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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30화 (30/375)

30화

퍼억. 퍽. 퍼벅.

무식하게 생긴 메이스에 수차례 얻어맞은 김주하의 시체는 형편없이 망가졌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잘 다져진 고깃덩이 신세가 된 김주하.

이를 내려다보는 한수호의 눈에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은채. 무슨 특성을 획득했지?”

한수호의 질문에 서은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도 수련자의 한 사람으로서 방금 한수호가 왜 자신의 손에 나이프를 쥐여 주고 김주하의 심장을 꿰뚫게 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반 자연 각성.

튜토리얼은 아니지만, 급이 다른 존재의 심장에 무기를 꽂아 넣음으로써 각성이 가능한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김주하와 서은채가 경험한 상황이었다.

각성석이 없는 상태라 각성에 성공할 확률은 반반.

그런데 김주하에 이어 서은채까지 그 반반의 확률을 뚫고 모두 각성한 것이다.

물론 그중 한 명은 각성 직후에 시체가 되고 말았지만.

“가속…. 이요.”

서은채의 입에서 저절로 존대가 나온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한수호는 며칠 전에 봤던 19살의 학생과 너무나도 달랐다.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분위기며 말투, 뿜어지는 기세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속이라…. 나쁘지 않네. 일단 네가 각성했다는 건 모두에게 비밀로 해라. 그래야 네가 안전할 거야. 당신들도 그렇게 해줄 거라 믿습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던 양복 사내들은 한수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수호로서도 그들이 정말로 입을 다물어 줄지 확신은 없었다.

자신이 김주하를 죽였으며, 그로 인해 서은채가 반 자연 각성을 이뤘다는 사실이 밝혀질지, 그렇지 않을지는 두고 봐야 알 일.

솔직히 그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한수호 입장에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각성도 못 한 19살의 학생이 이제 막 각성한 21살의 김주하를 죽이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증거부터 없애야 했다.

“왜 날 각성시켜 준거죠?”

“어차피 내 손에 죽을 놈이니 죽기 전에 좋은 일 하나 시킨 거지.”

“그러니까 왜요?”

서은채의 담력도 남다르긴 하다.

비록 한수호의 손에 이끌리긴 했지만, 방금 그녀는 김주하를 죽였다.

손에 쥔 나이프에서 전해지는 살을 파고드는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15살의 어린 나이였고, 말 못하는 동물조차 직접 죽여본 적이 없는 서은채로서는 충격적인 경험일 텐데도 아무런 트라우마가 없어 보인다.

그건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환경 때문이었다.

유명한 가문의 무남독녀임에도 그 가문을 이을 신체를 갖지 못했던 서은채는 많은 사람에게 괄시를 받아야 했고, 부모의 무관심을 지금껏 견뎌와야 했다.

게다가 팔까지 잃는 경험을 했기에, 살인으로 인한 충격이 크게 문제 되지 않고 있었던 것.

“그냥. 너라면 나중에 좋은 마공사가 될 것 같거든.”

한수호는 자신이 방금 미래를 바꿨다는 걸 알고 있다.

회귀 전에는 서은채라는 이름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정도 재능에, 독특한 신체를 지닌 인물이라면 특무부의 정보에 빠져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살아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발생한 게이트 웨이브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죽음의 원인은 김주하, 그 새끼한테 있었겠지.’

회귀 전에 이곳 월미도엔 한수호가 없었다.

아까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서은채는 오크 전사의 손에 죽었을 것이고 그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건 당연히 김주하였으리라.

하지만 이제 한수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멀쩡히 살아서 승승장구하던 영웅 김주하는 이제 없다.

대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시민을 보호하려던 15살의 서은채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한수호는 서은채에게 그 기회를 주었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끌어낼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름…. 알려줄래요?”

서은채는 이번에도 한수호가 그냥 떠나 버릴까 봐 이름부터 물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다시 만날 일은…. 아마도 없을 거다.”

서은채가 마공사의 길을 걷는다면 반드시 다시 만난다.

그걸 알지만 한수호는 이름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이 이상은 그녀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고, 이름을 말한다 해도 그건 장태산이라는 가명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만날 거예요. 반드시.”

“그거야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다른 마공사들도 도착했으니 내가 여기 남아 있을 이유는 없어졌네.”

주변은 어느새 정리되는 중이었다.

