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한수호는 박창수를 무시했다.
놈에 대한 참교육은 입학식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보는 눈이 많은 이런 장소에서 놈과 드잡이질을 한다면 똑같은 수준이 될 뿐이었으니까.
한수호가 슬쩍 시선만 던졌다가 그냥 갈 길을 가버리자, 박창수는 어 소리를 냈다. 인상을 와락 구긴 그가 바로 나서려고 하자,
“창수야. 네 궁금증은 다음에 풀자. 오늘은 입학식이잖냐?”
박창수 옆에 있던 다른 친구, 유재형이 말렸다.
“야, 재형이 너도 같이 들었잖아? 저 신입이 우리 송지문이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며? 얼마나 대단한지 말 좀 섞어 보자는 건데 뭘 그리 긴장하는데?”
“니가 그냥 말만으로 끝낼 놈이냐? 괜히 지문이 입장 난처하게 만들지 마라.”
“아우, 씨. 저거 생긴 건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 감히 지문이한테 창피를 줘? 입학식만 끝나면 아주 제대로 요리를….”
“그만해. 내가 이러려고 니들 데리고 여기 왔는 줄 알아?”
드디어 송지문이 입을 열었다.
그는 동생 송유나와 함께 벌써 멀리 가버린 한수호를 응시하다가 박창수 뺨을 손등으로 툭툭 쳤다.
“따라와.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이나 잊지 말고.”
송지문은 박창수와 유재형을 데리고 아카데미 입구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교문 앞.
그곳에 고급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뒷좌석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하나는 박창수와 버금갈 정도의 거구 사내였는데, 무슨 로봇처럼 표정이 딱딱해 보였다.
3월 초입의 매서운 한파임에도 얇은 티셔츠 한 장만 달랑 걸쳤는데, 근육이 엄청나서 옷이 터질 것 같았다.
그 뒤에 내린 인물은 그에 비해 너무나도 작다.
160센티가 안 되는 작은 체구.
하지만 몸매 하나는 기막힌 여학생이다.
청바지에 흰색 티라는 평범한 옷차림이었으나 마치 온몸에서 빛을 뿜는 것 같았다.
얼굴은 더욱 기막혔다.
주먹만큼이나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 자리한 눈코입은 작은 트집 하나 잡기 힘들 만큼 너무나 예뻤다.
그녀의 등장에 교문 앞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크게 놀라워했다.
“저, 저 여자애…. 그 애 아니야? 귀부암왕 장현오의 딸, 장한설?”
“맞네, 맞아. 이번 입학생 중에 귀부암왕의 딸도 있다더니 사실이었나 본데?”
“장한설이면, 19살 아닌가?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아카데미 입학이라고?”
“근데 정말 예쁘다. 내 눈이 정화되는 것 같아.”
사람들의 웅성거림에도 여자와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 사이를 지나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그들 앞에 송지문이 나섰다.
“오랜만이네, 장한설.”
송지문은 그녀가 장현오의 딸 장한설임을 모두에게 인증시켰다.
“신입생 입학식에 선배가 무슨 일이죠?”
너무도 듣기 좋은 목소리.
그 음성에 박창수의 눈이 살짝 풀렸다.
“그럼 권열, 저 녀석은 무슨 일로 여기 있는 거지?”
송지문의 시선이 장한설 옆의 거구 청년에게 향했다. 그러자 청년이 비웃음을 그렸다.
“송지문. 네가 날 이 녀석 저 녀석으로 부를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 학년이 같다고 다 친구는 아니지.”
음성이 굵고 웅장하다.
앞으로 스윽 한 발 내디디자 흡사 건물이 쓰러지는 것 같은 무형의 압박감이 쏟아져 나왔다.
“일패검 권현태의 아드님이라고 너무 힘주는 거 아니야? 지문인 몰라도 난 너랑 나이가 같으니 친구 먹어도 되겠네?”
박창수의 말에 권열이 눈을 살짝 치켜떴다.
“넌 빠져라, 박창수.”
그 말에 박창수가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만큼 권열이 내보이는 기운이 거셌기 때문.
“오빠, 신경 끄고 가자.”
“그러자.”
두 사람은 다시 갈 길을 가려 했으나 송지문이 앞을 막아섰다.
“장한설. 네 집안하고 사돈이 될 쪽은 권씨가 아니라 송씨라는 거 잊었나?”
“그건 부모님 세대가 마음대로 정한 혼약이에요. 내가 각성하는 그날 깨어질 혼약이기도 하고요.”
