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64화 (164/174)

제163편

추기경의 소환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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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부터 ‘네 상관에게 이제부터는 너를 부려먹어도 된다고 전했

다.’ 라는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통보를 받은 유릭은, 입원 일주일

만에 드디어 그다지 원하지 않았던 퇴원을 하게 되었다. ‘저기, 한

달 더 입원해야 한다는 진단서 같은 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물

어보았지만 ‘나도 대령님은 무섭단 말이다!!’ 라는 상식선의 대답만 받았다.

방금 퇴원했으니 원거리 파견은 당분간 자제될 테지만, 그건 어차피

방침만 그렇다는 뜻이지 비상사태-즉 인력부족이라는, 특무부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일들-가 벌어지면 파난 섬 동쪽 끝으로라도 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퇴원을 한 유릭은, 프리델라를 찾아가 역시나 하

고 싶지 않았던 복귀를 신고했다.

“크리스펠로는?”

“다음 주에 퇴원입니다.”

“페라라는?”

“최소 한 달 이상 더 기다려야 합니다.”

“무조건 돌진하고 보는 녀석들은 정말 골치라니까.”

그것은 유릭도 진심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물론 카바냐처럼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튀어버리는 녀석도 골치지

만.”

“그래도, 그분의 경우 전력 손실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전과도 없다는 게 문제지- 좋아, 어쨌건 네가

할 일이 있다. 따라 오도록.”

저 오늘 퇴원했는데요, 하고 말할 틈도 없었고, 사실 엄두도 못 냈다.

그리 말했다가는 프리델라에게 매우 아프게 맞은 뒤 일주일 더 입

원하게 될 지도 모른다.(그랬으면 좋겠지만)

프리델라는 집무실의 오른쪽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비밀회의

실로, 창문도 없고 문은 프리델라의 집무실을 향해 나 있는 것 하나

뿐이다. 들어가니, 두 사람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둘 다,

나름대로 아주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키 큰 백금발의 여자와 키 작고 왜소한 소년-

“오랜만이다.”

그리고 백금발의 미녀는 레반투스 대공 지클린데였다.

제국 안에서 황제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대공마마지만, 지금의 그녀

는 예전에 보았을 때 그러했듯 지금도 부두 노동자와 비슷한 허름한

바지에 셔츠차림이었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아직도 이마와 허리, 허벅지에 붕대를 감고 목발

까지 짚고 있는 소년, 죠나단이 서 있었다. 남루하던 지난번과는

달리, 부상당한 몸임에도 감색 정장으로 아주 잘 차려 입고 있었다.

죠나단은 성질 오른 고양이처럼 사납게 유릭을 노려보다가, 눈이 마

주치자 고개를 팩 돌렸다. 가소롭지만, 유릭은 이해는 해주기로 했다.

아무리 적이었다만, 그렇게 살벌하게 총을 갈겨대던 상대를 다시

마주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한 번 그랬던

사람이니, 같은 상황에서 다시 마주치면 얼마든지 똑같이 할 것이

기 때문이다.

그건 임무였다느니, 나도 굉장히 아팠다느니, 해 봤자 소용없을 분위

기라 유릭은 무시하기로 했다. 유릭의 태연한 태도에, 죠나단은 이를

북북 갈고 노려보고 쏘아보며 어떻게든 그의 주의를 끌어 보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이제 하사에게 그 일에 대해 말해줘, 프리델라 대령.”

프리델라의 눈썹 끝이 치솟았다. 아무리 사촌여동생이고 레반투스 대

공이라지만, 반말은 그녀로서는 언짢은 일이었다.

“유릭 크로반 하사, 너는 내일 모레면 특무부에서의 모든 의무복무기

간이 끝나게 된다. 탈영, 마약복용, 등등의 네 전과 때문에 7개월이

늘어났다는 걸, 너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죠나단이 경멸어린 눈초리로 유릭을 보았다.

“너, 마약 중독자였어?”

유릭이 웃으며 말했다.

“약은 예전에 끊었답니다, 개자식님.”

다시 죠나단이 이를 북북갈며 노려보았지만 유릭은 무시하고 담배를

물었다. 이 발칙한!! 대공 전하 앞에서!! 라는 말을 퍼부어 댈법한

눈초리로 죠나단이 노려보았지만, 유릭은 역시나 무시했다.

“브란 카스톨로 가라.”

유릭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네?”

프리델라가 또박 또박 말했다.

“칼 뷰겐트가 지원요청을 했다. 지금 나가서, 짐을 싼 다음 시곤항으

로 가서 브란 카스톨로 가란 말이다.”

지금 헛소리 하시는 건 아니죠, 하고 물을 엄두도 안 나서 유릭은 꽤

나 점잖고 상식적인 질문으로 대신했다.

“왜요?”

프리델라는 검을 뽑아 유릭의 목에 댄 뒤에 말했다.

