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54화 (54/375)

54화

한수호는 거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벌써 3시간 동안이나 한 자세를 유지한 채였다.

한수호가 그런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건 호흡법 때문이었다.

9살로 회귀하게 되면서 스승 부부를 만났고, 그들에게서 독특한 호흡법 하나를 배웠다.

이름하여 청심법.

이 호흡법은 머리를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며, 혈액 순환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틈틈이 습관적으로 수련해 왔다.

아쉽게도 마나력을 상승시켜주는 호흡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나력은 오로지 끊임없는 마나의 사용과 마나 공법의 분석, 그리고 치열한 전투를 통해서만 조금씩 성장한다.

처음 이 호흡법을 배울 땐, 마나력 성장도 가능한 건 줄 알고 굉장히 기뻐했지만, 곧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 알고 크게 실망했었다.

그럼에도 이 호흡법을 꾸준히 수련해 온 건 복잡한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데 실제로 큰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후우우….”

길게 날숨을 내뱉은 한수호는 눈을 번쩍 떴다.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간단하게 씻고 잠들려고 하는데, 공법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김재우였다.

[장태산. 폰에 스티커 부착하는 거 까먹지 마라. 그거 부착 안 하면 정보를 주고 싶어도 못 줘. 아직 안 했으면 얼른 해. 내일 당장 정보가 전달될 수도 있으니까.]

‘성격 급한 건 여전하네.’

한수호는 알겠다고 짧게 답장을 보내고는 챙겨 둔 해킹 방지용 스티커를 꺼냈다.

지름 50밀리 정도의 반짝이는 스티커는 공법폰 어디가 됐든 부착만 시켜놓으면 알아서 잘 작동한다.

‘얼마나 사람을 못 믿으면 특무부 요원용 스티커까지 빼 왔을까?’

그러고 보니 회귀 전의 김재우도 같은 특무부 요원들에게조차 신뢰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의심이 많던 양반이 게이트 안에서 혼자서만 죽었다라….’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 게 아니다.

김재우는 진급 끝자락까지 도달한 마공사로 웬만한 기습에는 치명상을 입을 리가 없다.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가 급습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고.

‘재우 형이 완전히 방심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

김재우를 방심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그 안에 들어가는 인물은 얼마 없다.

게다가 김재우가 죽은 게이트 작전에는 그럴 만한 인물이 아예 끼어 있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특무부도 크게 믿을만한 기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유대룡이 최고 명령권자로서 조직을 단속하고 있다 해도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요원이 다 올바른 인물일 수는 없는 법.

‘그 안에도 얼마든지 배신자가 나올 수 있지. 이대성처럼.’

이대성을 떠올리자 그를 도와 자신을 죽이려 했던 특무부 요원들의 면면도 함께 떠올랐다.

총 다섯 명이었다.

다들 특무부에서 일한 지 5년 이상이 되는 베테랑들이었고, 한수호와는 별다른 접점도 없는 무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대성의 유혹에 넘어가 한수호를 죽이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들도 현재는 아카데미의 고학년 학생들이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최철중을 빼면 말이다.

원래는 그들까지 일일이 찾아내 죽일까 했지만 이대성을 죽인 시점에서 그들이 한수호의 적이될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아졌기에 일단은 보류했다.

하지만 항상 그들을 주의 깊게 살필 것이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가차 없이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특무부에 더 많은 악당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

공법폰에 붙이려고 손에 든 스티커도 과연 제대로 된 물건이 맞나 싶었다.

혹시 몰라 개조 특성으로 살펴봤지만 정보는 뜨지 않았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그때, 뇌리를 스치는 뭔가가 있었다.

‘아니지. 정보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잖아?’

한수호는 침대 베개 옆에 빼놨던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스티커를 그 안에 쑥 집어넣었다.

예상대로 코스트 산정을 위한 메시지가 등장했다.

>>해당 사물의 코스트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코스트 산정에 5초가 필요합니다.

5초가 지나자 스티커는 주머니 안으로 곧장 빨려 들어갔다.