송지문과 장한설은 서로 혼약이 되어 있는 사이다.
사자도왕 송혁과 귀부암왕 장현오는 오랜 친구 사이였고,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꼭 결혼시키겠노라 오래전에 약속했다.
지금 송지문은 약혼녀인 장한설을 자신이 에스코트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선 것이었다.
“혼약을 깬다? 하지만 아직 깬 건 아니지. 그렇다면 네 옆에 서야 할 남자는 권열이 아니라 나라고.”
송지문은 자존심이 강하다.
장한설과는 10대 때 몇 번 만난 게 전부라 어떤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약혼녀로 알려져 있는 장한설이 약혼자가 다니는 아카데미에서 외간 남자와 나란히 걷는다는 건 그냥 둘 수 없는 문제였다.
“흥. 여전히 멋대로 판단하고, 멋대로 결정짓네요. 이러니 세상 사람들도 제 남편감으로 권씨 가문이 더 어울린다고 하죠.”
“그 이상 날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왜요? 아버지의 명성에 비해 너무도 부족한 자신이 이제야 부끄러운 건가요? 아니면, 사왕의 후계가 오패의 후계한테 여자를 빼앗긴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하나요?”
“그만!”
후우웅
송지문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졌다.
공격력은 없었지만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기운에 밀려 나자빠질 정도로 강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송지문의 거센 기운이 장한설의 몸에 닿지도 못하고 좌우로 갈라져 사라져 버렸다.
“함부로 힘을 쓰는 것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네요. 계속 제 앞을 가로막을 거라면 아카데미에 통보하겠어요. 입학식 첫날부터 신입생을 괴롭히는 훌륭한 선배가 있다고.”
“장한설!”
“거기까지.”
이번엔 권열이 나섰다.
그가 한 발 내디디며 손을 슥 내밀자 박창수와 유재형은 또다시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이 곰 같은 새끼가!”
박창수가 이를 악물며 대항하려 하자 송지문이 그를 막아섰다.
“좋다, 장한설. 네 뜻은 확실히 알았으니 나도 더는 구차하게 굴지 않겠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파혼 절차를 밟도록 하지. 이만 가자.”
송지문은 몸을 돌렸다.
그가 이곳에 온 건 권열으로 인해 무너진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해서였지만, 장한설 본인이 저런 반응이어서야 상황이 악화될 뿐이었다.
그리고 박창수와 유재형을 데려온 건, 장한설에게 일부러 밉보이기 위함이었다.
‘난 할 만큼 했다.’
송지문은 자신을 거부한 유일한 여인, 장한설을 등 뒤에 두고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장한설은 잠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런 장한설에게 권열이 조용히 말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응. 있어.”
하지만 대답하는 장한설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언제라도 후회되면 말해. 틀어진 관계는 내가 바로잡을 수 있을 거야.”
“그럴 일…. 없을 거야.”
장한설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송지문이 향한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 입학식이 열리는 강당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입학식은 간단하게 끝났다.
아카데미 총장이 나와 지루한 연설을 하고, 교수진이 소개된 뒤에 아카데미가 배출한 영웅들 영상을 지켜봤다.
영상이 끝나면 최고 평점을 받은 수석 학생이 나와 소감문을 밝혔는데, 올해의 수석은 놀랍게도 19살의 여자애였다.
장한설.
그녀의 등장에 모두가 크게 놀라워했고, 많은 남학생이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한수호도 그녀를 보고 놀랐다.
그녀가 너무 예쁘거나 사왕의 하나인 귀부암왕 장현오의 딸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신체 능력 평균이 69? 게다가 머리는 91이라고? 저 나이에?’
실로 놀라운 수치.
분명 각성 전인데도 특급을 넘어 진급에 가까운 수치를 보유했다.
머리는 이미 진급을 아득히 넘은 상태.
머리로 한정되어 있긴 했지만 수치가 90을 넘는 사람은 송혁 이후에 처음이었다.
그런 이유로 입학식 내내 한수호는 장한설 말고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장한설이라는 학생은 회귀 전의 기억에도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 외에 한수호가 눈여겨볼 만큼 특이한 학생은 없었다.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은 총 800명.
각성 전인 상태에서 최소한 평급 이상의 신체조건과 그에 준하는 마나력을 보유하고 있는 학생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마공 가문의 수가 천 개가 넘고, 재계와 정계의 자식들까지 마공사가 되길 희망한다고 봤을 때, 거기서 키워지는 후학들을 모두 감안한다면 적어도 2천은 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특수 마공 아카데미의 신입생은 항상 800명을 결코 넘기지 않는다.
