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르는구나.’
한수호는 저녁 수련을 마치고 자신의 방에서 개조 특성의 쿨타임을 확인했다.
-쿨타임 [00:17:24:16]
10년이나 되던 쿨타임이 이제 17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그동안 쌓인 스탯을 배분할 수 있게 되고, 그럼 지금보다 더욱 강한 힘을 한순간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10년간 꾸준히 미션을 수행해온 덕에, 포인트는 347.9나 된다.
초반 몇 달 동안은 미션을 완수하지 못한 경우가 상당했기에 아깝게 놓쳐버린 포인트가 꽤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400포인트 이상이 쌓였을 터인데, 꽤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미션 하나를 수행하고 0.1포인트씩 획득해 347이나 모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쿨타임이 풀리고 10년 동안 모은 포인트를 스탯에 배분할 생각을 하니 괜히 심장이 두근거린다.
‘17시간 뒤. 그때부터 모든 걸 시작하는 거다.’
한수호는 10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육체와 기술을 단련하는 수련을 단 한 순간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회귀 전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중요한 사항을 모두 수첩에 기록했다.
한수호가 코드네임 777로 활동하며 처리했던 모든 게이트에 대한 정보와 그의 손으로 처리한 미등록 마공사들에 대한 신상정보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더불어 앞으로 해야 할 목록도 작성해 두었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이대성에 대한 처리였다.
원래는 진작에 이대성을 찾아가 놈의 숨통을 끊어놓으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혼자 힘으로는 이 섬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장한구, 주태란 부부는 한수호가 몰래 도망칠 수 없도록 봉인구를 착용시켰다.
양손과 양발에 각기 5킬로에 달하는 쇠고랑을 차게 했고, 그 쇠고랑은 특정 위치에서 일정 거리 이상 벗어날 경우 강한 자력을 발생시켜 손발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한수호는 섬을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
자기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 소식만이라도 알 수 있게 육지에 다녀오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음에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대신 한수호의 비통한 마음을 기쁨으로 바꿔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받았다.
한수호가 회귀한 그 날, 지리산에서 목숨을 잃은 건 아버지인 한철형 한 명뿐이라는 사실.
이태희와 한성찬, 한설아, 한별은 모두 죽지 않았다는 다행스러운 소식이었다. 다만, 그들이 어디에 어떻게 살아있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 소식이라도 전해 들었기에 한수호는 지난 10년을 섬에 갇혀서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대성도 지금쯤은 아카데미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겠지?’
이대성은 한수호와 동갑이자 아카데미 동기다.
아카데미 입학 시에 치르는 튜토리얼에서 이대성은 신체 강화라는 특성을 얻게 된다.
이 특성은 평급에 불과했지만, 신체 부위 어디든 10초 동안 세 배로 강화시켜주기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은 내 광폭화를 너무 부러워했지.’
이대성은 자신과 비슷하지만 훨씬 강력한 한수호의 광폭화를 미친 듯이 부러워했었다.
그렇기에 타인의 특성을 흡수할 수 있는 특성을 얻게 되었을 때, 오랜 친구였던 한수호를 죽일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네가 얻은 그 특성, 이젠 내가 갖겠다!’
한수호는 이대성이 얻은 흡수 특성을 선수 쳐서 자신이 갖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대성이 한 말을 토대로 가설을 세웠다.
‘놈이 흡수 특성을 얻은 건 마지막 게이트 작전 바로 전이야. 가장 먼저 내 특성부터 흡수하려고 했으니까 이건 확실해.’
그렇다면 마지막 작전 직전에 이대성이 투입됐던 게이트를 알면 된다.
‘한남동 게이트. 놈은 거기서 흡수 특성을 얻은 게 분명해.’
한남동 게이트가 열린 건 2052년 1월이었다.
지금이 2051년 2월이니까 아직 1년 정도 남은 상태.
한수호는 한남동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그곳에 들어가 흡수 특성을 먼저 차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그렇고…. 스승님들은 어떻게 한담?’
한수호는 장한구, 주태란 부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놓고 심사숙고했다.
이들을 만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부부는 회귀 전처럼 악인으로 변하지 않았다.
처음 봤던 그대로였다.
장한구는 깡마른 몸으로 언제나 한수호를 챙겨주었고, 주태란은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늘 성질을 부렸지만 알게 모르게 남편과 한수호를 걱정해주었다.
