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천만다행히도 이대성은 학생 때부터 개자식이었다.
혹시나 싶어 잠시 지켜봤는데, 역시나 천성은 어딜 가지 않았다.
박현이라는 학생 말대로라면 이대성은 여학생 일곱의 목숨을 취했다. 그러고도 이리 멀쩡할 수 있었던 건 이대성이 지닌 뒷배경 덕분이리라.
‘아무리 몬스터가 날뛰고 사람이 파리처럼 죽어나가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아니지.’
고작 19살밖에 안 된 고등학생이 벌써 사람을 일곱이나 살해했다.
게다가 이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학생까지 입막음을 위해 죽이려고 한다.
이대성은 한수호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해도 반드시 죽여야 할 버러지 같은 놈이었다.
그래서 가차 없이 살수를 쓰기로 했다.
놈의 외형적인 스탯 수치를 확인해보니 모두 20 언저리. 집안이 엄청난 덕분인지 마공사 수련급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그렇다 해도 한수호에 비해선 한참이나 부족했다.
촤악
단검이 이대성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핏물이 튀고 이대성이 뒤로 나자빠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대성은 죽지 않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치명상을 피했던 것.
운이 좋았다.
“저 새끼 죽여!”
이대성이 자기 목을 붙잡으며 소리쳤고, 네 명의 학생들이 무기를 꺼내 덤벼들었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그들이 꺼낸 무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세라믹 재질의 나이프부터 끝에 칼이 달린 톤파에, 삼단으로 튀어나오는 검까지.
이들도 평범한 학생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모두 한 수 재간이 있었다.
마공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수행을 하는 아이들이 수십만에 달한다.
정부 소속의 정의국이나 사설 단체인 대한맹에서는 전국 각지에 수많은 기관을 설립해 마공사가 될 새싹을 키워왔다.
그래서 일반인이지만 실전 무술을 익힌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게다가 마공 가문의 후예들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 각성 전에도 수련급 마공사와 대등한 실력을 갖추는 경우가 많다.
이 학생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모두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이었고, 어린 나이 때부터 훌륭한 스승을 두어 실전 무술을 익혀왔다.
하지만 한수호에겐 어린아이 장난 수준의 실력이었다.
빠각
역수로 잡은 나이프로 허리를 베려고 고개를 숙인 녀석은 팔꿈치에 턱을 얻어맞고 붕 떠올랐다.
톤파를 핑그르르 회전시켜 목을 노린 녀석의 공격은 가볍게 피한 뒤 팔을 걸어 비틀어버린 뒤 아래로 찍어 눌렀다. 그러자.
우득
“아악!”
톤파와 함께 팔뼈까지 부러져나갔다.
마지막 녀석은 검을 썼는데, 삼단으로 튀어나와 1.5미터쯤 되는 장검을 휘두르며 일도양단의 기세를 뿜어냈다.
하지만, 검이 반도 휘둘러지기 전에 한수호가 녀석의 안면을 움켜쥐고 바닥에 냅다 찍어버렸다.
꽈앙
그대로 기절.
한수호는 딱히 쾌검을 쓴 것도, 벼락의 힘을 쓴 것도 아니다.
그저 몸에 마나를 두르고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했을 뿐.
순식간에 장내를 정리해버린 한수호는 피를 줄줄 흘리는 이대성에게 다가섰다.
“저, 저리 가!”
“사람을 일곱이나 죽인 배포는 어디 가셨나?”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알아?”
“알지. 몰랐으면 널 죽일 생각도 안 했을 거다, 이대성.”
“날…. 안다고?”
“너도 날 알지 않나?”
한수호는 이대성을 향해서만 마스크를 풀어 얼굴을 보였다.
그런데 그 얼굴을 보고도 이대성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오히려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네가 누군데, 새끼야!”
이 정도면 최소한 거짓 연기는 아니었다.
‘이대성은 회귀한 게 아닌 모양인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대성이 죽는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우리 악연은 여기서 끝내자.”
“미, 미친 새끼!”
이대성이 욕을 날리며 팍 튀어올랐다.
목에 큰 상처를 입고도 움직임이 꽤 날렵했다.
순식간에 한수호의 품으로 파고든 이대성은 큰 기합을 내지르며 주먹을 내질렀다.
“죽어, 개새끼야!”
