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35화 (35/375)

35화

을지로 3가.

서울에서도 중심가에 속하는 을지로에 많은 아카데미 학생들이 등장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을지로는 여전히 유동 인구가 많고, 놀거리와 먹거리가 즐비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것에는 일체의 관심도 두지 않고 을지로3가의 구석진 골목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에 생뚱맞게 군 초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고압의 철조망과 국방색 천막으로 안을 볼 수 없게 위장한 장소.

그곳엔 학생들 말고도 여러 마공사들이 함께 자리했다.

최소 특급 이상의 마공 교수 8명이 지평학 교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리고 9시 정각이 되었을 때,

“자, 학생들 모두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출석 확인하고 바로 게이트로 진입하겠습니다.”

단발머리에 간편한 의사 가운을 걸친 여인이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윤미라라는 이름의 여인은 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었는데, 허리에 길고 얇은 레이피어를 차고 있는 모습이 뭔가 아이러니하면서도 상당히 어울렸다.

“이름 부를 테니 대답만 해요. 김윤후 학생?”

“네. 여기요.”

“김세라 학생?”

“저요!”

그렇게 호명이 시작됐고 200명의 학생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이곳에 와 있음이 확인됐다.

“교수님. 출석 확인 끝났습니다. 올해는 중도 포기자가 없네요.”

“수고했네.”

드디어 지평학이 나섰다.

그는 학생들 앞으로 나서더니 몇 마디 주의를 전달했다.

“이곳이 아무리 9급 게이트라고는 해도 엄연히 지구와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건 잊지 말거라. 개인행동은 즉결 처분 대상이 될 것이고, 소란을 피우는 것 또한 불허한다. 그 외의 자잘한 주의사항은 모두 숙지하고 있겠지?”

“네!”

“오늘, 너희들 모두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수 있기를 기원해 주마.”

다소 무거워진 표정이 된 지평학은 긴장감에 굳어버린 학생들을 독려했다.

잠시 후, 지평학은 가장 앞서서 게이트 방위초소에 들어섰다.

무서운 얼굴로 학생들을 살피는 군인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자 얼마 안 있어 거울처럼 생긴 게이트가 나타났다.

한수호는 삼척 게이트 때와 똑같이 게이트를 향해 거치되어 있는 온갖 중화기를 보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게이트 폭주로 웨이브가 시작되면 저런 중화기는 별 효용이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

인간이 상대라면 끔찍한 살상 무기가 되겠지만 몬스터를 상대로는 방해물 정도밖에 안 된다.

물론 고블린이나 코볼트 같은 약체 몬스터에겐 작은 권총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덩치가 커지면 총은 아예 통하질 않게 되고, 수류탄이나 기관총도 상처밖에 줄 수 없게 된다.

만약 세상에 마공사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지구는 진작에 몬스터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면 핵폭탄을 사용해 공멸했거나.

한수호가 짧게 이런 감상을 하고 있을 때, 학생들과 교수진들이 게이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수호도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거리낌 없이 게이트에 발을 내디뎠다.

* * *

드디어 튜토리얼이 시작되었다.

8명의 마공 교수가 각자 한 명씩을 맡아 게이트 안쪽 주둔 부대의 철책 방어선 너머로 길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일어났다.

숲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여기저기서 폭음이 터졌다.

몬스터들의 비명과 괴성이 뒤섞인 소리에 차례를 기다리던 학생들의 얼굴에 두려운 빛이 떠올랐다.

“다들 너무 두려워할 거 없다. 과욕만 부리지 않는다면 사고가 생길 확률은 극히 적으니까.”

지평학이 말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어깨를 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어제 수업 종료 시에 모두에게 주어진 각서에 싸인을 해야 했다.

튜토리얼 중에 어떤 불상사가 발생하더라도 절대 아카데미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는 각서.

이 각서는 이미 모든 학생의 부모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었으며, 부모들은 자식의 튜토리얼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기다리는 학생들 앞에 설치된 전광판에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김세라. 튜토리얼 통과. 각성을 축하드립니다.]

[나재균. 튜토리얼 실패. 각성을 포기하였습니다.]

[박현종. 튜토리얼 실패. 각성을 포기하였습니다.]

….

….

….

시간 차로 총 8명의 튜토리얼 결과가 차례대로 나왔다.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튜토리얼 통과자가 단 둘뿐이다.

8명 중 2명. 30%에도 못 미치는 성공률이다.

‘오늘 최소 150명은 마공사 클래스에서 쫓겨난다는 소리지. 몇 명은 죽게 될 거고.’

튜토리얼에 실패한 학생들은 전문 마공사가 될 수는 없지만 그대로 아카데미에 남아 기본 등급으로서 다양한 직군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된다.

다만, 특성을 얻은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반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다소 냉정하지만 그것이 아카데미의 전통이고, 룰이다.

