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한수호가 불타오르는 창검에 넋을 잃고 있을 때였다.
푸쉭
촤아아아아아악
너무도 뜨거운 열기 때문에 화재경보기가 작동해 사방으로 물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은 한수호.
목장갑을 휘감던 불꽃이 꺼지자 창검이 내뿜던 화염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카라라라랑
창검이 접히고 오그라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50센티의 단검으로 다시 바뀌어 버렸다.
한수호는 비 맞은 개 꼴이 되어 마체테에 가까운 단검의 모습이 된 라뮬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쾅쾅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학생! 무슨 일이야? 불이라도 난 거야?”
기숙사 사감이 화재경보기 작동에 깜짝 놀라 달려온 것.
“아닙니다. 제가 실수로 작동시켰어요. 죄송합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 맞지?”
“네. 정말이에요.”
한수호는 문을 열어 물에 푹 젖은 거실을 확인시켜 줬다.
“어이구. 물바다 됐네. 대체 뭘 했길래 이 지경이야?”
“뭐 좀 끓여 먹으려다가 화력이 생각보다 너무 세서…. 죄송합니다.”
“조심해 학생. 여기 D동 기숙사는 연식이 오래돼서 화재가 나면 금방 무너진다고.”
“네. 조심하겠습니다.”
한수호는 사감을 어렵사리 돌려보내 놓고 한숨을 돌렸다.
대충 물기를 닦아내 거실을 청소한 그는 다시 바닥에 앉아 단검들을 내려다봤다.
화염의 기운에 마나력이 얹어져서야 창검으로 모습을 변화시킨 라뮬.
이제야 단검의 변신 트리거가 무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진무현이 화염 쪽과 관련된 특성을 각성한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라뮬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테니까.
한수호는 굉장히 아쉬웠다.
훌륭한 무기를 손에 넣었는데, 그걸 제대로 쓸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
‘그렇다고 매번 목장갑에 석유를 부어 불장난을 할 수도 없고.’
불타는 목장갑으로는 창검의 유지 시간은 길지 않을 터.
화염 속성을 지닌 특성이나 유사한 기술을 익히지 않는 이상 라뮬은 그림의 떡이었다.
‘잠깐. 라뮬이 화염 속성이면 그랑은?’
한수호는 푸른빛을 번뜩이는 그랑을 바라봤다.
그랑을 얻을 때 겪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속성은 물.
한수호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이번엔 목장갑에 물을 잔뜩 묻혀 그랑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마나력을 확 끌어올렸는데,
“….”
아무 변화가 없다.
“에이 씨.”
육성으로 투덜거린 한수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랑이 수의 속성을 지닌 건 확실해. 그렇다면….’
같은 수 속성이라도 몇 가지 종류가 나눠진다.
따뜻한 물, 차가운 물, 미지근한 물, 얼음물.
아마도 이 중에 한 가지가 그랑을 변신시키는 트리거일 터.
‘아마도 얼음이겠지.’
왠지 그럴 것 같았다.
한수호가 지하유적에서 겪은 건 혹독한 추위와 피부가 얼어 부서지는 고통이었으니까.
한수호는 미니 냉장고에 물에 젖은 목장갑을 넣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장갑을 꺼내 보니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걸 간신히 손에 끼워서 움직여봤다.
뿌드득. 꽈득.
얼음 조각이 부서져 내린다.
그 상태로 힘겹게 그랑을 잡았다. 그리고 전과 동일하게 마나력을 힘껏 끌어올렸다. 순간,
콰직
그랑이 순식간에 형태를 변형시켰다.
새파란 빛을 뿜어내는 그것은,
반경 30센티 정도 크기의 동그란 방패였다.
한수호는 놀란 눈으로 그 방패를 툭툭 쳐봤다.
터엉. 터엉.
쇠와 다름없는 단단한 재질.
그런데 대체 무슨 원리로 단검이었던 물건이 이런 방패로 변신할 수 있는 걸까?
라뮬은 창검으로.
그랑은 방패로.
‘로크는 또 뭐로 변하려나?’
기가 막혔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안 믿을 수가 없다.
방패의 강도는 엄청났다.
세라믹 나이프로 찍어도 집 하나 안 났다.
벽력권을 일으켜 때려도 봤는데 절연체인지 전기를 그냥 먹어버린다.
게다가 불에 의한 열전도도 없다.
이것만 있으면 다른 방어구는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 시대의 많은 마공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티팩트는 마나 방어구였다.
