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편
피의 천사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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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릭은 이 키 크고 무서운 얼굴의 남자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12년 전, 아버지와 아들이 사는 아주 평범하고도 한적한 중산층 집안
으로, 이 남자는 똑같은 색의 제복을 입고 같은 제복을 입은 부하
들을 이끌고 들어왔다.
묵직한 군화가 바닥을 저벅 저벅 쳤다. 아주 무섭고 큰 짐승의 발자
국 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는 아버지에게 무언가 아주 긴
말을 외쳤다. 아버지의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고 수갑을 채웠다. ‘
중요한 증인’ 이라는 말을 하며 유릭의 체포를 명한 것은 이 남자였
다. 아버지를 고문실로 집어넣은 것도 이 남자였으며, 심문에 아
무런 진척이 없자 어린 유릭을 가리키며 고문실로 데리고 가라고
명령한 것도 이 남자였다.
“많이 컸군. 그 때의 어린 강아지가 다 큰 사냥개가 되었어.”
“12년은, 그 때의 젊은 사냥개가 늙기에도 충분히 긴 시간이니까요.”
바솔로뮤의 미간이 좁아졌다. 당시의 이 남자가 서른 정도 되어 보였
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 동안 일을 참 성실하게 해
와서 그러한지 거의 쉰 살 정도 되어 보였다.
“건방지군.”
“한창 괘씸할 나이라서요”
바솔로뮤의 눈이 매서워졌다. 그가 등진 그의 부하들 역시, 빗줄기에
흠뻑 젖은 채 유릭을 노려보았다. 성난 독수리떼같군- 유릭은 그
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추기경 예하께서, 철십자 본부로 너를 데리고 오라 명하셨다.”
“지금이요?”
“우리는 직접 왔고, 그것은 직접 데려가기 위함이다. 와라.”
설명도 설득도 없었다. 바솔로뮤는 바로 등을 돌렸고, 유릭이 뭘 어
찌할 틈도 없이 철십자의 기사들이 유릭을 둘러쌌다. 카밀턴과 유릭
사이에도 소년티가 채 가시지 않은 젊은 기사가 비집고 들어왔다.
아주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카밀턴은 물러났다. 나른히 한숨을 내
쉬기는 했지만, 많이 겪어본 일인 듯 체념하는 기색이었다.
“다녀오게나........... 본부 앞에, 사람을 대기시켜 놓겠네. 일이 끝나는
대로 그 사람과 함께 오게나. 그 동안, 내 저택말고.....달리 묶을
곳을 찾아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유릭은 인사를 한 뒤에 핏빛 제복의 기사들을 따라나섰다. 항구에 운
집한 사람들은 두런거리는 소리조차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무언가 굉장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빗줄기가 호되게
떨어지는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외치는 소
리가 뒤섞여 휘몰아치는 듯, 한여름의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항구로 들어오는 입구에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검은 마차에도 투란
바코스의 핏빛 십자가가 노려보는 눈동자처럼 박혀 있었다.
정말 속 보이는 군-
유릭은 체포나 다름없이 마차에 타며, 그렇게 생각했다. 유릭의 아버
지를 체포하여 심문하고 고문하다가, 6살밖에 안된 유릭을 고문관
손에 집어 던져주며 아들 녀석을 보면 생각이 바뀔 거라 말하던 바
솔로뮤를 보낸 건 너무 속 보인다. 우연일 리도 없고, 좋은 의도일
리는 더더욱 없다.
협박이다, 이건.
그러나 이상하긴 하다. 유릭은 출신성분 불량한 식민 특무부의 하사
에 불과했다. 체포하여 들들 볶아댄다 하더라도, 니콜라스 본인도
아주 잘 알 듯한 사실 밖에는 토해낼 게 없다. 유릭을 통해 프리델라
나 지클린데, 또는 카밀턴을 협박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 대
단한 실수다(지클린데는 유릭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카밀턴은 믿
음이 안가고, 프리델라는 바보같이 인질이나 되었다고 두들겨 팰 것이다.)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피로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코앞에 철십
자 기사단을 우글우글 앉혀 놓고 잠들 수 있는 특무부원은 없을 것
이다) 별로 수다 떨고 싶은 상대도 없었기에, 유릭은 창만 바라보았다.
창문을 미끄러져 내리는 빗방울이 가로등의 빛을 쫓아갔다.
생각해 보면 그 마지막 날은 너무나 맑았던 것 같다. 정말, 너무나
맑았다. 하늘은 새파랬고, 구름도 하얗게 빛났다. 정원으로 쏟아지는
햇살도 너무나도 눈부셨다. 그러나 그날, 창밖을 바라보는 유릭은
두려웠다. 하늘의 빛나는 눈이 유릭을 똑바로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
다. 그 무엇도 유릭을 감춰주지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거의 피
우지도 않던 담배를 끝없이 피우고 있었다. 연기는 거실에 가득했었
고, 그것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네가 어찌 살아 왔는지, 다 듣고 왔다.”
바솔로뮤가 먼저 말했다.
“참 행복하게 살았지요. 그러나 그것이 당신 덕이라고는 말하지 않겠
습니다. 당신은 그저 사냥개였을 뿐이고, 그건 명령을 받고 한 일에
불과하니까요.”
뜨끈한 분노가 마차 안을 달구었다. 유릭은 자신을 노려보는 기사단
을 향해 웃어 보였다.
“물론....... 여섯 살짜리 아들을 고문실 바닥에 집어 던지고, 여차하면
잘 써먹어 보라고 명령하셨던 건 참 신선한 발상이었지만 말입니다.
그것도 명령받은 것 같지는 않더군요.”
