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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5화 (25/375)

25화

“오빠, 괜찮아?”

송지문은 송유나의 물음엔 대답도 없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한수호를 발견하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려고 했다.

“이 흡정귀 새끼!”

송지문은 평소엔 조용하지만 화가 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는 성격이다.

이를 잘 아는 송유나이기에 온 힘을 다해 송지문의 팔을 잡아당겼다.

“저 사람 흡정귀 아니야. 흡정석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 마나력을 소모시키게 된 거래.”

송유나가 뭐라고 설명을 했지만 송지문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지문아. 진정해라. 내가 설명해 주마.”

송혁이 직접 나서서야 송지문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갑자기 흡정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송지문은 한수호를 무섭게 노려봤다.

사실 흡정귀는 사람의 기력을 빼앗지, 마나력을 빼앗지는 못한다.

기력을 빼앗아 자신의 마나력으로 전환하는 것이기에 흡정귀는 마공사보다 일반인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송지문은 마나력이 이유 없이 고갈되는 상황을 처음 겪었고, 이런 상황에 떠올릴 수 있는 존재는 흡정귀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흡정귀 따위가 아니라 흡정마로 진화한 놈이라서 마나력까지 빨아먹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장태산. 저 아이는 몸에 흡정석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흡정귀를 잡아 죽인 적이 있다는구나.”

송혁은 방금 자신이 한수호의 몸을 훑으며 알아낸 사실을 아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우선 한수호의 몸을 점검한 결과 흡정귀는 확실히 아니었다.

이미 수차례 흡정귀를 잡아 죽인 경험이 있었던 송혁은, 흡정귀가 상대의 기력을 빼앗게 되면 곧바로 몸 내부에서 그걸 마나력으로 정제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기력을 흡수한 직후의 흡정귀는 몸 안에 정제된 마나력이 빠르게 차오르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송혁 정도 되는 마공사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수호에게서는 그런 현상이 조금도 없었다.

그 대신 마나력으로 몸을 훑는 와중에 한수호의 몸 어딘가에서 묘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뭉실거리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묘한 마나의 응집체.

그건 분명 한수호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송혁 자신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재빠르게 그의 몸을 뒤졌고, 호주머니 안에서 붉은 돌멩이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돌멩이는 한수호가 이민경을 죽이고 나서 얻게 된 흡정석이었다.

주머니에 넣어두고 한동안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그걸 송혁이 알아낸 것.

그래서 한수호는 흡정석을 얻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거기에 약간의 거짓말을 보탰다.

흡정석을 얻게 된 경위의 사실 확인은 사기환과 전화 통화를 해줌으로써 해결했다.

거기에 한수호가 보탠 거짓말은 이거였다.

흡정석과 벽력권의 콜라보레이션에 의한 예기치 못한 기현상.

흡정석에 벽력권의 뇌전이 가해지면 마나력 흡수라는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게 한수호의 설명이었다.

더불어 직접 흡정석을 손에 쥐고 벽력권을 일으켰고, 그 상태에서 송혁의 손에 닿게 하여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송혁은 깜짝 놀랐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그 돌멩이에 손을 대니 짜릿한 느낌과 함께 마나력이 일부 사라졌다.

실제로는 송혁의 마나력이 한수호의 개조 특성 포인트 1로 치환된 것이지만 송혁이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결국 한수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이 벌인 짓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낸 것이다.

이 사실에 반박할 증거는 없었다.

상대의 마나력을 빼앗아 자신이 취한 것도 아니고, 고의성이 없는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는 게 명명백백했다.

그래서 송혁은 한수호가 흡정귀가 아니라는 걸 믿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송혁의 설명에 송지문은 인상을 구겼다.

“아버지. 그 말을 어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런 이상한 흡정석을 몸에 지니고도 없는 척 속이고 저와의 대결에 나선 놈입니다. 우연히 들렀던 몬스터봇 제작자 집에서 흡정귀를 만났다는 말 자체가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건 제작자가 확인해준 사실이다. 지금도 마공특무부와 거래하고 있는 인물이니 신분도 확실하고. 어쨌든, 네 마나력을 장태산이 훔쳐 가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흡정귀 따위는 더더욱 아니고.”

천만다행으로 송혁은 한수호의 말을 믿었다.

이에 한수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까딱했으면 개조 특성에 대한 것까지 모조리 실토해야 할 뻔했는데, 사실에 근거한 몇 가지 거짓, 그리고 우연히 발견된 흡정석 덕분에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게 사실적이란 말이지.’

한수호는 재빠른 임기응변으로 큰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된 것에 하늘에 감사했다.