그런데 이 방어구들은 크기도 크고, 무게도 보통이 아니어서 제대로 방어구를 갖추게 되면 빠른 움직임은 그냥 포기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움직임은 느리지만 방어력이 대단한 탱커들이나 아예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력과 속도에만 중점을 둔 전사들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이 그랑만 있으면 우주 방어도 되겠는데?’
튼튼한 그랑 방패로 몬스터의 공격이나 다른 마공사들의 속성 공격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수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목장갑의 얼음은 빠르게 녹았고 얼음 결정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슈욱
방패는 다시 단검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라뮬도 그렇고, 그랑도 똑같다.
그랑을 계속 방패 형태로 유지하려면 속성에 맞는 특성, 또는 기술이 필요했다.
‘화염에 이어 냉기라 이거지?’
한수호가 가진 속성형 기술은 벽력권 뿐이었다.
‘이제 와서 화 속성이나 수 속성 기술을 배워야 하는 건가?’
그렇게 아쉬워하고 있던 그때, 머릿속에 뭔가가 번쩍했다.
‘뭐야? 나 뇌 속성은 이미 가지고 있는 거네?’
한수호는 곧장 새하얀 로크를 잡아들었다.
로크는 자체적으로 뇌전을 일으키는 무기였으니 속성 또한 똑같을 것이다.
‘벽력권으로 분명 가능할 거야.’
기대에 가득한 눈으로 로크를 바라보던 그는 검을 쥔 손에 벽력권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1할에서 2할로 조금씩 올려봤지만 아직까진 변화가 없다.
‘그럼 3할로.’
더욱 마나력을 올리자 검을 쥐고 있는 손에서 스파크가 팍팍 튀기 시작했다. 더불어 로크에서도 이에 공명하듯 스파크를 내뿜었다.
‘4할이다!’
4할까지 마나력을 높이자 손 자체가 하얗게 변하며 번개를 거머쥔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 순간,
쩌엉-
로크가 수백 조각으로 팍 깨져나가더니 재조합되며 손을 휘감았다.
한수호가 어? 하고 놀라는 사이 손은 새하얀, 아니 은빛에 가까운 건틀릿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꿈치가 있는 곳까지를 완전히 뒤덮은 건틀릿.
한수호는 이 굉장한 현상에 입까지 살짝 벌리고 멍하니 건틀릿을 바라봤다.
잠시 후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 그는 혹시나 싶어 개조 특성을 이용해 오른팔의 스탯을 살펴봤다.
[오른팔] : 50(+50)
원래의 수치 50 뒤에 +50이 추가로 붙었다.
‘와…. 이게 뭐야?’
직관적으로 이해하면 지금 한수호의 오른손이 평소보다 두 배나 강해졌다는 의미다.
손을 움직여 봤다.
주먹을 쥐었다 펴는 움직임이 너무 부드러워 얇은 가죽 장갑을 끼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상태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봤는데 예상대로 훨씬 가뿐하게 들어 올릴 수가 있었다.
악력도 엄청나졌고, 이리저리 휘둘러 보니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당장은 파괴력을 시험해 볼 수 없었지만, 그 또한 확실히 강력해졌으리라.
무엇보다 한수호를 기쁘게 하는 건,
‘벽력권으로 로크를 변신시킬 수 있다는 거지.’
라뮬이나 그랑처럼 따로 기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
세 가지 중 하나는 건졌으니 그래도 다행이었다.
앞으로 한수호는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열기와 냉기를 뿜어내는 장갑 같은 아티팩트를 구하던가,
아니면 직접 열기와 냉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익히던가.
그렇지 않으면 라뮬과 그랑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11시?’
어느새 밤 11시가 넘었다.
다행히도 단검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낼 수 있어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회귀 전에 창술과 방패술을 익혀 놔서 다행이네.’
한수호는 회귀 전,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무기들에 대해 연구하고 그 무기들의 사용법을 스스로 익혔었다.
그 덕에 십팔반병기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창술은 수준급이었다.
방패술 또한 강력한 탱커를 적으로 만났을 때 활용하기 위해 익혀둔 상태.
이로써 라뮬과 그랑을 모두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내일을 위해서 잠을 자볼까나?’
아카데미에서 시작되는 첫 수업.
어떤 수업일지는 이미 겪어봐서 잘 알지만, 그래도 그때와는 다르게 A반이 아닌 D반에서 이루어지는 거라 낯선 기분이 들었다.
‘최대한 튀지 말고 조용히 내 할 일만 하자.’
솔직히 한수호는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미 배운 것들이고, 그것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했기에 모든 것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되어 있었다.