스티커가 이모티콘화 되어 16개의 슬롯 중 하나를 차지한 걸 확인하고 맨 아래의 코스트 표시를 봤다.

[코스트: 67/100]

이걸 넣기 전에는 66이었으니 스티커가 차지하는 코스트는 1.

아무리 별것 아닌 물건이라도 코스트는 최소 1을 차지하는 모양이었다.

한수호는 스티커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개조 특성으로 재차 확인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스티커의 정보가 눈앞에 나타났다.

[해킹 방지 스티커]

-코스트: 1

-대한민국 마공 특수 무력 부대에서 사용하는 해킹 방지를 위한 스티커입니다.

-전자기기에 부착 시, 모든 ON/OFF 방식의 해킹에서 보호됩니다.

-통신상으로 주고받는 모든 정보는 요점만 축약되어 개발자에게 전달됩니다.

정보를 확인한 한수호는 깜짝 놀랐다.

‘개발자한테 정보가 전달된다고?’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모든 정보가 개발자에게 전달된다면 스티커를 사용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것도 마공사가 특성으로 만들어낸 아티팩트였구나!’

회귀 전에는 꿈에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 당시엔 이 스티커를 그저 과학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만들어진 단순한 프로텍트 장치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티팩트. 그것도 사용자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몰래 개발자에게 정보까지 빼서 넘겨주는 스파이칩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아티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마공사는 세계적으로 따져봐도 몇 안 된다.

그중에서도 이렇게 작으면서 성능까지 우수한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 있는 마공사는 고작 셋 정도.

그 셋에는 마공전뇌 이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마공전뇌 이산.

그가 남긴 고기능들의 아티팩트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아주 잘 사용하고 있었다.

‘정보에서 말하는 개발자는 아마도 이산, 그 사람이겠지?’

이 스티커 개발자가 이산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한때는 특무부 소속으로 수많은 아티팩트를 만들어 제공해 왔던 마공사 이산.

그가 사대광마나 황도13궁, 새한교 같은 악의 축이 아니라는 점에는 다소 안심이 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정보가 유출되는 걸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이거도 손 볼 수 있으려나?’

한수호는 해킹 방지 스티커의 마나 회로를 수정해 정보 유출을 막을 생각이었다.

마나력을 끌어올려 안력을 강화시키고, 스승 부부에게 배운 청심법으로 모든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한수호의 시야는 급속도로 어두워졌고, 그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스티커만 반짝거리고 있었다.

서서히 스티커 속에 숨겨진 마나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우 작은 스티커임에도 마나 회로는 엄청나게 복잡했다.

지난번 광폭화 특성을 개조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

광폭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특성인데다 몸에 각인된 것이라 마나 회로를 분석하는 게 그나마 수월했었다.

하지만 스티커는 달랐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마나 회로가 눈이 빙빙 돌 정도의 복잡한 구조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이 마나 회로를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어디냐.’

다른 마공사들은 한수호처럼 마나 회로를 눈으로 보는 건 꿈도 못 꾼다.

한수호에게 개조 특성이 없었다면 그 또한 이런 건 생각도 못 했으리라.

‘어디, 시작해 볼까?’

한수호는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어린아이의 표정이 되어 마나 회로를 자세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이 흐르고, 2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12시를 넘겼지만 한수호는 마나 회로 분석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새벽 2시가 다 되었을 때, 그제야 마나 회로의 흐름과 스티커의 정보를 매칭시키는 게 가능해졌다.

‘후우…. 이거 엄청 빡세네.’

그래도 광폭화를 개조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매칭이 가능해지니 그 뒤는 비교적 수월했다.

‘여기군. 이걸 조정하면 개발자에게 정보가 새는 걸 막을 수 있겠어.’

한수호는 ‘모든 정보는 요점만 축약되어 개발자에게 전달됩니다.’라는 문구와 일치되는 회로를 찾았고, 그걸 ‘모든 정보가 숨겨집니다.’로 수정시켰다.

그런데,

>>수정된 사항을 저장하겠습니까? 저장에는 500,000LP가 소비됩니다.