잠시 후, 튜토리얼에 나섰던 학생들이 되돌아왔다.

특성을 얻은 두 명은 완전 신이 나서 활짝 웃고 있었지만, 다른 6명은 몸에 난 상처도 그냥 둔 채 축 늘어진 모습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부상당한 학생들을 부탁하네.”

지평학이 윤미라에게 말하자 그녀는 부상당한 학생들을 대형 막사로 데리고 갔다.

“자, 다음 도전자들 나서거라.”

그렇게 두 번째 튜토리얼 도전자들이 마공교수들과 함께 철책 밖의 숲으로 향했다.

200명이 튜토리얼을 수행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첫 도전을 시작으로 무려 12시간이 지나서야 한수호의 차례가 돌아왔다.

“드디어 마지막 조 로구나. 후우우…. 너희들은 모쪼록 무사하길 바라마.”

지평학의 표정이 많이 무거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조 이후부터 계속해서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

사망자가 20%나 된다고 하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예년에 비해 출발이 좋아 다소 안심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공교수들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치명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192명이 튜토리얼을 치렀고, 그중 18명이 죽었다.

32명의 사망자가 나온 작년에 비해서야 다소 나은 결과라고는 하지만, 중상을 입고 급히 게이트 밖으로 호송된 인원이 10명이나 된다는 걸 감안하면 그다지 나을 것도 없었다.

한수호는 자신에게 배정된 마공 교수에게 다가갔다.

훤칠한 키에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사내.

그는 한참 전부터 묘한 눈빛으로 한수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장태산 학생?”

“네. 제가 장태산입니다.”

“듣자 하니 네가 지 교수님 마나탄을 피했다면서?”

“운이 좋았죠, 뭐.”

한수호는 이 마공 교수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번들거리는 눈빛도 그렇고, 그 눈빛을 보고 있자니 뭔가 껄끄러운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평균 수치 65라. 이 정도면 A반 담당으로 배정돼야 하는데 왜 D반으로 온 걸까?’

A반 담당 교수가 되어도 충분한 스펙을 가지고서 D반에 왔다?

어떤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

“운도 실력이지. 오늘은 나도 운이 좋구나. 내가 맡은 학생 중에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웃으며 하는 말인데 이상하게 섬뜩하다.

마치 영화에서 자주 보던 뻔한 클리셰 같은 느낌이었다.

‘저런 말 하면 꼭 누가 죽던데.’

한수호는 마공 교수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 평소엔 잘 확인하지 않는 2단계 신체 수치까지 확인했다.

‘심장이 1밖에 안 되네?”

한수호의 신체 내적인 부위의 수치는 모두 6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 진급 마공사 정도면 4 정도고 특급은 3, 평급은 2 수준이다.

그런데 특급에 해당하는 이 마공 교수는 심장만 유독 약한 건지 불과 1밖에 안 된다.

그렇다고 다른 부위가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다.

‘귀신이라도 마주하면 놀라서 심장마비로 죽을 사람이네.’

그런 생각에 한수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를 본 마공 교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상황이 재밌나 보구나?”

“아, 아니요. 그냥 혼자 다른 생각을 좀 했어요. 저희도 이제 가볼까요?”

다른 학생들은 벌써 튜토리얼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난 성유준이다. 힘에 부치면 언제든지 날 부르거라. 반드시 널 구해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철책을 넘어 들판을 가로질렀고, 곧 울창한 숲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곳곳에 몬스터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지금까지 다른 학생들이 튜토리얼을 치르며 처리한 몬스터들이었다.

이 몬스터 시체들은 튜토리얼이 끝나면 주둔 부대 군인들에 의해 모두 수거되며, 심장은 마나코어로 정제된다. 그리고 담당 교수와 학생의 몸에 부착된 보디캠을 판독하여 몬스터를 해치운 학생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체 중에 의외의 몬스터가 보였다.

대부분은 코볼트였지만, 간혹 라이칸이 보이기도 했다.

“코볼트보다는 조금 까다롭지만 다행히도 떼로 몰려들지는 않으니 안심해라.”

한수호가 라이칸을 주의 깊게 살피자 성유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한수호가 보고 있는 건 라이칸이 아니라 라이칸을 죽게 만든 상처였다.

뭔가에 목이 반쯤 잘려 나간 채로 죽어 있었는데, 잘린 상처가 두 줄이었다.

검에 베인 거면 한순간에 두 번의 칼질이 있었다는 말인데, 그런 기술을 사용하는 학생은 D반에 없었다.

그렇다고 칼날이 두 개인 무기에 당한 것도 아니다. 미세하지만 두 상처는 아주 짧은 시간차를 두고 라이칸의 목을 벤 것이다.