이들이 회귀 전처럼 악당 같은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고민도 할 것 없이 처단해 버렸겠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이기에 망설여졌다.
이에 한수호는 이들의 인성을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자 했다.
‘내일 이 시간쯤이 좋겠구나.’
그때쯤이면 개조 특성의 10년 쿨타임이 끝나고, 쌓아놓은 포인트도 모두 분배한 뒤일 테니 부부를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과거 유대룡의 손에서 철저하게 훈련받은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채, 이들 부부의 손에서 다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은 덕분이었다.
지금의 한수호는 회귀 전보다 훨씬 강한 육체를 갖고 있었다.
회귀 전의 육체는 근육질에 우락부락한 체형이었다면, 지금은 183이나 되는 큰 키에 모델처럼 잘빠진 몸매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겉보기에만 잘빠진 몸매일 뿐, 10년간 끊임없이 미션을 수행하고 지독한 훈련을 거듭하며 담금질 된 탄탄한 육체가 펑퍼짐한 옷 속에 숨겨져 있었다.
이미 지금 상태로도 한수호는 진급 마공사 둘 셋 정도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스탯 분배가 끝나면 바로 실행하자.’
한수호는 그렇게 생각을 정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 * *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6시에 일찌감치 일어난 한수호는 허리에 목검을 차고 집 근처 공터로 나가 갱신된 미션을 살펴봤다.
[오늘의 미션]
-쪼그려 뛰기 10,000회
-획득 포인트: 0.1
‘뭔 놈의 포인트가 이렇게 짠지…. 에휴.’
10년째 매일같이 겪는 일이지만 볼 때마다 짜증스럽다.
100회, 200회도 아니고 10,000회다.
이걸 해내려면 정말 아무 짓도 안 하고 대여섯 시간 동안 죽자고 반복해야 했다.
그러고도 얻는 포인트는 고작 0.1뿐.
하지만 안 할 수가 없었다.
미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0.1이라는 숫자가 신체 수치에서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현재 한수호의 신체 수치는 다음과 같다.
[머리] : 34
[왼팔] : 35
[오른팔] 39
[가슴] : 23
[배] : 25
[왼발] : 36
[오른발] : 41
회귀 직전의 수치와 비교하면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지만 그래도 평급 수준까지는 올라와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수치였다. 실제로는 과거보다 지금의 육체가 훨씬 강하고 단단하다.
이전 삶보다 무려 7살이나 어린 나이에 예전보다 훨씬 뛰어난 육체를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미션까지 해결하면 348포인트…. 이걸 다 배분하면 정말 초인이라도 되겠는데?’
몇 시간 뒤면 진행하게 될 스탯 배분이 너무너무 기대되었다.
그건 그거고 지금 해야 할 건 해야 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한수호는 쪼그려 앉은 뒤 두 손을 허리에 올렸다. 그리고 정면을 바라본 상태로 쪼그려 뛰기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하나!”
한 방향으로 세 번을 뛰고 네 번째는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뛴다.
이런 식으로 동서남북으로 네 방향을 돌아가면서 2천 5백을 세면, 실질적으로 1만 회가 되는 간단한 미션이었다.
사실 말이 간단하지, 백 번을 뛰기도 전에 녹초가 되고, 다리에선 감각이 사라지고 만다.
처음엔 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걸린 시간이 무려 10시간이 넘었다. 그땐 정말이지 여기가 지옥이구나 싶을 만큼 힘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1만 회를 2시간 만에 끝내버렸다.
물론, 한수호가 마음만 먹는다면 1시간 내로도 끝마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개조 특성이 내주는 미션은 빨리 끝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확한 자세로 성의있게 한 회 한 회를 완료해 나가는 것이었으니까.
1만 회를 마치고 땀이 줄줄 흐르는 상태로 벌떡 일어서자 바로 미션 완료 통지가 떴다.
>>미션 완료.
>>포인트 0.1을 획득합니다.
이 메시지가 어떻게 눈앞에 나타나는 건지는 한수호도 모른다.
원래 마공사가 볼 수 있는 건 특성에 대한 설명이 다였다.
그 외에는 눈앞에 한수호가 보는 것 같은 메시지가 뜨는 일이 없어야 했다.