한수호가 아카데미를 다니는 이유는,
첫째, 튜토리얼을 통한 강제 각성으로 정식 마공사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큰 제재 없이 최대 5급까지의 게이트를 드나들 수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조기 졸업을 통해 최대한 빨리 특무부 고위 요원이 되어 재앙급 게이트와 악몽급 게이트를 막아내는 것. 그것이 아카데미를 다녀야 하는 중요한 이유였다.
* *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수호가 속한 클래스는 1학년 D반.
수업은 계단식 강의실에서 이루어졌다.
200명의 학생
그들은 D반에 배정되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첫 수업부터 기운이 쭉 빠진 모습이었다.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는 서로 서먹한지 2미터 이상씩 뚝 떨어져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드르륵
강의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안에 들어섰다.
노인.
최소 70세 정도는 될 것 같은 주름살 가득한 노인이었다.
뒷짐을 진 채, 단상에 오른 그는 나른해 보이는 눈으로 학생들을 쭈욱 훑었다.
그러다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쯧. 올해도 D반은 여지없이 떨거지만 모였구나.”
작지만 강의실 전체로 울려 퍼지는 음성.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다가 하나둘 노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네 녀석들한테 선택의 기회를 주마.”
뜬금없는 말에 웅성거림은 잦아들었고, 딴청을 부리는 학생은 더 이상 없었다.
노인의 음성은 보기와는 달리 카랑카랑하지 않고 꽤나 힘 있고 무게감도 느껴졌다.
“내 말을 믿고 성실하게 학업에 열중한다면 반년 안에 C반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겠다. 허나, 내 말을 믿고 싶지 않다면 대충 시간만 때우면서 5년을 낭비해서 보잘것없는 현장 정리 요원으로 살아가려무나. 그러니 스스로 선택하여라.”
학생들의 자존심을 건드는 말.
이에 어떤 학생이 납득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상위의 마공가문에서 어려서부터 강력한 마나공법과 각종 기술을 익혀온 상급반 녀석들은 저희와 시작점부터가 다릅니다. 그런데 나이 든 교수님의 학업만으로 놈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어디 보자…. 네 녀석은 여수에 있는 본국궁가의 후예로구나. 이름은 박영탁. 끄응…. 그래도 본국궁가면 대한 100대 마공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터인데, 어찌 그리 맹한 소릴 하는 게냐?”
노인은 단상 위에 설치된 태블릿으로 학생의 신원을 바로 확인했다.
“그래 봐야 100대 가문의 말석일 뿐입니다. 교수님이 아카데미의 모든 교수진을 통틀어 나이가 가장 많아 곧 퇴임을 앞두고 있듯이 말이죠.”
상당히 버릇없는 말투.
박영탁은 자신의 가문이 100대 가문의 하나라는 걸 이 자리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노인은 뒤쪽의 커다란 칠판에 손바닥만 한 원을 그렸다. 그리고 박영탁을 바라봤다.
“본국궁가의 특기는 곡사라고 들었다. 네가 그곳의 후예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내 뒤에 있는 원에 화살을 꽂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노인은 박영탁에게 곡사를 써서 자신과 일직선상에 놓인 칠판의 원을 맞춰보라고 요구했다.
움찔한 박영탁은 괜한 헛기침을 하고는 변명을 둘러댔다.
“어렵진 않지만 지금은 활도, 화살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옛다.”
노인이 손을 펼쳐내자 박영탁 앞 책상에 거울같이 생긴 원형판이 형성되더니 평범해 보이는 대궁과 화살통이 스윽 솟아올랐다.
얼결에 그걸 손에 쥔 박영탁. 주변 시선이 온통 자신을 향해 쏠리자 머뭇거리다가 결국 활을 겨눴다.
그와 칠판의 원까지의 거리는 불과 10미터 정도.
그냥 화살을 쏘는 거면 너무도 쉽겠지만, 그 직선상에 노인이 서 있었다.
이 짧은 거리에서 그 노인을 다치지 않게 하여 원을 맞추는 건 박영탁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위를 당긴 채 몇 초간 겨누기만 하던 그는 결국 활을 탁 내려놨다.
“이 활은 제 손에 익지도 않을뿐더러, 수업 첫날부터 교수님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수업이나 진행하시죠?”
“허어…. 잔망스러운 놈이로구나. 못 하면 못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을 꼭 그리 구차한 변명을 해야겠느냐?”
