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A반과의 합동 수업은 대련실에서 이루어졌다.
한수호는 수업 시작 5분 전이 되어서야 느지막하게 대련실 출입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컸던 것일까?
안에서 웅성대던 소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많은 학생의 시선을 그대로 무시한 채 다가가던 그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양소혜를 보고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최지혁도 함께 있었다.
“장태산. 넌 네가 무슨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 줄 아냐? 꼭 이런 때엔 주인공이라도 되듯이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단 말이지.”
“생긴 걸로만 따지면 주인공 저리 가라잖아. 적어도 아카데미 내에선 얼굴로 원탑일걸?”
최지혁도 이젠 사형을 잃은 아픔을 딛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려 노력하고 있었다.
“야,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저 얼굴이 어떻게 아카데미 원탑이냐? 대한민국 원탑이면 모를까.”
“그, 그런가?”
양소혜의 말에 최지혁은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보다, 쟤들 봤어? 저기 저 맨 앞줄에 앉은 녀석들 말이야.”
양소혜는 처음 보는 얼굴들이 가득한 건너편 쪽 학생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아주 편안한 자세로 바닥에 앉아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그들 중 눈에 띄는 녀석들이 몇 있었다.
도도한 한 송이 장미꽃처럼 유난히 빛나는 얼굴의 여학생과 꽤나 잘생긴 얼굴을 뽐내며 이야기 중인 한 남학생. 그리고 우중충한 기운을 뿜으며 마스크를 쓴 왜소한 여학생까지.
한수호는 그 셋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장한설. 백윤후. 이하윤.
이번 1학년 신입생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삼인방이었다.
장한설과 이하윤은 수석과 차석이니 당연히 유명했고, 백윤후는 정의국 최고 명령권자인 백진성 국장의 아들이자 튜토리얼에서 진급 특성 ‘폭렬검’을 얻은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백윤후는 백진성의 검술인 십자진검까지 완벽하게 전수된 걸로 알려져 조만간 장한설을 추월할 거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수호가 그들을 잠시 바라보고 있을 때, 마침 이하윤이 한수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찰나적으로 허공에서 얽혔다.
한수호는 지난번 그녀의 방에 무단으로 침입한 것이 미안했기에 슬쩍 고개를 숙여 알은척했다.
이에 이하윤의 큰 눈이 호선을 그리며 웃음을 그려 보였다.
스스럼없이 그려지는 웃음은 한수호에게도 전파되었고, 그 또한 미소를 그리게 만들었다.
그때, 양소혜가 한수호의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야. 너 누구보고 헤실거리는 건데?”
그러면서 A반 학생들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이하윤의 웃음 띤 눈매를 마주했다.
“야야. 장태산이. 너 쟤랑 아는 사이야? 쟤가 왜 너한테 눈웃음치고 있냐?”
질문의 대답은 최진혁에게서 나왔다.
“이하윤을 누가 모른다고 그래? 쟤가 태산이 보고 웃는 게 뭐 큰일 날 일도 아니고.”
“아니. 그게 아니라, 태산이 녀석이 이하윤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그러지. 이하윤이 마스크 쓰고 있는 모습만 보고 반하는 사내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솔직히 마스크를 벗지만 않으면 같은 여자도 반할 만큼 매력적이긴 해. 아무튼, 장태산. 나중에 숨겨진 얼굴 보고 실망하지 말라고 미리 말해주는 거야. 이하윤이랑은 가까이할 생각하지 마. 쟤는 성격도 더럽고, 얼굴도 추악하기로 유명하다고.”
“양소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거 아니다. 그리고 실물이 정말 흉한지 누가 보기라도 했어? 밖에서는 마스크 벗은 적 한 번도 없다며?”
최지혁은 한수호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대신 나서서 반박하고 있었다. 그러자 양소혜가 태블릿을 꺼내 보이며 뭔가를 검색하더니 사진 하나를 띄웠다.
“자, 봐라. 이게 이하윤의 진면목이라고. 파파라치가 고화질 카메라로 줌 당겨서 찍은 거야. 거짓말 1도 없는 진퉁 사진이라고.”