한수호는 이런 상처를 회귀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황도13궁의 잔당을 소탕할 때 만났던 악인 중 하나가 사용했던 무기가 바로 이것과 똑같은 상처를 만들어 냈다.

‘부메랑이야.’

양쪽 날개에 칼날이 장착된 부메랑이 엄청난 회전을 하며 목표를 베어낼 때, 이런 이중의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학생 중 부메랑을 사용하는 인물 또한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마공 교수 성유준이 특정 학생의 튜토리얼을 돕기 위해 직접 나섰다는 걸 의미한다.

‘그랬군. 저 실력을 가지고도 D반에 온 이유가 이거였어.’

한수호는 성유준이 왜 D반의 마공 교수를 맡고 있는지 바로 이해했다.

뒷돈.

특정 학생의 각성을 몰래 돕는 대신 거액을 보상으로 받기로 한 것이 틀림없었다.

“시간 없으니까 바로 시작할까?”

성유준이 품에서 보석 하나를 꺼냈다.

붉은색의 작은 각성석.

이제 저걸 먹고 튜토리얼을 수행하면 강제 각성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수호에겐 다른 계획이 있었다.

붉은 각성석을 받은 한수호는 그걸 입에 털어 넣으며 몇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러다,

“어?”

고개를 획 돌리며 성유준의 뒤쪽을 노려봤다.

“뭔데?”

성유준이 덩달아 고개를 돌린 사이, 한수호는 붉은 각성석을 재빨리 숨기고 대신 미리 준비한 노란 각성석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노란빛의 각성석.

그건 삼척 게이트의 모블린의 몸에서 구한 특별한 각성석이었다.

“뭘 보고 놀란 거지?”

성유준이 다시 한수호를 바라봤을 때, 그는 이미 노란 각성석을 꿀꺽 삼킨 뒤였다.

“아무것도 없네요. 제가 너무 민감해졌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각성석은…. 잘 삼킨 거지?”

“네. 그럼 이제 곧 몬스터들이 들이닥치겠네요?”

“그래. 준비하거라. 난 몸을 숨기고 있으마. 무리하지 말고 위험하면 날 불러라. 각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니 현명하게 판단하기 바란다.”

틀에 박힌 조언을 남기고 성유준이 스르륵 사라졌다.

한수호는 성유준이 사라진 곳을 잠시 바라보다가 목을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어디 제대로 한번 난장을 까 볼까나?’

한수호가 먹은 각성석은 노란색이다.

암시장에 팔면 무려 10억 이상으로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

하지만 이 각성석을 강제 각성 튜토리얼에 사용하면 더 큰 효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각성만 한다면 최소 특급에 해당하는 특성을 얻을 수 있으며, 특성의 종류 또한 근접 마법형으로 확정이 가능했다.

한수호는 이번 강제 각성에 불 속성이나 얼음 속성의 마법형 특성을 반드시 얻어야 했다.

라뮬과 그랑의 특수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를 위해 이틀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마법형 특성의 획득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각성석까지 바꿔서 복용했다.

이제 9급 게이트에서는 보기 힘든 튜토리얼이 시작될 것이다.

코볼트는 물론 라이칸까지 떼로 등장할 것이며, 어쩌면 헬하운드나 홉고블린이 등장할 정도로 난이도가 상승할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그 정도 몬스터들로 내가 각성할 수 있을까?’

각성할 수 있는 조건은 단 두 가지.

첫째는 각성석을 섭취한 상태에서 밀어닥치는 몬스터들과 한계에 다다른 전투를 벌이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과 급이 다른 몬스터의 심장을 파괴하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조건은 한수호에게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의 한수호와 급이 다른 상대라면 적어도 켈베로스급의 몬스터가 출현한다거나 궁급의 끝자락에 서 있는 강한 마공사가 적으로 등장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첫 번째 조건마저도 쉽지 않다.

한수호가 한계에 달한 전투를 벌이려면 최소 오크급 몬스터가 수백 마리는 몰려들어야 했다.

‘오는 족족 다 때려잡다 보면 뭔가 방법이 나오겠지.’

그런 한수호에게 잡생각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듯 튜토리얼이 바로 시작되었다.

쏴아아아아아

바람도 불지 않는데 숲이 마구 흔들렸다.

마치 높은 해일이 숲을 뒤덮는 것 같은 섬뜩한 소리에 한수호는 살짝 긴장했다.

‘뭐지? 이건 코볼트나 라이칸 따위가 아닌데?’

그렇다고 묵직한 소음을 내는 오크도 아니다.

엄청난 숫자의 뭔가가 숲을 뒤덮으며 한수호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한수호는 그 방향으로 시선을 집중했고, 그것의 존재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해일처럼 밀어닥치고 있는 그것은 검은 안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쉐도우.

다른 말로는 검은 유령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몬스터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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