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31화 (31/325)

제31화. 아카데미로 (5)

새벽이 걷히고 둥근 해가 떠오른 아침.

고요한 하늘과 달리, 여관의 복도는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쾅쾅쾅!

철갑옷으로 무장한 다수의 기사들이 방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이에 방 안에 있던 브라이언이 황급히 문을 열고 나왔다.

“무, 무슨 일이신지?”

브라이언은 난데없는 들이닥침에 당황한 듯 보였다.

“현재 사페른 전역에 긴급 조치가 발령됐다! 외부인들을 대상으로 단체 조사를 할 것이니, 방에 있는 자들은 전부 나와라!”

기사는 사페른의 문장이 찍힌 명령서를 보여주며 협조를 요구했다.

명령서를 본 브라이언의 얼굴에서 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 장소를 알려주시면 저희가 갈 테니, 지금은 유예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유예 시간? 지금 우리가 장난하는 줄 아냐? 강제로 연행되기 싫으면 어서 나와!”

“그, 그게 저희 도련님께서 아직 숙면 중이신지라. 자기가 먼저 깰 때까지 절대 깨우지 말라 하셔서…….”

“도련님~?”

도련님이란 말에 기사는 코웃음을 쳤다.

이런 모험가들이나 묵을 만한 흔해빠진 여관에 도련님이 계신다고?

그 말은 즉 귀족이 있다는 말인데, 체통을 목숨보다 중요시하는 분들께서 고작 이런 곳에 머물고 있다?

개그로도 못 써먹을 말이었다.

“셋을 셀 때 동안 안 나오면, 불이행으로 간주하고 강제 연행을 시작하겠다!”

기사는 손가락으로 셋을 가리켰다.

“하나!”

“기사님들 잠깐만요! 정말 큰일 나십니다!”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둘!

“잘못하면 기사님들 전부 황천길로……!”

“셋!”

셋 소리와 함께 기사는 브라이언을 제치고 방문을 거세게 차 냈다.

이윽고 방으로 들어선 기사는 상의를 탈의한 채 침대에 앉아 있는 시안과 마주하게 되었다.

멍한 눈으로 보아 그는 방금 일어난 듯 보였다.

“……?”

호기롭게 들어간 것도 잠시, 기사는 이내 침묵에 휩싸였다.

길고 매끄러운 몸매와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근육.

앳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몸에 새겨진 다량의 상처 자국까지.

소년이 아닌, 숱한 전장을 경험한 백전노장을 연상케 했다.

이것은 마치 토끼 굴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호랑이를 마주친 기분.

너나 할 것 없이 방에 들어선 모두가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이, 일어나신 겁니까, 도련님……?”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브라이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끄러워서 깬 거다.”

살기에 가득 찬 눈이 고스란히 그에게 향했다.

그 눈을 마주한 브라이언은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너 내가 어젯밤에 뭐라 그랬지?”

시안의 말투엔 짜증이 한가득 섞여 있었다.

“그, 그게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절대로 깨우지 말라고…….”

“근데 이건 뭐지? 난 지금 스스로 일어난 게 아닌데?”

“저, 저도 최대한 안 깨워드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기엔 피치 못할 사정이……!”

바들바들 떨던 브라이언은 어서 책임지라는 듯 사페른의 기사를 쳐다보았다.

멍한 눈으로 서 있던 기사는 이내 본분을 깨닫고선 급히 고개를 저었다.

“사, 사페른 긴급 조치에 따라 현재 도시에 있는 모든 외부인은 급히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협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만…….”

기사의 목소리는 모기소리마냥 작아 들고 있었다.

“호, 혹시 귀한 집의 자제분이십니까?”

무언가 심히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듯 말투마저 경어체로 바뀌었다.

시안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기사의 눈을 맹렬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낯선 위압감에, 기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침묵을 깬 것은 브라이언이었다.

“저, 저희 도련님은 벨리아스의 영주이신 베르트 공작님의 자제 시안 베르트 님입니다! 로열 아카데미에 가기 위해 루웬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탁상 위에 올려져 있던 베르트 가의 문장을 급히 기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문장을 확인한 기사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즉시 무기를 거둔 뒤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모,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베르트 공작가의 자제님을 뵙습니다!”

