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커다란 테이블.
그 위에 지구본처럼 생긴 홀로그램이 둥실 떠올라 있다.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앳된 나이의 소녀.
많아 봐야 19살 정도 되었을까?
그녀의 팔꿈치 아래의 내장형 태블릿에는 수많은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꽤나 겹겹이 띄워진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삐잉. 삐잉. 삐잉.
지구본의 어느 한 곳에서 붉은 점이 깜빡거리더니 경고음이 울렸다.
소녀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당황한 얼굴로 지구본을 살폈다.
붉은 점을 확인한 그녀는 그곳을 터치했고, 그러자 그 부분이 크게 확대되었다.
붉은 점이 깜빡거리는 위치는 대한민국.
거기서 다시 확대시키자 서울이 나타났다. 한 번 더 확대하니 서울의 마공 아카데미 본교가 나왔다.
“어? 뭐야?”
아카데미 위에서 깜빡이는 붉은 점 위로 말풍선이 떠 올랐다.
[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용자가 시스템 해킹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처음이었다.
이 시스템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는 것이라 누군가가 해킹을 시도하는 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빠! 아빠아!”
소녀가 누군가를 불렀고 잠시 후 50대 초반의 사내 하나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외모와는 다르게 새치가 머리카락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사내였다.
“하이야. 갑자기 무슨 경고음이냐?”
“이거 좀 봐봐. 누군가가 우리 시스템을 해킹 중이래.”
“해킹?”
사내는 놀란 눈으로 홀로그램을 살폈다.
패널을 조작하고, 홀로그램 확대와 축소, 이동을 반복하던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히도 접속 오류인가 보구나.”
어느새 경고음은 멈춰 있었다.
“난 또 아빠가 만든 시스템이 정말 해킹당하는 줄 알고 엄청 놀랐네.”
“그럴 리가 없지. 이런 게 있다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감히 해킹한다고.”
“근데, 이상하네. 알람이 왜 마공 아카데미에서 울렸을까?”
“오늘 낮에 특무부에서 71번 스티커가 반출되었더구나. 아마 그 스티커가 아카데미의 누군가한테 전해진 거겠지.”
“그럼 사용자는 교수나 조교수 정도 되겠네. 아카데미 안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으니 특무부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겠지? 그런데 엄청 신기하다. 희생자가 단 한 명 밖에 나오지 않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소녀, 이하이는 태블릿으로 역사관 테러 사건과 관련된 뉴스를 띄워 올렸다.
“그때와 뭔가 달라지기 시작한 거야. 어쨌든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서둘러야겠다.”
사내의 말에 이하이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런데, 정말 가능할까? 나…. 나을 수 있는 거야?”
그런 이하이의 양어깨를 사내의 손이 감쌌다.
“하이야. 이 아빠를 믿으렴. 이번 삶에서는 너뿐만 아니라 네 동생도 절대로 죽는 일이 없을 거다.”
“응. 믿을게.”
이하이는 아빠의 말에 힘이 생기는지 밝게 웃으려 노력했다.
“그래. 그럼 이제 그만 자도록 하자. 내일 아스루나에 가게 되면 편하게 자긴 힘들 테니 푹 쉬어둬라.”
“짐은 다 챙겨놨으니 걱정 마. 그런데 아빠. 이번에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아무리 편의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그런 작은 도구들에까지 특성을 그렇게 남발했다가 아빠 몸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려고?”
이하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는 피식 웃었다. 걱정 말라는 뜻으로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깟 아티팩트 몇 개 만들었다고 마나력이 고갈되는 일은 없단다. 게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의 아티팩트가 아닌 이상 아티팩트 몇 개 만든 걸로는 아빠가 겪게 될 고통도 그다지 크지 않다는 건 너도 알잖느냐?”
“알지만, 그래도….”
이하이는 걱정스런 표정을 끝내 지우지 못했다.
그때였다.
삐링
[71번 스티커에서 정보를 수집합니다.]
홀로그램 지구본에서 알림음과 함께 말풍선이 떠올랐다.
“어? 또 아카데미다!”
이번엔 파란 점이 깜빡거렸는데, 그 위치가 아까와 같았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났을 때, 말풍선은 간단한 정보를 추려서 띄워주었다.
