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14화 (14/375)

14화

한수호는 사기환과 함께 폐허가 된 창고를 멍하니 바라봤다.

두 사람은 그 엄청난 폭발에서도 살아남았다.

한수호야 이미 진급에 오른 마공사였으니 폭발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지만 사기환은 달랐다.

그는 일반인이었고 그 폭발을 견딜 만한 힘이 없었다.

한데 기연이 찾아왔다.

아크로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무지막지한 뇌전.

그 뇌전에 감전되면서 사기환은 각성했다.

각성하는 그 순간엔 잠시 동안 모든 물리적인 피해에서 면역이 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기연은 한수호에게도 일어났다.

아크로가 폭발하며 발생한 전압은 3백만 볼트가 넘었고, 그 뇌전에 맞아 특별 미션을 달성해버렸다.

‘하아. 이게 이런 식으로 되나?’

한수호는 황당했다.

회귀 전 데이터상으로는 사기환이 벼락에 맞아 각성했다더니, 실제로는 아크로의 폭발에 의한 뇌전 발생으로 각성해버렸다.

그런데 그 아크로가 폭발하게 된 건 또 한수호가 원인이었다.

그가 오거봇의 몸통을 꿰뚫었기에 가능했던, 우연에 우연이 겹친 기연.

‘내가 우연히 끼어들어 미래를 바꾼 건가, 아니면 어차피 이렇게 될 필연이었던 건가?’

정답이 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사기환은 살아남았고, 이민경은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는 것.

이 폭발로 수많은 경찰과 구급차가 출동했다.

사기환은 그들에게 이 사고가 몬스터봇의 누전에 의한 폭발이라고 설명했다.

그건 한수호의 충고 때문이었다.

이민경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기환이었기에 그에게 그녀의 진실된 모습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하여 경찰이 오기 전 이민경이 어떤 존재인지를 자세히 설명했고,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사기환뿐만 아니라 수많은 남자들이 덧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임을 확실하게 이해시켰다.

그제야 자신이 사람이 아닌, 괴물을 사랑했음을 깨달은 사기환.

그는 정신을 차렸고, 한수호의 말대로 상황을 사고사로 위장했다.

한수호는 근처를 지나던 중 우연히 사고에 휘말린 것으로 설명되어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았다.

다만, 사기환은 폭발의 원인인 몬스터봇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이민경의 죽음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사고 현장에 특무부 관련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신속하게 현장을 접수하고 사기환에게서 경찰들을 떼어냈다.

마공특무부의 공권력은 경찰을 훨씬 웃돌기 때문에 사기환이 구속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특무부 소속의 인물들은 사기환의 법적책임을 면제시켜주는 조건으로 몬스터봇의 장기 독점 계약을 요구했다.

별생각이 없었던 사기환은 그냥 그러려고 했지만 한수호가 끼어들어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조정했다.

사기환이 안전하게 대학을 졸업할 수 있도록 보호해줄 것과 그가 지낼 편안한 집까지 제공받기로 한 것이다.

특무부 관계자들은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

사기환과 한수호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지만 혹시 모를 후유증에 대비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거기서 편안하게 하루를 보내며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다음 날 아침, 한수호는 말끔한 모습으로 사기환과 인사를 나눴다.

“제가 한 말 잊으면 안 됩니다.”

“알았다. 내가 얻은 특성이 규격 외에 해당하는 이상 그걸 외부에 밝히지 말라는 건 꼭 지키마.”

“몬스터봇 제작하면서 돈 모으고, 특성 업그레이드시키는 것도 빼먹지 말고요.”

“물론이지. 아직은 정보 수집 특성으로 다른 사람 정보를 조금 읽어내는 게 다잖냐. 그런 걸로 나댈 생각은 없다.”

어느새 사기환은 한수호를 그 누구보다도 믿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한수호는 생명의 은인이요, 어두웠던 그의 미래를 밝게 비춰주는 희망의 등불이었다.

반면, 한수호는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이제 막 각성한 상태로는 사람을 찾는 게 불가능할 줄이야.’

사기환은 회귀 전과 다름없이 ‘정보 수집’ 특성을 획득했다.

하지만 단계가 낮아서 사람을 찾는 건 할 수 없었다.

상대의 정보를 읽는 것도 극히 일부라 지금 당장은 별 도움이 안 된다.

한수호가 바라는 사람 찾기가 가능해지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이번엔 자연 각성한 거니까, 다음에 저랑 같이 게이트 들어가서 강제 각성도 해보죠.”

“그게 정말 가능할까?”

“저랑 약속한 것들만 잘 지키면 백 프로 가능해요.”

한수호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사기환은 웃었다.