사진은 어느 고급 주택의 2층 창문을 찍은 거였는데, 창문의 좁은 틈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살짝 보였다.
얼핏 보이는 외모는 이하윤과 흡사했다. 그런데 코 아래의 하관이 마치 문둥병 환자처럼 굉장히 흉측해 보였다.
너무 멀어서 자세히는 볼 수 없었음에도 흉측하다는 느낌이 확 들 정도였다.
양소혜는 사진을 슬라이드 했고, 다음 사진이 나왔다.
이번엔 방금 전의 사진을 몇 배로 줌한 사진이었는데, 그곳엔 정말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괴기스럽고 추악한 얼굴의 이하윤이 있었다.
이를 본 한수호는 흉하다는 생각 대신 의문의 감정이 들었다.
‘이게 이하윤의 진짜 얼굴이라고? 그럼 그날 내가 본 얼굴은 뭔데?’
한수호가 본 이하윤은 정말 말 문이 막힐 정도로 예뻤다.
그럼 이 사진 속의 얼굴은 뭐란 말인가?
“와…. 이런 말 하면 안 되긴 하지만, 정말 엄청나긴 하다.”
최지혁도 이하윤의 흉측한 얼굴에 혀를 내둘렀다.
“듣자 하니까 무슨 병이 있데. 시간이 지날수록 병이 점점 악화되는데 어떤 약으로도, 특성으로도 치료가 안 된다더라고. 그래서 성격도 이상하게 변했다나, 어쨌다나.”
이야길 들어봐서는 사진 속의 이하윤은 가짜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그녀의 진짜 얼굴을 코앞에서 목격했기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도 이 흉터가 팔에 생겼으니 망정이지 쟤처럼 얼굴에 생겼으면 어쩔뻔했냐? 휴…. 다행이다, 다행이야.”
양소혜는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리며 화상 자국을 내보였다.
근육이 불끈대는 팔목. 그 중간 즈음에 2센티 정도의 화상 자국이 있었다.
그 상처를 가만히 바라보던 한수호의 눈에 갑자기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분명 선명하게 보이던 흉터가 어느 순간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헛것을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봤더니 흉터가 또 보인다. 그런데 2초도 되지 않아 깨끗이 사라졌다.
한수호는 자기도 모르게 양소혜의 상처를 손으로 훑었다.
느껴진다.
화상의 우둘투둘한 느낌이 손가락으로 여실히 전해졌다.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야. 갑자기 뭐야? 쑥스럽게 왜 남의 팔을 쓰다듬는데?”
양소혜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옷 소매를 다시 내렸다.
“이 상처 언제 생긴 거라고?”
한수호는 이 기현상을 이해할 답이 필요했다.
“한 5년 됐지? 우리 집 근처에서 큰불이 났었는데, 그 집 안에 아이가 갇혀있었지 뭐야. 내가 마침 거길 지나던 중이라서 무턱대고 뛰어들어 아이를 구해냈거든. 그 와중에 잔뜩 달궈진 철근이 떨어지길래 이 팔로 막았던 거고. 나름 영광의 상처라서 굳이 돈 들여서 재생 치료를 받지는 않았어.”
“아이를 구하면서 생긴 상처라….”
뭔가를 가만히 생각하던 한수호는 최지혁에게 말을 걸었다.
“넌 어디 상처 같은 거 없어?”
“나? 다리 쪽에 검상이 있긴 한데, 왜?”
“잠깐 볼 수 있을까?”
최지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바지를 올려 종아리에 길게 그어진 검상을 보여줬다.
한수호는 그 상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런데 이번엔 상처가 사라지는 일이 없었다.
“이건 훈련 중에 생긴 상처?”
“훈련은 아니고. 12살 때, 호기심에 진검 가지고 놀다가 베였지 뭐.”
“그렇군.”
대충 답이 보인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몇 번을 더 확인해 봤다.
주변의 다른 동기들에게도 상처를 보여달라고 부탁했고, 몇 번의 점검 끝에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보이는 상처와 보이지 않는 상처.
이 차이는 상처가 생긴 이유가 무엇이냐에 따라 발생하는 듯했다.
