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이게…. 이게 말이 되냐고요!”
성지희는 아카데미 학장실에서 분노를 터트렸다.
그녀에겐 너무도 사랑스러운 동생이 그깟 튜토리얼 중에 죽음을 맞이하다니.
얼마 안 있으면 특급을 넘어 진급으로 오를 거라며 기뻐하던 성유준의 얼굴을 떠올리자 더욱더 가슴이 미어졌다.
“누구예요? 누가 내 동생을 그렇게 만든 거죠!”
성지희는 지평학과 다른 교수들이 잔뜩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성유준의 죽음을 가장 먼저 확인한 윤미라가 입을 열었다.
“여사님.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성 교수님은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앓고 있던 심장 질환이 갑자기 발작해서 돌아가신 거예요.”
“심장 질환? 그렇게나 건강했던 내 동생한테 무슨 심장 질환이 있다는 거죠? 뭐, 좋아요. 심장 질환이 있었다 치죠. 하지만 그런 게 갑자기 발작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성 교수님은 한 학생의 튜토리얼에 끼어들었다가 큰 부상을 입었어요. 그로 인해 심장 질환이 발작을 일으킨 거고요.”
“이제야 제대로 된 답이 나왔네요. 대체 어떤 학생이 우리 유준이를 꼬셔서 튜토리얼에 끼어들게 만든 거죠? 돈이 얼마나 많은 녀석이길래!”
성지희는 모든 걸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상식적인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윤미라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지평학이 침묵을 깼다.
“마공대 학장으로서 한 말씀 드리겠소.”
“그래, 어디 그 잘난 학장님께서 제 동생의 죽음을 어떻게 처리하실지 말씀해 보시죠.”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이 사건을 마무리 짓길 권유드리오.”
“뭐라고요? 분란? 내가 지금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이에요?”
성지희는 일반인이지만, 그녀의 배경은 무시무시하다.
친정은 웬만한 마공 가문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재력을 지녔고, 그녀의 남편은 이름 있는 마공 가문의 가주였다.
게다가 그녀가 아카데미에 매년 기부하는 액수도 보통이 아니었으니, 이런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성 교수의 명예라도 지키길 원한다면 이쯤에서 그만두셔야 할 것이오.”
“사람이 이미 죽었는데, 명예가 무슨 소용인가요? 학장님까지 그렇게 나오신다면, 좋아요. 정의국에 정식으로 사건을 의뢰하고, 내가 직접 진실을 파헤치겠어요!”
“후…. 할 수 없군요. 이걸 한번 보시구려.”
지평학은 의자 손잡이에 부착된 패널을 조작했다.
그러자 탁자 중앙으로 3D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그 영상은 이틀 전, 튜토리얼이 진행되는 내내 성유준의 몸에 부착되어 있던 보디캠이 촬영한 것이었다.
영상 앞부분은 아카데미 학생들의 튜토리얼을 지켜보는 내용이었는데, 몇몇 장면에서 영상이 잘린 것처럼 끊기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별것 아니었지만 이후 나오는 영상은 놀라웠다.
장태산이라는 학생과 대화를 하고, 그 학생의 튜토리얼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상이 뚝 끊겼다. 그리고 이어진 영상에서 성유준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성유준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나, 난 조카…. 박창수의 복수를 위해 장태산 학생을 위험에 빠뜨리려고 했다. 튜토리얼 조 편성을 조작하고, 뒷돈을 받아 몇몇 학생의 튜토리얼을 도왔다. 그리고 장태산 학생을 튜토리얼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난이도를 급상승시켰다. 내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음을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밝힌다!
지평학은 거기서 영상을 멈췄다.
“이게 진실입니다. 성 교수는 마공사로서 금지된 규칙을 어겼고, 그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지요.”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진실은 항상 혹독한 법입니다. 여사께서는 이 영상이 세상에 퍼지는 걸 원하는 것이오?”
성지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 영상이 퍼지면 그녀와 그녀의 집안도 타격이 크다.
아무리 재력가 집안이고, 이름난 마공 가문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학생들의 튜토리얼에 장난질을 치는 일은 최악의 범죄로 치부되기 때문에 용서받기 힘들다.
“성 교수의 죽음은 저희도 안타깝소. 하지만 이쯤에서 그만하는 것이 여사님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오.”
“….”
성지희는 더 따지지는 못 했지만 여전히 분한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잠시 후, 성지희는 성유준의 사고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조용히 돌아갔다.
교수들도 모두 성 교수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았는지 불편한 얼굴이 되어 학장실을 벗어났다.
남은 사람은 지평학과 윤미라뿐이었다.
“교수님. 장태산 학생 몸에 달았던 보디캠 영상은 복구가 아예 불가능한가요? 그걸 보면 좀 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을 텐데….”
