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연결고리 (1)
“하압!”
땀내가 펄펄, 우렁찬 기합은 쩌렁 쩌렁.
이곳은 아카데미가 자랑하는 체력 단련장.
학생들의 체력 및 검술 단련과 더불어 수호 기사들의 개인 지도가 행해지는 곳이다.
심신의 단련을 중요시하는 아카데미인 만큼, 학생들의 개인 단련을 위한 시설은 최상급으로 구비되어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단련하러 온 건 아니다.
내 출중하다 못해 미련하신 우리 종자님을 단련시키러 온 거지.
“흐억…….”
목표 횟수를 다 채운 브라이언이 바닥에 뻗어버렸다.
“다, 다 했습니다 도련님!”
“30초 쉬었다가 다음 운동 돌려.”
“…….”
차라리 자길 죽여 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차마 말은 할 순 없던 모양.
울며 겨자 먹기로 자세를 잡은 브라이언은 바로 푸쉬 업 운동을 시작했다.
“힘드냐?”
“그, 그렇…… 아, 아니 괜찮습니다!”
녀석의 입에선 순간적으로 진심이 새어나왔다.
“나중에 다 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정 힘들면 지금이라도 말해. 나나 간식 심부름이라도 시킬 라니까.”
“아, 아닙니다, 도련님! 기회를 주신 거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브라이언은 우렁찬 기합과 함께 단련을 재개하였다.
뭘 시작하든지 항상 기초가 중요한 법이다.
체력은 모든 신체 활동의 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기에,
이게 갖춰져야지 검술이든 체술이든 그 다음을 단련할 수 있는 것이다.
뭐 그래도 벨리아스에서 정식 기사를 폼으로 달진 않았나 보네.
대체 영지에서 가축들을 어떻게 키웠는진 몰라도, 어느 정도의 체력은 가지고 있었다.
사실 단순한 체력단련이라면 기숙사 안에서도 할 수 있다.
가뜩이나 사람 많은 곳을 원치 않는 나로선 그게 더 편한 일이기도 하지.
그러 내가 브라이언을 데리고 굳이 이곳까지 나온 이유는 단 하나.
보게 하기 위해서다.
직접적인 수련도 좋지만, 남이 수련하는 걸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곳곳만 봐도 학생뿐만이 아닌, 그들의 수호 기사들과, 아카데미 내 소속 기사들이 수련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봐서 도움 될 건 없겠지만, 우리 브라이언에겐 아주 좋은 교본이 되어줄 것이다.
“큭, 아아악, 흐그극!”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라이언은 핏줄과 함께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정체모를 신음을 남발하고 있었다.
“시안……?”
그러던 와중,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꽤나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린 황녀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서 다 보네? 수호 기사랑 단련하러 온 거야?”
“아, 네, 뭐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브라이언의 단련을 위해 온 거지만.
“황녀님도 체력 단련 하러 오신 겁니까?”
“응! 주말마다 레시무스랑 같이 체력이랑 검술 수련 와. 레시무스한테 많이 배우고 있거든!”
황녀의 뒤엔 레시무스를 비롯해 다섯 명의 수호 기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째 평소보다 더 많아진 느낌이다.
“기사들이 많아지셨네요?”
“음? 아, 뭐 그렇지……. 아무래도 최근의 사건 때문에 나도 조심해야겠다 싶어서.”
최근의 사건이란 말에 뒤에 있던 레시무스가 움찔하였다.
별거 없다.
아카데미 신입생 배럿 루이밀이 이른 새벽에 치유소 앞에서 발견된 것.
한쪽 발목은 뼈가 부러져 있었고, 온 몸엔 심각한 내상을 입어, 앞으로 제대로 된 마나 생성조차 힘들 거라는 절망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범인이 누군지 계속 캐물어도 녀석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는데…….
뭐 정확힌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겠지만.
칭찬은 아니더라도, 나름 잘 하고 있는 거라 본다.
계속 그렇게 입만 다물고 있으면 적어도 나랑 더 부딪힐 일은 없을 테니.
“대체 누구였을까?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 내에서 고위 귀족가의 자제를 건드리다니…….”
그러게 말이다.
어떤 악독한 친구가 그런 건지, 얼굴 한번 보고 싶어지네.
괜스레 귀가 간지러워진 건 기분 탓일까?
“아무튼 시안 너도 조심해. 사람일은 원래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거라니까.”
“새겨는 듣겠습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적당히 듣는 뉘앙스는 취했다.