“그래. 고맙다. 네 덕분에 내 인생이 달라지는구나.”

“그런데…. 이건 정말 제가 가져도 되는 겁니까?”

한수호는 사기환으로부터 억지로 전해 받은 작은 돌멩이 하나를 꺼내 보였다.

진홍빛의 그건, 이민경이 새까맣게 타죽었을 때, 그녀의 입안에서 나와 굴러떨어진 돌멩이였다.

흡정 능력을 쓰는 괴인들이 죽으면 입에서 스스로 내뱉게 되는 흡정석.

핏빛에 가까울수록 높은 수준의 흡정 능력을 가진 자로 볼 수 있는데, 진홍빛인 걸 보니 이민경의 흡정 능력은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

이 흡정석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연구소나 특무부의 특수 실험실 같은 곳에 맡기면 정제된 마나력을 얻을 수 있거나, 거액의 돈으로 교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사기환이 사랑했던 여자의 몸에서 나온 물건을 자신이 가지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난 더 이상 이민경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가까이 두고 싶지가 않아. 귀찮더라도 그건 네가 알아서 처리해줘라.”

“뭐…. 어쩔 수 없죠. 알았어요. 그리고, 틈나는 대로 연락할게요.”

“그래, 나도 가급적 자주 연락하마.”

“저 그럼 갑니다!”

“건강해라!”

생각보다 길어진 인사를 마친 한수호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곧장 버스터미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미션은 또 뭐가 나왔으려나?’

한수호는 아직은 가족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지만 애써 그 마음을 누르며 해야 할 일을 찾았다.

그러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특별 미션 성공으로 얻은 10포인트에 며칠간 쌓아놓은 포인트까지 한 번에 배분을 하려던 한수호는 보유 포인트를 확인한 순간, 또다시 골치 아픈 상황을 마주하고 말았다.

-보유 포인트: 12.2NP

원래 쌓아둔 1.2NP에 특별 미션 달성으로 얻은 10NP 말고 갑자기 1NP가 또 튀어나온 것.

병원에서 하루 머물며 어떤 상황에서 1포인트가 생겼는지를 따져본 결과,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몬스터봇을 쳤을 때’라는 동일한 상황과 그때마다 벽력권을 끌어올렸다는 사실이 가설에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

‘손에 벽력권을 실어 가동 중인 몬스터봇을 후려치면 1포인트가 생긴다.’였다.

그렇게 결론지은 한수호는 앞으로 몬스터봇이 보이면 닥치고 두들겨 패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으로 생긴 1포인트를 포함해 12포인트를 배분해 똑같이 50으로 오른 양팔의 스탯을 보니 밥을 안 먹었어도 배가 불렀다. 아니, 솔직히 배는 고팠다.

‘뭐 좀 먹고 갈까?’

한수호는 터미널 안에 있는 분식집에 들어가 이런저런 음식들을 시켰고, 공법폰으로 정보를 검색하며 허겁지겁 음식을 흡입했다.

‘오늘 미션은 평범하니까 충주에 도착해서 처리해도 되겠네.’

특별 미션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닌 모양이다.

오늘 미션은 ‘PT 체조 전 구간 2천 회’였다.

PT 체조는 1번부터 14번까지 존재하니 총 2만 8천 회다.

엄청난 횟수였지만 이제 이 정도는 가볍게 조깅하는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이대성, 그놈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한수호가 충주로 향하는 이유는 바로 이대성 때문.

더 이상 이대성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놈도 함께 회귀를 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놈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복수의 대상이었다.

‘내 앞에서 착한 척하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는데.’

물론 이대성이 그런다고 놈을 죽이지 않는 일은 없다.

다만, 아직은 죄를 짓지 않은 자를 무참히 죽여버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이대성의 죽음에 그런 마음을 갖는 일은 한수호도 원치 않았으니까.

* * *

충주시 호암동.

한수호는 19살의 이대성을 죽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대성.

그는 대한민국 10대 기업의 하나인 ‘서령 그룹’의 주인, 이재춘의 손자이자 대한맹 맹주 이자웅의 아들이었다.

서령 그룹의 본사는 서울에 있지만, 이재춘의 본가는 이곳 충주에 위치했고, 이대성은 여기서 청소년기를 보내다 서울의 마공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의 이대성은 바로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우선 놈 면상부터 정확히 확인해야 해.’

한수호는 곧바로 이대성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 한수호의 마음엔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이대성, 그놈도 나처럼 회귀했을지 몰라.’

회귀의 원인이 되었던 블랙홀은 한수호만 빨아들인 게 아니었다.

마지막에 한수호가 놈의 목을 끌고 함께 블랙홀에 빨려들어 갔으니 이대성 또한 회귀했을 가능성이 존재했다.