“엄청난 열기에 장비가 아예 녹아버렸다네. 자네도 봤지 않은가? 태양 빛처럼 불타오르던 그 찬란한 빛을 말이야.”
“봤죠…. 그런데 그 빛을 만들어낸 게 장태산 학생이 정말 맞을까요? 혹시라도 다른 제삼자의 인물이 있었던 건….”
윤미라는 장태산이라는 학생이 그런 엄청난 빛을 뿜어낼 정도로 강하다는 걸 쉽게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제 확인된 장태산의 마나량은 67로 분명 평급 수준이었다.
마나 측정기로 확인된 결과였으니 이건 틀림없는 사실일 터.
아무리 장태산이 운이 좋았다고 해도 사이클롭스를 혼자서 쓰러뜨렸다는 건 왠지 모르게 미심쩍었다.
“제삼자가 있었다면 우리가 모를 리 없지. 게이트 출입 명단에도 다른 사람은 없었네.”
“그럼 정말 장태산 학생이 성유준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거잖아요.”
윤미라는 지금 멈춰진 영상의 뒷부분을 지평학과 함께 이미 봤다.
자신을 위험에 빠트린 성유준을 그대로 두고 사이클롭스를 상대하기 위해 나서는 장태산.
그런 장태산을 향해 성유준은 등 뒤에서 암습을 가했다.
너무도 명백하게 장태산을 죽이기 위한 공격이었지만 되려 그 공격에 자신의 팔이 잘리고 말았다.
그 뒤로 사이클롭스의 몽둥이에 맞아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성유준과 이미 기회를 줬다며 매몰차게 거절하는 장태산의 모습이 모두 영상에 담겨 있었다.
“성유준은 마공사로서 명예를 저버린 파렴치한이네. 장태산이 직접 손을 쓰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내를 보인 것이고.”
“하긴…. 저라도 그 상황에 처했으면 참지 못하고 상대를 죽였을 것 같긴 해요.”
“이 영상 파일은 내가 보관하지. 만약 성유준 집안에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고 한다면 영상을 공개할 수밖에.”
“대놓고 이상한 짓을 하진 못할 거에요. 지 교수님이…. 아니, 학장님께서 직접 그만하자고 제안하셨는데 설마요.”
“윤 교수는 아직 세상을 오래 살지 않아 잘 모를 것이네. 많이 가진 자일수록 자신이 가진 권위에 약간의 흠집만 나는 것조차도 잘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런…. 가요?”
윤미라는 씁쓸하게 웃으며 공포에 벌벌 떠는 성유준의 영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장태산, 그 녀석은 지금 뭘 하고 있나?”
“기숙사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있어요. 아무래도 성 교수의 죽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에요.”
“과연, 그럴까? 허허허.”
지평학은 끝말에 의문부호를 찍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사이클롭스의 사체 위에 앉아 각성석으로 장난을 치고 있던 장태산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교수들이 나타나고, 성유준이 숨을 거두자 장태산은 바로 각성석을 지평학에게 내밀었다.
자신이 각성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아카데미에 감사의 의미로 반값에 각성석을 팔겠노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초록빛의 각성석은 아카데미에서 20억에 거래가 가능했다. 하지만 아카데미 바깥에서는 30억을 호가하는 굉장한 값어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그걸 달랑 10억만 받고 아카데미에 넘기겠다고 하니 배포가 보통 큰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평학은 그 이면에 담긴 장태산의 의도가 무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성유준이 죽은 일로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아 달라는 정중한 부탁.
그가 직접 손을 쓴 건 아니지만, 성유준의 배경이 상당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후에 생길 문젯거릴 차단하고자 미리 손을 쓰는 것이다.
그 의도는 제대로 먹혔다.
각성석 덕분에 시가로 20억이나 이득을 본 아카데미에서는 장태산에게 그 어떤 불이익도 돌아가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해 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일 년에 한 차례, 입학 시즌에만 아카데미에 1, 2억을 기부하는 갑부들보다 한방에 20억의 이득을 안겨준 장태산이 더 큰 VIP로 대우받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시작부터 2단계의 평급 특성을 각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를 B반으로 옮겨야 한다는 중론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건 지평학 선에서 잘라냈다.
그는 장태산을 가까이에 두고 좀 더 지켜보고 싶었다.
‘사이클롭스를 한방에 때려잡을 정도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녀석이 고작 평급 마나량을 지녔다는 것도 너무 이상하고….’
그가 보기에 장태산의 마나량은 최소 특급이다.
그런데 어제 장태산의 각성 후 등급 확인을 위해 측정기를 사용했을 땐 67이 나왔으니 평급 중반 수준임에 틀림이 없었다.
장태산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 그가 각성한 특성 또한 평급이었고, 특성 이름은 ‘열화기’란다.
이로써 장태산은 평급(중)이라는 등급이 박힌 마공사 라이선스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불과 얼음 속성의 특성을 얻어내겠다더니 정말로 얻어냈어.’
