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염의 성좌-171화 (171/174)

제170편

인연의 교차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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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트래비스, 자리 좀 비켜줘.”

“여기가 자네 집인가, 자네 집이냐고! 새벽에 쳐들어 와서 방 내놔!!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다고!! 그런데 이제는 집주인 더러

오라가라야?”

“사정이 생긴 걸 어떻게 해.”

트래비스는 아주 기가 막혀했다.

“조카 놈 때문에 자기 집 버리고 친구 집으로 도망 오는 놈은, 자네

가 최초이자 제발 최후이길 바라고 있네! 내 집이 무슨 안전 가옥

인가!! 일생기면 피신 오게!”

철십자 기사단 본부를 나온 유릭은 기다리고 있던 카밀턴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갈 곳이 거기밖에 더 있어? 라고, 아주

당연하게 말하며 트래비스의 저택으로 향했다. 가지가지로 신세를 지

는 군요- 유릭은 카밀턴 대신 속으로만, 잠옷 차림으로 달려와

사자처럼 으르렁대는 트래비스에게 사과를 했다.

“자리 비켜줄 테니, 둘이서 뭘 하든 마음대로 해! 그리고!!! 크로반

군은 괜찮지만 자네는 빠른 시일 내에 꺼져.”

“이봐, 자네 때문에 인질이 되었던 나에게 그게 할 말인가?”

“바보니까 인질 따위가 되는 거 아닌가!”

대략 삼십분 정도 극심하게 유치하게 싸운 뒤에, 트래비스는 요즘 골

치 아프다는 둥 일이 꼬이는데 저딴 놈만 굴러 들어온다는 둥, 빠른

시일 내에 꺼저버려, 이 제기랄 장군님아! 등등의 욕을 퍼부어 대

며 손님 침실을 나갔다. 유릭은 카밀턴과 절친한 교우관계에 놓여

있는 그를 아주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엾은 트래비스 씨- 당신

잘못은 아닙니다.

“왜 저리 유난스럽게 신경질인 거야?”

트래비스가 나가자, 역시나 카밀턴이 투덜댔다. 유릭은 그게 아니라

여태까지 너무 잘 참아 주신 겁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 근처를 배

회했지만 참았다.

“어쨌건 하던 말은 해야겠지. 니콜라스 추기경이, 그러니까......음. 대

공 전하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거지?”

“네. 그런데 경께서는 여태까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듯 말씀해 오

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나는 그 녀석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 하

지만 자네에게는 말 할 필요도, 말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네. 자

네가 직접 알기 전 까지는 말이야........... 사정을 설명하자면, 간단

하고도 복잡하지. 어차피 알게 되었으니, 말 해 줌세.”

그러나 금방 말하기는 어려운 듯 파이프를 꽤나 오랫동안 피웠다. 유

릭이 보기에, 망설이는 거라기보다는 사건을 순서대로 정리하느라 좀

걸리는 듯 보였다(보통 사람이 못하는 일은 아주 잘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은 거의 못하는 카밀턴이었다).

“선대 레반투스 대공께는, 딸이 하나 있었다네. 손위의 다른 자식은

일찍 죽어 버렸지. 결국에는, 그 딸이 어린 나이에 후계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네. 하지만 애당초 후계자가 될 재목도, 될 생각도

없었던 아이였지. 한숨 나올 정도로 제멋대로였다가, 결국에는 제 멋

대로 어떤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지. 그러나 남자는 결혼 한

지 두 달 만에 죽었다네. 사인은 정확하게 몰라. 어쨌건, 공주는

대공이 그를 죽인 거라며 칩거에 들어갔고 얼마 뒤에 쌍둥이를 낳고

죽었지. 그로써 대공가의 후손은 그 쌍둥이만 남게 된 거야.........”

“그 쌍둥이가 지그문트와 지클린데....인 겁니까?”

“그래. 레반투스 대공가 뿐만 아니라, 그 분가인 랭카스크 공작가와

팔시티 공작가, 오클라혼 공작가까지, 모두 모여 대책을 논했지. 그

때 내 아버지인 팔시티 공작, 게오르드 카밀턴이 제안했다네. 쌍둥

이 중 아들은 사제로 만들에 속세를 떠나게 하고 딸은 레반투스 대

공의 동생이자 수상이었던 그루체키온의 장남, 프로스페 그루체키

온과 결혼시키고, 그 프로스페를 그 후계로 삼자고.”

“뭔가.......좀 지저분한데요?”

카밀턴은 씁쓰레하게 웃었다.

“내 아버지는.....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언제나 가장 이성적인 방법을

내 놓았지만, 가장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기도 했지. 남의 상처나,

남의 괴로움 같은 건 전혀 배려하지 않았어. 그 방법 역시 마찬가지.