일반적인 상처라면 아무런 특이점이 없지만, 타인을 구하다가 생긴 상처는 그 너머의 진실한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
그렇다면 이하윤도 누군가를 구하려다가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는 말이 된다.
‘키워드는 희생이었어.’
하지만 왜?
어째서 희생에 의한 상처를 한수호가 꿰뚫어 볼 수 있게 된 걸까?
그 이유를 분석해본 결과,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감지 스탯 때문이구나.’
쉘턴 헷지의 던전을 공략하면서 뜬금없이 얻게 된 감지 스탯.
원래는 개조 특성 3단계에서나 볼 수 있는 항목이지만 던전 클리어로 갑자기 2가 상승했었다.
달라진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양소혜가 한수호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별일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러니까 더 신경이 쓰이잖아!”
한수호는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자자, 잡담은 그만. 바로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언제 들어왔는지 학생들 앞쪽에 지평학 교수를 비롯해 A반 담당교수와 조교수 네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앞에 나서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아카데미의 자랑이자 교수들 사이에선 ‘여포 강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지닌 홍수빈이었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대한민국 마공사 랭킹 100위 안에 들 정도의 강자였다.
“오늘 수업은 A반 학생과 D반 학생 한 명씩 짝을 이루어 몬스터 봇 3기로 구성된 적을 상대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 이 훈련은 승패를 떠나 팀원과 위기를 헤쳐 나가는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니 이기적인 생각은 접어두기 바란다.”
A반 담당 교수이기도 한 홍수빈은 이번 훈련에 대한 주의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학생들은 2인 1조가 되어 3기의 오크 봇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야 했다.
오크 봇은 평급으로 설정되겠지만 연계 시스템이 적용되어서 특급 마공사 혼자서는 쉽게 상대하기 어렵다.
최소한 특급 한 명에 협력자로 평급 한 명은 있어야 얼추 맞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조 편성은 나와 지평학 교수님의 추첨으로 이루어진다. 전투 시간은 5분이다. 그 시간 동안 버티거나, 오크 봇들을 쓰러뜨리면 평가 점수에 가산점을 얻을 것이다. 포기하거나 우리 교수들이 끼어들어 중단시키게 될 경우엔 감점이고. 다들 이해 됐나?”
홍수빈의 말투는 굉장히 딱딱했지만, A반 학생들은 익숙한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반면 D반 학생들은 예쁘장한 얼굴의 홍수빈이 군인처럼 딱딱하게 말하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자, 별다른 질문이 없으면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그녀가 눈짓하자 뒤에 서 있던 조교수가 D반이라고 적힌 작은 상자를 들고 나섰다.
홍수빈은 상자에 손을 넣어 뒤적이다가 쪽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고형태?”
그녀의 호명에 D반 학생 중 하나가 대답하며 일어섰다. 표정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엔 지평학 교수 차례였다.
그는 A반이라고 쓰인 상자를 뒤적였고, 거기서 쪽지를 꺼내려 했다. 그때, 갑자기 장한설이 손을 번쩍 들었다.
“교수님! 요청 사항이 있습니다.”
이에 빈손을 꺼낸 지평학이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요청인가, 장한설 학생?”
“수업에 방해가 되는 게 아니라면 전투 파트너를 직접 골랐으면 합니다.”
장한설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이하윤을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마치 지금 하는 요청이 이하윤을 위해서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파트너를 고르는 권한을 A반에게 달라는 건가?”
지평학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닙니다. 공평하게 한 명씩 번갈아 가면서 고르는 걸로요.”
A반과 D반이 번갈아 가면서 파트너를 고르는 거면 나쁠 것도 없었다.
“좋다. 대신 지명을 받은 학생은 거부할 수 없는 걸로 해도 되겠지?”
“그건 상관없습니다. 저희 A반 학우들은 모두 동의할 겁니다. 그렇지, 얘들아?”
장한설이 대놓고 동의를 구하자 A반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이하윤 한 명만이 어쩔 줄 몰라 할 뿐.
“A반이 그렇다는데…. D반.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지평학의 물음에 D반 학생들은 웅성거리더니 하나씩 고개를 끄덕였다.
