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김재우의 등장으로 상황은 빠르게 정리됐다.
그가 촬영한 영상이 있었기에 박창수 쪽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영상엔 두 사람이 정당한 내기를 했고, 내기에서 진 박창수가 억지를 부렸으며, 여럿이서 한수호를 구타하려고 한 정황이 모두 찍혀 있었다.
그들이 일을 더 크게 만들어봐야 한수호는 정당방위였기에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영상을 촬영한 김재우는 마공특무부의 요원이었다.
그가 증인으로 나선 이상 박창수의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박창수 패거리들은 기절한 박창수를 둘러업고 단련실을 나갔다. 떠나기 전 유재형은 약속대로 붉은 각성석을 한수호에게 넘겼고, 김재우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의 아버지가 특무부 본부장 유대룡이기 때문에 이번 일에 대한 김재우의 보고가 올라가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두려웠던 것.
그 사이 한수호는 땀에 절은 옷을 갈아입고 기숙사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절 찾아오셨다고요?”
김재우가 아카데미로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월미도에서의 사건 때문이라는 건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월미도의 영상을 특무부에서 챙긴 모양인데, 그 많은 요원 중에서도 김재우가 그 일을 맡게 된 것은 한수호로서도 의외였다.
“나랑 이야기 좀 나눴으면 하는데….?”
“내일부터 정식 수업이 시작돼서 준비할 게 많습니다.”
“10분 정도는 괜찮겠지? 간단한 질문 몇 개만 할 거니까 부담 안 가져도 된다.”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럼 말씀하시죠.”
한수호는 단련실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았고, 살짝 떨어진 곳에 김재우도 앉았다.
“이름이…. 장태산. 이번에 새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신입생 맞지?”
“보다시피요.”
한수호는 짧게 대답하면서 쭉 김재우를 자세히 살폈다.
유재형처럼 회귀 전과 달라진 게 있는지, 아니면 전과 똑같은지 파악하려는 것이다.
일단 생김새는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수더분하게 생긴 얼굴에 조금 마른 듯한 두 뺨. 그리고 뺨에 새겨진 흐릿한 자상까지도.
김재우는 전과 다름없이 해맑은 눈빛을 띠며 한수호를 응시했다.
“우선 충고 하나 하마. 아카데미 내에서 다른 녀석들하고 엮이는 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만, 아까 그 유재형이라는 학생하고는 가급적 엮이지 마라.”
“왜죠?”
“그 녀석 아버지가 마공특무부 서울 본부장이거든. 너도 특무부 요원이 되는 걸 꿈꾸고 있다면 유재형 눈 밖에 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김재우는 순수한 의도로 한수호의 미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유재형이라는 사람…. 아버지 지위 믿고 설치는 그런 인물입니까?”
“그렇기보다는, 당한 건 반드시 갚는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랄까? 원래는 안 그랬는데, 3년 전 무슨 일 때문인지 갑자기 달라졌지. 아무튼 그래.”
“3년 전이요?”
3년 전이면 21살 때라는 건데, 회귀 전 그 시점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시 떠올려봤다.
하지만 없다.
그 시점에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았었다.
“내 생각엔, 아마도 그때 본부장님이 새장가를 들면서 성격이 틀어진 거 같은데…. 어이쿠. 내가 처음 보는 학생이랑 무슨 말을 하는 거래? 하하하. 방금 한 말은 잊어라.”
“아, 네….”
한수호는 흠칫 놀랐다.
유대룡이 새장가를 갔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어쩌면 그 달라진 사건으로 인해 유재형의 성격이 비틀린 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장태산 학생. 혹시 이틀 전, 그러니까 3월 6일에 말이야. 혹시 월미도에 간 적이 있지 않나?”
역시나 그 일 때문에 온 게 맞다.
한수호는 이 일로 김재우와 어떤 관계가 형성될지 조금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전처럼 형으로서, 선배로서 날 헌신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적어도 김재우만큼은 회귀 전과 달라지지 않았길 간절히 바랐다.
