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265화 (265/325)

제265화. 에밀리 (1)

무장만 봤을 땐 영락없는 용병 무리,

허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리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무기를 쥔 자세, 사열한 진용, 외면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까지.

이들은 어느 무리에 소속되어 집단 훈련을 받은 기사들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신원을 밝혀라.”

이를 눈치챈 황군의 기사들이 즉각 신원을 요구했지만,

“…….”

그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휘이잉

대신 스산한 바람을 타고 비릿한 탁기가 전해졌다.

이를 느낀 브라이언은 바로 깨달았다.

저 낯선 무리는 지금,

자신들을 죽이러 왔다고.

-탓!

그 깨달음과 동시에 괴한들이 검을 앞세우며 달려들었고, 황군은 재빨리 대응 태세를 갖추었다.

“에밀리님, 내리십시오!”

브라이언은 급히 마차에서 에밀리를 끌어내렸다.

“왜요? 무슨 일인데?”

“일단 피하셔야 합니다!”

얼떨결에 내린 에밀리는 마차 밖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며 브라이언의 뒤로 착 달라붙었다.

-팟!

그러자 이번엔 길 양쪽 수풀에서 매복하던 괴한들이 나타나 둘을 덮쳤다.

“윈드 트위스터(Wind Twister)!”

이에 브라이언이 빠르게 검을 뽑아 수평으로 휘두르니, 그의 주위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주변을 감아갔다.

위협을 느낀 괴한들은 즉각 뒤로 물러섰으며,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몸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브라이언은 안주하지 않고 즉각 사방을 주시했다.

교전으로 인해 잠시 흩어졌던 황군들 또한 이내 마차 쪽으로 달라붙었다.

“이, 이 괴한들 설마 절 노리고 온 건 아니겠죠?”

“그, 그건 아닐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죄다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날 보고 있는데! 내가 대체 뭘 잘못 했다고 이러는 거야?”

실제로 마차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둘러싼 괴한들의 시선은 전부 에밀리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녀를 노리고 온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곳곳에 매복해있던 이들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으며, 어느새 황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의 괴한들이 마차를 둘러쌌다.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해 눈동자만 하염없이 굴려대는 찰나,

-스스스

돌연 괴한들의 눈앞으로 낯선 연기가 드리워졌다.

어디선가 불이라도 났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던 것도 잠시,

“컥!”

갑자기 괴한 한 명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의 목에선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으며, 그 잔혹한 광경에 일부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이건 연기가 아니야!”

이내 뭔가를 눈치챈 몇몇 괴한들이 질색하며 중얼거리니,

곧 그들의 앞으로 더 크고 짙은 연기가 드리워졌다.

“안개다! 검은 안개야!”

-서걱! 푹! 콰직!

외침과 동시에 살벌한 살육의 하모니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마차를 위협하던 괴한들은 하나둘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곧 그들이 있던 곳엔 검은 복면을 두른 암살자들이 자리를 대신했다.

“후, 후퇴! 후퇴한다!”

사태가 급변했음을 판단한 괴한들은 도망치듯 물러났다.

암살자들은 달아나는 그들을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쫓거나 하진 않았다.

“이게 대체?”

아직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황군이 경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이,

“마, 맞는 것 같죠?”

브라이언의 등에 착 달라붙던 에밀리가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 그런 것 같습니다.”

브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암살자들 사이에 다소 익숙한 풍채의 누군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편입니다!”

경계심을 떨치지 못한 황군들을 진정시키니, 그 암살자는 바로 둘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복면을 벗었다.

“다친 덴 없으신가요?”

에밀리는 바로 따지듯 물었다.

“당신은 또 왜 여기 있어요?!”

“시안님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을 뿐이에요.”

암살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미아였다.

그녀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에밀리를 비롯한 모두를 지켜달라고 했던 시안의 명을 따르기 위해 미스트 대원들과 함께 마차를 뒤따르고 있었다며 설명했다.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에밀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근데 저 괴한들은 우리를 왜 공격한 거죠?”

“마치 마차 안에 저희가 있다는 걸 아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처음부터 저희를 목적으로 두고 습격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뭐 때문에요?”

에밀리는 이유가 뭐냐며 닦달했지만, 현재로선 알 턱이 없었다.

“여기서 잠시 대기해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인원을 나눠 도망친 괴한들을 붙잡아 오겠습니다.”

황군은 달아난 이들을 잡아다가 심문할 요량으로 그들에게 기다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미아는 소용없는 일이라며 만류했다.

“가지 않는 게 좋으실걸요? 아마 지금쯤이면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예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아의 대답에 황군은 영문을 몰라했다.

반면 뭔가를 눈치챈 브라이언과 에밀리는 무척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걔도 데리고 왔어요?”

한편,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진 숲 속.

“헉! 헉!”

괴한들은 팔과 다리가 나뭇가지에 쓸려 상처가 생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장이 터질세라 뛰었다.

“이게 뭐야? 미스트가 있었단 말은 못 들었다고!”

“근데 왜 우리를 그냥 보내준 거지? 추격의 낌새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그런 거 생각할 시간 있으면 한 걸음이라도 더 뛰어! 괜히 어물쩍거리다 죽을……!”

발에 불 떨어진 듯 미칠 듯이 뛰던 그들은 돌연 제자리에 뚝 멈춰 섰다.

“뭐, 뭐야?”

이 거칠고 거친 숲 속 한가운데에 전혀 있으리라 예상할 수 없는 흰 머리의 단아한 소녀.

초조하고 급박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누그러뜨리는 어여쁜 외모에 괴한들은 잠시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 엘프?”

일부는 뾰족하게 돋은 그녀의 귀를 보고선 눈을 가늘게 좁혔다.