나머지 기사들 역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시안은 정색 된 시선으로 기사들을 바라보더니, 비로소 잠이 깼는지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브라이언은 생각했다.

자신이 오늘 여러 목숨을 구원했다고…….

* * *

“외부인들에 대한 긴급 조치라고?”

“예 그렇습니다!”

“갑자기 왜? 창고에 숨겨놨던 탈세금을 누가 훔쳐가기라도 했어?”

탈세금이란 말에 기사는 화들짝 놀랐다.

“무, 무슨 큰일 날 말씀을! 그것이 아니고, 저희 사페른의 영주인 파콰론님께서 어젯밤 행방불명 되셔서…….”

파콰론?

내가 그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더라?

분명 제국의 유력 가문 일원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시 네펠리스 후작가의 파콰론 네펠리스를 말하는 거야?”

“예 맞습니다! 1년 전 갑자기 병사한 사페른의 전 영주님을 대신해 그분이 본 영지를 다스리고 계셨습니다요!”

설마하니 그 대머리 일가가 이곳을 다스리고 있는 줄은 몰랐군.

네펠리스 가는 제국의 3대 부호 가문 중 하나로 현 황후인 카산드라 네펠리스를 등에 업고 있는 가문이었다.

지금 시기라면 아마 란돌프 네펠리스 후작이 가주로 있겠지.

그 후작의 동생이 바로 이곳을 다스린다는 파콰론 영주일 것이다.

근데 그놈이 행방불명됐다고?

대체 호위를 얼마나 등신같이 했으면 영주가 실종된 거야?

“뭐 영주가 행방불명 됐다니 큰일이긴 한데, 그게 나 같은 외부인들이랑은 무슨 상관인 거야?”

“아, 저, 그게, 거기에는 그러니까 이걸 어찌 말씀드려야 할지…….”

기사는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마냥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어차피 다 불러서 심문하려고 했다면서? 그럼 얘기하려 했을 거 아니야?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분명 조사를 하러 온 건 저쪽일 텐데, 어쩐지 역할이 바뀐 것만 같다.

고민을 반복하던 기사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사, 사실 저희 영주님이 지금 단순한 행방불명이 아닌, 납치된 걸로 추정되는지라…….”

“납치?”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가했다.

“추정되는 용의자는?”

“그, 그게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왜 요즘 계속해서 말 나오는 조직이 있지 않습니까? 검은 안개를 추종한다는 그 미스트란 놈들을…….”

지랄들 하고 있네.

걔들이 여기 없다는 건 내가 어젯밤 손수 시간 버리면서까지 확인했거든?

이젠 뭐 일만 벌어졌다 하면 냅다 미스트를 의심하는 건가?

게다가 암살도 아니고 납치라며?

진짜 미스트라면 그 자리에서 죽이지, 번거롭게 납치 같은 걸 하지 않는다.

차라리 미스트를 가장한 가짜가 영주를 납치했다는 게 더 신빙성 있…….

잠깐만.

가짜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이거 설마…….

“그 파콰론 영주란 사람 머리카락 없지?”

“예…….”

기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검은 가면을 썼던 납치범에, 머리카락 없는 귀족.

이거 아무래도 내가 어젯밤 봤던 그놈이 맞는 거 같은데?

쓸데없는 일에 엮이기 싫어 그냥 지나쳤더니만, 사실은 어제 본 그 두 명이 바로 사라졌던 영주와 납치범이었던 것이다.

일이 또 이렇게 엮여버리네.

“이, 이게 사실 저희도 그리 가능성 있는 일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희 영주님께선 그런 시커먼 놈들에게 노려질 만큼 악독한 분이 아니셔서 말이죠!”

지랄도 풍년이군.

그 대머리 가문의 더러움을 내가 모르고 있을 것 같나?

네펠리스 후작을 비롯해 현재의 황후까지 나중에 반역으로 몰려 싹 다 척결된다는 걸 알면 뒤로 까무러치겠군.