‘놈도 회귀했다면 나처럼 10년간 철저히 준비를 해 놨겠지.’

이대성은 심계가 깊다.

놈이라면 지금의 한수호처럼 회귀한 것이 자기 혼자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예측했을 것이고, 이미 한수호를 찾아 어떻게든 죽이려고 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대성의 집은 엄청난 대저택이었다.

집 안에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있고, 작지만 산책로까지 존재했다.

보안도 철저해서 아무리 마공사라 할지라도 이 저택엔 무단 침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집 안에서는 어렵겠어. 밖에서 처리해야겠는데?’

행인 행세를 하며 저택을 훑어본 한수호는 차량 한 대가 다가오자 후드를 좀 더 깊게 눌러썼다.

검은색 세단.

그 차는 대저택의 정문 쪽으로 향했다.

옆을 지나갈 때 슬쩍 돌아보니 뒷좌석에 탄 누군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대성!’

19살의 앳된 얼굴이었지만 분명 이대성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얼굴 그대로였기에 알아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대성은 휴대폰을 보며 낄낄 웃다가 뭔가를 느꼈는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짧게 스쳤다.

하지만 이대성은 한수호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정문이 열리고 차가 저택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한수호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꾹꾹 누르며 발길을 옮겼다.

‘놈은 날 알아보지 못했어. 이대성은 회귀한 게 아니라는 건가?’

일단은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놈도 회귀했다면 아무리 짧게 스쳤더라도 자신의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밤에 다시 오자.’

이대성이 이곳에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놈이 제 발로 밖에 나올 때를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놈이 혼자가 되도록 만들어 깔끔하게 처리한 뒤 이곳을 뜨는 것이 한수호의 계획이었다.

한수호는 근처의 모텔에 숙소를 잡았고, 거기서 밤이 되길 기다렸다.

대략 6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기자 한수호는 바로 개조 특성의 일일 미션을 확인했다.

[오늘의 미션]

-PT 체조 전 구간 2천 회

-획득 포인트: 0.2

오전에 확인한 내용 그대로다.

이 일일 미션은 그날 해결하지 못하면 다음 날 새로고침 된다.

마음 같아선 총 2만 8천 회라는 이 미션을 넘기고 싶었지만.

‘0.2 포인트도 허투루 버릴 순 없지.’

0.2포인트를 날리는 게 너무 아까웠다.

한수호는 곧장 미션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꼬박 5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성공할 수 있었다.

* * *

밤 9시.

한수호는 이미 이대성의 저택 근처에서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오늘은 금요일.

이대성이라면 금요일 밤을 그냥 집에서 보낼 리가 없었다.

아카데미에서도 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면 멋대로 밖으로 빠져나가 클럽이나 술집을 찾아가 화려한 밤을 즐기던 놈이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특무부의 마공 요원이 된 이후엔 그런 습관이 사라졌지만, 그전까진 매주 금요일마다 반복되는 버릇이었다.

한수호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10시가 거의 다 될 때쯤, 정문 옆에 있는 작은 쪽문이 슬쩍 열렸고 거기서 바이크를 탄 사람 하나가 빠져나왔다.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이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한 한수호였기에 그자가 이대성이라는 건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이대성이 나오고 또 다른 사내 둘이 따라 나왔다.

그들은 이대성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는 보디가드였다.

“도련님. 오늘은 멀리 나가시면 안 됩니다.”

한 양복 사내가 당부의 말을 꺼냈지만 이대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내가 어딜 가든 너희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도련님 신상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저희 둘은 저승행입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아무튼, 더 이상 따라 나오면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

“도련님!”

이대성은 두 사내를 밀쳐버리고는 헬멧을 뒤집어쓰며 말했다.

“2시간만 기다려. 그 안에 확실히 돌아올 테니까. 따라오면 정말 죽는다.”

이대성은 보디가드를 협박하고는 그대로 바이크를 몰고 떠나버렸다.

‘역시. 제 버릇 개 못 주는구나, 이대성.’

한수호에겐 절호의 기회.

놈이 바이크를 타고 있다 해도 쫓지 못할 한수호가 아니었다.

쾌검의 마나공법엔 적은 마나를 활용해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고, 그걸 이용해 바이크에 뒤지지 않는 속도를 낼 수가 있었다.

부아아아앙

바이크는 외곽으로 빠졌다.

시내 중심가로 가서 흥청망청 놀 거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 놈을 처리하기엔 더 좋았다.

10여 분을 달리던 바이크가 멈춰 선 곳은 허름한 창고 앞이었다.

창고 앞에는 다른 종류의 바이크 네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대성이 헬멧을 벗고 창고 쪽으로 다가서자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나타났다.