한데, 한 사람은 여전히 한수호를 믿지 못했다.

“흡정귀는 아닐지 모르나 흡정석을 이용해 상대의 마나력을 고갈시킬 수 있는 자를 그냥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

송지문은 자신의 마나력을 갉아먹은 한수호를 무슨 철천지원수처럼 대했다.

그런대로 괜찮았던 분위기가 뜻하지 않은 마나력 흡수로 인해 망가진 것에 한수호는 속으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지문아. 그건 차후에 다시 논할 문제다. 게다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니 이제 그만하거라.”

송혁이 엄중한 표정으로 말하자 송지문은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다.

송지문이 한숨을 내쉬며 더 따지고 들지 않자 송유나가 툭 끼어들었다.

“그럼 이제 오해 풀린 거네? 근데, 와…. 이 작은 돌멩이가 태란 이모의 벽력권하고 만나서 그런 기현상을 일으키다니, 정말 신기하다.”

송유나가 바로 분위기 쇄신에 돌입했다.

송혁과 비돈귀살 부부가 15년의 인연을 이어왔듯, 송혁의 딸인 송유나도 이 부부를 여러 번 만났었다.

특유의 붙임성으로 늘 웃으며 친근하게 대하긴 했어도 지금처럼 이모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어머, 우리 유라가 처음으로 이모라고 불러주니 너무 기분이 좋구나. 태산아. 그 흡정석은 기념 삼아 유라한테 주는 게 어떻겠니?”

주태란은 이번 일의 화근이라 볼 수 있는 흡정석을 한수호의 손에서 떼어내고 싶었다.

그녀는 안다.

아무리 그녀의 벽력권이 독특한 능력이라고는 해도, 흡정석과 벽력권이 콜라보되어 마나력 흡수라는 현상이 일어나긴 어렵다는 걸.

그 현상이 한수호의 손에서만 발생하는 걸 수도 있지만, 벽력권의 원조라 볼 수 있는 그녀 입장에선 허점투성이였다.

“허어. 태란 씨. 그건 안 됩니다. 그 귀한 흡정석을 선물이라니요. 애들 버릇 나빠집니다. 장태산. 그 흡정석을 나한테 파는 건 어떻겠느냐? 시가의 두 배로 쳐주마.”

송혁도 한수호가 흡정석을 계속 가지고 다니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하여 일부러라도 구입할 생각이었다.

“이건 스승님 말씀대로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한수호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이걸 정제시켜 마나력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금 이걸 선물로 내놓아 송혁의 믿음을 얻는 게 훨씬 가치가 있었다.

한수호가 군말 없이 선뜻 흡정석을 내놓자 송혁은 마음이 더욱 편해졌다.

“그럼 나도 거절하지 않으마. 유나야. 와서 감사히 받거라.”

“어? 정말요? 이거 진짜 나 주는 거예요?”

송유나는 쪼르르 달려와 한수호에게서 흡정석을 받아 갔다.

“목걸이로 만들면 예쁘겠다. 잘 쓸게요!”

“혹시 모르니 특무부에 맡겨서 마나력은 제출하도록 하고.”

송혁은 흡정석이 흡정귀들에게 큰 보물이라는 걸 알기에 위험을 미리 없애고자 했다.

“알았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거든?”

다 큰 딸이 대놓고 편하게 말을 하는데도 송혁은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그만큼 딸을 아끼고 있다는 뜻.

이를 묵묵히 지켜만 보던 송지문은 못마땅한 표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한수호에 대한 의심을 지운 상태였다.

만약 흡정석을 내놓지 않으려 했다면 조만간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만들 작정이었다.

“오늘 네 덕분에 나도 견문을 크게 넓혔다. 아카데미에서도 자주 이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군.”

송지문은 한수호와의 대결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흡정석만 아니었으면 더 알찬 대결이 될 수 있었기에, 아쉬움도 컸다.

“그럼 저 오늘 합격인 겁니까?”

한수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묻자, 송혁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물론이지. 너 같은 인재를 아카데미에 입학시키지 않으면 누가 입학할 수 있을까? 내가 확실한 내용으로 추천서를 써줄 테니 걱정 말거라.”

“추천서는 사양하겠습니다. 이미 입학 테스트도 따로 받았거든요. 사자도왕 송혁 님의 시험에 합격한 걸로 만족합니다.”

그 말에 송혁이 살짝 놀랐다.

“이미 입학 테스트를 받았다고? 어디서?”

“서산 아카데미요. 지금쯤 심사 결과가 나왔을 텐데, 아직 통보가 없네요.”

“내가 바로 알아봐 주마.”