[A가 B에게 스티커 부착 완료를 통보함.]
[B는 A에게 어린 시절 자신을 빗대며 핀잔을 줌.]
굉장히 간단하고 쓰잘머리 없는 내용이었다.
“에이, 뭐야~. 혹시나 좋은 정보가 나오나 기대했는데, 그냥 잡설이네.”
이하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금방 관심을 껐다.
반면 사내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말풍선을 살피고 있었는데, 표정이 조금은 묘했다.
‘특무부 요원이 학생한테 스티커를 준 건가? 그렇다면 학생 폰에 스티커를 붙여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건데….’
분명 쓸데없는 내용이긴 했지만, B가 어린 시절을 빗대며 말했다는 건 스티커를 부착한 A가 학생이라는 의미였기에 조금 의아했다.
게다가.
‘스티커가 이런 내용까지 시스템에 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말이지.’
이것도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함. 졸리다. 아빠 먼저 들어가 잘…. 어어?”
말을 하던 딸, 이하이가 갑자기 현기증이라도 오는지 비틀거렸기 때문이었다.
“하이야!”
“….왜 이러지?”
사내는 이하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아빠가 방으로 데려다주마.”
“아니, 괜찮은데….”
“이때가 아니면, 우리 딸 언제 또 안아보겠니?”
사내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의 딸 이하이는 선천적으로 앓고 있는 병이 있었고, 병의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게이트 너머의 위험한 세상을 뒤지고 다녀야 했으니까.
* * *
이튿날부터 한수호는 매우 바빠졌다.
오전에 이론 수업을 듣고, 오후엔 실전 수업을 진행했다.
이론이야 이미 5학년 졸업반에서 다룰 내용까지 빠삭하긴 했지만 이렇게 회귀한 상태에서 다시 듣다 보니 지식의 깊이가 더해졌다.
실전 수업은 몬스터 봇을 이용한 대련이었는데, 지평학 교수의 예견대로 업그레이드된 몬스터 봇의 성능이 상당히 놀라웠다.
사기환의 몬스터 봇처럼 전투 영역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신 꽤나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단순하긴 해도 창술이며, 검술, 궁술, 단검술 등 설정만 하면 어떤 종류의 기술도 모두 펼칠 수가 있었다.
그 덕분에 낭패를 본 건 학생들이었다.
수련급으로 설정된 몬스터 봇을 상대하는 것인데도 쉽지 않았다.
D반 학생 46명 중 고블린 봇을 쓰러뜨린 건 고작 12명뿐.
아무리 각성 이후에 처음 갖는 실전이고, 업그레이드된 몬스터 봇에 대한 적응이 어렵다지만 34명이 중도 포기하는 진풍경에 지평학 교수와 조교수들은 어이없어했다.
물론 한수호는 무난하게 고블린 봇을 쓰러뜨렸다.
그의 마나력은 표면적으로 특급 수준이었으니 수련급 고블린 봇을 쉽게 처리해도 문제 될 일은 없었다.
그렇게 몬스터 봇과의 실전 수업이 끝난 뒤, 한수호는 곧장 단련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체력 훈련을 핑계로 일일 미션을 수행했다.
훈련이 끝나면 바로 기숙사로 향했고, 자기 방 안에서 청심법으로 심신을 가다듬었으며 김재우가 넘겨준 던전 자료를 차분하게 점검했다.
던전 자료는 엄청 방대했다.
서울과 서울 근교에 존재하는 던전만 해도 무려 27곳. 대한민국 전역에 걸쳐 생성된 던전을 모두 합치면 140개가 넘는다.
대부분은 특무부 관할하에 철저히 관리 감독 되고 있었지만, 대한맹이나 정의국에 속한 던전도 20%나 된다.
던전 중 열에 아홉은 이미 마공사들에 의해 탐사가 끝나 특별한 사항이 없다. 하지만 아직 탐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던전이 10%나 존재했다.
이 던전에 대한 자료는 회귀 전에도 정확히 열람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한수호에겐 대부분 생소한 내용이었다.
늪으로 이루어진 던전, 밀림으로 구성된 던전, 구역 대부분이 3미터 깊이의 물로 채워진 던전 등, 종류도 다양했다.
