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진심으로 고맙다.”
김성태는 게이트 앞에선 한수호에게 허리까지 숙여가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무슨 특성을 얻으셨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까?”
“크흠…. 특성 이름은 ‘건가타’. 이름이 좀 그렇긴 한데,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건가타.
김성태가 모블린을 죽일 때 취한 움직임을 생각하면 충분히 나올 법한 특성이었다.
“등급은요?”
“당연히 평급이지. 내 주제에 무슨….”
김성태 입장에서 평급 특성을 얻은 건 로또와 같다.
마공 가문의 후예나 있는 집 자식들도 수련급이나 기본급을 받는 경우가 수두룩했으니까.
“숙련도 올리면 특급까지는 금방 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지. 최선을 다해 노력할 거다. 그래야 너한테 부끄럽지 않을 테니.”
김성태는 한수호가 자신을 위해 몰래 도움을 줬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정말이지 결정적인 도움까지 주었다.
한수호의 도움이 없었다면 김성태는 각성은커녕 목숨을 부지하지도 못했을 상황이었다.
“바로 정의국이나 대한맹으로 소속되겠네요?”
“아니. 일단은 마공 연수원부터 찾아갈 거다. 거기서 내 가치를 더 높여야지. 이 나이 먹고 말단부터 시작할 수는 없으니까.”
30세가 넘은 사람이 각성할 경우엔, 대부분 정의국이나 대한맹에 발탁되어 기본 교육을 받는다.
거기서 발전 가능성과 특성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 이뤄지고 능력에 맞는 보직을 배정받는 게 상식.
하지만 김성태는 다른 길을 택했다.
“연수원은 경쟁이 심합니다. 그 경쟁에서 밀리면 기껏해야 문지기로 전락할 거고요.”
“그 정도는 각오했다.”
“후…. 그렇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행운이 있길 바라죠. 그럼 이만.”
이제 한수호는 김성태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줬다.
정말 호구 소리를 들어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걸 말이다.
‘아, 씨. 모르는 척 돈이라도 좀 내놓으라고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막 열려는 찰나.
“장태산. 여기, 내 연락처다. 아직 학생이라 계좌는 없을 테니 나중에 생기면 내 연락처에 계좌 번호를 남기거라. 그럼 이번에 몬스터 사체를 처분하고 얻게 될 이득에서 6할을 떼어주마.”
김성태가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6할이나? 와우. 심 봤다!’
알아서 돈을 주겠다고 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말이 6할이지, 대충 몬스터 사체 숫자만 따져봐도 몇천만 원은 손에 들어온다.
한수호는 기쁨을 숨기고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쪽지를 받아 챙겼다.
“계좌야 있지만…. 아닙니다.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니까요.”
계좌가 있긴 개뿔.
귀환하면 당장 계좌부터 만들 생각이었다.
스승 부부한테 부탁하면 장태산이라는 인물로 가짜 계좌 만드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닐 터.
“그래. 내 성의를 봐서라도 꼭 계좌를 알려줘라.”
“정말 가봐야겠네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나도 즐거웠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 이건 진심이다.”
김성태는 한 번 더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한수호도 마주 인사하며 웃는 얼굴로 게이트에 들어섰다.
슈욱
세상이 뒤집어지고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을 때.
“어, 학생! 딱 맞게 잘 왔다!”
지구 쪽 게이트 입구를 지키고 있던 고참 병사가 한수호의 귀환을 이상하리만치 반겨주고 있었다.
* * *
“여기, 카드요.”
한수호는 은행 창구에서 손가락 두 개 크기의 반투명한 카드를 넘겨받았다.
전화로 스승 부부의 도움을 받아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고 받은 캐시 카드였다.
계좌 안에 현금이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하지만 조만간 그 안에 꽤 큰 돈이 들어올 예정이라 기대가 컸다.
‘일단 계좌부터 보내주고.’
한수호는 김성태에게 받은 번호로 계좌 번호를 찍어 보냈다.
잠시 후, 바로 회신이 왔다.
[계좌는 잘 받았다. 근데 여긴 지금 정신이 없네. 마공특무부 감사팀에서 게이트에 이상이 생긴 걸 귀신같이 알아챘더구나. 너에 대한 기록은 모두 삭제했으니까 걱정 말고. 앞으로 일주일 안에 계좌로 입금하마. 언제 꼭 다시 보자.]
한수호는 김성태의 문자에 간단한 답을 보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보겠죠. 건강하시길.]
문자를 보내고 공법폰을 품에 넣은 한수호는 멀리 있는 삼척 게이트의 출입 검문소를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한수호가 게이트를 통해 귀환했을 시점이 하필 마공특무부 감사팀이 도착하기 불과 딱 5분 전이었다.
