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5화 (5/375)

5화

한수호는 고통이 가라앉자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한수호는 누군가에 의해 위험에서 구해졌다.

왼쪽 어깨에 깊고 긴 검상을 입긴 했지만 목이 잘리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대체 누구지?’

자신을 어깨에 걸치고도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는 자는 뚱뚱한 체구의 여인이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에 100킬로그램은 충분히 될 것 같은 체형.

그런데 이 여인은 놀랍게도 비행 특성에 버금가는 놀라운 움직임을 보이며 산속을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어때, 내가 이겼지? 내 말대로 딱 2초 만에 이 아이를 빼 오는 데 성공했잖아.”

여인은 바람처럼 달리면서도 누군가와 대화까지 나누는 중이었다. 그런데 여인의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너무나 듣기 좋았다.

“히야. 역시 벼락을 부리는 능력은 우리 여보가 최고라니까? 어쩜 그리 정확하게 그놈 팔을 맞춰서 애새끼 어깨까지 찢어냈다니?”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쇠를 긁는 듯 쉬어있었다.

“치잇! 그건 어디까지나 예상 범위 내에 있는 미세한 오차였을 뿐이야. 그러게 진작에 손을 썼으면 상품에 흠집은 안 났을 거 아니냐고!”

여인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워워. 진정해, 여보. 내가 시간을 끈 건, 이 꼬맹이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정도의 상품인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니까?”

“내가 이미 확인해 줬는데, 뭘 더 확인하겠다는 건지…. 생각해봐. 고작 9살짜리가 대체 뭔 수로 특급 마공수 셋을 해치우는데?”

“무슨 특별한 포션을 마신 걸 수도 있고, 이놈 부모가 게이트에서 이상한 아티택트를 구해준 걸 수도 있고.”

“아무튼 이젠 아닌 거 증명됐지? 이 꼬맹이…. 이미 각성한 마공사야. 그것도 그 희귀한 자연 각성이라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부모에 대한 말이 나왔다. 그 말에 한수호는 여인의 어깨에서 발버둥 쳤다.

“내려줘요! 가족들한테 가야 한단 말이에요!”

한수호는 일부러 떼를 쓰기 시작했다.

정확한 이유나 상황까지는 몰랐지만, 이들 부부는 자신에게서 상품의 가치를 보았고, 그래서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한수호가 그 가치를 떨어뜨릴 일이 없게 만들기 위해 요구를 들어줄지도 몰랐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행동은 죽음을 부를 뿐이었다.

다행히 한수호의 예상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이 꼬맹이가 벌써 깼네? 치료 포션 제대로 먹인 거 맞아?”

“포션 판매자가 이거 먹으면 적어도 두 시간은 쥐 죽은 듯이 잠든다고 했는데? 이 꼬맹이 뭐냐?”

부부로 보이는 남녀 모두 굉장히 놀라워했다.

두 남녀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주변을 한차례 살피고는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한수호를 바닥에 내려놨다.

“너,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뚱뚱한 파마머리의 여인은 생각보다 덩치가 더 컸다.

9살의 한수호에 비해 다섯 배, 아니 여덟 배 정도는 큰 체구를 가진 여인이었다.

“나한테서 협조를 원한다면 가족이 있는 곳으로 날 데려다줘요.”

너무도 당차게 하는 말에 여인은 기막혀했다.

“이게 미쳤나? 너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따위 소릴 지껄이는 거야?”

“여보. 진정해, 진정하라고. 이건 화낼 일이 아니야. 이 꼬맹이 보통 물건이 아닌걸? 우리 말 몇 마디 엿듣고서 상황을 대충 파악한 모양인데?”

“당신은 그냥 애새끼가 하는 말에 무슨 의미를 두고 그래?”

좀 전까진 여인이 한수호의 편을 들더니, 이젠 반대가 됐다. 이 이상한 부부의 말과 행동은 한수호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기다려봐. 네 이름이…. 그래, 한수호. 맞지, 한수호?”

이들은 한수호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모에 대한 것도 알고 암습자들에 대한 것도 알지 모른다.

한수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른 장작개비처럼 생긴 염소 얼굴의 사내가 히죽 웃었다.

“지금 네 부모, 아니 네 가족 모두가 위험하다는 건 알지? 데려다줄 수는 있는데 멀리서 대충 지켜보는 게 다야. 그 이상 접근하면 우리도 위험하거든. 그래도 된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지.”

마른 사내는 한수호를 9살짜리 아이로 취급하지 않았다.