철컥, 누군가가 칼자루에 손을 가져간 듯 했다. 퍽퍽, 누군가가 마차
바닥을 발로 찼다. 바솔로뮤가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구원의 길은, 언제나 네 앞에 있다. 추기경 예하께서는-”
“산자들의 세상에서 구원 같은 건 없습니다.”
뿍- 이번에는 어디선가 이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유릭은 마차 안의
기사들을 둘러보았다. 어둠에 묻힌 그들의 눈은 한층 더 싸늘해져
있었다. 뭘 어쩌라고? 마주봐 주기 싫어서 눈길을 돌렸다. 그렇게
유릭이 무시하니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빗방울이 마차 천장을
치는 소리는 북소리처럼 컸다. 마침내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을
때, 유릭이 가장 먼저 내렸다. 빗줄기는 퍼붓듯 쏟아지고 있었고,
눈앞에는 두개의 기둥이 파수병처럼 서 있는 현관문이 세워져 있었
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으며, 그 안으로 검은 대리석이 깔
린 복도가 똑바로 뻗어 있었다. 복도의 양 옆에는 기둥 모양의 받침
과, 그 위에 갑옷과 무기들이 놓여 있었다. 그 사이사이마다 성
자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은은하고도 깊숙한 빛을 발하는 램프들
이 켜져 그것들을 싸하게 밝혔다. 비에 흠뻑 젖은 군화를 그 안으로
들여놓자, 유릭의 뒤를 따라 내린 철십자의 기사들이 양 옆에 섰다.
“체포당하는 기분이군요. 아니, 정확히는 유괴당한 기분이네.”
“장난치지 마라.”
“장난치는 것도, 말장난도 아닙니다.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이것은
진실.”
철컥, 칼집에서 칼이 반쯤 미끄러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유릭은
그 쪽을 흘끔 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유릭을 노려보던 가장 어린
기사의 검이 뽑혀져 나와 있었다. 유릭은 훑듯이 시선을 올려 그
기사의 눈을 마주보았다. 진한 갈색눈의, 앳되고 고운 얼굴의 소년이었다.
“검을 넣으십시오.”
“기사의 검은, 기사의 의지다.”
유릭이 총을 뽑았다. 소년 기사의 검이 뽑혀 나오기도 전에, 유릭의
총구가 그 목덜미에 얹혔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저의 의지. 이건 원죄를 짊어진 기사의 검입니
다.”
“거, 건방지게!”
“당신의 권위는 무엇입니까?”
“뭐?”
“당신의 권위는 당신 스스로 증명하는 것. 당신은 깨끗한 제복과 성
급한 검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습니다. 건방지다고 말해야 할 건,
당신이 아니라 바로 접니다.”
“넣어라, 둘 다!”
바솔로뮤가 말했다. 유릭은 철십자의 손아귀 안에 있는 만큼 먼저 총
을 거두었다. 그것으로나마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소년 기사는 약
간은 웃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역겨운 애송이-
유릭은 점점 더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일어나기 시작했다. 온 몸이 곤
두서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파난을 출발하는 날- 아니다, 추기
경의 소환장을 받는 그날부터 계속 이러했다. 유릭은 사냥꾼의 냄새
를 잔뜩 맡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밤의 기사단 본부는 유령의 입김처럼 싸늘했고, 곳곳에 무겁고 으슬
으슬한 습기가 고여 있었다. 철그럭, 철그럭- 철십자 기사들의 검
붉은 군화발이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한 바닥을 밟는 소리가 고성을
배회하는 유령기사의 발소리처럼, 쓸모없는 기계의 오래된 심장
소리처럼- 그렇게 들려왔다.
“여기서 기다려라.”
마침내, 유릭은 어느 거대한 대기실의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문의 양
옆에는, 키 큰 두 명의 천사상이 지키고 서 있었다. 투구를 쓴, 아
름답고 잔혹해 보이는 얼굴의 여자들이었다. 한명의 손에는 가느다
란 창이, 다른 한명의 손에는 아름다운 세검이 들려 있었다. 유릭
은 체포 비슷하게 끌고 온 철십자 기사들이 문을 열자, 기다란 의
자가 놓여 있는 대기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그림이 벽과 천장
을 온통 뒤덮고 있어, 또 다른 세계를 멀찍한 하늘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게 했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자 이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빗줄
기 쏟아지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유릭은 그곳의 커다란 창
문을 보았다. 빗줄기가 창문에서 줄줄 쏟아지고 있었다. 실내의 빛
이 그 빗줄기와 빗방울 위로 휘몰아쳤다.
잠시 뒤, 등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긴 옷자락 쓰는 소리
도 들렸다. 유릭은 돌아섰고, 잠시 어찌 인사해야 하나- 고민했던
것을 잊어버렸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놀랍게도- 너무나 놀랍게도 지클린데였다. 옷
은 그 때와는 달리 아주 긴 수도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엉망진
창이던 백금발도 아주 부드럽고 단정하게 빗겨 내려져 어깨와 등줄기
로 차분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얼굴은 기억하는 것보다 더 흰 색이었
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옷깃을 매만지던 손을 내렸다. 색이
다른 두개의 눈이, 유릭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치였으나, 무엇을 기다리는 지 유릭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기에
먼저 물었다.
“여기는 웬 일이십니까, 전하?”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싸늘한 눈으로 유릭을 바라보다가, 볼을
쓸어내리는 백금발의 한쪽을 걷어냈다. 그 흰 볼은 갓 씻은 복숭아
처럼 매끄러웠다. 즉, 흉터가 없었다.
“나는 붉은 십자가의 추기경 니콜라스, 전하라 불릴만한 신분이 아니
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분명 남자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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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등장, 니콜라스 총.................추기경님!!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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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