“다만 영주님이 실종되셨던 방에 이상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던지라, 혹시나 하고 용의 선상에 올렸던 겁니다!”

“그래서 혹여 위장했을지 모를 놈들을 찾기 위해, 외부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예 바로 그겁니다! 안목이 뛰어나시군요!”

굳이 묻지도 않은 사실까지 주저리주저리 말해주다니.

참으로 참된 기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내가 베르트 가를 등에 업은 자제라지만, 넌 암만 봐도 크게 올라갈 놈은 못 될 것 같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다 알았으니까 됐어. 그만 나가.”

“예?”

기사는 멍청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조사 다 끝났잖아? 이제 필요 없어졌으니까 나가라고.”

물론 조사를 끝냈다는 건 내 쪽이었으며, 필요 없어졌다는 건 기사들을 의미했다.

별다른 성과 없이, 오히려 추궁만 당해버렸으니 어안이 벙벙할 노릇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적어도 내가 범인이 아닌 건 확실한데.

멍청한 기사들을 쫓아내듯 내보낸 후, 나는 곧바로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어, 어디 가시는 겁니까, 도련님?”

상황을 쭉 지켜보던 브라이언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마실.”

“아, 아침부터 말입니까?”

“오래는 안 걸릴 거야. 내가 돌아오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해 놔.”

“예 알겠습니다!”

아카데미까지 갈 길이 먼 상황이라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급할수록 돌아가라.

난 지금 쓸데없는 납치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려는 것이다……는 개뿔.

그냥 신경 쓰여서 가는 거다.

그 녀석이 내 얼굴도 본 마당에, 이대로 떠났다간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른다.

나는 어젯밤 안개를 흩뿌렸었던 골목으로 되돌아갔다.

해가 떠오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골목은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한적한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뒤,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암무 4식: 살기 감지!”

옷깃 사이로 빠져나온 작은 안개가 목을 따라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안개로 감싸진 시야는 모든 만물을 검게 물들였으며, 흑백의 세상으로 전환시켰다.

허나 지금 보이는 이 흑백의 세상은 쓸데없는 배경에 불과하다.

-파앗!

초점 어린 눈동자 속으로 서서히 비치는 붉은 색의 광채.

길게 늘어진 벽과 빼곡히 세워진 건물들을 넘어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똑같다.

어젯밤 느꼈던 녀석의 것과 동일한 살기.

나는 골목을 가로질러 붉은빛이 발하는 장소로 빠르게 향했다.

빛을 따라 도달한 곳은 어느 허름한 집 앞이었다.

상태로 보아 빈집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솔직히 폐가로 보여도 할 말 없을 만큼 상당히 낡아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시체를 유기하거나, 누군가를 납치 감금하기엔 적합한 장소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기를 1분.

그사이 두어 번을 더 두드려 봐도 안은 깜깜무소식이었다.

분명히 인기척이 느껴지는 데 없는 척을 하시겠다?

나는 강제로 부수기 위해 한 발짝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이런 낡아빠진 나무문 따위, 케이람을 꺼낼 것도 없이 주먹으로 부숴버리면…….

-끼익

주먹을 쥔 것도 잠시, 갑자기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말았다.

“누구세요?”

“……?”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문을 열고 나온 이는 예상했던 중년의 남성이 아닌, 현재의 내 또래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그것도 한쪽 다리엔 목발을 짚은 채로…….

“죄송해요. 제가 다리가 안 좋아서 나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살며시 눈을 내려 아래를 보았다.

이건 안 좋은 수준이 아닌데?

소녀의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완전히 뒤틀려 있었으며, 하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다시금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바라보니, 이건 뭐 살기는커녕 세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뭐지? 내가 잘못 찾아온 건가?

설마 그 뒤에 있는 집을 착각한 게 아닌지 의심하던 찰나, 집 안에 있던 또 한 명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니, 샐…… 흡!”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본 순간 악마라도 본 것 마냥,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 사시나무처럼 떠는 눈동자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제대로 찾아왔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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