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김주하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같은 과 후배 여학생과 수업을 땡땡이치고 월미도에 놀러 왔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게이트가 열렸다.
그것도 그들이 바이킹을 타고 있던 바로 그곳에서.
게이트는 2초에 한 번꼴로 오크를 마구마구 쏟아냈다.
바이킹 운행 요원은 게이트가 생기자마자 기구를 멈추지도 않고 도망쳐 버렸다.
기구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내리지도 못한 채 오크에게 하나하나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앞뒤로 크게 움직이는 바이킹 위에 쿵 떨어져 내린 오크는 놀라운 균형 감각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머리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스릴을 즐기고 싶다는 여자친구의 요청으로 바이킹 가장 끝 쪽에 타고 있던 김주하.
그에겐 가문에서 익힌 유성창법이 있긴 하지만 아직 각성하지 못한 상태라 큰 힘을 발휘하긴 어렵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구해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자신이 살아나가는 것만도 벅찰 지경.
오크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동안 힘으로 안전바를 올리고 여자친구와 함께 뛰어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뛰어내리기 직전 여자친구가 소프라노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는 바람에 근처의 오크들이 모조리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꾸에에엑!”
“쿠엑!”
놈들이 크게 움직이는 바이킹 위를 껑충껑충 뛰면서 달려왔다.
다급히 여자친구를 안아 들고 타이밍에 맞춰 자리를 박찼다.
상당한 높이였지만 어려서부터 유성창법을 익혔고, 각성까지는 아니지만 가문의 비전 마나공법을 익힌 덕에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를 따라 바이킹에서 날아오른 오크가 있었다.
놈은 다른 오크들과는 많이 달랐다.
머리에 부러진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었으며, 피부색이 회색에 가깝고 덩치도 다른 놈들에 비해 훨씬 컸다.
‘설마, 오크 전사야?’
일반적인 오크는 병사로 불리고, 그중에서 특출난 전투력을 지닌 강한 오크를 전사라고 칭했다.
이놈들은 거의 평급 마공사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다.
지금의 김주하로서는 상대하기가 굉장히 힘든 상대.
“오, 오빠!”
허공으로 몸을 날린 오크 전사가 피에 절은 메이스를 휘두르는 모습에 여자친구가 공포에 질렸다.
김주하는 이대로 등을 돌리고 도망쳐봐야 둘 다 살아나는 건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안하다.”
김주하는 여자친구를 오크 전사 쪽으로 집어 던졌다.
“꺄아아악!”
허공에서 떨어지던 오크 전사는 여자친구를 메이스로 후려쳤다.
퍼어어억
허리가 팍 꺾이며 그대로 절명한 여자.
내려오던 오크와 여자친구의 시체가 부딪치며 허공에서 두 몸체가 서로 엉켰다.
쿠당탕탕.
오크 전사가 바닥을 나뒹구는 틈에 김주하는 재빨리 도망쳤다.
누가 보기라도 했다면 정의국에 구속되고도 남을 잔인한 짓이었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정신없이 뛰기 시작한 김주하.
그런 그를 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한수호.
벌써 오크를 14마리째 사냥하고 있던 그는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들었고, 한 청년이 여자를 안아 들고 바이킹에서 뛰어내리는 걸 목격했다.
뒤이어 오크 전사로 보이는 강력한 놈 또한 날아오른 걸 본 순간, 한수호는 그들을 돕고자 쏜살같이 움직였다.
그런데,
‘여자를 던졌어?’
청년이 여자를 방패막이 삼아 던져버리고 혼자 살겠다며 도망치는 걸 보고 말았다.
더군다나 그 청년의 얼굴을 본 순간, 그가 누군지까지 떠올렸다.
‘김주하! 놈이 저런 개새끼였다고?’
월미도 7급 게이트에서 자연 각성을 하고 훗날 영웅 대접을 받을 정도로 잘나가던 김주하.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여자친구를 오크에게 내던질 정도로 독하고, 비겁한 개새끼였다.
한수호의 눈이 깊게 내려앉았다.
옆으로 달려드는 오크 한 마리를 향해 돌아보지도 않고 주먹을 휘둘러 머리를 터트려버렸다.
빠지짓
터져나간 머리 주변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이건 흡마력을 담지 않은 평범한 공격이었다.
한수호는 김주하의 뒤를 쫓았다.
죽자고 달려가는 김주하와 그 뒤를 무거운 걸음걸이로 쫓아가는 한수호.
그런 한수호의 눈앞에 몇몇 사람들이 나타났다.
남자 다섯에 여자 하나.
그들은 수십 명의 시민을 등지고 서서 달려드는 오크와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김주하는 그들 틈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크들과 전투를 벌이는 여자의 얼굴이 낯익다.
‘서은채?’
놀랍게도 서은채 또한 이곳에 있었다.