“네. 저도 게이트 발생이 있던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 너무 쉽게 인정해 버리니까 내가 되려 할 말이 없어져 버리네. 하하. 난 또 네가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날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하고도 숨기는 건가 했는데 말이야.”
“매스컴에 얼굴 팔리는 게 싫었을 뿐입니다.”
“하긴. 그게 나을지도 모르지. 괜히 유명세 탔다가 인생 망치는 애들 여럿 봤거든. 네가 원한다면 그날 네가 한 일은 나도 모른 척해 주마.”
“단지 그 이유로 여기까지 절 찾아오신 겁니까?”
“진짜 이유는 이거다. 오크 사체. 그날 네가 잡은 오크가 정확히 14마리더구나. 영상으로만 확인된 거라 약간 오차가 있을 순 있다.”
다행히 한수호가 원하는 이야기도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17마리였죠. 3마리는 CCTV 사각지대에서 잡았나 보네요.”
“그래? 아쉽지만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14마리라서…. 아무튼, 네가 잡았다는 게 확실해졌으니 사체 처리에 따른 수익은 네 앞으로 입금시켜 줘야지 않겠냐?”
“잘됐네요. 그거 시세대로 처리되죠?”
“시세? 뭐, 그렇지. 마리당 53만 원쯤 될 거다. 사체 상태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 크지는 않을 거고.”
“여기요.”
한수호는 마치 준비했던 것처럼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그걸 본 김재우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 내가 올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어?”
“굳이 숨길 일은 아니라서 누가 찾아오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죠.”
“너 혹시…. 일부러 특무부에서 널 찾아오게끔 유도한 거냐?”
김재우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로 똑 부러지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좀 전에 괴롭히는 선배를 보기 좋게 때려눕히는 것만 봐도 보통 학생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99퍼센트의 확률로 아까 그 상황을 촬영한 영상이 이 학생도 가지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부로라기 보다는,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거 같아서 그에 대비한 거뿐입니다.”
“대비라…. 모든 일에 대비하는 건 아주 좋은 자세이긴 하지. 그런데, 장태산 학생. 혹시 월미도에서 다른 마공사는 만나지 못했니? 검술 관련 특성을 가졌다거나, 검술을 익힌 마공가 사람이라도 말이야.”
“그건 왜요?”
“흠. 넌 아마 모르겠지만, 월미도 사건 현장에서 중요한 인물 하나가 희생되었단다. 그런데 그의 사체에서 좀 이상한 흔적이 나왔거든. 분명 오크의 손에 죽은 것 같은데, 상처 중에 검에 관통당한 흔적이 있더라고.”
김재우는 일부러 한수호에게 많은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이번 일에서 자신을 도와준다면 앞으로 그 또한 한수호를 돕겠다는 무언의 거래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그 중요한 인물을 살해했다는 거군요?”
“그렇지. 윗분들은 그자가 죽은 이후에 날카로운 도구에 찔린 거로 처리를 원하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거든. 분명 검에 먼저 찔렸고, 그 후에 오크의 메이스에 온몸이 다져진 거야.”
“죽었다는 사람…. 훌륭한 인물이었나 보군요? 그래서 아저씨는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뭐, 그런 건가요?”
한수호는 일부러 떠봤다.
김재우가 과연 어디까지 예측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훌륭한지, 더러운지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누군가가 살해당했고, 그를 살해한 인물이 버젓이 살아 있다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으니 진실을 밝혀내려는 것뿐이다.”
“희생자가 죽을만한 짓을 저지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하하. 장태산 학생. 세상엔 말이다. 죽어도 될만한 짓이란 존재하지 않는단다. 설사, 누군가를 이유 없이 죽인 살인자라 해도 그자 또한 죽어도 마땅하다는 주장은 자기만족일 뿐이고. 물론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는데엔 나도 동의한다만.”
김재우는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때도 김재우에게 있어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를 처벌하는 방법이 똑같은 살인이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그 신념은 지금의 삶에서도 똑같았다.
“마공 가문의 수련자로 보이는 사람들 몇 명을 보긴 했어요. 하지만 그들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은 본 적이 없네요.”