“내 가족이 어떤 상황인지만 확인할 수 있으면 돼요. 그럼 당신들한테 협조할게요.”

“오호. 그 말 믿어도 되는 거냐?”

“날 억지로 데려간다고 해도 내가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텐데요?”

한수호는 이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이 강제로는 취할 수 없는 것임을 눈치챘다.

“뭐야, 너 그걸 어떻게 알…. 아니, 뭐. 그렇다고.”

뚱뚱한 여인이 말을 하다가 마른 사내가 발끈하자 말을 얼버무렸다.

“좋아. 근처로 데려다주기는 하겠다. 대신 소리를 낸다거나 갑자기 말을 바꾼다면 바로 널 놈들한테 던져줄 거야.”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여보. 조금만 더 수고를 해줘야겠는데?”

“끄응. 뭐, 어쩔 수 없지.”

뚱보 여인이 한수호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그들은 쏜살같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 * *

1시간 뒤.

한수호는 절벽 위에서 가족이 처한 위험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생과는 분명 달라졌지만, 아버지가 죽을 위기에 처한 건 변하지 않았다.

11명의 가면인에게 포위된 한철형은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부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이태희와 다른 자식들이라도 살리겠다고 한철형이 또다시 미끼로 나선 모양.

그래도 다행이랄까? 다른 가족은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

“너와 네 아비의 희생으로 네 명은 살아남겠구나.”

마른 사내는 어둠 속에서도 모든 걸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시각에 5포인트가 분배된 한수호와 맞먹는 능력이었다.

“아직 한 놈이 더 있어요. 그놈이 어느 쪽에 나타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저기예요!”

한수호는 아버지 한철형 쪽으로 접근하는 몇몇 사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다른 가면인들과는 움직임이 확연히 달랐다.

“너, 저놈들이 보여? 허…. 나도 마나력을 잔뜩 끌어올려야 어렴풋이 볼 수 있는 건데?”

“여보. 그런 거에 놀라고 있을 시간 없다고! 저놈들 더 강한 놈들이야. 딱 봐도 죄다 진급 마공사들이라니까?”

뚱보 여인의 말대로였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한철형이 악전고투를 치르는 장소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이 뛰어들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한철형의 두 팔이 허공에 날려졌다. 그리고 한쪽 무릎까지 잘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빠!’

한수호는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찌나 힘을 세게 줬는지 지혈되었던 어깨의 상처가 터져 다시 피가 철철 흘렀다.

부부는 그런 한수호를 그냥 지켜봤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피가 흐를 정도로 힘을 꽉 주고 있는 모습에서 놀라운 집념을 엿볼 수 있었다.

잠시 후, 한수호의 두 눈에 한철형의 최후가 그려졌다.

새로 합류한 가면인 중 하나가 거침없이 한철형의 목을 쳐버린 것.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한수호는 무릎을 털썩 꿇었고,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하지만 그 어떤 소리도 내뱉지 않았다.

평범한 9살의 아이라면, 여기서 이렇게 지켜보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의 죽음에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한수호는 그러지 않았다.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할지언정 한마디의 신음성도 흘리지 않았다.

한철형이 죽자 가면인들은 이태희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태희의 앞을 가로막는 무리가 있었다.

10명이 넘는 인물들.

그들은 한수호를 뒤쫓던 가면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외에 체구가 장대한 인물 하나가 더 추가되어 있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이태희는 한별이를 한설아에게 넘기고 아이들 앞을 막아섰다.

이태희가 멈춰선 장소는 막다른 골목이나 다름없었다.

앞에는 적들이었고, 뒤에는 까마득한 높이의 폭포였다.

도망칠 구멍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는 한수호의 손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엄마…. 성찬이 형. 설아야, 별이야!’

속으로 가족을 애타게 불렀지만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적어도 적들의 손에 죽지 않고 폭포로 뛰어내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는 있었다.

“하나만 부탁하겠습니다.”

“뭐냐?”

마른 사내는 한수호에게서 무형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제가 이성을 잃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최대한 절벽 끝 쪽으로 몰아주세요.”

한수호는 어느새 쿨타임이 돌아온 광폭화 3단계를 사용할 작정이었다.

9살의 자신이 3단계를 사용해봐야 저 가면인들 손에서 가족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절벽 일부분을 박살 내 산사태를 일으킨다면 잠깐의 기회는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뭘 하려는 거냐?”

사내가 묻자 한수호는 솔직하게 말했다.