그녀와 함께 방어진을 짜고 있는 자들은 며칠 전 공원 주차장에서 그녀를 좇고 있던 양복 사내들이었다.
그들의 합격술은 꽤 효과적이었다.
좌우로 건물을 끼고 정면으로만 적을 맞이할 수 있는 장소적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네 명이 오크를 맞아 싸우는 동안 두 명은 그 뒤에서 숨을 돌리며 체력을 회복했다.
김주하는 그들에게 살려달라 애원하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수호는 오크들은 보지도 않았다.
김주하.
오직 그놈을 잡기 위해 저벅저벅 나아갔다.
그때 한수호의 등 뒤로 쿵쾅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돌아보니 방금 전 김주하가 내던진 여자친구를 죽여버린 오크 전사였다.
놈의 시선도 김주하를 향하고 있었다.
오크족. 특히 오크 전사의 집착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다.
한 번 목표로 삼은 적을 죽이기 전까지는 다른 것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놈은 아무렇지 않게 한수호의 곁을 스쳐 갔고, 한수호 또한 놈을 가로막지 않았다.
다른 오크와 체격부터가 다른 오크 전사의 등장에 서은채가 크게 놀라워했다.
“오크 전사예요! 모두가 나서야 막을 수 있어요!”
힘겹게 오크를 막고 있는 서은채는 미각성자였고, 다섯 사내는 고작해야 기본급 마공사였다.
최전방에 나선 네 명으로는 오크 전사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서은채는 이를 금방 파악하고 여섯이 한꺼번에 오크 전사를 상대하려 했다.
그러다 천천히 다가서는 한수호를 발견했다.
후드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지만 오히려 그 덕에 쉽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서은채의 눈빛에는 반가움과 놀라움, 그리고 뭔가 안심한 듯한 기색이 담겼지만 금방 오크 전사가 당도했기에 더 이상 한눈을 팔지 못했다.
다른 오크들도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고 오크 전사에게 길을 비켜줬다. 당당히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는 오크 전사의 눈에는 시민들 틈에 섞여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주하만이 담겨 있었다.
“일제히 공격해요!”
서은채의 손에는 검은 묵빛의 쇠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생김새는 검과 같지만 날이 세워져 있지 않은 그저 몽둥이와 다름없는, 그리고 오직 끝부분만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긴 독특한 무기였다.
그 무기엔 오크의 검붉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서은채를 포함한 여섯 명이 오크 전사를 향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둘은 머리 위로, 셋은 하체로, 서은채는 가장 나중에 오크 전사의 가슴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크허어엉!”
다른 오크와는 다른 엄청난 포효.
놈이 발을 크게 구르며 손을 힘차게 휘젓자 사내 다섯이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팔이 우그러지고, 허리가 꺾인 자도 있고 머리 한쪽이 찢어져 피를 줄줄 흘리는 자도 있다.
다행히 모두 죽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서은채는 공격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쿠웅
오크 전사가 우뚝 멈춰선 서은채에게 다가섰다.
그런데 놈은 공격을 멈춘 서은채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김주하를 향해 다가서며 괴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다른 시민들은 벌벌 떨면서도 가까스로 바닥을 기어 도망쳤지만 김주하는 오크 전사의 살기에 묶이기라도 했는지 옴짝달싹 못 했다.
그때, 서은채가 다시 용기를 내서 김주하 앞을 막아섰다.
손에는 묵빛 송곳검을 굳게 쥐고서.
“이, 이 사람을 그냥…. 놔줘!”
오크 전사에게 소리쳐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마공 가문의 후예로서 시민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본능적으로 그 앞을 막아섰다.
“크르르르….”
오크 전사가 비키라는 듯 으르렁댔지만 서은채는 꼼짝도 안 했다.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김주하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수신호를 계속 보냈다.
하지만 김주하는 멍청하게도 몸을 움츠린 채 귀를 막고 서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그때 한수호는 오크 전사의 등 뒤에 도착해 있었다.
오크 전사는 서은채가 비켜서지 않자 울퉁불퉁한 근육의 팔로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그게 날아들면 서은채는 절대 막지 못한다.
누가 죽든 상관없이 김주하만 잡아 죽이려던 한수호였지만 더 이상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오크 전사가 메이스를 후려치려는 그 순간,
탁
한수호의 손이 오크 전사의 등에 닿았고,
빠지지직
강렬한 뇌전이 놈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때를 노려 서은채도 움직였다.
묵빛 송곳검을 뒤로 한껏 젖혔다가 있는 힘껏 놈의 심장을 꿰뚫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등 뒤에 있던 김주하가 손을 불쑥 내밀어 자신 쪽으로 다가온 서은채의 검을 낚아채 버린 것은.
“어?”
온 힘을 다해 검을 내지르려던 서은채는 손에서 검이 사라지자 당황했고, 감전에서 풀린 오크 전사의 메이스를 정면으로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한수호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간 그는 오크 전사의 손목에 나이프를 푹 꽂아 넣으며, 다른 손으로 팔을 붙잡아 우득 비틀어 버렸다.