한수호는 과거를 회상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 하긴…. 너도 사람들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테니 봤어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겠지. 일단, 성실하게 대답해줘서 고맙다.”
“별말씀을요. 그럼 이제 된 건가요?”
한수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예상과 달리, 다른 누구도 아닌 김재우가 자신을 찾아온 데다가 그의 성정이 회귀 전과 다름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계획을 약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미래에 발생할 악몽급 게이트를 막아낼 힘을 키움과 동시에 미래 정보를 이용해 급속도의 성장을 꾀하는 것으로 말이다.
김재우가 도와준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여기, 내 번호다.”
김재우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수첩에 적어 북 찢었다.
“번호는 왜요?”
알지만 모르는 척 멀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게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저, 남자 안 좋아하는데요?”
“얌마. 나라고 남자가 좋겠냐?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적인 연락일 뿐이니 걱정 마라.”
“저, 사업할 생각도 없는데요?”
“그 비즈니스가 사업이 아니라니까?”
“아…. 알았다. 제가 각성하게 되면 특채로 뽑으려고 그러는 거죠?”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김재우가 흠칫했다.
“크흠…. 그렇게 눈에 확 띄나? 너도 내 얼굴만 봐도 바라는 게 뭔지 다 보이고 그래?”
“네. 이 애송이 녀석. 빨리 각성해서 라이선스 받기만 해라, 그때부턴 바로 특무부 실습생으로 당겨와 버릴 테니까…. 라고 얼굴에 써 있네요.”
“허 참…. 이놈의 얼굴에 보톡스나 잔뜩 맞아서 표정을 없애든가 해야지. 내 속마음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네, 없어.”
김재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조적인 웃음을 그렸다.
실제로 김재우는 한수호를 특채로 끌어올 생각이었다.
각성 전부터 위험에 빠진 시민을 구해낼 만큼 성정이 훌륭한 데다가 실력도 좋고, 그걸 빌미로 유명세를 떨치려고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게다가 특무부에서 자신을 찾아올 것임을 알고도 가만히 기다리는 침착함까지.
특무부 요원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곧 있을 튜토리얼에서 괜찮은 특성을 얻기만 하면 특채로 끌어들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김재우는 한수호를 훌륭한 특무부 요원으로 키우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투자가 필요했다.
“저 써먹으려면 비쌀 거예요. 공짜로 도와줄 생각은 당연히 없고요.”
“이야…. 머리에 피도 마른 놈이 모르는 게 없네.”
특무부는 가끔씩 특무부 소속이 아닌 사람들과 협업을 맺고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는 항상 특무부에서 부탁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협조에 대해 과한 보상이 주어지기 마련.
한수호는 그런 부분까지 알고 일부러 들먹이고 있었다.
“특무부를 목표로 삼은 이상 그곳의 모든 정보를 미리 파악해 두는 건 기본이죠.”
“좋은 자세구나. 알았다. 필요할 때 연락할 테니 계좌 막히지 않게 잘 간수하고.”
“의뢰보다 입금이 먼저인 거 보니까…. 제가 반드시 협조할 거라고 확신하시나 보네요?”
“확신하지. 난 알거든. 네가 나랑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라는 걸 말이야.”
김재우가 히죽 웃는 얼굴이 오늘따라 너무 정겹다.
한수호는 그 해맑은 웃음에 자기도 모르게 전염되고 말았다.
“그럼 이것도 아시겠네요? 절 움직이게 하려면 통 큰 보상이 필요할 거라는 거요.”
“걱정 마라. 네 생각 이상으로 후하게 값을 치러 줄 테니까.”
“기대 하겠습니다.”
한수호는 웃었고, 김재우도 웃었다.
회귀 전에도 함께 자란 유재형보다 김재우와의 관계가 훨씬 더 가까웠다.
유재형은 함께 자라긴 했어도 서로 추억을 이야기하며 편하게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한수호에게 김재우는 그리운 인물이었고, 그의 죽음은 큰 상실감을 안겨줬었다.
‘이번엔 죽게 두지 않을 겁니다. 재우 선배.’
한수호는 이번 삶에선 김재우를 죽음에서 반드시 구해내기로 굳게 다짐했다.
