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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48화 (48/375)

48화

이하윤은 방금 전 굳게 닫힌 문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장태산….’

낯선 침입자가 되레 화를 내고 떠나면서 남긴 이름이었다.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무단 침입으로 신고하겠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알려준 것이다.

머리는 며칠째 감지도 않았는지 까치가 집을 짓고 피떡이 되어 있었으며, 얼굴엔 검붉은 핏자국이 가득해 용모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기이하게 생긴 검을 등에 둘러매고 몸 곳곳에 가득한 상처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남자.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배지가 옷깃에 달려 있지 않았다면 벌써 경찰에 신고하고도 남았을 상황이었다.

‘내 얼굴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어….’

이하윤은 얼굴을 가렸던 수건을 내렸다. 그러자 드러나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흉했다.

코 아래의 얼굴 전체에 검버섯이 피어 피고름까지 흘려내고 있었다.

이건 그녀가 가진 독특한 특성 때문에 생긴 후유증이었다.

특성의 이름은 회생.

이 회생은 이하윤이 10살 때 우연히 마공 서고를 접하게 되면서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어 자연적으로 획득한 특성이었다.

이 특성은 본인을 포함한 타인의 상처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놀라운 효과를 지녔다.

하지만 치료의 대가가 너무도 컸다.

상처와 병을 치료하는 대가로 얼굴이 망가지는 치명적인 패널티를 지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하윤은 어려서부터 가족을 위해, 타인을 위해 회생 특성을 쓰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10살의 어린 나이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외모가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자연 각성을 한 덕에 17살의 나이로 아카데미 입학이 가능했지만, 자신의 외모를 남에게 보이는 게 두려웠기에 늘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그녀가 이렇게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기숙사 특별실을 사용하게 된 것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수호는 이 흉한 얼굴을 보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살짝 눈동자가 흔들린 것 같긴 하지만 금방 본래의 신색을 되찾았다.

오히려 수건으로 얼굴이 가려진 것에 아쉬워하는 반응도 보였다.

그 태도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의 이 얼굴을 마주한 사람은 비록 가족이라 해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못 볼 것을 본 듯 역겹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정도로 끔찍한 얼굴인데 한수호는 전혀 그렇질 않으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무슨 훈련을 했길래 그런 상처를 입고도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걸까?’

이하윤도 꽤 강도 높은 훈련을 스스로 해 왔기 때문에 크고 작은 부상을 적지 않게 경험했다.

그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한수호의 상처는 단순히 훈련으로 생긴 걸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자상의 깊이가 다 달랐어. 한두 가지 무기에 상처입은 게 아니야.’

십중팔구 실전을 치룬 것이다.

이하윤은 한수호가 실전을 치렀든, 훈련 중에 다친 것이든 상관없이 치료를 핑계로 특성을 이용해 상처를 회생시켜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얼굴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라 조금 더 망가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

‘나랑 같은 1학년이었지?’

한수호의 배지에 그려진 검과 창의 황금빛 술 장식은 하나뿐.

그렇다는 건 그가 1학년임을 의미했다.

‘B반이려나?’

그녀 자신이 A반이었으니 한수호는 다른 반임이 분명했다.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하윤은 난생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다시 만나길 희망하고 있었다.

* * *

한수호는 방으로 돌아가는 도중 친구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려고 통화를 시도해 봤지만 둘 다 연락이 불가능했다.

역사관이나 친구들 방으로 직접 찾아가 보려고 했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옷부터 갈아입기로 했다.

그래서 서둘러 자신의 진짜 방으로 돌아와 샤워실로 직행했다.

‘이하윤. 생김새하고 하는 짓이 영 딴판인데?’

간단히 샤워를 하며 이하윤에 대해 잠시 떠올렸다.

그처럼 예쁜 얼굴을 한 여자치고는 너무 착하다.

보통은 얼굴값을 한다고, 잘난 외모를 가진 사람일수록 성격도 보통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하윤의 성격은 수수했고, 이타심이 많았다.

가슴 스탯이 96이나 될 정도로 마나력이 높으면서도 전혀 강한 티를 내지 않았다.

‘최연소 입학생? 하, 내가 보기엔 올해 신입생 중 나 빼고는 최강일 것 같은데?’

다른 신체 수치가 다소 떨어지긴 해도 마나력이 높으면 그만큼 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회귀 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 이하윤.

어쩌면 한수호가 회귀하게 되면서 그녀의 운명에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가 죽어야 했을 이하윤을 살아 있게 만든 걸지도 몰랐다.

‘일단 다른 녀석들 상황부터 알아보자.’

샤워를 마친 한수호는 이하윤에 대한 생각을 접고 다시 최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삐리리리리

아까는 연결조차 안 되더니 지금은 된다. 벨이 한두 번 울렸을까? 상대가 덜컥 전화를 받았다.