무려 4일 동안 던전에 대한 정보를 매일같이 머릿속에 꽉꽉 눌러 담았다.
던전 위치, 규모, 특징부터 그곳을 탐사한 결과가 정리된 보고서까지.
김재우가 이런 기밀을 요하는 내용까지 자신에게 전부 오픈해버려도 되는 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걸리면 영창감인데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일개 아카데미 학생에게 특무부 비밀 자료를 넘기다니.
한수호는 그만큼 김재우가 윤재희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서울 근교부터 돌면서 히든피스가 있는 던전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네.’
특무부의 자료는 정리가 잘 되어 있긴 했지만 내용만으로는 던전의 위험도를 특정해 내기가 어려웠다.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게 가장 확실했다.
이렇게 던전에 대한 공부까지 마치게 되면 저녁 9시가 넘는다.
이 시간부터 한수호는 개조 특성을 이용해 사기환이 준 고블린 봇을 상대로 전투 영역에 들어가 고난이도의 실전을 치렀다.
비록 10분이라는 짧은 시간뿐이었지만, 진급으로 설정된 고블린 봇과의 전투는 굉장히 치열하고 살벌한 것이었다.
그렇게 고블린 봇과의 전투를 마친 이후에는 한수호 스스로 전투 영역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마나 회로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전투 영역 확장을 위해 고블린 봇의 마나 회로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약탈[1] 특성을 수정하는 일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약탈 특성을 개조하는 건 스티커 개조보다 몇 배나 어려웠다.
접촉으로만 발휘가 가능한 특성을 비접촉으로 변경하는데 필요한 포인트는 150만.
상대의 상처 대신 마나를 흡수하는 걸로 조정하는 데는 무려 190만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변경해 봤지만 약탈[1] 특성을 개조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만 포인트는 있어야 했다.
‘와, 씨…. 이래서야 약탈 특성을 개조하는 건 불가능하겠는데?’
광폭화 특성의 개조가 가능했던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거였다.
혹시나 싶어 시험 삼아 광폭화의 효과를 또다시 변경해 봤는데, 정말 간단한 수정에도 최소 50만 포인트가 필요했다.
적어도 2만 포인트짜리 던전 25개를 공략하는 데 성공해야 했다.
‘하긴…. 개조 특성은 지금도 사기급인데, 특성을 개조하는 것까지 쉬웠으면 밸붕이나 마찬가지지.’
특성 개조에 들어가는 포인트가 엄청난 건, 사실 당연했다.
그렇게 바쁜 하루하루가 지나고, 어느덧 주말이 다가왔다.
한수호는 김재우에게 던전 위험도 측정은 다음 주말에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번 주말엔 가족이 함께 살았던 옛집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한수호는 토요일 저녁에 움직이기로 했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이 밝자마자 새로 등장한 일일 미션부터 확인했다.
샤워를 하고 이를 닦으면서 일일 미션을 불러들였을 때, 한수호는 눈앞에 나타난 내용에 잠시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오늘의 미션]
-특별 미션
-공간 능력 활용하기(60분)
-획득 포인트: 12NP / 1200LP
뜬금없이 떠오른 특별 미션.
지난번 백만 볼트 전압 견디기 이후로 두 번째 등장이었다.
그런데 공간 능력 활용이라니?
그것도 1시간이나.
공간 능력이라고 하니 딱 떠오르는 건 바로 전투 영역이었다.
최근 한수호가 이 전투 영역을 기술화하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이런 미션이 등장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 영역을 만들어 내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탁구공 크기의 결계를 축구공 크기로 확장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며칠째 그 이상으로 커지지 않고 있었다.
‘12포인트짜리 특별 미션인데 꼭 해내야지.’
승부욕이 솟는다.
현재 한수호가 보유한 NP는 9.8.
며칠간 꾸준히 미션을 수행하면서 고블린 봇과의 전투 중 벽력권을 사용해 포인트를 흡수한 덕분이었다.
두 팔의 신체 스탯이 83까지 오른 상태이니 앞으로 22.2포인트만 더 모으면 32가 되어 한 번에 99를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간 능력을 활용하기엔 아직 능력이 부족했다.
‘내가 만들어 낸 전투 영역은 아직 사용을 못 해도 고블린 봇으로는 되지 않을까?’