뭐 그래도 저 단단한 정신만큼은 인정해줘야겠군.
듣자하니 그 지겨운 이론수업에서도 우등생 소리 좀 듣는다 하던데, 이렇게 주말에도 쉬지 않고 체력 단련까지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날 아직도 자기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진 모르겠다만, 뭐 이런 식으로 계속 성장한다면 적어도 비운의 황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은 줄어들 거라 본다.
적어도 제대로 된 자기 세력을 구축한다면 말이지.
“도, 도, 도련님……?”
대뜸 브라이언이 모기가 기어갈 듯한 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 소리를 용케 듣고서 고개를 돌리니, 그는 똥 싸기 일보직전의 사람마냥 땀을 삐찔삐질 흘리고 있었다.
“너 왜 그래 갑자기?”
“저, 저, 저기에 지금……!”
브라이언의 불안한 눈빛은 단련장 너머의 어딘가로 향해 있었다.
뭔가 싶어 나 또한 고개를 돌린 순간,
“……!”
음? 뭐지? 내가 지금 잘못 본 건가?
체력 단련장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물줄기 너머,
수풀이 우거진 잔디 밭 위에 떡하니 서 있는 낯익은 존재.
이상하다.
이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멍한 기분.
나름대로 굉장히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왜지? 왤까?
방에서 한창 낮잠이나 자고 있어야 할 꼬맹이가 대체 왜 저기 있는 걸까!?
아카데미에서 지급한 마법 수련용 후드를 둘러싼 채, 아카데미 한복판을 유유히 다니고 있는 당돌한 꼬맹이.
저 똘망똘망하게 빛나는 순수한 눈동자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러내리게 하는 그 꼬맹이!
나나였다.
* * *
아린은 아카데미 개강 이후 주말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단련장을 찾아왔었다.
그동안 레시무스와 함께 단련을 지속해오며 의미 있는 향상을 이루어냈고, 자만하지 않고 더욱더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로지 시안 베르트라는 한 사람을 위해서.
그런 그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던 단련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수업에서도 좀처럼 안 나오는 만큼, 같은 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볼 수 있는 순간이 많지 않았다.
간만의 만남이었던 만큼, 아린은 시안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용기를 내어 말했다.
“호, 혹시 괜찮다면 우리랑 같이 단련하지 않을래? 네가 봐준다면 좀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싶은…….”
“…….”
허나 시안은 아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당황한 얼굴에 아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안……?”
“죄송합니다, 황녀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가보겠습니다.”
급기야 시안은 그의 수호기사와 함께 단련장을 홀연히 떠나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아린은 근 10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 아린님? 괜찮으세요?”
레시무스가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이에 얼타고 있던 아린의 얼굴이 급 붉게 달아올랐다.
“뭐야!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멋대로 가버리고! 나는 뭐 안중에도 없다 이거야?”
조금 전의 감정은 온데 간데 사라진 채, 시안에 대한 질투와 분노가 폭발한 상황.
“진짜 재수 없어! 자긴 뭐 얼마나 잘났다 그래? 됐어! 나도 너랑 단련 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다고!”
암만 화풀이 해봐야 이미 당사자는 떠나고 없는 상태였다.
아린은 애먼 허공을 향해 발만 동동 굴렀지만, 그러면서도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멀었나 보네…….”
아직 그의 눈에 들기엔 부족한 것일까?
1년 전 다짐을 지키기 위해, 매일 매일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고 있는 자신이거늘.
정작 당사자는 아직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것에 기운이 쫙 빠지는 기분이었다.
“단련 시작하자, 레시무스.”
급기야 달관한 듯 아린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머리가 복잡할 땐 몸을 고단하게 만들어 잊게 하라 했다.
그렇게 겉옷을 벗고, 몸을 풀기 위해 팔을 앞으로 쭉 뻗은 순간,
“……?”
근육을 풀던 그녀의 몸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새벽의 이슬이라도 담은 듯 맑고 초롱초롱한 눈동자.
그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방금 전까지 치밀어 올랐던 짜증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있었다.
이건 마치 호기심 가득한 어느 숲속의 요정을 보는 것 같은 기분.
“어, 어린아이?”
네 살 혹은 다섯 살? 이제 막 말문을 텄을 것 같은 어린 여자아이가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몸에는 전신을 다 감싸고도 남아 땅에 질질 끌리는 붉은 색의 마법 망토를 두른 채로.
“……?”
아이 또한 아린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분명 시안이 떠날 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아이였다.