YES/NO

뜬금없이 등장한 메시지.

광폭화 수정 때에는 보지 못한 문구였다.

그땐 처음 하는 수정이라서 LP 소비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지닌 특성이라서 LP 소비가 필요치 않았던 것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이 스티커의 기능을 변경시키기 위해선 무려 5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 한수호가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는 42,660LP.

스티커 수정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였다.

‘다르게 수정하면 필요한 포인트도 달라지려나?’

왠지 그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건 그대로 두고 ‘개발자’라는 단어만 삭제시켜봤다.

>>해당 문구는 삭제할 수 없습니다.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떴다.

실망한 한수호는 다른 문구를 손봤다.

‘모든 정보는 요점만 축약되어’라는 내용을 ‘모든 정보 중 기본 내용만’으로 수정했더니.

>>수정된 사항을 저장하겠습니까? 저장에는 50,000LP가 소비됩니다.

YES/NO

소비 포인트가 10분의 1로 줄긴 했지만 역시나 적지 않은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이런저런 수정을 시도해 봤지만 지금 보유한 포인트로는 저장이 불가능할 정도로 소비 포인트가 높았다.

가장 적은 포인트가 소비되는 수정은 ‘모든 정보’라는 내용을 ‘대부분의 정보’로 살짝만 변경했을 때였다.

이 경우, 소비되는 포인트는 5천.

하지만 5천 포인트를 들여 이렇게 수정해 봐야 정보가 개발자에게 넘어가는 건 전혀 막을 수가 없었다.

한수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발상의 전환을 해 보기로 했다.

‘정보가 넘어가는 걸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단어를 추가해서 정보에 교란을 주는 건 어떨까?’

기존의 문구는 변경하지 않고, 특정 단어나 문장을 추가해서 엉뚱한 내용이 전달되도록 바꾸는 꼼수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불필요한’이라는 문장의 추가였다.

-통신상으로 주고받는 모든 정보는 [불필요한] 요점만 축약되어 개발자에게 전달됩니다.

이렇게 바꿔놓고 보니 꽤 마음에 든다.

정보는 전달되지만, 필요 없는 정보만 전달될 테니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지 않은가.

‘이건 포인트가 얼마나 필요할까?’

나름 기대를 품으며 수정을 완료시키자, 다시 메시지가 떴다.

>>수정된 사항을 저장하겠습니까? 저장에는 20,000LP가 소비됩니다.

YES/NO

‘성공이다!’

적정 수준의 포인트였다.

기껏 모은 포인트 중 2만이나 날리게 됐지만, 이는 대단한 성과였다.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으면 김재우로부터 던전 정보를 전혀 받아볼 수 없게 되고, 괜한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반드시 스티커를 부착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김재우와 주고받는 모든 정보가 개발자에게 넘어갈 판이었다.

하지만 이젠 걱정이 없었다.

한수호는 YES를 선택해 수정 사항을 저장시켰다.

포인트 2만은 더 이상 아깝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새벽 3시.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으면 밤을 꼴딱 새웠을지도 모른다.

한수호는 편해진 마음으로 스티커를 폰 뒤쪽 하단부에 부착시킨 뒤,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김재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미 자고 있겠지만 아침에라도 문자를 보고 안심하라는 의미였다.

[스티커 부착했어요. 보낼 자료 있으면 마음 놓고 보내도 됩니다.]

그리고 3시간 만이라도 눈을 붙이려는데.

[오? 이 시간까지 잠 안 자고 뭐 하냐? 하긴. 내가 네 나이 때만 해도 밤에 노느라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했었지. 아무튼, 알았다. 마침 너한테 주려고 자료 정리 중이었는데, 잘됐네. 지금 보내 줄 테니 잘 검토해 보고, 언제부터 던전 위험도 측정 가능한지 스케줄 알려줘라.]

김재우도 아직 취침 전이었다.

잠시 후, 김재우의 말대로 상당한 용량의 데이터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어떤 자료인지 확인해 볼까 했으나, 더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그냥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료 전달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수호는 꿈나라로 직행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