생각이 떠오른 김에 바로 시험해 보기로 했다.
서둘러 칫솔질을 마친 그는 거실에 세워둔 고블린 봇을 작동시켰다.
우우웅
아크로가 돌기 시작하며 고블린 봇이 눈을 떴다.
그리고 곧바로 전투 영역을 가동하자.
쿠웅-
묘한 울림이 퍼지며 고블린 봇에서부터 시작된 반구 형태의 파동이 단숨에 한수호를 집어삼켰다.
* * *
고블린 봇이 만들어 낸 전투 영역의 유지 시간은 단 10분.
한수호는 8분여 동안 신나게 고블린 봇과 전투를 벌였고, 그 덕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썼다.
한수호의 주먹에 여기저기 두드려맞은 고블린 봇의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가슴팍이 움푹 파였고, 다리 한쪽은 비틀렸으며, 한쪽 팔은 축 늘어져 덜렁거렸다.
하지만 이 정도 고장은 하루 안에 말끔하게 자가 수복되기에 걱정할 것이 없었다.
한수호는 이쯤에서 전투를 멈췄다.
그리고 머리 위 허공에 떠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00:01:27]
이제 1분 27초 후면 전투 영역은 사라진다.
‘이 전투 영역이 특별미션의 공간 능력 활용에 적용이 되느냐, 그게 중요하지.’
한수호는 바로 미션 내용을 확인해 봤다.
[오늘의 미션]
-특별 미션
-공간 능력 활용하기(60분) >> 진행시간: 8분/60분
-획득 포인트: 12NP / 1200LP
다행히도 이 전투 영역도 미션에 적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고블린 봇의 전투 영역은 10분 사용 후, 6시간 충전이 필요하다.
즉, 지금부터 6시간마다 전투 영역을 사용한다고 해도 밤 12시가 되기까지 앞으로 3번이 최대였다.
‘그래봐야 40분이야.’
미션 달성을 위해서는 60분이 필요하니 20분이 부족한 상황.
나머지 20분은 어떡하든 다른 방법으로 채워야 했다.
‘내가 직접 전투 영역을 사용할 수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데….’
한수호는 답답한 마음에 손 위로 전투 영역의 구체를 발현시켰다.
우우웅-
하얀 점으로 시작된 구체는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축구공 정도로 커졌다.
손 위에 둥실 떠 있는 검은색의 구체는 벼락의 기운을 안에 품은 채 강력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봐도 그 이상으로 커지지 않았고, 그저 미세한 떨림을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투를 멈추고 멍하니 서 있던 고블린 봇이 절룩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수호의 손 위에 떠 있는 구체 바로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을 휙 뻗었다.
진급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터라 고블린 봇의 움직임은 눈부시게 빨랐고, 한수호가 구체를 치우기 직전에 손끝이 구체에 닿아버렸다. 순간.
슈아아아악
고블린 봇이 구체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한수호가 있던 공간에 균열이 쫙쫙 생기더니.
째앵-.
유리가 깨지듯 깨져버렸다.
전투 영역의 주체였던 고블린 봇이 사라지자 그 공간도 소멸된 것이다.
한수호는 어느새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손에 떠 있었던 검은색 구체도 보이지 않는다.
고블린 봇을 삼켜버린 직후에 구체 또한 사라진 것.
한수호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다시 구체를 만들어 내려 했지만 이상하게 다시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사라진 고블린 봇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대로 비싸고 성능 좋은 고블린 봇을 잃어버리는 건가 싶은 한수호는 사기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 사실을 알려주려 했다.
바로 그때, 기막힌 현상이 벌어졌다.
우웅-.
감쪽같이 사라졌던 검은 구체가 돌연 모습을 드러내더니, 안에서 뭔가를 툭 내뱉고는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구체가 내뱉은 건 놀랍게도 고블린 봇이었다.
고블린 봇은 어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수호를 발견하고는 절룩절룩 다가섰다.
그리고는 한수호에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마치 악수하자는 듯한 행동에 한수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을 때, 고블린 봇의 눈에서 눈동자가 사라지더니 글자가 새겨지며 옆으로 흘러갔다.
[고맙다. 덕분에 자아를 얻었다.]
고블린 봇이 눈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