“네가 설명해라, 빌어먹을 레반투스 대공.”

옆에서 기죽은 죠나단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제야, 유릭이 이 대마

왕 프리델라의 졸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늘 보는

풍경이라도 되는 듯, 지클린데는 위험하니 칼 치우는 게 어때요, 언니

- 라는 상식선의 말 대신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살비에 마델로에 대해 알고 있겠지.”

“이번에 납치되었다가 구출된 에닌 마델로 양의 아버지지요.”

“그래. 그리고 그는, 니콜라스 추기경의 자금줄 중 하나지. 그의 조직

망은 파난, 제국 본국, 중립국 아달튼, 멀리는 브라키니아까지 뻗어

있다. 아주 복잡하고, 아주 거대하고, 누구나 피해를 보고 극소수

가 이득을 보고 있지.”

유릭은 ‘브라키니아’에 강세가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나, 지클린데가 말했다.

“브라키니아의 안전수호청에서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대대적인 스캔

들이 일어날 듯 해. 그곳 양 당 중 집권당인 국민수호당의 의원인

에빌라스 듀크란의 실각, 그리고 집권당의 실각이 준비 중이다. 그들

과 연관된 그곳 마피아, 그리고 그 마피아와 연관된 살비에 마델로

의 신상을 체포,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나에게.”

“어째서 대공전하께서 직접 하시는 겁니까.”

“너도 곧 알게 될 테지만, 살비에 마델로의 혐의는 브라키니아에서

다시는 새벽을 보기 힘들 정도로 길고 긴 복역을 약속할 정도로 많고

많아. 그곳은 그곳의 집권당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성스러운 독재자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그렇게 협조하는

것뿐이다.”

“우리로서는 참 합법적인 방법이군요.”

“물론이다. 네 생각은 어떤가.”

“지금 우리의 제국을 다스리는 수상 각하의 집권 자체가 불법이고,

그런 마당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실각 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욕을 하든 말든, 수상이 내키지 않으면 그는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입니다.”

“일단은 추기경을 공식적으로 파문시키려는 거야. 그런 범죄와 연관

되어 있다면, 추기경을 축출하려는 교황청은 어라 좋구나, 하며 당

장에 파문서에 서명을 할 테지. 어떤 실효성을 가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기만일 지라도, 그래도 법률에 의한 정통성을 인정받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분명한 차이.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 뿐만이 아

니야. 살비에는 추기경의 자금줄인 동시에 돌비체 수상의 자금줄.

재정상의 타격도 상당할 거다.”

유릭은 참 싱거운 답밖에는 할 도리가 없었다.

“뭘 하든, 뭘 시키든, 저는 명령 받은 대로 합니다. 시키십시오, 할

테니.”

“그렇게 말 할 줄 알았어. 내가 오늘 아침, 프리델라 대령에게 그 일

에 대한 지원요청을 했다. 지난 번 카밀턴 경의 일도 있고 해서,

대령은 널 지목했지........ 여태까지 봐 왔던 너는 강하고, 유능하고,

제 멋 대로이며, 잔인하더군.”

“저를 굉장히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눈치는 빠르군. 그래. 나는 너 같은 녀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나

와는 정말 상극이지. 그래도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너는 분명 아주

확실하고 아주 제대로 일을 처리해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리

델라가 너를 추천한다면 확실하지. 나는 프리델라를 믿어.”

“결론은 브란 카스톨 행이군요. 얼마나 걸립니까?”

프리델라가 답했다.

“당연히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지난번에 말했던 대로다. 그 때, 유릭은 분명 프리델라의 일에 참여

하기로 했고,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즉 수상의 실각까지

였다. 이 파견은, 분명 이 일에 관여하여 유릭이 하는 첫 번째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걸 받아라.”

프리델라는 들고 있던 봉투를 유릭의 앞으로 던졌다. 노란 봉투로,

그 위에 나비와 투란바코스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뭡니까?”

“니콜라스 추기경의 소환장이다.”

유릭은 봉투를 집으려던 손을 멈추었다.

“니콜라스 추기경이 너, 유릭 크로반 하사를 브란 카스톨의 철십자

기사단 본부로 소환했다.”

역시나, 유릭은 상식선의 질문을 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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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요 며칠, 발등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을 진압하느라

많이 못 썼습니다. 비축분 얼마여요, 하는 질문에 몇편이요, 하고 답

하니 못 믿어!!! 라는 말만 들었지요. -_-;; 하지만, 몇주간 너무 바

빠서 맞춰서 연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홍염의 성좌가 다음주에 출간됩니다.

출판사 달력에 그렇게 적혀있고, 저도 그 동안 마감을 참 잘 지켜서

(그리고 연재날짜는 다 어기고) 예정대로 될 겁니다. ^^

다음편은 그래서 5일 뒤에!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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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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