송혁은 바로 마공 아카데미 서울 본교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송혁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한수호를 바라봤다. 통화를 마친 그는 한수호에게 다가와 이상하다는 말투로 물었다.

“너, 제대로 테스트 받은 게 맞느냐?”

“평급으로 테스트 받았고, 제 생각엔 통과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닙니까?”

“흐음. 통과하긴 했다. 서울 본교로 입학 허가도 났고. 그런데…. 어째 점수가 생각보다 너무 낮구나. 87점이라니. 너 정도면 95점도 부족한 감이 있거늘.”

송혁은 서산 아카데미에서 전달한 한수호의 테스트 결과가 믿어지지 않았다.

5학년 수석으로 졸업 예정인 송지문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인 한수호다. 그런 그의 평가 점수가 고작 87일 수가 있을까?

“서울 본교 입학 커트라인이 85점이니까 87점이면 꽤 준수한데요? 어쨌든 입학 허가가 났군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만, 네가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으니 나도 더는 따지지 않으마. 1주일 뒤에 입학식이 있을 거다. 그날 아카데미에서 또 보자꾸나.”

송혁은 한수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자도왕 송혁이 어린 학생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비돈귀살 부부도 이를 알기에 한수호가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한수호는 그 손을 당당히 잡고는 절도있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허허. 조만간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겠구나. 세상을 위해서도 기분 좋은 일이야.”

한수호를 향한 송혁의 칭찬을 들으며 묘한 눈빛을 보이는 두 사람.

송지문은 뭔가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한수호를 지켜봤고, 송유나는 손에 쥔 흡정석을 만지작거리며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 * *

그날 이후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스승 부부는 다른 제자 셋의 대결 결과에는 관심도 없는지, 곧장 섬으로 돌아갔다.

한수호와는 딱 이틀만 함께 송도에 머물렀고, 그동안 부부가 취합해놓은 수많은 정보를 착실하게 넘겨주었다.

다만, 한수호의 아버지를 죽이고,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원흉에 대한 정보는 단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스승 부부도 적의 정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딱 잡아뗐지만, 한수호는 안다. 부부가 그날의 적들이 누군지 대충은 눈치를 채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굳이 알려달라고 캐묻지 않았다.

아직은 한수호 스스로가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당장은 복수보다는 실력을 키우는 게 시급했고, 더불어 흩어진 가족을 찾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스승 부부가 떠나고 한수호는 며칠 더 송도에 머물며 그동안 먹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과 여러 가지 볼거리를 마음껏 즐겼다.

물론 일일 미션은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인천 아카데미나 사설 학원을 찾아가 몬스터봇을 상대로 대결을 벌이고, 포인트를 긁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송지문과의 대결에서 한가지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

사람이든, 몬스터봇이든 누군가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다가 벽력권을 실어 타격을 하게 되면 포인트를 흡수하는 것.

이건 정말이지 개꿀이다.

하지만 한수호가 직접 컨트롤할 수 없는 마나력 흡수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자칫 흡정귀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고, ‘흑색 마나’의 사용자로 낙인찍혀 마공사들에게 공공의 적이 될 가능성도 존재했다.

한수호는 이 힘을 스스로 완벽히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그 힘을 컨트롤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오죽하면 사기환에게 부탁해 기본형 고블린봇을 배달받아 각종 실험까지 해봤을까.

그 결과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이 흡마력은 하루에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흡수한 포인트가 몇이든 상관없이 한번 발휘되면 그날은 두 번 다시 발휘되지 않는다.

둘째, 흡수되는 마나력은 정수의 포인트로만 전환된다.

일일 미션으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소수점 아래까지 포함됐지만 흡마력은 무조건 1이나 2 이런 식의 정수였다.

1포인트당 쿨타임은 하루가 소비된다.

그리고 마지막.

며칠 동안 고생고생한 끝에 의지만으로 이 흡마력을 제어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처음 성공이 어렵지, 일단 한번 제어에 성공하자 그 뒤부터는 매우 쉽게 흡마력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고생의 보답인 걸까?

사기환이 개발한 아크로를 장착한 고블린봇과의 전투로 그사이 4포인트가 더 쌓여 총 12.6포인트가 되었다.

아카데미 입학식을 하루 앞두고 흡마력 제어에 성공한 터라, 한수호는 꽤 편안한 마음이 되어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

* * *

“여긴 여전하구나.”

한수호는 ‘서울 마공 아카데미’라는 글자가 크게 보이는 교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회귀 전에도 이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5년이나 머물렀는데, 다시 여기서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복잡미묘해졌다.

아카데미는 회귀 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여전히 웅장했고, 언제나처럼 시끌벅적했다.