각성한 특성을 사용해 절벽을 무너뜨릴 거라고.

하지만 이지를 상실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제어가 필요하다고.

“절벽을 무너뜨린다고 네 가족이 살아날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니다.”

“저도 압니다. 그냥…. 그냥 기회를 주고 싶어요. 절벽이 무너지면 소란이 일 거고, 그 소란으로 가족이 폭포로 뛰어내릴 짧은 기회가 생기면 충분해요.”

마른 사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뚱보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지만, 사내는 생각이 달랐다.

“네 말대로 해주지. 하지만 네가 특성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절벽은 내가 무너뜨려 주마. 그럼 우리 위치도 발각되겠지. 추격을 받게 될 거다. 만약 우리가 위험해진다면 널 버릴 거고. 그래도 좋으냐?”

“…이미 각오했습니다.”

한수호의 대답에 마른 사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너. 왜 우리 보고 가족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지?”

다른 아이였다면 가족을 살려달라고 울고 불며 난리를 쳤을 텐데, 이 꼬마는 그렇질 않으니 이상했다.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요. 두 분이 나선다 해도 시체 세 구가 늘어날 뿐이겠죠. 그럴 바에야 제가 뛰어들어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보내는 게 낫고요.”

한수호의 판단은 냉정했고 정확했다.

이 부부가 나서봐야 저 많은 가면인들 손에서 가족을 구출해 내는 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부탁한다고 들어줄 사람들도 아니다.

“뭐, 좋다. 너라도 제대로 살리려면 절벽을 때려 부술 수밖에 없겠어. 네 말대로 네 가족이 살아날 기회가 될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사내는 허리에 찬 검을 힘차게 뽑아냈다. 그리고 기회를 봤다.

저 멀리 폭포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주시하면서.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이태희가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면인에게 달려들었고, 몇 번의 화려한 공방 끝에 이태희가 쥐고 있던 검이 튕겨 나갔고, 그녀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주춤주춤 물러나는 이태희. 그녀 앞으로 가장 강해 보이는 가면인이 다가섰다. 그리고 그가 검을 높게 치켜드는 순간.

“시작한다!”

마른 사내가 툭 튀어나온 절벽에서 위로 붕 뛰어올랐고, 허공에서 절벽 가장자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씌웅

검이 반달의 빛을 뿜어내며 절벽을 갈랐다. 그 상태에서 마른 사내가 바닥에 착지하며 가장 크고 단단한 바위에 검을 쑤셔 박았다.

콰앙

강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고.

쩌저적

바위가 갈라지고 땅이 갈라졌다. 그리고.

우르르릉

절벽 한쪽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갑작스러운 산사태에 가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절벽 쪽으로 향했다.

무너진 바위와 흙들이 순식간에 가면인들이 있는 쪽으로 밀어닥쳤다.

“피해!”

누군가가 소리쳤고, 그때를 맞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잠자코 있던 한성찬이 갑자기 뛰쳐나가 떨어진 검을 낚아채더니,

“폭포로 뛰어!”

그렇게 외치며 가면인에게 달려들었다.

“엄마, 뛰어요!”

미리 약속이 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한설아까지 합세해 이태희를 폭포로 확 밀쳤다. 그리고 한설아 자신도 폭포 아래로 뛰어내렸다.

쑤애액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든 채찍이 한설아를 휘감았다. 그 순간, 한설아는 안고 있던 한별이를 이태희 쪽으로 내던졌다.

“설아야!”

이태희는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한별이를 받아냈고, 한설아를 향해 한 손을 뻗으며 절규했다.

채찍에 휘감긴 한설아는 멀어지는 이태희를 바라보며 서글프게 웃었다.

엄마라도 살아남으라고. 한별이에겐 엄마가 필요하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이태희가 폭포수 아래로 완전히 사라졌을 때, 폭포 위쪽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가면인에게 달려들었던 한성찬.

그는 한쪽 다리가 잘린 채 정신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한설아는 기절한 채로 채찍에 휘감겨 가면 여인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무너진 바위와 흙들은 그들의 코앞에서 멈춰져 있었다.

가면인들은 모두 폭포와 반대쪽인 절벽을 바라봤다.

산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에 번쩍했던 빛. 그건 분명 검기였다.

이 산사태는 자연적인 것이 절대 아니었다.

누군가가 고의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들이 절벽 위를 바라봤을 때, 그곳엔 당연하게 아무도 없었다.