게이트 입구를 지키던 병사가 한수호를 특별하게 반긴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한수호에게 돈을 받고 적합한 절차 없이 게이트에 들여보냈기 때문에 감사팀에게 걸릴까 봐 안절부절못했던 것.
그러던 차에 한수호가 귀환했으니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는 한수호를 얼른 떠나라고 권유했고, 그의 출입에 대한 기록은 깨끗하게 지웠다.
한낱 병사에 불과했지만 특무부에 연줄이 있는지 감사팀의 불시 방문을 미리 알게 된 덕분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얼른 정식으로 라이선스부터 취득해야겠네.’
마공사 라이선스.
그걸 취득하려면 우선 보여주기식이라도 각성을 해야 했고, 최소 평급 이상의 특성을 얻어야 했다.
‘그런데 나 또 각성할 수 있기는 한 건가?’
그것도 의문이다.
광폭화 특성은 회귀 전에 강제 각성으로 얻은 것이고, 개조 특성은 뜬금없이 봉인 해제라며 툭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특성이다.
이 두 특성이 있는데도 또다시 강제 각성이 가능할지는 한수호도 알 수가 없었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연기력 좀 발휘하지 뭐.’
이미 특성이 있으니 튜토리얼 수행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아이쿠, 각성해 버렸네?’ 하면서 광폭화 특성을 끄집어내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몸에서 빛을 내는 아티팩트와 어색하지 않은 연기력이 필요했다.
‘일단 그렇게 해서라도 마공 아카데미에 정식으로 입학해야 해.’
그래야 서울 마공 아카데미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마공사가 될 수 있으며, 인장이 박힌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었으니까.
마공사가 라이선스 없이 돌아다니는 건 엄연히 불법이다.
나중에라도 편하게 세상을 돌아다니려면 라이선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
한수호는 각성 연기에 쓸 만한 아티팩트가 있는지 검색하면서 다시 삼척 터미널로 향했다.
그곳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인천 송도로 가서 스승 부부를 만나야 했다.
‘3시간 정도면 도착하겠네.’
삼척에서 송도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면 3시간 내로 도착이 가능했다. 버스를 이용할 수 없었던 과거에 비하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사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육상 교통을 이용해 먼 곳까지 이동하는 건 굉장히 위험했다.
2022년,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수천 개의 게이트가 나타난 이래로 길을 가다가 몬스터를 마주하는 경우는 무척이나 흔한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마공사의 숫자는 너무 적었고, 7급 이상의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현대식 무기로는 쉽게 해치울 수가 없었다.
때문에 정부의 관리를 벗어난 몬스터들이 수없이 많았다.
놈들은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 벗어나 인적이 없는 숲으로 숨어들었고, 놈들을 토벌하기 위한 토벌대까지 꾸려지기도 했었다.
그로 인해 정부의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도심 외곽 지역으로는 함부로 나갈 수도 없었다.
명절이라고 친척 집에 찾아가는 건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다 마공사를 전문적으로 키워내는 마공특무부가 설립되었고 거기서 파생되어 정부를 위해서만 활동하는 정의국과 사적인 이득을 위해 탄생한 마공 단체, 대한맹이 등장했다.
이 중에서 마공특무부는 다양한 능력의 마공사를 키우기 위해 마공 아카데미를 전국에 세우게 되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마공사들은 특무부의 요원이 되거나, 정의국에 소속되어 시민을 위해 몬스터와 싸우는 일을 하게 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마공사가 된 사람들은 사적인 단체인 대한맹을 찾아가 등급을 부여받고 등급에 맞는 연봉을 받으며 몬스터를 사냥하기도 했다.
대한맹은 국가의 안전과 시민 보호라는 대의를 표명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수많은 마공 가문들이 모여 만들어 낸 철저한 개인 세력이었다.
이들이 몬스터를 무찌르고, 사회의 해악을 없애는 정의의 세력이라면, 반대로 악을 따르는 마공사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 과연 그 힘을 좋은 곳에만 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쉽게 남을 해칠 수 있으며, 남들이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사리사욕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하는 마공사들도 수없이 많았다.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황도 13궁이고, 새한교다.
황도 13궁은 별자리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별자리마다 최강의 인물을 앉혀 추종하는 세력이다.
말은 세상을 정화하는 별 같은 영웅들을 의미한다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은 납치, 방화, 강도, 도박 같은 무서운 짓을 벌이는 범죄자들의 조직이었다.
이는 새한교도 마찬가지.
회귀 전에야 이 새한교에 대해 무지했지만, 관심을 가지고 파고드니 보통 수상스러운 단체가 아니었다.