-장태산?

“어. 나다. 아직 살아 있었네?”

퉁명한 목소리로 비꼬듯 말했지만 안도의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살긴 살았지. 근데 죽다 살아났다, 씨…. 그건 그거고. 양소혜는? 너 어디야?

“죽다 살아난 건 나도 마찬가지야. 양소혜가 어딨는지는 나도 모르지. 난 내 방에 있는 거고.”

-너도? 나도 방금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 좀비같은 오거 새끼한테 죽을 뻔했는데 갑자기 놈이 가루가 돼 사라지더라고. 그 뒤로 게이트가 생겨서 그걸 통과했더니 내 방이더군.

최지혁도 게이트를 통과해서 방으로 돌아온 모양.

그럼 양소혜나 최지혁의 스승도 같은 상황일 것이다.

“네 스승님이랑 사형은?”

-방금 스승님하고는 연락이 됐어. 그런데 사형은 연락이 안 된다.

역시 조정석을 제외하고는 무사한 것 같았다.

쉘턴 헷지가 죽어가면서 조정석에게 내린 명령은 무얼까?

어딘가로 보낸 것 같은데 그곳이 어디일지 알 수가 없었다.

-스승님이 그러는데, 사형은 그 검 때문에 누군가를 뒤쫓은 모양이다.

“검?”

조정석이 꼭 쥐고 있던 대검.

그 검에는 쉘턴 헷지의 라이프 베슬이 숨겨져 있었다.

-그 검…. 아마도 사형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가문에서 사라졌다는 보검일 거야. 그걸 가지고 있는 낯선 존재를 보고 눈이 돌아간 걸 테고.

“네 사형도 아카데미 학생이냐?”

-아니. 사형은 사설 경호대 대원이다.

“혹시 사형이 게이트를 통과했으면 어디에 있을지 예상되는 곳이라도 있….”

말을 하던 한수호는 통화 중에 다른 전화가 걸려 오자 발신자를 확인했다.

‘양소혜?’

이걸로 양소혜도 무사한 게 확인되었다.

-장태산! 왜 그러는데?

“양소혜 전화.”

-그래? 그럼 일단 받아. 방금 나한테도 전화 왔던 거 같은데…. 아무튼 난 사형이 있을 만한 곳으로 전화부터 돌려볼게.

최지혁과는 그렇게 전화를 끊고 양소혜의 전화를 받았다.

“살아 있어서 반갑다, 양소혜.”

한수호가 무심한듯 반가움이 담긴 말투로 말했을 때였다.

-야! 빨리 여기로 와봐! 여기 큰일 났다고!

양소혜가 다짜고짜 소리를 지른다.

“뭔 소리야? 어디로 오라고?”

-역사관! 최지혁이 사형으로 보이는 사람이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나타났다니까! 아, 씨. 왜 둘 다 전화를 안 받다가 이제야 받냐고!

그녀의 말에 한수호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역사관. 폭탄.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의미가 떠오른 것이다.

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16분.

회귀 전, 역사관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진 그 시간대였다.

‘젠장! 최지혁이 아니고 조정석이었어!’

폭탄 테러의 주체가 바꼈다.

원래는 최지혁이어야 했지만 한수호와 엮이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조정석이 희생양이 된 것 같았다.

급히 뛰쳐나가며 최지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중이다. 급한 대로 문자를 보냈다.

[네 사형. 역사관에 있다. 빨리!]

간단히 그렇게 보내고 서둘러 역사관으로 달려갔다.

역사관 바깥엔 꽤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그중엔 특무부 요원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역사관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중이었다.

한수호가 나타나자 양소혜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최지혁은?”

“곧 올 거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던전에서 해골 처치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갑자기 죄다 가루가 되더니 게이트가 ‘짠’하고 나타났지. 그 게이트를 통과하니까 역사관 지하였어. 근데 시발, 거기에 곰 같은 남자가 있더라고. 몸에 폭탄이 잔뜩 달린 조끼를 입고 커다란 검을 꼭 껴안은 채 말이야.”

“지금은 어딨어?”

“저기, 1층 로비에.”

양소혜가 가리킨 곳. 그곳은 역사관 입구였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그 너머에 거뭇한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시력을 돋우니 그 그림자의 모습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조정석!’

정말 그였다.

양소혜가 말한 그 모습 그대로. 왼손엔 버튼 같은 걸 쥐고 있었고, 오른손엔 대검을 소중한 듯 안아 들고 있었다.

표정은 던전에서 봤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뭔가에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

그는 안내 데스크 바로 앞에 서서 몸을 흔들대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수호는 그의 입술을 읽어 그대로 따라 했다.