설사 자격을 갖춘 학생이 800을 훌쩍 넘긴다 해도 상위 800명까지만 딱 잘라 입학생으로 받아들이는 곳.
그곳이 바로 특수 마공 아카데미였다.
아카데미의 한 학년은 200명씩 4개 클래스로 나눠지며, 그 구분은 온전히 실력으로 이뤄진다.
입학 테스트 평점이 98점을 넘는 학생들은 A반, 95점을 넘기면 B반, 90점을 넘기면 C반. 이런 식이다.
한수호는 87점을 기록했고, 그로 인해 가장 낮은 D반에 속하게 됐다.
이 클래스 구분은 매달마다 바뀐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테스트를 통해 학생들의 실력을 다시 평가하고, 그 평점에 맞춰 클래스도 달라진다.
때문에 시작이 D반이라고 해서 졸업도 반드시 D반으로 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생은 이 입학식 날의 클래스 구분을 번복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졸업해 버렸다.
그래서 D반에 배정된 학생들은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D반은 아카데미 시설을 이용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식당이나 각종 문화시설, 운동 시설을 이용함에 있어 최우선 순위는 A반이었다. B, C반까지 모두 이용한 뒤에야 D반의 순서가 돌아오는데, 아카데미 자체에 실제 그런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암묵적인 규칙.
이걸 어기게 되면 상급반의 따돌림이 시작되고, 그 따돌림은 아카데미 퇴학이라는 최악의 결과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한수호에게 그런 규칙 따윈 아무 관심도, 소용도 없었다.
아카데미 기숙사 배정도 그런 의미에서 한수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 미리 정한 방 배정과는 아무 상관 없이, A반 학생들부터 마음에 드는 방을 선택했고 D반 학생들은 지저분하고, 구석진, 그리고 크기도 작은 쭉정이 방을 가질 수밖에 없다.
D반으로 배정된 한수호의 방도 당연히 그러했다.
허나 한수호는 지금의 이 방도 꽤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회귀 전에야 유대룡 덕분에 최고급의 특실이 주어졌었지만, 지난 10년간 섬에서 살아온 한수에겐 이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그래도 최신식 원룸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있을 건 다 있었다.
한수호는 자신의 방을 둘러보다가 챙겨온 짐을 풀었다.
‘이제 여기서 또 5년을 보내야 하는구나.’
4학년부터는 예비 특무부 요원으로 임무를 부여받아 실전에 투입되기는 하지만, 졸업 전에는 5급 이상의 게이트 출입은 금지였다.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5급 이상의 게이트에 반드시 들어가야 했기에 다소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조기 졸업. 그 방법밖에 없겠어.’
한수호는 회귀 전에도 감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 조기 졸업을 계획했다.
‘어쨌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될 때까진 아직 일주일이 남았으니까 그사이에 좀 더 계획을 짜볼까?’
방 배정 이후, 본격적인 수업은 일주일 뒤부터 시작이다.
그사이 학생들은 아카데미 적응을 위한 자유 시간을 보내게 되며, 친구를 사귀고 선후배 사이의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수호는 그렇게 여유 부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빈둥거리며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내서 직접 가족들을 찾아볼까?’
그러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한수호 본인이 가장 잘 안다.
10년 전이라고는 해도 자신의 가족을 해치기 위해 그런 엄청난 규모의 마공사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자들이다.
살아남은 가족들을 찾으려고 지금까지도 수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0년이 지났다고 그들이 포기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선 안 된다.
한수호라는 이름을 숨기고 철저하게 장태산으로 살아가야 했다.
마공사 라이선스도 없이 섣불리 사람 찾는 일에 나섰다가는 되려 적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었다.
이미 사기환을 얻었으니 조금만 더 지나면 적들의 감시를 피해 가족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엄마….’
10년 전, 살아 있는 부모를 다시 만나 어머니의 품에 안겼던 감각이 너무도 그리웠다.
형과 쌍둥이 동생, 그리고 돌도 지나지 않았던 막대 동생 별이까지.
전생과는 달리, 그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더욱 애가 탔다.
‘반드시 놈들을 찾아서 백배, 천배로 갚아 주겠어.’
한수호의 가슴엔 복수의 불길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열기를 다스린 한수호는 침대에 누워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해 둔 수첩을 꺼내 살폈다.
대부분은 연도에 월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었지만, 일부 사건은 연도마저 불확실했다.