특무부와 정의국, 대한맹에서 투입한 마공사들이 오크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사이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회귀 전처럼 5백에 이르는 숫자는 아니더라도 최소 3백 정도 되는 시민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나중에 만나면 모른 척하지 마요!”

“….”

한수호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그곳을 떠나기 전에 주변에 설치된 CCTV의 녹화 칩을 모두 챙겨가는 걸 잊지 않았다.

며칠 동안 이곳을 돌아다니며 CCTV 위치를 모두 파악해 놓은 게 주효했다.

마공사들이 주변을 정리하다가 김주하의 참혹한 시체를 발견했을 때, 그곳엔 서은채도,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투입된 양복 사내들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 * *

김재우는 이번 게이트 발생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시체를 살피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건 뭐, 고기 다지듯이 다져놨구만.”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한 시체가 대부분 그렇지만, 이 시체는 유독 훼손 상태가 심했다.

가슴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박살을 내놔서 형체도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소지품을 뒤져서 나온 지갑을 보니 이름이 김주하다.

“김주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특무부 요원들은 수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고, 가문과 연관된 일도 많이 처리해야 했기에 아는 것이 많다.

김재우도 그랬다.

“김주하면…. 거, 어디냐. 유성창가의 둘째 아들일 텐데?”

김재우와 함께 시체를 수습하던 선배 요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유성창가! 맞네요, 거기. 그런데 왜 김주하가 여기서 시체가 되어 있는 거죠?”

“학교 땡땡이치고 놀러 왔다가 게이트에 휩쓸린 거겠지. 소문엔 김주하가 재능은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려는 대범함이 없어서 벌써 두 차례나 튜토리얼에서 실패했다지 아마?”

“그래도 유성창가의 자식이면 각성을 못 했어도 오크 몇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텐데요?”

김재우는 그게 의아했다.

오늘 이곳에서 사망한 시민 중 가문 소속의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한 명, 김주하를 빼고는.

“오크 전사라도 만났나 보지. 보니까 오크 전사 사체도 나왔다면서? 각성을 못 했으면 오크 전사는 무리야.”

“CCTV 영상은 다 회수했죠?”

김재우는 김주하의 시체에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대부분은 회수했지. 근데, 일부는 CCTV가 너무 손상돼서 저장 칩도 찾지 못했다는데?”

“일단, 회수된 거라도 좀 봐야겠네요.”

“그건 알아서 하고. 그보다 여기 있던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다행히 가문 소속의 수련자들이 현장에 몇 명 있었나 봐. 양복 입은 남자들하고 아카데미 학생 같은 애들이 꽤 많은 사람을 구해줬다더군.”

김재우의 선배는 시신들을 가지런히 눕히고 소지품을 뒤져 박스에 담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어디에도 안 보이네요? 그 정도면 벌써 온갖 매스컴에서 인터뷰 잡고 난리도 아닐 텐데.”

“그냥 떠났데. 영웅처럼 사람들만 구해놓고 자취를 감춘 거지. 요즘도 가문 쪽에는 힘숨찐 히어로 흉내 내는 애들이 좀 있나 봐?”

“에이. 요즘 가문 쪽 애들이 얼마나 되바라졌는데요? 게이트가 터진 곳에서 사람들을 구했으면 자기가 그랬다고 떠벌리고 다녔을걸요? 뭔가 구린 게 있으니 그냥 떠난 거 아닌가?”

김재우는 사람들을 구했다는 자들이 마공가문 소속의 평범한 수련자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인상착의는 내가 기재해 놨으니까 보고 싶으면 말해.”

“네. 그건 본부에 귀환해서 볼게요.”

김재우는 선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경찰을 찾아가 CCTV 영상 칩을 구해왔다.

그리고 안면이 있는 기자가 타고 온 취재 차량에 무작정 올라타 영상을 돌려봤다.

“재우 씨는 특무부 요원이면서 작전 차량 같은 거 안 타고 다녀요? 매번 꼭 우리 방송국 차량을 애용하시더라?”

MBO 방송국 소속의 기자, 채이나가 옆에서 하는 말에 김재우는 떨떠름하게 웃었다.

“채 기자. 내가 아직 작전 차량을 마음대로 이용할 정도로 짬이 안 차서 그런 거거든? 그러니 괜히 속 긁지 말아줘.”

“어머? 오늘 반응은 좀 찐이네요? 뭔가 굵직한 뉴스거리라도 물으신 건가?”

역시 기자의 촉은 남다르다.