후우우웅
주먹에서 섬뜩한 파공음이 피어올랐다.
적어도 마공사 평급에 해당하는 강인함이 담긴 주먹.
한수호는 그 주먹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꽈앙
“컥!”
폭음 속에 비명이 더해졌다.
입으로 피 분수를 뿜어내며 튕겨져 나간 건 이대성이었다.
폐자재 더미를 무너뜨리며 우당탕 나뒹군 이대성은 부러진 팔을 질질 끌며 바닥을 기었다.
한수호는 그런 이대성에게 한발 한발 다가섰다.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대성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넌 이미 네가 지은 죄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한수호는 머뭇거림 없이 주먹으로 이대성의 등을 내리찍었다.
콰득
등이 움푹 파인 순간, 이대성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
한수호의 주먹이 파고든 위치는 정확히 심장이 있는 곳이었고, 방금의 일격에 등 근육이 우그러지며 심장마저 짓이겨졌다.
한수호는 이대성의 죽음을 한 번 더 확인했다.
혹시라도 살아나는 불상사가 일어나선 안 되었기에 끝까지 철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대성이 완전히 죽었음을 확인한 한수호는 세라믹 나이프를 챙기고는 마스크로 다시 얼굴을 가린 뒤 박현을 풀어주었다.
“이대성의 죗값은 내가 받아냈으니, 다른 놈들 죗값은 네가 받아내라.”
한수호는 이대성의 똘마니들까지는 죽이지 않았다.
그들도 여학생들을 죽인 일에 가담했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들까지 한수호가 처벌할 필요는 없었다.
“다, 당신은 누구…?”
“알 거 없고. 이놈들 꼭 처벌받게 해. 더는 이유 없이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단단히 당부를 하고 떠나려는 찰나, 한수호는 박현의 얼굴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뭐지?’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저 평범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조금 왜소한 체격의 19살 고등학생의 모습.
그런데 그 얼굴에서, 아니 정확히는 눈빛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너. 이름이 박현이라고?”
“네! 박현…. 맞습니다.”
“어디서 무술 배운 적 있냐?”
“어, 없습니다.”
“그래?”
한수호는 박현의 신체 수치를 확인했다.
일곱 군데 중 머리를 제외한 모든 곳이 일반인 수준에 불과한 3.
그런데 머리만 유독 17에 이르고 있다.
‘머리만 특별히 보호되고 있어. 보호구 같은 걸 쓴 것도 아닌데 말이야.’
특별히 의심까지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간혹 신체 한 곳만 유별나게 강한 일반인들이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단단한 머리뼈를 타고난 거겠지.’
이대성에게 죽을 뻔한 박현을 그 이상 의심할 이유가 없었기에 한수호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내 말 명심해. 이놈들 꼭 죗값을 받게 해라.”
“그, 그러겠습니다. 그런데 은인의 이름이라도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알아서 뭐 하게.”
한수호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이대성을 처참히 죽여버린 것에는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보고 경악하는 이대성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
그래도 그 괴물 같은 놈을 처리했다는 생각에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내 목표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면 되겠지.’
이대성을 처리했으니 곧장 삼척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삼척행 고속버스 막차 시간은 11시 20분.
아직 40분이나 남아 있었기에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그렇게 한수호가 사라졌을 때, 창고 안에 홀로 남아 있던 박현은 겁먹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혼자서 마공사 평급에 가까운 녀석들 다섯을 단숨에 해치웠어?”
박현은 한수호의 엄청난 실력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그의 입꼬리가 점점 말려 올라가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잘 죽었다, 잘 죽었어.”
박현은 이대성의 시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이대성의 새파랗게 굳어버린 얼굴을 노려보다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조만간 작업 들어가려고 했는데, 알아서 이렇게 뒈져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박현은 알 수 없는 소릴 중얼거리다가 쇳덩이 하나를 집어 들고는 이대성의 얼굴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넌 새끼야. 그렇게 훌륭한 집안에서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뭘 했냐? 응?”
퍼억.
“기껏 한다는 짓이 여자애들 납치해서 겁탈하고 죽이는 거야? 그걸로 가문의 이름에 먹칠이나 하려고?”
퍼벅!
“좀 제대로 살지 그랬냐. 주어진 걸 잘 좀 활용해서 더 빨리 강해질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빠그작!