* * *
그날 저녁.
한수호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팔짱을 낀 채 눈앞의 무기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다섯 개의 단검.
두 개는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세라믹 나이프였지만, 컬러풀한 색을 지닌 단검 세 개는 두 번 다시 구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전설의 무기다.
집념의 검 라뮬.
희생의 검 그랑.
용기의 검 로크.
원래는 진무현을 영웅으로 거듭나게 한 라뮬만 얻을 생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세 개를 얻었다.
하지만 이 세 개의 검에 어떤 능력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직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라뮬의 경우, 단검에서 장창의 모습으로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 방법까진 한수호도 모르고 있었다.
원래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단검의 비밀을 밝혀내려고 했으나, 계획이 바뀐 이상 시간을 허투루 낭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식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이 단검들의 비밀을 밝혀내려는 것이다.
‘마나력을 주입해도 변화가 없어. 대체 이 단검을 변화시킬 수 있는 트리거는 뭘까?’
단검을 자세히 살펴보며 무슨 작동 버튼이라도 있나 확인해 봤지만 겉보기에는 순수한 단검일 뿐이었다.
라뮬은 마나력을 주입하면 화염의 기운이 솟아난다. 그로 인해 검의 절삭력에 강한 파괴력까지 얻게 되는데, 그냥 대충 휘둘러도 바위를 때려 부술 정도로 강력하다.
그랑은 굉장한 냉기를 뿜어내며 베어지는 피격 부위를 단숨에 얼려버려 움직임을 굉장히 느리게 만드는 부가 효과를 지녔다.
세 번째 검, 로크는 셋 중에 가장 대단했다.
검막이조차 없는 송곳 모양의 단검.
그런데 이 검의 관통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바위는 물론 쇠조차도 로크의 관통력을 버티지 못했다.
로크를 손에 쥐고 검끝을 그냥 가져만 대도 두부처럼 꿰뚫렸다.
게다가 로크에서는 한수호의 특기인 뇌전이 뿜어졌다.
한수호는 시험 삼아 로크를 쥔 상태로 마나력을 끌어 올려 봤는데, 처음엔 검 주변에서만 번쩍이던 뇌전이, 마나력을 높이자 점점 사거리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7할까지 마나력을 높였을 때는 무려 1미터까지 뇌전이 뻗어 나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 상태의 뇌전이 얼마나 강력한지 확인해 보니, 무려 50만 볼트에 가까웠다.
일반인은 이 뇌전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었고, 평급 이하의 마공사도 사망 직전까지 내몰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어쨌든 지금 상태로도 이 세 개의 단검은 굉장한 무기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라뮬이 장창으로 변할 수 있다면 다른 검들도 뭔가 변화가 가능하다는 건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어떡하면 라뮬을 창으로 변신시킬 수가 있는 거지?’
한수호는 회귀 전, 진무현이 이 라뮬을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 당시 진무현은 불꽃의 전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라뮬을 이용한 화려한 화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검 라뮬 또한 화염대거라고 불리기도 했다.
‘불꽃, 그리고 화염이라….’
뭔가 묘한 감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설마…. 트리거가 불?’
한수호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목장갑 하나를 가져와 기름을 살짝 발랐다.
오른손에 그 장갑을 끼운 뒤 조심스레 불을 붙이자,
화르륵
장갑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한수호는 그 상태로 라뮬을 거머쥐었다. 장갑의 불길이 라뮬을 뒤덮는 순간 그는 마나력을 2할 정도 끌어올렸다. 그때,
파캉
라뮬이 깨져나가듯 쪼개지더니 손잡이가 조금 굵어지며 1.5미터까지 확 길어졌다. 그것만이 아니다.
라뮬의 검날 또한 재구성되어 1.5미터의 기다란 날붙이로 바뀌어 버렸다.
총 길이 3미터의 거대한 창.
아니, 창이라기보다는 손잡이가 엄청 길쭉한 장검에 가까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함이 느껴지는 무기. 게다가,
화르륵
1.5미터의 기다란 검날에서는 뜨거운 불길까지 치솟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