오늘은 특히나 입학식 하루 전이라 사람들이 더 바글바글했다.

무슨 전쟁터에 자식을 보내는 것처럼 울면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보이고, 으리으리한 차에서 내려 당당한 걸음걸이로 홍해 가르듯 사람들을 가르며 당당히 지나가는 학생도 보인다.

한수호는 그런 군상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혼자 여길 지나게 되는구나.’

회귀 전엔 유대룡의 손에서 키워지긴 했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날에는 혼자였다.

항상 바쁜 유대룡이 양아들 입학식에 배웅을 나올 턱이 없었다.

한수호는 잠시 옛 생각을 하며 교문을 지났다.

후드를 눌러써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교문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신분증과 얼굴을 보여야 했다.

교문을 지키던 마공사에게 신분증을 건네고 후드를 내리자.

“이름 장태산. 평급 입학생이로군. 추천인은 없지만…. 오? 기부금이 꽤 되는걸? 이봐, 학생. 어디 집안인데 아카데미에 3억을 기부….!”

말을 하던 마공사는 한수호의 얼굴을 보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사진은 덥수룩한 머리 때문에 특별할 게 없었지만, 후드를 내린 한수호의 용모는 눈이 부실 만큼 훌륭했기 때문.

사내는 사진과 한수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거 너 맞아? 사진이 엉망인 거야, 실물이 기똥찬 거야?”

그의 음성이 좀 커서인지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분위기가 심히 불편했던 한수호는 신분증을 낚아채서는 빠르게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한수호의 등 뒤로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여전했다.

그때, 누군가가 한수호 앞을 탁 가로막았다.

“와~ 다시 봐도 멋지다. 얼굴 때문에 소란이 일까 봐 일부러 마중 나왔는데, 역시나네요?”

송유나였다.

그녀는 옷깃에 특이한 형태의 배지를 달고 있었다.

태극 문양이 새겨진 방패에 황금빛 술 장식이 달린 검과 창이 X자로 교차한 문양의 배지.

그건 마공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표식이었다.

술 장식이 두 개씩 달렸다는 건 그녀가 2학년임을 의미했다.

“네가 여긴 왜…?”

“입학 첫날인데 길 헤매면 웃음거리 된다고요. 아카데미가 좀 커야죠.”

한수호가 길을 헤맬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해줘서 여기까지 마중 나온 마음이 고마웠다.

“고맙다.”

“에이, 뭐야. 말만 그렇지, 얼굴은 전혀 고맙다는 표정이 아닌데요?”

송유나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그와 함께 목에 걸린 목걸이 하나가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흡정석.

마나력은 모두 적출된 상태로 진홍빛의 태극 문양 펜던트로 바뀐 모습이었다.

“예쁘군.”

“저요?”

“아니, 목걸이.”

“치잇. 그냥 나 이쁘다고 립서비스 해주면 안 되나?”

송유나가 입을 삐죽이고 있을 때, 한수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냥 스쳐 지나가 버렸다.

“아, 어디 가요?”

“곧 입학식이라….”

“내가 안내해준다니까요?”

“글쎄…. 누가 그걸 별로 원치 않는 것 같아서.”

“에?”

한수호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송지문이 몇몇 학생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오빠?”

“남매끼리 볼 일이 있는 모양이니, 난 이만 실례.”

한수호는 그렇게 송유나를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송지문이 그냥 놔주지 않았다.

“거기, 신입생. 잠깐 나 좀 볼까?”

말을 한 건 송지문 옆에 서 있는 거구의 학생이었다.

송혁만큼은 아니지만 옆에 있는 송지문이 작아 보일 정도로 덩치가 컸다.

한수호는 습관적으로 그 덩치의 신체 수치를 훑었다.

‘머리만 69?’

다른 신체 부위는 죄다 50 이하. 그런데 머리만 유독 수치가 높다.

‘뭐야, 저놈은? 무슨 철두공이라도 익혔나? 아니면 특성이 돌머리?

전체적으로는 평급이지만 머리만은 특급을 넘어 진급에 가까운 청년.

그런데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이 익숙했다.

회귀 전, 한수호가 아카데미 학생일 때, 뒷배 없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걸 무척이나 즐겼던 가학성애자, 박창수. 그놈이었다.

한수호는 유대룡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어서 그와 아무런 접점이 없었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현생에서는 박창수가 한수호를 타깃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그가 자신을 찾자 한수호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박창수, 이 새끼. 제 무덤 하나는 기가 막히게 파는구나.’

건드리지 않으면 관심을 끄겠지만, 먼저 시비를 건다면 사는 게 끔찍할 정도로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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