‘개조 특성만의 혜택이겠지,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었다.
미션을 끝내고 포인트를 얻고 나니 시간이 남는다.
‘오후엔 할 일이 있으니까 다른 훈련을 당겨서 해두자.’
오늘은 개조 특성의 스탯을 배분해야 하고, 스승 부부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특별한 날이었으니 모든 걸 일찍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었다.
‘먼저, 쾌검부터.’
쾌검은 진급의 위력을 지닌, 장한구만의 강력한 특성이었다.
원래부터 검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장한구는, 강제 각성을 통해 쾌검을 얻었다.
검술을 운용하는 도중에 쾌검 특성을 발휘하면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지게 되며, 본래의 위력에 50%나 추가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수호는 진짜로 쾌검 특성을 가진 게 아니기 때문에, 장한구의 검술인 ‘파랑격’을 배운 상태였다.
그리고 파랑격에 쾌검 특성을 덧씌울 때 나타나는 효과를 마나공법의 묘리로 가르침을 받았기에 비슷하게나마 흉내는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수호가 펼치는 파랑격은 굉장히 강력했다.
촤아아아악
목검을 뻗어내며 공터를 가로지르는 한수호의 모습은 폭풍우 속의 격랑과 같았다.
순식간에 앞뒤로 정신없이 움직이며 허공에 검을 흩뿌리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공터에 회오리가 일기 시작했고, 흙과 풀들이 날아올랐다.
촤악. 촤라락.
순간순간 번뜩이는 목검이 땅에 깊숙한 자국을 새겨 넣었다.
그렇게 몇 분간 끊임없이 공터를 휘젓던 한수호는 어느 순간 움직임을 갑자기 멈췄다.
그와 함께 허공으로 떠올라 있던 흙먼지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 아직도 부족하구나.”
공터 바닥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마치 파도가 휩쓴 듯한 형태로 땅 이곳저곳이 파이거나 불룩 튀어나왔다.
검술을 펼친 것만으로 땅을 뒤집어 버릴 정도인데, 뭐가 부족하다는 걸까?
한수호는 땀을 훔쳐내고서는 다시 파랑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수호의 검은 더욱 긴 시간 동안 공터를 휩쓸었다.
그럴 때마다 바닥은 더욱 깊이, 때로는 더욱 높게 뒤집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한수호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두 시간이 흘렀을 때는 처음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속도를 보였다.
촤앙. 촤촤촹.
검이 휘둘러지는 소리는 점점 섬뜩해졌고, 이젠 한수호의 움직임마저 흐릿해져 정확히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한수호가 움직임을 딱 멈췄다.
후웅
묵직한 공기가 한수호의 몸을 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마치 태풍이 후려친 듯 한수호의 옷이 심하게 펄럭거렸다.
“이제야 좀 그럴듯하네.”
땀을 훔쳐낸 한수호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바닥엔 더 이상 굴곡이 보이지 않았다.
평지.
마치 개간하고 있는 땅처럼 심한 굴곡을 보였던 땅이 어느샌가 평지로 바뀌어버렸다.
하지만 그건 평지가 아니었다.
멀리서는 평지로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엄청난 굴곡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한수호는 그런 바닥을 잠시 바라보다가 발을 한번 쿵 굴렀다.
콰르르륵.
순간, 반경 5미터 정도 되는 공터 바닥이 지면 아래로 훅 꺼져버렸다. 이를 지켜본 한수호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번엔 뇌전이다.’
주태란의 특성인 뇌전은 특성을 발휘함과 동시에 몸에서 뇌의 힘을 뿜어내게 된다.
이때의 뇌력은 수천 볼트의 수준이지만 지속적으로 발휘되기 때문에 상대의 움직임을 거의 봉쇄에 가깝게 방해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이 뇌력을 수 초간 축적했다가 한방에 내뿜어 적을 압살할 수도 있었다. 이때 뿜어지는 뇌력은 만 볼트를 상회하는 수준.
하지만 한수호가 익힌 건 주태란의 주특기인 벽력권에 뇌전의 묘리가 담긴 마나공법이었다.
그 덕에 한수호는 벽력권을 운용하는 동안 약하게나마 뇌력을 품을 수 있게 되었고, 마지막 한 방에 1만 볼트 정도의 뇌력을 뿜어내는 게 가능해졌다.