그중에서도 날짜가 확실한 사건들을 살피던 한수호.
그의 눈에 한가지 사건이 확 들어왔다.
[2051년. 3월 6일. 인천 월미도. 7급 게이트 발발. 인구 밀집 지역에 생긴 게이트로 인해 역대급으로 많은 사상자 발생.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자연 각성자 출현. 김주하, 황가련.]
비교적 짧게 기록된 내용이지만, 그곳에 적힌 두 개의 이름은 결코 평범한 게 아니었다.
김주하.
그는 2051년 당시 21살의 대학생으로 월미도에 여자친구와 놀러 왔다가 게이트 발발 사건에 휩쓸렸다.
무려 7급 게이트가 예고도 없이 발생하는 바람에 상당수의 몬스터들이 아무 제지 없이 게이트 밖으로 몰려나왔고, 웨이브에 가까운 몬스터들의 습격에 무려 5백여 명이 희생당했다.
총사상자 6백여 명에 사망자만 5백여 명.
몬스터들은 부상자를 그냥 두지 않기에 웨이브 발생 시,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 과정에서 김주하는 각성석 없이 자연 각성을 이루었다.
그의 가문은 대한맹 소속의 ‘유성창가’였는데, 당연히도 김주하 또한 19세 때 마공 아카데미에 입학해 강제 각성 튜토리얼에 참가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김주하는 중도에 튜토리얼을 포기했고, 입학은 무산되었다.
그 뒤로 김주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일반인 대학교에 입학, 마공사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었다.
그러다 마주한 7급 게이트.
그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잠재된 그의 능력을 완전히 일깨웠던 것이다.
그가 각성한 특성은 무려 진급. 특성 이름은 ‘세류창’이었다.
시작부터 진급 특성을 얻은 김주하는 단숨에 유명인으로 거듭났다.
그날 이후로 김주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진무현, 이대성과 더불어 사왕오패의 뒤를 잇는 새 시대의 강자로 일컬어지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김주하는 2057년에 발발할 악몽급 게이트의 폭주를 막을 영웅 중 하나로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황가련.
그녀는 당시 15세였는데, 부모와 함께 월미도에 놀러 왔다가 참변을 당했다.
평범한 가정의 막내딸이었던 그녀는 부모와 오빠 모두가 눈앞에서 처참히 죽어가는 걸 직접 목격했으며, 그 충격으로 인해 자연 각성했다.
문제는 그녀가 각성 이후에 희대의 마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염마력이라는 엄청난 특성으로 20미터의 사정거리 안에서는 무엇이든 우그러뜨릴 수 있었다.
어린 나이로 사대광마에 버금가는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황가련은 2057년, 악몽급 게이트가 폭주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유 없는 무자비한 살생을 밥 먹듯이 벌이고, 희생자의 몰골마저 형편없이 망가뜨리는 희대의 마녀, 황가련.
그 이름을 다시 보게 되자 한수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 여자의 손에 죽은 사람 수가 두 자릿수를 거의 꽉 채웠어.’
100명에 가까운 희생자.
그중 대부분은 마공사였지만 아무 힘이 없는 일반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게 한수호의 살심을 자극했다.
한수호는 월미도의 게이트를 먼저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한수호라고 해도 게이트 발생 자체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특무부에 게이트 발생에 대한 걸 먼저 알린다고 해도 그들이 믿어줄지는 모른다. 오히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그 원인을 분석하려고 호들갑 떨 것이다.
‘일단은 희생자라도 최소화하자.’
특무부에는 정체를 숨긴 채 이 정보를 몰래 넘기고 사후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 정도면 게이트가 발생하는 건 못 막아도 희생자를 줄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황가련은 내 손으로 해치워야 하나?’
그녀를 지금 죽인다면 미래에 등장할 마녀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더불어 그녀의 손에 죽게 될 수많은 목숨 또한 구하는 것일 테니 어쩌면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5살짜리 학생일 뿐인데?’
지금의 황가련은 불과 15세.
그런 어린 여학생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이대성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녀석은 이미 이 시점부터 악에 물든 최악의 인간이었고, 한수호를 죽이려고 했던 당사자였으니까.
‘황가련의 가족을 살리면 자연 각성을 못하는 건 아닐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아예 자연 각성 하게 될 이유를 없애버리면 희대의 마녀는 탄생하지 않을 터였다.
게이트가 발생하는 날짜는 3월 6일.
딱 사흘 뒤다.
‘서둘러야겠어.’
한수호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월미도부터 찾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