그 어린 아이들이 받을 상처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가장

이성적이라고 생각한 방법만 내 놓은 것이지. 그저 대공가의 추문을

덮기에 급급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제안에 동의했지. 아들은 시골

구석진 곳의 사원으로 보내지고, 딸은 대공가에서 쉬쉬하며 키웠다네.

지크는 할 일도,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없었

지. 프로스페와 결혼해서 그 더러운 핏줄이 절반으로 희석된 아이

를 낳아 대공가를 잇는 것 밖에는.”

유릭은 지클린데를 떠 올려 보았으나, 지금의 그녀는 그 과거와는 전

혀 상관없는 인물로 보였다. 그녀는 거칠고 강한 여전사였다. 투사의

여왕, 그러나 자비로움과 현명함도 갖춘 여자였다.

“무슨 생각하는 지 알아. 사실, 대공가에서 지클린데에게 원한 건 자

궁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지크는 잘 커주었지. 사실,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멋대로 큰 것일 지도 모르지만.”

“동의...합니다.”

“지크는 그렇게 크고 있었네만, 남자애 쪽은 어떻게 크든 아무도 관

심두지 않았다네. 그저 편지로 그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출신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정말 착한 아이랍니다, 라는

편지만 왔고, 그 누구도 확인하지 않았지. 그리고.... 그 아이가 어

찌 되었는지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것은 레반투스 대공과 그루체키

온이 암살당하고, 마침내 북군이 반란을 일으킨 뒤였다네. 우리가

니콜라스 추기경이라 생각했던 남자는 대리에 불과했고, 진짜 니콜

라스는 열 한 살 먹은 꼬맹이......우리가 유폐시켰던 지그문트, 바

로 그 아이였다네.”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는 대체 누가 보내왔던 겁니까?”

“지그문트를 맡아 주었던 늙은 사제는, 그 아이가 여섯 살 때 죽었더

군. 그 편지를 보낸 것은 지그문트였던 거야.”

“어떻게 살아 왔을지 궁금하군요.”

“아무도 모른다네. 다만, 그 기간동안...... 지그문트가 니콜라스가 되

었고, 엄청난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 정도만 추측할 뿐이지. 대체

누가 그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는지, 대체 어떻게 그런 막강

한 존재로 키워놨는지, 그건 그 누구도 모른다네.”

“방금 전에 만난 니콜라스는, 분명 자신의 스승에 대해 언급 했습니

다. 누구라는 건 물론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죽은 것 같더군요.

그리고 왠지... 아직도 그 스승에게 집착하는 듯 보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스승의 힘을. 그래도.........그게 누구이던 간에,

니콜라스에게 복수의 기회를 준 것만은, 그리고 그 복수에 이 제

국이 휩쓸렸다는 것만은 분명하군요.....그리고 카밀턴 경.”

“응?”

“카밀턴 경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라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은 선을 베푼 자만의 것이지만, 악은 모든 사람의 것이라네. 선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런 것이고, 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 그런 것이네.”

“그래도 경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하셨을 겁니다.”

“그건 아무 소용없는 가정이라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악한 건 아니다- 그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아나.

베풀지 않은 선으로, 행할 지도 모르는 악을 덮으려 하다니!  하사,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어. 누구나 추악해 질 수 있어! 악은 타인

만의 것이고, 자신은 결단코 그러지 않을 거라 믿는 자야 말로, 가장

빨리 타락하는 자야..........나는 저열하고 비겁한 인간을 증오하고,

천박하고 오만한 인간을 경멸하지만....... 내가 그런 인간에 포

함된다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아.”

“저도 압니다. 카밀턴 경이 그런 분이라는 것을.”

“......”

“자신의 적이 악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분이라는 것을, 자신이 선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분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가장

괴로워하는 분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경께서 하는 일

이 경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경께서는 적인 니콜라스와 돌비체를 증오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렇기에 당신은 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유릭이 웃었다.

“저는 증오에 휩싸인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증오는.....마약보다 강력

하게 사람을 중독시키더군요. 술보다 더욱 강력하게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더군요. 그러나 카밀턴 경, 저는 경이 그런 분이 아니라

는 걸 알기에, 경을 믿는 것입니다. 경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 그러나... 정말 희생하신다면, 많은 사람이 슬

퍼할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가장 먼저 나서야 하는 것이 군인의 의무라네.

그것이 희생으로 향하는 길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해야 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총과 칼을 얻은 자의 의무는, 가장 먼저 죽는 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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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잡설: 사실 일요일날 이사갑니다. -_-;; 더불어 어딘가로부터의

메세지가 저를 압박했습니다.........

발등의 불을 진화하다 보니, 오늘은 말씀 드린 7일이 지나가고 있더군

요.................  죄송합니다!!! OTL

p.s 오타 수정 했습니다;;

일단은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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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염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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