파랑격과 벽력권.
쾌검 특성과 뇌전 특성의 마나공법.
회귀 후,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 모든 게 한수호라는 한 소년의 몸에 집약되고 있었다.
* * *
오후 5시.
벽력권을 수련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재빨리 수련을 마무리한 한수호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불에 그을린 시커먼 자국이 가득하다.
몇몇 나무는 벼락에 맞은 듯 새까맣게 타버리기까지 했다.
‘드디어 쿨타임이 끝났구나!’
한수호는 개조 특성의 쿨타임이 끝나고 모든 잠긴 상태가 풀어졌음을 확인했다.
이제 스탯 배분이 가능해졌다.
‘일단은 폭포 쪽으로 가자.’
지금 한수호가 가려는 곳은, 10년 동안 매일같이 수련을 마치고 땀에 절은 몸을 씻기 위해 애용하던 폭포였다.
크고 웅장한 폭포는 아니었지만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에 앉아있으면 청량함에 기분이 좋아지는 장소였다.
한수호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 폭포수 아래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쏴아아아아
뼈까지 시릴 정도의 차가운 폭포수. 하지만, 지금의 한수호에게 이 정도 차가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수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개조 특성을 불러들여 다시 한번 상태를 점검했다.
[특성: 개조]
-1일 1회 주어지는 미션을 수행하여 포인트를 모으고, 그 포인트를 스탯에 분배하여 육체를 개조합니다.
-특성 단계: 2단계(2/5)
-2단계 효과: 특수 개조에 해당하며, 신체 내적인 부분을 특정하여 스탯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2회 한정으로 상대방 스탯 조정이 가능합니다. 쿨타임 10년
-보유 포인트: 348NP
-3단계 업그레이드 포인트: 50,000LP
<오늘의 미션 확인>>>완료
‘그런데 NP와 LP는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같은 포인트일 텐데, 보유 포인트는 NP로 표시되고 업그레이드 포인트에는 LP로 표시된다.
‘일단 해봐야 아는 건가?’
한수호는 세찬 폭포수를 온몸으로 맞으며 스탯 분배를 시작했다.
눈앞에 떠 있는 두 개의 인체 해부도 중에 먼저 신체 내부 항목이 있는 쪽을 먼저 선택했다.
신체 외형적인 항목들은 신체 단련으로도 어느 정도 수치 상승이 가능했지만, 내적인 항목들은 10년 동안 고작 1밖에 상승이 안 됐으니 훨씬 중요한 게 분명했다.
‘일단 심장부터 올려볼까?’
인체 해부도 상의 심장 부분에 집중하자 예상대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내용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지금은 ‘심장’에 포인트 배분이 불가능합니다.
>>신체 외형적인 항목의 모든 수치를 1차 한계까지 채워야 해금됩니다.
‘1차 한계까지 채우라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살짝 당황했지만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신체 내적인 항목은 아직 스탯 배분을 할 수 없다는 거구나.’
그렇다면 쌓인 포인트는 모두 신체 외형적인 항목에 배분해야 했다.
다시 첫 번째 인체 해부도를 선택했고, 그중에서 머리 부분에 집중했다.
>>NP(Normal Point-일반 포인트)를 소모하여 ‘머리’ 항목의 수치를 증가시키겠습니까? YES/NO
그때 제대로 된 메시지가 떴고, 이걸 본 뒤에야 NP가 무언지 이해할 수 있었다.
‘NP가 일반 포인트의 약자였어?’
그럼 LP는 무얼까? 등급을 올리는 포인트를 의미할 테니 레벨 포인트가 아닐까 싶었다.
‘포인트에 종류가 있다는 소린데…. 어쨌든 최대로 올려보자.’
한수호는 YES 글자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꽤 직관적인 표시가 추가로 떠올랐다.
(-)00(+)
마이너스와 플러스를 이용해 숫자를 올리고 내릴 수 있는 모양. 게다가 소수점 표시가 없으니 정수로만 배분이 가능한 듯했다.
‘자릿수가 두 자리니까 99가 최고치인가 본데?’
그렇다면 지금 머리 수치가 34이니 65를 더 올릴 수 있다는 소리다.
플러스 표시를 누르자 1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숫자가 올라갔다. 그리고 정말로 65에서 숫자가 멈췄다.