김재우의 반응만으로 뭔가 있음을 눈치챈 채이나는 게이트 당시가 촬영된 영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오크가 튀어나오면서부터 참혹한 광경이 이어졌다.

가시가 박힌 쇠몽둥이로 무참히 사람을 때려죽이는 오크들이 사방팔방에서 날뛰었다.

몇몇 보안요원들이 용기있게 나서봤지만 아무 힘이 없는 그들이 오크를 막아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머리가 터지고, 팔다리가 뽑혀 나가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다.

“어우. 매번 보는 거지만 오크는 정말 잔인한 족속들이네요.”

“평급 이상은 되어야 어렵지 않게 오크를 때려잡을 수 있지. 채 기자도 나중에 오크 마주치면 괜히 대거리하지 말고 그냥 튀라고.”

“오오? 재우 씨….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건가? 기분 좋은데요? 근데 재우 씨는 특급이죠? 그럼 오크 병사는 그냥 껌이겠다. 오크 전사도 한입거리?”

“같은 오크라도 어느 게이트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 여기서 발생한 게이트는 7급이니까 다른 오크들보다는 조금 더 센 놈이라고 봐야…. 응?”

말하던 김재우가 영상을 갑자기 멈췄다.

“왜요? 뭐 있어요?”

채이나도 영상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화면은 디스코팡팡 놀이기구 근처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영상에 의문의 사내 하나가 등장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자.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내가 도망치는 가족 앞을 막아선 오크를 너무도 쉽게 죽여버리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뒤이어 그곳을 덮친 많은 오크의 공격을 빠른 스텝과 몸놀림으로 피하더니 몇 분 만에 십여 마리를 쓰러뜨렸다.

“와. 저 사람 뭐죠? 마공사가 있었다고 하더니, 바로 저 사람 아니에요? 근데 왜 얼굴을 저렇게 가린 걸까요? 신분을 숨긴 영웅행세라도 하고 싶은 건가?”

채이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김재우는 달랐다.

“아니. 저자…. 계속 CCTV 쪽을 힐끔거리고 있어. 마치 제대로 찍히고 있나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야.”

“에? 그럼 뭐 하러 얼굴을 가렸대요?”

“자길 찾아내 보라 이거지.”

“어머. 그럼 영웅이 아니라 관종?”

“적어도 시민들을 구한 건 사실이니까 관종 취급을 할 수는 없지.”

김재우는 근처 다른 위치에 설치되어 있던 CCTV 영상들도 빠르게 확인했다.

그리고 결국 후드에 마스크를 쓴 사람의 얼굴이 나온 장면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어느 영상의 한쪽 귀퉁이에 나타난 젊은 남자를 쿡 찍었다.

“찾았다.”

“와! 재우 씨 대단하다~ 이 구석에 조그맣게 나온 걸 어찌 찾았대요?”

그 말에 김재우가 채이나를 빤히 바라봤다.

“채 기자. 혹시 바보야? 옷이 똑같잖아. 옷이!”

“아하!”

“방금 본 거 괜히 방송 태우지 마. 영상 속 주인공이 방송 보고 완전히 숨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좋은 일한 사람 굳이 찾아내서 뭐 하려고요?”

“뭐하긴? 상 줘야지.”

“상 준다는 사람 표정이 너무 음침한데요?”

채이나는 김재우가 뭔가 다른 생각이 있다는 걸 바로 알아봤다.

“무슨 상 줄까 고민 중이라 그래. 아무튼, 고마워 채 기자. 난 이만 가볼게!”

김재우는 칩을 모두 챙겨서 바로 차량에서 내렸다.

손을 흔들며 떠나는 김재우를 바라보던 채이서는 혼자 작게 중얼거렸다.

“자동 녹화 장치를 셋업해 놓길 정말 잘했네. 히힛.”

그녀는 바로 차량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 복사되어 있는 영상을 다시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한수호는 월미도 사건 직후, 곧장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체력단련실을 찾아가 일일 미션을 끝마친 후, 방으로 돌아와 포인트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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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전사를 상대할 때 꽤 강력한 흡마력을 사용한 덕분에 단숨에 3포인트가 늘어났다.

이건 정말이지 개꿀 중 개꿀이었다.

물론 너무 자주 사용하거나, 장시간 사용할 경우에 마나력 오버히트라는 위험이 있긴 하다.

하지만 조심해서 사용만 한다면 미션으로 포인트를 버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포인트를 적립시킬 수 있었다.