“대체 누구죠? 이 산에 우리 말고 다른 팀이 또 있는 건 아닐 텐데?”

채찍을 쓰는 가면 여인의 말에 한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태희에게 부상을 입히고, 한성찬의 다리를 잘라낸 자였으며, 네 개의 꽃잎이 그려진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한수호, 그 꼬마를 구해간 자들이겠지. 난 폭포 아래쪽으로 간다. 넌 저 위로 가서 어떤 개자식이 우리 일을 방해했는지 확인해.”

“이 애들은 어쩔까요? 그냥 죽이기엔 재능이 아까운데….”

여인은 이미 기절해 있는 한설아를 어깨에 걸쳤다.

한설아와 한성찬을 번갈아 돌아보던 꽃잎 네 개의 가면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환을 남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그는 한성찬에게서 빼앗은 이태희의 검으로 둘을 죽이고자 했다. 그때.

촤악

숲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쏜살같은 움직임으로 한성찬과 한설아를 낚아채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에는 많은 사람은 물론 꽃잎 네 장이 그려진 가면인까지 있었는데도 아무도 그림자의 움직임을 뒤쫓지 못했다.

가면 여인과 다른 가면인들이 황급히 그림자를 쫓으려고 할 때, 꽃잎 네 장의 사내가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이미 늦었다. 놈보다 이태희와 절벽 위의 방조자를 쫓는 게 더 급해!”

그 말에 가면인들이 빠르게 두 패로 갈라져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한수호는 뚱보 여인의 등에 업힌 채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살아난 건 엄마와 별이 뿐이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거기까지였다.

만약 자신이 죽어서 다른 가족이 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했다.

미끼가 되어 적을 유인했고, 죽을 각오로 그들을 암습하기도 했다. 지금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이 부부 덕분이었다.

하지만 왜 가족들에겐 그런 운이 주어지지 않았던 걸까?

아버진 회귀 전과 다를 바 없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한성찬과 한설아도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아마도 죽었으리라.

‘엄마와 별이라도 살았으니 다행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이미 죽어버린 아버지를 떠올리자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야야. 등이 다 축축하잖아? 사내새끼가 많이도 처우네.”

뚱보 여인이 투덜대자 마른 사내가 여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당신이 이해해. 이 녀석이 애답지 않기는 해도 9살이라는 건 사실이잖아. 그보다, 아까 당신도 느꼈지? 거기에 엄청난 놈이 하나 더 숨어 있었어.”

“응. 나도 느꼈어. 최소한 궁급 이상인 것 같던데? 완전 지리더라고.”

궁급이면 세상에 알려진 마공사의 최고 단계다.

그런데 뚱보 여인은 ‘최소한 궁급 이상’이라는 이상한 소릴 했다.

“와…. 지금 비돈마마가 지렸다는 거야? 어이쿠야. 세상 곧 망하겠구만.”

“얼씨구. 나만 지렸나? 우리 귀살객께서도 너무 지려서 한달음에 내빼놓고는!”

두 사람은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한수호가 모든 행동을 멈춰버렸다.

더 이상은 울지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엔 두 개의 단어로 가득 차 있었다.

‘비돈마마와 귀살객?’

한수호가 아는 이름이었다. 아니, 실제로는 아는 이름과 달랐다.

그가 회귀 전에 알고 있던 인물들은 귀살마마와 비돈객이었다. 이들의 이름과는 한 끗 차이로 달랐다.

한수호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귀살마마와 비돈객에 대한 모습을 지금의 이들과 비교해봤다.

큰 키에 엄청난 살집을 자랑했던 쾌검의 달인, 비돈객.

그리고 너무 말라 뼈밖에 보이지 않았던 뇌전을 다루는 여인, 귀살마마.

두 사람 모두 너무나 강력했고, 그만큼 잔인했던 악인 중에 악인이었다. 그리고 회귀 전의 한수호에게 많은 괴로움을 안겨주었던 적이기도 했다.

오랜 추적 끝에 그들은 한수호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땐 분명 남자가 뚱보였고, 여자는 말라깽이였다.

‘설마, 이들이 원래는 반대였다는 건가?’

회귀 후에 마주한 비돈마마와 귀살객. 과연 이들은 원래부터 악인이었던 걸까?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어 악인이 되어야 했던 걸까?

어쨌든, 현시점에서 이들 부부는 한수호과 이태희, 그리고 한별이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준 은인이었다.

한수호는 과거의 기억과 회귀한 삶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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