이 좀 더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일
을 진행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들어오기나 해라.”
유릭은 누이트를 따라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다. 대장장이의 작업실에
는 온갖 무기들이 장작처럼 쌓여 있었다. 검, 단도, 활, 화살, 창, 봉,
총기류. 그것들이 오래된 피 냄새같은 쇠비린내를 물씬 풍겼다.
누이트는 망치를 안쪽으로 집어 던지고 방금 전에 유릭을 겨누었던
권총을 건네주었다. 유릭의 총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는 예전에
쓰던 것과 비슷했지만 총신은 더 길었다.
“응집력이 예전보다 더 강하다. 일단, 길들인 다음 시험해 봐.”
유릭은 작업대에 놓인 단검을 뽑아 손끝을 찔렀다. 붉은 핏방울이 손
끝에 맺히자, 유릭은 그 피를 총신 위에 그었다. 피를 따라 그 주
변에 금빛의 문자들과 그림들이 휘몰아치듯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유릭은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캉,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바닥
이 팍, 패였다.
유릭은 권총을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다가, 구석진 곳에 놓여 있는
긴 검을 발견했다. 보통 검보다 두 배 쯤 되는 길이였다. 유릭은 그
검을 알고 있고, 그 검의 주인도 알고 있었다. 카이슐츠의 검이었다.
유릭의 시선을 눈치 챈 누이트가 웃었다.
“버리기 아까워서 모셔뒀지.”
“명품이긴 하죠.”
“.....닮았지.”
“네?”
“너하고 카이, 너희 두 놈은 참 많이 닮았단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는 듯 굴지. 누구와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데,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아. 시키는 건 누구보다 잘하고, 배우는 것도
누구보다 빠르고. 사람 말은 잘 들어주는데, 자기 이야기는 결코 하
지 않아. 그렇게, 완벽한 듯 보이는데 너나, 카이슐츠 녀석이나.........
가슴에 깊은 균열이 있지.”
누이트는 자신의 두툼한 가슴을 가리켰다.
“아주 깊은 균열이 있어서, 다른 곳에는 칼을 대든 망치를 대든 후비
든 쑤시든 두드려 대든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 균열 안으로는 물 한
방울만 튀어도 금이 좍 가.”
“......그 분의 일은,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누가 카이슐츠 녀석 이야기를 하고 있나. 네 이야기다. 네가 벌써 몇
번이나 사고를 쳤는지, 네가 더 잘 알거 아냐. 얌전한 척, 아무 문
제도 없는 척, 그러고 있다가 뒤통수치지. 너란 녀석은............ 버티
고 버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버려.”
약, 탈영, 다시 약, 탈영- 부대 외 사람들이 보면 가장 얌전하고 정
상적인 유릭이지만, 부대 안에서는 아니었다. 조용히 있다가도, 문
제는 크게 일으키는 것이 유릭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줄 알면, 다시는 군대에서 도망치지도 약에 손대지도 마. 도
망친다고 해결되는 문제 같은 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러는 건.......다 쪽팔리는 짓이야. 창피한 짓이라고. 겁먹었다는
걸 스스로 보여주는 꼴이니까.”
화가 치미는지 누이트는 바닥에 나뒹구는 무기를 걷어찼다. 그가 신
경 쓰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카이슐츠는 뷰겐트의 제자인 동
시에, 누이트의 조카였다.
“누이트, 저는 이상한 애를 만났습니다.”
“응?”
“눈앞에서- 제가 사람을 죽이는 걸 봤는데도, 그런데도...... 아마도,
그런 건 정말 처음 봤을 텐데도, 그런 장면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
각조차 못했을 텐데도, 그런데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뭔 소리냐, 갑자기?”
“그 순간, 그 남자를 죽이는 순간에, 다시는 그 아이와 얼굴 마주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그녀와 전,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이었으니까요. 파난과 카스톨의 거리만큼이나- 하지만 그걸
로도 괜찮다고, 그냥 이렇게 끝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
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리 될 것,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갑작
스럽다 하더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포기한번 빠르군.”
“그런데.........그 녀석이, 그 바보 녀석이 저를 택해 주었습니다.”
누이트가 유릭을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에, 유릭은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누이트,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아마도.........아마도
꽤 오랫동안, 저는 탈영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약에 손대지도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장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이렇게
생각하게 될 테지요. 탈영하고 싶어질 때, 약에 손대고 싶어질 때, 이러
면 그 녀석이 비웃을 거라고, 그 녀석은 이런 나를 무시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창피해서, 정말 너무 창피해서.......그만 두고 말 것
같습니다.”
“발전이라면 발전이군.”
“이건 탈피입니다. 전혀 다른 내가 되어 버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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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결국 12시를 넘겨 버렸습니다............
p.s 오타 수정 했습니다. ^^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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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