얼음까진 아니지만 불에 관련된 특성을 얻었으니, 이 또한 놀라운 일.
지평학이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자 윤미라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 학장실을 벗어났다.
그녀가 떠나자 지평학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지혁아.”
지평학이 누군가를 불렀고,
스슥
아무도 없던 학장실 구석에 조금 마른 듯한 젊은 사내가 홀연히 나타났다.
“네, 스승님.”
“당분간 내 호위는 사형에게 맡기고 넌 아카데미 학생 신분에 충실하도록 해라.”
“하지만, 스승님! 황도13궁과 새한교에서 스승님을 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괜찮다. 너보다는 못해도, 네 사형 또한 진급 마공사이니라. 게다가 놈들이 내 정체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그러니 넌 걱정 말고 학업에 열중하거라. 특히, 장태산.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도록.”
사내는 한수호와 같은 D반의 최지혁이었다.
“장태산…. 말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난 나대로 녀석에 대한 정보를 캐 볼 테니, 너도 녀석과 어떡하든 친분을 만들어 보거라.”
“황도13궁에서 심은 첩자라 여기시는 겁니까?”
“아니다. 녀석은 결코 그런 허접한 일을 할 인물이 아니야. 뭔가 다른 게 있다.”
“다른 거라면…?”
“어쩌면 향후 시작될 세계 멸망의 시나리오를 비틀어낼 중요한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
최지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아직은 내 예측일 뿐이다. 그러니….”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그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겠습니다.”
최지혁은 이 일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 네가 수고를 좀 해 주거라.”
지평학은 자애로운 미소를 그리며 최지혁을 바라봤다. 이에 최지혁은 고개를 꾸벅한 뒤 그 자리에서 지워지듯 사라졌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학장실 창문 하나가 살짝 들썩였다.
“허, 녀석도 참. 저리 융통성이 없어서야…. 멀쩡한 문은 놔두고 왜 창문으로 들락거리는 건지 원…. 쯧쯧쯧.”
지평학은 투덜거리면서도 아끼는 제자의 뛰어난 기술에 마음속으로 감탄하는 중이었다.
* * *
한수호는 연이어 울려 퍼진 알림 소리에 공법폰의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입을 씰룩거리고 있었다.
[김성태 님이 고객님의 계좌에 37,500,000원을 입금하였습니다.]
[서울 마공 아카데미에서 고객님의 계좌에 1,000,000,000원을 입금하였습니다.]
눈이 돌아갈 정도의 거액이 계좌에 들어찼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가의 50%라고 칼같이 10억만 입금했네.”
말은 그랬지만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껏 말려 올라간 입꼬리는 분명 미소를 그리고 있었으니까.
튜토리얼이 끝나고 이틀이 지났다.
금요일에 튜토리얼이 치러졌고, 토요일 일요일은 기숙사에 처박혀 꼼짝을 안 한 셈.
성유준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책감에 자숙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특별히 나댈 이유도 없었고, 이틀 동안의 일일 미션도 비교적 간단한 거라 체력단련실을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것뿐이다.
대신 기숙사 방에 머물면서 자신이 얻어낸 것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한수호가 얻은 특성은 얼음불.
지평학에게 말한 것처럼 ‘열화기’ 따위가 아니다.
[특성: 얼음불]
-음과 양의 기운을 마나력 한도 내에서 30분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성 단계: 4단계(4/5)
-4단계 효과: 이동속도를 30% 증가시키며, 사용자의 육체와 타인의 육체, 사물, 공간에 얼음불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쿨타임 10분
-5단계 업그레이드 포인트: 500,000LP
시작부터 4단계인 진급 특성이다.
게다가 이 특성은 한수호가 그토록 바라던 불과 얼음의 속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이로써 한수호가 지닌 특성은 세 개.
개조 특성과 광폭화 특성, 그리고 얼음불 특성.
세 가지 특성을 지닌 마공사는 지금껏 등장한 적이 없었다.
‘각성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각성했다.
어쩌면 성유준이 끼어들어 튜토리얼 난이도를 높여준 덕분일지도 모른다.
‘가면서 포인트까지 아낌없이 줬으니 고마워해야 하나?’
성유준의 심장에 벽력권을 사용했을 때, 어김없이 포인트가 들어왔다. 그것도 무려 5포인트나.
그 덕에 21.4 포인트가 쌓였고, 왼팔과 오른팔에 10포인트씩 분배해 60으로 스탯을 맞췄다.
이틀 전에 포인트를 분배하면서 느꼈던 그 뿌듯한 고양감을 떠올리니 지금도 심장이 요동친다.
‘좋은 일 하고 가셨으니 그쪽 집안에서 날 먼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나도 더는 신경 쓰지 않도록 하지요. 그러니 맘 편히 가시길.’
한수호는 뒤늦게나마 성유준의 명복을 빌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