게이트가 세상을 종말로 이끄는 신호라며, 새로운 한국을 세우고 그 안에서 교리에 따라 행동해야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곳.
그곳이 새한교라는 사이비 종교였다.
아무튼 이런 조직과 단체가 생기게 되면서 도심 외곽에 터를 잡고 사람들을 습격하던 몬스터들의 대대적인 토벌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세상은 다시 안전하게 되었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토벌의 과정에서 사왕오패와 사대광마가 탄생했다.
사자도왕 송혁.
태극검왕 서한광.
한울뇌왕 구천승.
귀부암왕 장현오.
이들이 바로 사왕이라 불리는 영웅들이요,
일패검 권현태.
이패궁 박윤주.
삼패창 강지훈.
사패극 오희창.
오패편 윤관호.
이들이 오패로 이름을 날리는 강자다.
이들은 마공사뿐만 아니라 아무 힘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했다.
매스컴에서 수시로 그들에 대한 영웅담을 떠들고, 그들의 근황과 그들의 후예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자세히 보도하고 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건 사대광마도 마찬가지다.
혈마 신유.
요마 지소연.
살마 문천득.
폭마 박준규.
이들은 이름만 알려졌을 뿐, 외모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리 무법 세상이 됐다지만,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자들이 버젓이 얼굴을 드러내고 다닐 수는 없었으니까.
사왕오패와 사대광마.
이들은 하나같이 궁급의 끝에 이른 최강의 마공사로 평가되고 있었다.
주변 국가에도 한국과 비슷한 조직과 강한 마공사들이 많았지만,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일본의 마공사 랭킹 10위가 한국의 아카데미 졸업생에게 완전히 패배한 사건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또한 현대 무림이라 평가받는 중국의 마공사 단체 ‘북경삼림’에서 촉망받던 천재 마공사가 한국으로 도장 깨기를 왔다가 오패편 윤관호의 채찍에 한 팔이 완전히 잘린 사건 또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과 러시아 정도만 한국의 마공사 수준과 비슷하다고 평가될 뿐, 그 외의 국가에서는 자국의 학생들을 한국으로 유학 보낼 정도였다.
대한민국 마공사들의 드높은 위상을 생각하던 한수호는, 그중에서도 마공특무부의 요원으로 상당히 유명했던 요원인 아버지, 한철형을 떠올렸다.
비록 사왕오패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강하진 않았지만, 그가 행한 일들은 영웅으로 칭송받기에 충분했다.
세계 최초로 3급 게이트를 폐쇄하는 데 성공했으며, 최악의 게이트라 불리는 ‘오사카 게이트’로 파견 나가 ‘오시아닐’이라는 거대 몬스터를 때려잡은 걸로도 유명했다.
한철형이 요원으로 활동하며 목숨을 구한 사람만 수천이 넘는다.
어찌 보면 시민들 입장에선 사왕오패보다도 영웅적인 인물이 바로 한철형이었다.
그런 한철형이 처참히 죽어가던 장면을 생각하니 한수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반드시 놈들을 찾아 더 이상 숨 쉴 수 없게 만들어주겠어.’
강렬한 복수심.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 능력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적은 하나가 아니다.
수십, 어쩌면 수백이 될지도 모를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해져야 했다.
* * *
송도에 도착한 지 사흘이 지났다.
한수호는 그동안 송도 근린공원 근처의 모텔에 숙소를 잡고 하루도 빠짐없이 미션을 수행했다.
일일 미션으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0.2인 터라 0.6포인트를 모았지만 이건 일단 보류해뒀다.
총 누적 포인트는 1.2.
한쪽 팔에라도 1포인트를 배분할까 하다가 관뒀다.
개조 특성의 10년 쿨타임이 끝났을 때, 348이라는 포인트를 한 번에 투자했을 때 느꼈던 고양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고양감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었기에 이번엔 20포인트가 채워질 때까지 배분을 미루기로 했다.
‘그래봐야 석 달 정돈데, 뭐.’
10년을 기다린 적도 있는데 석 달은 우습다.
그날 저녁 스승 부부가 모텔로 찾아왔다.
섬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차림새가 말쑥한 것이 그들도 어딜 다녀온 모양.
“그래, 오랜만에 바깥세상 돌아보니 어떻더냐?”
식사 중 장한구가 꺼낸 말에 한수호는 빙긋이 웃었다.
“10년 전과 다를 게 없던데요, 뭐.”
“어디 이상한 데 가서 사고치고 다닌 건 아니지?”
주태란은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지금의 한수호가 그들과 비교해서도 약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10년을 키워온 부모와 같은 마음엔 걱정스러움만 가득했다.
방금 전에도 거의 보름 만에 만난 한수호가 등이며 다리에 이상하게 생긴 단검을 잔뜩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뭔 일인가 싶었다.