마지막 강력한 한 방에 이대성의 안면이 완전히 우그러졌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함몰시킨 박현은 피투성이가 된 쇳덩이를 멀리 집어던졌다.
“아우, 씨. 이 비루해진 몸으로 힘 쓰려니까 졸라 아프네.”
박현은 갑자기 이대성의 입을 쩍 벌리고는 손을 집어넣어 어금니 하나를 강제로 뽑아냈다. 그런데 뽑혀 나온 건 어금니가 아니었다.
칩.
모양은 어금니와 비슷하지만 기계 장치에 꽂을 수 있는 핀헤드 부분이 달려있는 칩이었다.
그는 그걸 보며 씨익 웃은 뒤 제 뒷머리 아랫부분을 손으로 마구 헤집었다. 잠시 후 거기서도 뭔가가 쑥 뽑혀 나왔다.
그것 또한 칩이었다.
박현은 머리에서 뽑아낸 칩 대신 이대성의 어금니에서 뽑은 칩을 뒤통수에 꽂았다.
순간.
우우우웅
묘한 진동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우드드득. 우드득.
그의 신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부풀었으며 얼굴 모양도 달라졌다.
완전히 달라진 박현의 얼굴.
놀랍게도 그 얼굴은 방금 죽은 이대성의 얼굴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야 좀 시원하네.”
또 하나의 이대성.
박현은 이대성이 되어 있었고, 체격이며 목소리까지 완벽하게 똑같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칩을 손으로 콱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펴자 칩은 가루가 되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자연 각성까지 한 새끼가 그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말이야.”
박현은 다시 쪼그려 앉아 이대성의 심장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마치 심장을 움켜쥐듯 손을 오므렸다.
푸슈슈슈슛
이대성의 시체에서 붉은 기운이 일어나더니 손을 타고 박현의 심장으로 움직여갔다.
이대성의 시체는 순식간에 미라처럼 변해 바짝 말라버렸다.
“이런 씨!”
갑자기 박현이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에 맞은 이대성의 시체 일부가 과자처럼 파삭 부서져버렸다.
“하필이면 심장이 망가져서 약탈 효율이 반밖에 안 되잖아!”
혼자 씩씩대던 박현은 빠르게 진정한 뒤 옷을 벗었다. 대신 이대성의 시체에서 벗긴 옷을 입었다.
그의 모든 물건을 그대로 챙겼으며,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이대성의 시체에 여기저기 푹 박아 넣었다.
손에 침을 발라 머리를 정돈하고 목을 뚝뚝 소리 나게 움직이며 창고 창문 앞에 서서 그곳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좀 낫군.”
그때 기절해있던 이대성의 친구들이 정신을 차렸다.
“…대, 대성아. 아까 그 새낀?”
“기습한 놈은 도망쳤어. 시팔, 니들 똑바로 일 안 해? 꼭 내가 나서야 일이 해결되고 말이야!”
“어, 아…. 미안. 그런데 박현은?”
“저기. 안 보여?”
박현은 이대성의 시체를 가리켰다.
그걸 본 친구들은 처음엔 놀랐다가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성인 확실해서 좋다니까. 이놈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게. 넌 이만 들어가 봐.”
친구들 모두 적잖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지만 이대성 앞에서는 아프다는 소리 하나 내뱉지 못했다.
“새끼들. 마무리나 잘해라. 난 간다.”
박현은 이대성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말투며 행동까지도 이대성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박현이 이대성의 바이크를 몰고 떠나버리자 그제야 친구들은 털썩 주저앉았다.
부러진 팔과 다친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마저 찔끔거렸다.
“그런데, 명호야. 아까 대성이…. 목에 상처 입지 않았어?”
맨 처음 기절한 녀석을 빼고는 다들 이대성이 목에 상처를 입은 걸 목격했다.
그런데 방금 본 이대성은 목에 아무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재생 포션이라도 마셨나 보지.”
“와, 재생 포션? 그거 하나에 몇천만 원 하는 거 아니야?”
“얌마! 이대성이가 달리 서령 그룹 손자냐? 그 집안에서 돈 몇천만 원은 돈도 아니라고. 됐으니까 시체나 태우자.”
그들은 자기 몸을 돌보기보다 시체를 태우는 일을 더 시급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뒤처리를 제대로 못 했다가는 자신들도 언제 시체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