‘아카데미 안에서는 훈련용 몬스터 봇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잘 애용해 줘야겠지?’

너무 과하게 흡마력을 운용하면 몬스터 봇의 마나하트의 에너지 감소량이 확 티가 나므로 이 또한 주의할 필요는 있었다.

그가 지닌 이 흡마력의 능력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

송지문의 마나를 흡수했던 상황은 운 좋게 넘어갔으나 그들이 또다시 마나 흡수에 관한 소문을 접하게 된다면 바로 한수호를 의심하게 될 테니까.

‘최대한 티 안 나게 조심조심.’

그렇게 가닥을 잡은 한수호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월미도에서의 상황을 떠올렸다.

염의 마녀, 황가련이 등장하지 못하게 막는 시나리오는 무사히 완수했지만 뜻하지 않게 김주하를 죽이고 서채린의 각성을 도왔다.

이 일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지는 한수호로서도 예측 불가.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김주하 같은 개놈의 시발 새끼가 대한맹의 수뇌부가 돼서 영웅으로 칭송받는 일을 막았으면 된 거야.’

그놈 대신 인간다운 마음을 가진 서채린이 각성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서채린…. 고작 15살밖에 안 된 꼬맹이가 간도 크지.’

한수호는 각성도 못 하고 마공가문의 마나공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서채린이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오크 앞에 나섰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런 마음을 가진 마공사라면 훗날 세상을 위해 큰 힘이 되어줄 거라고 적잖이 기대됐다.

‘그나저나…. 어느 쪽에서 날 먼저 찾아낼까?’

한수호는 특무부, 정의국, 대한맹 중 어느 한 곳에서는 반드시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이 김주하를 죽이고, 서채린을 각성시키는 장면이 담긴 영상은 모두 삭제했지만 황가련 가족을 돕고 오크 병사를 때려잡는 영상은 그대로 뒀다.

이 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따라서 한수호는 앞으로 추진할 일에 대한 기준점을 세울 생각이었다.

계속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미래지식으로 이득을 챙겨 단계적으로 성장해 갈지,

아니면 아카데미를 때려치우고 모든 미래지식을 최단 시간에 끌어당겨 급속도로 성장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전자는 시간을 들여 동료를 모으고 세력을 구축해 안정적으로 미래의 위험을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후자는 독불장군처럼 혼자 힘으로 치고 나가 단독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그렇기에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뭐가 됐든 다 때려 부숴야 하는 위험이 있다.

가족을 위해서는 전자가 가장 이상적이다.

한수호의 최우선 목표는 가족의 안전과 행복을 챙기는 것이며, 이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것이 바로 2057년에 발발할 악몽급 게이트의 폭주를 대비하는 것이다.

2051년인 현시점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게이트는 1급.

허나 2055년에 처음으로 1급을 아득히 뛰어넘는 재앙급 게이트가 발생해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갑자기 등장한 재앙급 게이트.

총 7개의 재앙급 게이트가 한날한시에 열렸고, 거기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로 인해 5천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재앙급 게이트는 끝내 폐쇄하지 못한 채 게이트 활동만 중지시켰다.

이를 위해 희생된 상위급 마공사는 대한민국에서만 수백 명이 넘었다.

2055년 재앙급 게이트를 시작으로 인류는 또 다른 특수 게이트의 발생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2057년 초에 악몽급 게이트를 예견할 수 있게 되었다.

재앙급보다 위험도에 있어 최소 열 배 이상이라는 악몽급 게이트.

세계 모든 지역을 샅샅이 스캔한 결과 이 악몽급 게이트가 3곳에서 폭주할 예정이었다.

그중 한곳이 하필이면 바로 대한민국이었고.

회귀 전의 한수호는 이 악몽급 게이트를 막기 위한 최후의 결사단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게이트가 폭주하기도 전에 이대성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그때야 멸망에 이른 세상을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죽음에 큰 아쉬움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살아남은 가족이 있고, 그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안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꼭 놀이동산에 놀러 가겠다는 작은 목표도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앙급 게이트도, 악몽급 게이트도 완벽하게 막아내야 했다.

‘앞으로 4년. 재앙급 게이트부터 제대로 막아내려면 지금 내 능력으로는 아직도 부족해.’

확실히 능력을 강화하려면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게 베스트다.

이를 위해선 특무부 요원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 되는 것이 바로 월미도의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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