다행히 그 단검들이 자신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라고 해서 이해하고 넘어갔었다.
“제가 사고 쳤으면 벌써 세상이 난리 났을걸요?”
“녀석. 그 거만함이 여전한 걸 보니 별문제 없었나 보구나.”
“그보다…. 이젠 저한테 따로 돈 보내주지 않아도 됩니다.”
한수호가 계좌를 만든 건 김성태에게서 몬스터 사체를 판 대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스승 부부는 돈이 필요하다는 걸로 생각했는지 계좌로 5백이라는 거금을 보내 버렸다.
“아직 마공사 라이선스도 없어서 알바도 못 할 거야. 각성한 마공사가 일반인들과 섞여서 일하는 건 불법이라는 거 잘 알지?”
“제가 각성했다는 건 두 분밖에 모르는데요.”
“그래도, 이 녀석아. 이제 곧 아카데미에 입학할 놈이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배움에 있어 집중은 꼭 필요한 것이야.”
마공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일반 대학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들다.
수업 시간이 짧은 대신 매월 치르는 테스트에서 낙제점을 받으면 아무리 각성을 했다고 해도 아카데미에서 쫓겨난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게이트에 들어가 전투를 치르게 되며, 매일 몬스터봇과 실전과 다름없는 대련을 벌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롭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학생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마음 같아서는 튜토리얼 비용도 부담 드리고 싶지 않지만, 당장은 저도 그렇게 큰돈을 마련할 수가 없으니 딱 거기까지만 부탁드릴게요.”
길면 한 달. 짧으면 2주 내로 통장에 대충 2, 3천 정도는 꽂히지 않을까 싶었다.
김성태가 6할을 준다고 했으니 충분히 가능한 금액이다.
한수호는 그걸 받으면 1억을 모아 스승 부부에게 곧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게 무슨 부탁이라고.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너, 설마 나나 네 스승을 남으로 여기는 거니?”
“그러게. 아까부터 하는 말이 영 이상한데? 세상 물 좀 먹더니 스승과의 연도 필요 없어졌다 이거냐?”
장한구와 주태란이 굉장히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이에 한수호는 난처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런 거 아니라고요. 이제 저도 다 컸으니까 제힘으로 서보려고….”
“그게 그 말 아니니? 독립하겠다는 게 우리 곁을 떠나겠다는 거지 뭐야?”
“허어. 수호야. 네가 우릴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너무 섭섭한 말이구나. 이제 우리 뒷바라지는 필요 없다 이거구나.”
점점 가관이다.
한수호는 괜히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며 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아닙니다. 다 아니고요. 그냥 하라는 대로 할게요. 주시는 거 거절 안 하고 다 받겠습니다. 그럼 됐죠?”
손사래까지 쳐가며 말을 하자 그제야 스승 부부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이 걸렸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음식 식겠다. 얼른 먹고 푹 쉬자꾸나. 내일 있을 대련에 집중해야지.”
“그런데, 스승님.”
한수호는 내일 대결에 관해 궁금한 게 있어 그걸 묻고자 했다.
“말하렴.”
“내일 있을 대결에 나서는 다른 제자들은 수준이 어느 정돕니까?”
“다른 녀석들? 너 말고 셋이 더 올 거다. 셋 다 성질이 아주 고약해. 스승을 무슨 학원 강사처럼 대한다니까? 내일 이후로는 너랑 엮일 일 없을 테니까 관심 끄거라.”
“그래도 이름이랑 능력 수준 정도는 알아야….”
“내일 만나보면 금방 알게 될 거다. 그러니 그 녀석들 이야긴 그만하자꾸나.”
장한구도 주태란도 다른 제자들에 대해 말하는 걸 굉장히 꺼렸다.
회귀 전에는 악랄했던 스승 부부가 끔찍하게 여겼던 제자들이었다.
특무부 요원들의 손에 죽어가면서도 제자들만큼은 살리겠다고 끝까지 죽을힘을 다해 저항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현, 조훈, 안서윤. 이놈들이 이번 삶에서도 스승 부부의 제자가 되어 있는 거겠지?’
한수호는 끔찍한 살인 행각을 수없이 저질렀던 그 세 명의 이름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들을 처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마공사들이 희생되었던가.
‘이번엔 절대 그러지 못하게 만들 테다!’
한수호는 놈들이 회귀 전과 다름없는 악인이라는 것만 확인되면 두말없이 처치할 생각이었다.
“녀석. 뭔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 식탁 앞에서 다른 생각에 몰두하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다.”
“네네. 다른 생각 안 하고 밥 잘 먹겠습니다!”
스승 부부와의 식사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