“못 하다니요! 할 수 있지만 안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는, 교수님은 그 대단하신 실력으로 마나탄을 몇 개나 만드실 수 있습니까? 세 개? 다섯 개? 교수님이 이 강의실에 있는 학생 숫자만큼 마나탄을 만들어 낼 정도로 강한 실력자라는 걸 증명해 보인다면 대든 것에 대해 사죄를 드리도록 하지요. 하지만 그 정도도 못 하실 거면 잔소리 마시고 할 거나 하자 이겁니다.”
박영탁은 나이 든 교수가 D반을 맡은 것이 불만이었다.
다른 유명한 교수들도 많은데 하필 이 나이 든 노인이 담당 교수라니.
지평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노인은 1세대 마공사에 해당하는 인물로, 거의 최초라 볼 수 있는 각성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오래전에 막을 내렸다.
지금은 아카데미에서도 이름뿐인 교수로 하릴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노쇠한 마공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나이 들고, 나태하며, 게으른 교수 지평학.
이것이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였다.
‘쳇! 저따위 노인네한테 뭘 더 배우라는 건지.’
박영탁은 자신이 D반에 속했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었지만, 이왕 D반으로 배정된 이상 여기서 탑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첫날 등장한 담당 교수가 나이 든 지평학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완전히 바닥을 때렸다.
“너희들 숫자만큼 마나탄을 만들어 봐라? 어린 녀석이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모르는구나. 뭐, 그것도 좋지. 대신 이렇게 하자꾸나. 내가 200개의 마나탄을 만들어 쏘아낼 테니 그걸 피해 보거라. 피해내는 녀석은 C반으로 반을 옮겨주도록 하지.”
그 말에 학생들이 놀라워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지평학 교수가 67세의 나이에 비해선 정정하다지만 200개의 마나탄을 한 번에 만들고, 그걸 모두 컨트롤해서 목표를 정확히 맞춘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마나력 컨트롤이 뛰어난 진급 마공사들도 쉽게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해보겠습니다!”
“약속 꼭 지켜야 합니다!”
“피하기만 하는 거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해보겠다며 소리쳤다.
“피하지 못하는 녀석은 앞으로 내 수업에 대해선 단 한마디 불평도 허락하지 않겠다. 만약 불평을 한다거나, 수업을 거부하면 퇴학 조치를 내리겠다. 그래도 좋으냐?”
엷은 미소를 그리며 하는 말에 학생들은 그러겠노라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사 교수가 성공하더라도 수업에 불평불만을 내지 않는 건 어려울 게 없었으니까.
“좋아. 그럼 시작하지.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준비하거라.”
지평학은 단상에 꼿꼿이 서서 학생들을 향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학생들은 그 손에서 곧 방출될 마나탄을 상상하며 언제든 피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푸슛
지평학이 활짝 펼친 손바닥에서 손톱만 한 크기의 푸른 구슬 하나가 튀어나왔다.
마나탄.
마공사들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기술이다.
수련급 마공사라고 해도 두 개까지는 얼마든지 쏘아낼 수 있지만, 지닌바 위력이 크지 않아 효용성이 거의 없는 기술이기도 하다.
만들어 낼 수 있는 숫자가 늘어나면 도주 방지나 위기 탈출 같은 상황에 적절히 사용이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20개 이상의 마나탄을 형성시킬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평학은 단 하나의 마나탄만 만들어냈다.
그 상황에 학생들의 얼굴에 조소가 그려졌다.
겨우 하나? 고작 이거야?
소리만 나지 않을 뿐 대부분이 비웃음을 흘렸다. 바로 그때,
팡
마나탄이 학생들을 향해 튕기듯 튀어 나갔다.
단숨에 가장 중심에 있던 학생의 코앞까지 날아갔고 어? 하며 놀란 학생이 피하려고 한 순간,
파바바바바바바바바방-
마나탄이 분신술을 부리듯 흔들리더니 사방으로 쫙 흩뿌려졌다.
도합 200개의 마나탄이 모든 학생의 코앞에 나타났다.
입에 걸린 비웃음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그들의 이마로 200개의 마나탄이 거의 동시에 때려 박혔다.
“악!”
“억!”
“으앗!”
이걸 피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마나탄이 흩뿌려지고 이마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을 때, 가볍게 고개를 기울인 것만으로 마나탄을 피해낸 세 사람.
앉은키가 작고 덩치도 작지만 눈빛만은 무겁게 가라앉은 마른 남학생 하나와 다소 덩치가 커 보이는 근육질의 여학생 하나.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매우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던 후드티를 꾹 눌러쓴 한수호.
이렇게 세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