“…할 뿐이다. 이는 신의 뜻이요, 그분이 세상에 내리는 징벌일지니. 오늘 내가 행하는 것이 방아쇠가 되어 세상은 종말의 길을 걷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우매한 인간들이여. 너희들의 그 우매함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하는 것임을 이제라도 깨닫길 바라는 바….”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양소혜가 한수호의 중얼거림을 듣고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최지혁이 때마침 당도했다.

“어디야? 사형 어디 있냐고?”

“잠깐…. 잠깐 기다려봐!”

한수호는 최지혁을 말리고 다시 조정석의 입술을 읽었다.

“…. 불타오르니. 나의 죽음으로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널리 알리겠노라.”

“한수호! 지금 그 말…?”

“네 사형이 계속 혼잣말을 하고 있어. 난 그걸 읽어내는 중이고.”

“저기 로비에 있는 사람이 정말 사형이야?”

최지혁은 거리가 있어서인지 정확히 알아보지 못했다.

“맞아. 네 사형.”

“그럼 여기서 지금 뭐 하는데? 내가 가겠다. 사형이 폭탄을 터트리기 전에 내가 구해낼 수 있….”

“기다려!”

한수호는 최지혁을 붙잡았고, 동시에 조정석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는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최지혁과 한수호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한 번 더 입을 달싹거렸다.

“미안하다. 지혁아. 죄송합니다. 스승님.”

한수호가 그 중얼거림마저 읽어냈을 때,

꾸욱

조정석이 버튼을 눌렀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총 3층으로 되어 있는 역사관이 통째로 날아갔다.

50여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 폭발의 충격파에 몸이 밀려날 정도.

“꺄아아아악!”

“사람 살려!”

“우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특무부 요원들과 아카데미 학생들은 마나력을 일으켜 충격파를 버텨내면서 역사관이 폭발하는 걸 멍하니 지켜봤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 마공 아카데미 본교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폭탄 테러.

누구도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에 누구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단, 한 명.

폭발의 충격파를 아무렇지 않게 버텨내며 그 폭발에 뒤섞인 대량의 마나력을 읽어낸 한수호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 * *

한수호는 김재우의 도움으로 폭발 현장에 직접 들어설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최지혁이 검 하나를 꼭 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완전히 무너져 폐허가 되어버린 역사관의 잔해 속에서 나온 건 조정석이 쥐고 있던 대검 하나뿐.

최지혁은 그 대검을 안아 들고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양소혜는 그런 최지혁의 등을 토닥여 주고 있었고.

“허. 아카데미에서 폭탄 테러라니…. 넌, 이걸 알고 있었던 거냐? 그래서 이 시간대에 사람들을 접근시키지 말라고 부탁한 거고?”

김재우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한수호를 바라봤다.

“제가 뭔 수로 이런 큰 사건이 벌어질 걸 압니까? 이 일을 벌인 범인이 아니고서야….”

“그러니까. 네가 범인이 아닌 이상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이 녀석아!”

“감이요. 어제부터 이 역사관 근처에서 불길한 기운이 맴돌더라고요.”

“뭐?”

김재우는 어이가 없는지 할 말을 잃었다.

“정말이에요.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기감이 발달해서인지는 저도 모르겠는데, 불길한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단 말입니다. 저번에 월미도 사건 때도 그랬고요.”

“그게 진짜라고?”

“나라고 그걸 느낄 수 있는 게 뭐 좋은 줄 압니까? 이거 굉장히 엿 같은 기분이라고요.”

“그래, 알았다. 알았으니까…. 후. 빨리 살펴보고 현장 떠라. 윗선에서 네가 현장 들쑤시는 거 알면 나까지 곤란해져.”

“네네. 잠깐만 확인하고 금방 갈 겁니다.”

한수호는 폭발 현장에서 느껴진 거대한 마나력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직접 이곳에 온 것이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이리저리 살피던 한수호. 그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저건…?’

그림 조각.

지하의 그 게이트를 숨기고 있었던 라뮬을 든 영웅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있다는 건 이곳이 게이트가 있었던 장소라는 뜻.

한수호는 그 주변을 훑으며 개조특성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뭔가가 걸려들었다.

[던전의 흔적]

-잔존 포인트: 1LP

-거대한 마나폭발로 던전이 발자크에게 잡아먹혔습니다.

-발자크가 힘을 얻어 봉인의 틈새를 벌리기 시작합니다.

>>틈새 간격: 5.8%

>>본인의 포인트를 사용해 틈새를 다시 봉합하겠습니까? YES/NO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마나 폭발과 발자크. 그리고 봉인의 틈새.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대충은 눈치챌 수 있었다.

쉘턴 헷지가 죽기 전에 했던 말들.

그리고 조정석 또한 자폭하기 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세상의 종말.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봉인의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했고, 그것을 벌리는 존재가 바로 발자크이리라.

‘시발…. 이걸 나 혼자만 볼 수 있는데 누가 믿겠냐고!’

한수호는 이런 정보들을 자신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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