‘…….’

그녀는 말없이 괴한들을 빤히 보다가도, 갑자기 손을 기도하듯 모아 잡고선 눈을 감았다.

그 이해 못 할 광경에 전부 눈을 찌푸리던 순간,

“……?”

대뜸 그들의 머리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뚝뚝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떨어지는 건 덤.

이윽고 등 뒤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미칠 듯이 떨리는 고개를 겨우 제어하며 겨우내 고개를 돌린 괴한들은,

“히이익!”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대로 주저앉거나, 혹은 선 채로 굳고 말았다.

“잘 먹겠습니다…….”

-콰직

육체를 절단하는 무지막지한 소리와 함께, 숲속 전체에 애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비명이 끊길 때쯤,

하스티아는 손을 풀며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별로 안 놀라네요?”

‘무자비한 식성은 드래곤의 본성이라고 들었어요.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래도 크게 놀랍진 않네요…….’

허나 그 말과 다르게 하스티아의 심장은 현재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

“전 아무거나 먹지 않아요. 제가 먹는 건 오직 나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뿐이니까.”

‘그건, 전적으로 당신 기준 아닌가요? 나나?’

“그게 무슨 문제가 되죠? 나한테 나쁜 사람이면 곧 파파한테도 나쁜 사람이라는 건데? 그게 뭐 잘못됐나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나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츄릅 핥으며 물었다.

“안심해요. 하스티아에겐 아직 나쁜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오히려 좋은 냄새가 나요. 파파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기엔 가시가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 그 냄새를 앞으로도 계속 지켜주세요. 하스티아!”

싱그러운 꽃처럼 활짝 웃은 나나와 가시 세운 고슴도치처럼 경계하는 하스티아의 얼굴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 * *

“그게 무슨 말이야? 습격이라니?”

난데없는 급보에 아린은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에밀리는? 에밀리는 무사한 거야?”

“예. 동행했던 황군 역시 전원 다 무사하다고 합니다.”

아린은 바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보고에 따르면, 습격을 행한 괴한들은 마치 자신들이 황녀님의 명을 수행 중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습격자들의 정체는? 밝혀진 거야?”

“대다수는 소속 없는 용병들이라고 합니다. 다만…….”

주변 눈치를 살짝 보던 레시무스는 이내 아린의 귀에 입을 대며 작게 속삭였다.

“그들 중 일부가 아베리코 백작가 소속의 기사들인 것 같다고 전해왔습니다.”

“아베리코 백작가?”

“확실하진 않은, 아직까진 추정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아린은 솟아오르는 흥분을 애써 진정시킨 뒤,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베리코 백작가라는 근거는 뭔데?”

“습격자들의 시신을 조사해본 결과, 상당수가 아베리코 백작가 소속 기사단이 주로 사용하는 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습격을 당한 위치에서 가장 가까웠던 영지가 바로 아베리코 가의 영지였다고…….”

고민에 빠진 아린은 한 손으로 입술을 움켜쥐었다.

“이유가 뭐지? 아베리코 가에서 갑자기 왜…….”

“화, 황녀님!!”

심각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 기사 한 명이 또 다른 보고를 위해 급히 찾아왔다.

“에밀리 시녀가 지금 벨리아스에 도착했답니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아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에밀리가 벨리아스에 벌써 도착했다고요?”

“에! 지금 벨리아스 성문에서 대기 중입니다!”

아린은 더 묻지 않고 바로 레시무스와 함께 벨리아스 성문으로 향했다.

황성과 벨리아스는 쉬지 않고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3~4일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한데, 지금 보고를 받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 말인가?

아린으로선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베, 베르트 공작가 소속 시녀 에밀리! 아린 황녀님을 뵙습니다!”

정말로 도착했다.

에밀리는 물론, 브라이언과 하스티아 그리고,

아린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나나까지.

제국의 서부경계 벨리아스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황군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리 빨리 온 거예요? 이렇게 몇 시간 만에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닐 텐데?”

“그, 그게 급한 일이라고 하시길래…….”

에밀리는 물론 브라이언조차 뭔가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옆에 있던 나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일단 급한 일도 있고 하니 그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해요! 에밀리 양은 바로 저랑 이야기 좀 해요!”

“네. 황녀님!”

에밀리는 바로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아린과 함께 안으로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이리 빨리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벼, 별말씀을요! 한데, 저희 도련님은 어디 계신가요?”

에밀리는 조심스레 시안의 안위부터 물었다.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어요. 이건 시안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지금부터 제가 묻는 말에 대해 에밀리 양은 솔직하게 답해주세요!”

“네 알겠어요. 제가 무슨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왜 벨리아스에 불려 왔는지 아직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에밀리 양. 혹시 하니엘 파시니티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나요?”

다소 우물쭈물하던 에밀리의 얼굴이 돌연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하니엘 파시니티요?”

“네! 기사 율켄으로부터 들었어요. 에밀리 양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다고. 뭐든 좋으니까, 그녀에 관해 아는 게 있으면 빠짐없이 모두 말해주세요!”

황녀의 다급한 재촉에도 에밀리는 어째서인지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에밀리?”

“그 사람은 왜 찾으시는 거죠?”

“네?”

“도련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짧은 순간이지만 아린은 분명히 느꼈다.

시안의 위치를 묻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주 작은 살기가 동반되어 있었음을.

이는 이전엔 접해보지 못했던 굉장히 낯선 모습이었다.

급히 경계심을 아린이 에밀리의 움직임을 주시하려는 순간,

-펑!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익숙한 폭음이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다.

이는 오직 벨리아스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마수의 출몰 신호였다.

“마수가 나타났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