아린은 단련하려던 생각도 잊은 채 몸을 숙이며,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꼬, 꼬마야, 여긴 어떻게 왔어?”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갸웃거렸다.
“아카데미에 왜 이런 어린 아이가 있는 거지?”
“도, 도시에 사는 아이가 아닐까요? 아님 아카데미 관계자의 아이라든지…….”
레시무스를 비롯해 수호 기사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
아이라는 것에 놀란 것도 있지만, 일단 다 떠나서 너무 귀여웠다.
어디서도 보지 못할 핑크색 머릿결에 후드로 꽁꽁 싸맨 아담한 몸은 누구라도 껴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랑스러움이 넘쳤다.
“혹시 이름이 뭔지 가르쳐 줄 수 있어? 언니 이름은 아린이라고 해.”
이름을 묻자, 오물쪼물하게 다물어진 입이 동그랗게 열렸다.
“……나나.”
적당히 부르기 쉽고 귀여운 이름이었다.
“나나? 정말 귀여운 이름이구나! 여긴 어떻게 왔어?”
“파파를 찾으러 왔어!”
즉 가족을 찾고 있는 미아란 소리였다.
“부모님을 잃어버린 모양이네? 그럼 교관님의 아이인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관계자의 가족들이 찾아오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니까요…….”
아카데미 내에서 대부분 숙식을 해결하는 관계자들의 사정 상, 그들을 대신한 가족들의 방문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아린과 레시무스는 자연스레 이 아이도 그런 방문객 중 하나 일거라 생각했다.
“그럼 언니랑 같이 갈래? 언니 방에 가면 맛있는 거 많이 있어. 나나 부모님도 언니가 꼭 찾아줄게!”
“응 좋아!”
나나는 빵싯 웃으며 그대로 아린의 손을 잡았다.
이에 아린의 얼굴이 또 한 번 붉게 달아올랐다.
시안과 성장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은 채, 아린은 나나를 데리고 자신의 기숙사로 향했다.
* * *
문은 나갈 때와 똑같이 굳게 잠겨있었다.
혹시 몰라 나갈 때 작은 마법 결계까지 설치했었으니, 사실상 이 문을 열고 나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허나 저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 사이, 대차게 열린 창문을 보니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이제 알에서 나온지 한 달은 됐을까 싶은 우리 꼬맹이가, 기고, 걷고, 말하는 걸 넘어서, 이제는 날기 까지 했다 이거네?
게다가 여긴 2층 높이였다.
이거 성장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기쁘기 그지없다 아주.
나나를 발견한 지점부터, 근 200m 반경은 다 훑어봤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혹여 귀소본능을 발휘해 기숙사로 돌아오진 않았을까 급히 달려와 봤지만, 남아있는 것은 기가 막힌 탈출 현장뿐이었다.
“벌써 누군가 발견해 데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누가 발견했다고?
그럼 그 순간부터 최악의 상황으로 돌입할 거다.
그나마 불행 중 천만다행이라고, 그녀는 처음 발견당시, 내가 아무데나 던져놓은 마법 망토를 입고 있었다.
누가 벗기거나, 바람에 날리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평범한 꼬마 애처럼 보일 순 있겠지.
허나 오래는 못 갈 것이다.
조금이라도 벗겨져 감춰져 있던 다른 부분이 드러나기라도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나게 귀찮은 일들이 내게 몰려 올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됐다.
살며시 눈을 감은 나는, 곧바로 미스트의 비기를 시전 했다.
“암무 4식: 살기 감지!”
주문과 함께 옷깃 사이에서 새어나온 안개가 눈으로 파고들었다.
안개의 힘을 이용해 주변의 살기를 탐지하는 비기이지만, 꼭 살기만 감지해내는 건 아니다.
애초에 나나는 인간과 용이 뒤섞인 반인반수이기에, 그녀도 분명 용의 신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멀리가진 않았을 것 같으니, 일단 기숙사부터 시작해서 점차 감지 영역을 넓혀 나간다면……?
“음?”
순간적으로 눈을 번쩍 뜨니, 둘러싼 안개가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뭐야? 너 왜 거기 있어?
“차, 찾으신 겁니까?
“따라와 브라이언!”
나는 브라이언과 함께 문을 박차고 나가, 로열관 3층으로 향했다.
누가 사는진 알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곳.
계단을 올라 복도에 딱 발을 올리고 나니, 저 끝으로 낯선 3인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해맑은 얼굴로 웃고 있는 나나.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여인.
진짜 미쳐버리겠네.
급기야 그들도 나를 발견했는지, 한껏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