플러스를 계속 눌러도 더 이상은 숫자가 오르지 않았다.
‘역시나 99까지가 최고인 건가?’
신체 외형적인 항목은 일곱 개였고, 이미 올려진 수치를 계산해보면 모든 항목을 99까지 올리기 위해 필요한 포인트는 460이나 된다.
현재 쌓인 포인트 348로는 한참이나 부족한 수치.
‘일단 머리, 가슴, 배부터 99 채우고.’
남은 건 두 팔과 두 다리.
포인트는 이제 133밖에 남지 않았다.
‘우선은 하체에 스탯을 몰아버리자.’
남자에게 하체는 늘 중요하다.
그래서 121포인트를 두 다리에 전부 투자해 모두 99로 만들었다.
이제 남은 포인트는 단 12뿐.
왼팔과 오른팔이 각각 35, 39였으니 균형을 위해 8과 4를 배분했다.
이로써 한수호의 신체 외형적인 스탯은 상당히 볼만하게 바뀌었다.
[머리] : 99
[왼팔] : 43
[오른팔] : 43
[가슴] : 99
[배] : 99
[왼발] : 99
[오른발] : 99
인체 해부도의 숫자를 한차례 훑어본 한수호는 뿌듯한 느낌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포인트 분배를 확정하겠습니까? YES/NO
최종 확인을 요하는 메시지가 뜨자 바로 YES를 선택했다. 그 순간.
퍼엉
한수호의 머릿속으로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온몸에서 은은한 붉은색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그 기류는 폭포수의 힘마저 거슬렀고, 한수호의 몸에 있던 물기마저 바짝 말려버렸다.
한수호는 눈을 떴다. 그리고 온몸이 전에 없던 힘으로 충만함을 느끼며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힘이 들끓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 힘을 뿜어내라고 요동치고 있었다.
한수호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이런 엄청난 힘이라니….’
회귀 전에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력한 힘.
이 힘이라면 손에 잡히는 그 어떤 것도 바스러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디 한번!’
한수호는 살짝 무릎을 굽혀 하체를 낮췄다.
부우욱
구부러진 다리에 엄청난 근육이 부풀어 오른 순간,
꽈앙
무서운 폭발음과 함께 한수호의 몸이 하늘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단숨에 20여 미터를 날아오른 한수호는 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굉장하잖아!’
모든 힘을 쓴 것도 아니고 30% 정도의 힘만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라니.
정점을 찍은 한수호는 빠르게 추락했다. 이대로라면 물 위가 아닌 땅바닥 위로 떨어질 것 같았다.
‘씨바, 좆됐다!’
허공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커다란 충격을 예상하며 온몸에 힘을 불끈 쥐었다. 그 순간, 그의 두 다리가 물가에 박힌 커다란 바위 위로 착지해버렸다.
터엉
쪼그려 앉는 자세로 착지한 한수호는 발에서부터 시작된 찌르르한 전율이 몸을 타고 올라 머리털까지 곤두서게 만들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의외로 몸이 멀쩡했다. 오히려 착지한 바위가 움푹 꺼져 들었다.
콰직
부서진 바위가 가루가 되어 한수호의 몸을 휘감아 돌았다.
‘몸이 엄청나게 단단해졌어!’
몸을 휘감고 있던 붉은 기류는 어느새 사라졌다.
하지만 몸에 가득 찬 힘은 사라지지 않았고, 들끓던 힘만 잔잔하게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한수호가 방금 자신이 보였던 능력을 떠올리고 있을 때, 또다시 메시지가 등장했다.
>>1단계 4개 항목의 최대치가 채워졌습니다. 미션 등급이 상승합니다.
>>미션 등급 향상으로 획득 포인트의 기본 수치가 오릅니다. 0.1=>0.2
감사하게도 획득 포인트의 기본 수치가 두 배나 올랐다.
0.1에서 0.2로.
5일 빡세게 미션을 수행해야 고작 1포인트를 채워 신체에 배분할 수 있다는 소리.
‘그래도 뭐, 5일에 1포인트는 얻을 수 있게 된 거네.’
더 열심히 수련에 임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 한수호는 저물어 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뭔가를 꿀꺽 삼켰다. 그리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입가에서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지독한 독초즙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