“놈은?”

“그 새끼, 엄청 지독한데? 벌써 두 시간째 개 패듯이 팼는데도 입 한번 뻥긋 안 하네.”

“거, 새끼들. 일 진짜 못 하는구만. 저딴 놈 입 하나 한 번에 열지 못하고 말이야. 비켜. 내가 직접 묻지.”

다들 또래의 학생으로 보였다.

아마도 이대성을 따르는 학교 일진들인 모양인데, 창고에 사람을 잡아놓고 고문 중인 듯했다.

한수호는 허벅지에 차고 있는 단도를 점검하고 후드를 눌러쓴 뒤 검은 마스크까지 썼다.

주변에 CCTV는 없지만 누구든 그의 얼굴을 목격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되기에 주의가 필요했다.

놈들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수호는 천장을 통해 창고 안에 스며들었다.

이미 두 다리의 스탯은 99를 꽉 채운 상태였기에 4, 5미터 높이는 가볍게 뛰어오를 수가 있었다.

천장을 이용해 조심스레 들어가자 안의 광경이 확실하게 보였다.

여러 폐자재들이 잔뜩 쌓인 창고 안.

백열등 하나가 주변을 밝혀주고 있는 그곳에 여섯 사람이 있었다.

이대성과 그를 따르는 동급생 녀석들 넷, 그리고 밧줄로 기둥에 묶여있는 학생 하나였다.

묶인 학생은 피투성이였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게 기절한 듯이 보였다.

“깨워.”

이대성의 말에 다른 녀석이 양동이에 담긴 물을 학생에게 뿌렸다.

촤아악

“으으으….”

학생이 정신이 든 듯 신음성을 흘리자 이대성이 그 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거꾸로 놓고 앉았다.

“야, 박현. 내가 직접 왔으니까 이제 솔직히 불어.”

이대성의 음성이 들리자 박현이라 불린 학생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너….”

“그래, 나야. 네가 벌써 몇 개월째 나를 따라다니면서 뒤를 캐고 다녔잖아? 그러면서 이런저런 거 많이 숨어서 봤을 테고. 사진 같은 거도 찍어놨을 거야, 그렇지?”

“….”

박현은 말없이 이대성을 바라보기만 했다.

부어오른 눈. 여기저기 찢어져 피가 흐르는 얼굴.

그런데 눈빛만은 묘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짧게 하자, 우리. 어디까지 봤어? 아니, 정확히 말하지. 몇 명까지 봤냐?”

이번에도 박현의 대답은 없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녀석 하나가 각목으로 박현의 옆구리를 그대로 후려쳤다.

빠악

“크윽!”

“대답 안 해, 이 새끼야? 무슨 목적으로 우리 학교에 전학을 왔고, 왜 줄곧 대성이 뒤를 캐고 다녔는지 말하란 말이야!”

빠악

몇 번의 구타가 있었지만 박현은 신음만 흘릴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햐. 이 새끼, 이거 꼴통이네. 좋아, 내가 인심 썼다. 솔직하게 불면 너도 내 패거리에 넣어줄게. 셔틀부터 좀 하면서 내 밑에서 일 좀 배우라고.”

이대성이 낄낄대며 하는 말에 박현이 떨구었던 고개를 다시 치켜들었다. 그리고 히죽 웃는다.

“일곱.”

“뭐? 뭐가 일곱….”

“잠깐.”

각목을 든 녀석의 말을 이대성이 막았다. 그런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다시 말해봐. 몇 명?”

“일곱…. 명. 이대성, 네가 죽인 여학생 숫자.”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대성이가 여자 후리는 거 어디까지 봤냐고 했더니 무슨 헛소릴 하는 건데?”

각목 녀석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으로 봐선 박현의 말이 사실인 모양.

더불어 이대성의 표정이 극도로 차가워졌다. 잠시 박현을 노려보는가 싶던 이대성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옆 친구에게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

“죽여.”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각목 녀석이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박현의 뒤로 돌아가서는 머리를 붙잡고 나이프를 목에 들이댔다.

“봤어도 못 본 척했어야지, 병신아. 잘 가라.”

나이프가 박현의 목을 그으려는 바로 그 순간.

스윽

뭔가 유령 같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나이프를 쥔 손을 비틀었다.

“악!”

기이한 각도로 비틀린 손을 콱 움켜쥔 건 후드티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수호였다.

그는 깊숙이 가라앉은 눈으로 이대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이때부터 이미 막장 인생이었구나?”

“너 누구야!”

이대성이 크게 놀란 듯 소리쳤다.

그러자 한수호는 나이프를 쥔 녀석을 툭 밀어 5미터 밖으로 날려버리고는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