“쿠에에에에엑!”
남다른 비명이 울려 퍼진 순간, 놈이 난동을 부렸다. 한데 검을 빼앗긴 상황에 멍해 있던 서은채가 발길질에 맞아 붕 떠올랐다.
아차 싶은 한수호가 더욱 힘을 주어 팔을 비틀자,
콰득.
놈의 오른팔이 통째로 뽑혔다.
그때, 우두커니 서 있던 김주하가 그대로 돌진하더니 오크 전사의 심장에 묵빛 송곳을 꽂아 넣었다.
푸욱-
오크 전사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쿠웅
거구의 오크 전사가 고꾸라졌다. 순간, 김주하는 기쁨에 찬 외침을 내질렀다.
“해냈다! 내가 오크 전사를 해치웠다고!”
그의 몸이 환하게 빛났다.
이건 각성의 표시.
김주하는 여자친구를 희생시키고, 서은채의 검을 빼앗아 곤경에 빠트린 결과로 각성을 이루어냈다.
서은채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오크 전사의 발길질에 맞아 박살 난 오른팔을 움켜쥔 채 피를 울컥 토해냈다.
도와주려던 자신에게서 검을 빼앗고, 그 검으로 막타를 노려 오크 전사의 심장을 꿰뚫어버린 김주하를 멍하니 바라봤다.
‘일반인이… 아니었어?’
김주하의 움직임은 가문에서 전문적인 가르침을 받은 수련자의 것이었다.
아무리 날카로운 검이라고 해도 오크 전사의 가슴 근육을 한 번에 관통시키려면 적어도 수련급 마공사에 맞먹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 말은 곧, 김주하가 수련급의 실력을 가지고도 일부러 벌벌 떨면서 오크 전사를 해치워 각성하려고 계획했음을 의미했다.
김주하의 행동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서은채는 김주하를 살리기 위해 나섰다가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 자신의 보디가드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완전히 부서진 자신의 기계 팔과 옷에 토해낸 핏물을 내려다봤다.
‘도대체 난 뭘 위해서….’
게이트의 몬스터로부터 힘없는 시민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것이 가문의 힘을 이은 자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던 서은채.
그녀에게 방금 겪은 일은 큰 충격 그 자체였다.
그때, 한수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왼손을 콱 움켜쥐더니 김주하 쪽으로 끌고 갔다.
김주하는 자신을 휘감던 빛이 사라지자 손을 살피며 각성한 자신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한수호와 서은채가 다가오는 걸 알고는 휙 돌아섰다.
“뭡니까?”
후드를 깊숙이 눌러쓴 한수호가 마공사인 걸 알기에 살짝 경계했다.
하지만 자신이 방금 각성하면서 얻은 특성, 세류창이 있었기에 이젠 두렵지 않았다.
한데 한수호는 말없이 서은채에게 나이프를 쥐여 주었다.
“꽉 쥐어.”
주문과도 같은 말에 서은채의 손에 힘이 팍 들어갔다.
“뭐냐고 묻잖아? 왜, 방금 내가 무기 좀 뺏었다고 사과라도 받을 생각이냐?”
이젠 아예 존대도 없이 반말로 지껄이자 한수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고맙다. 끝까지 지랄 맞아줘서.”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말을 하던 그때, 한수호가 성큼 다가서며 서은채의 손을 앞으로 확 잡아끌었다.
2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벌어진 느닷없는 행동.
푹
나이프가 그대로 김주하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이, 이게 뭐 하는 짓거리….”
김주하는 설마 이런 식으로 기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너무도 쉽게 나이프에 찔렸다.
“너 때문에 죽은 여자의 복수다, 이 개새끼야.”
손을 빼내자 김주하의 심장에서 피분수가 확 뿜어졌다.
김주하는 입만 몇 번 벙긋거리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은 금세 차갑게 식어버렸다.
서은채는 자의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쥐고 있는 나이프로 사람을 죽인 상황에 반쯤 넋이 빠졌다.
그때, 기적과도 같이 방금 김주하에게 일어났던 일이 서은채에게도 일어났다.
파아아앗.
그녀의 몸 전체가 환한 빛에 휘감겼고, 몸 곳곳에 생겼던 자잘한 상처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부서져 너덜거리는 오른팔을 덜렁거리며 빛에 휘감긴 모습에선 왠지 모를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한수호는 그런 서은채의 손에서 조심스레 나이프를 회수했다. 그리고 오크 전사의 사체가 쥐고 있던 메이스를 빼앗아 들고는 김주하 쪽으로 다가갔다.
“이놈은 오크에게 죽은 겁니다.”
한수호는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양복 사내들을 향해 한마디 하고는 메이스로 김주하의 몸통을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