A반은 D반 학생들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D반은 A반 학생들에 대해 매우 잘 안다. 그래서 지명권을 받으면 가장 강한 학생을 고를 수 있었고, 그럼 평가에 상당한 이득이었다.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이 들떠 있었다.
“D반도 좋다고 하니,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어떨까 싶은데?”
지평학은 홍수빈에게 마지막 의견을 물었다.
지평학이 학장이긴 했지만 수업에 있어서는 대등한 위치였기에 의견수렴은 반드시 필요했다.
“저도 괜찮을 거 같네요. 지명권은 저희가 추첨하는 순서대로 하죠.”
“그럽시다.”
“그럼 고형태 학생부터. 파트너로 삼을 A반 학생을 하나 골라 보거라.”
모두의 시선이 고형태에게 쏠렸다.
“저, 저는….”
고형태는 갑자기 첫 번째 지명권을 갖게 되자 조금 당황했지만 누구를 고를지는 빠르게 정할 수 있었다.
“백윤후 학생으로 하겠….”
“거절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윤후가 거절 의사를 표했다. 얼굴이 벌게진 고형태는 더 말을 못 하고우물쭈물했다.
“백윤후 학생. 거부는 안 된다고 말했을 텐데?”
“아, 그랬던가요? 그럼 할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대충 빨리 끝내는 걸로 하죠.”
버릇없고 건방진 말투에 다들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홍수빈이나 A반 학생들은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아 했다.
“이번엔 내가 뽑지.”
지평학이 다시 상자를 뒤적여 쪽지를 꺼냈다.
“장한설 학생이군.”
“넵!”
장한설이 벌떡 일어나더니 곧장 한수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런데 손가락 끝이 살짝 이동하더니 양소혜를 향했다.
“저는 저기, 저 여학생을 원합…. 아니, 파트너로 삼고 싶습니다.”
말이 살짝 꼬인 탓에 이상한 의미가 될 뻔했지만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양소혜 학생을 말하는 건가?”
지평학이 양소혜의 이름을 말하자, 당사자가 자기를 가리키며 ‘나는 왜?’라는 표정이 되었다.
“당황한 표정을 보니까 저 학생 이름이 양소혜가 맞는 거 같네요.”
장한설은 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로 환한 미소까지 그렸다. 순간 대련실 전체로 화사한 햇빛이 스며드는 착각이 느껴졌다.
“다음은 제가 뽑죠.”
두 번째 조가 정해지고, 홍수빈이 D반 학생 이름을 뽑았다.
“최지혁 학생?”
“네.”
바로 최지혁 이름이 나왔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는 A반 학생을 대충 훑어보다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가장 구석에 있는 여학생 하나를 가리켰다.
“저 학생으로 하겠습니다.”
“아, 손미영 학생?”
홍수빈이 손미영을 부르자 그녀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작게 네 하고 대답했다.
다음 추첨은 지평학이었다.
그는 쪽지를 꺼내 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번 지명권은 이하윤 학생에게 돌아갔군.”
연달아 수석과 차석의 이름을 뽑은 것에 스스로도 놀란 모양.
이에 D반 학생들이 대단히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명이 되어야 할 강력한 후보들부터 먼저 지명권을 갖게 되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하윤은 호명이 되자 조심스레 일어나더니 주변 눈치를 살짝 봤다.
A반 학생들은 장한설에 비해 대단히 내성적인 그녀인지라 대충 아무나 고를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반면 D반 학생들은 자기를 골라 달라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때, 이하윤이 한곳을 똑바로 응시하며 당당히 입을 열었다.
“장태산 학생으로 할게요.”
“어?”
“어라?”
D반 학생들이 당황해했다.
차석으로 입학한 대단한 재능충인 이하윤이 D반 학생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호명하니 크게 놀란 것이다.
정작 당사자인 한수호는 놀랄 이유가 없었다.
이미 지난번 만남에서 이름을 알려줬으니까.
‘이런 수업에서 굳이 날 고르는 건 또 뭐래?’
이하윤만 보면 자꾸 처음 봤을 때의 그 장면이 떠오른다.
짧은 돌핀 팬츠에 얇은 민소매 티를 걸친 이하윤의 모습.
그녀가 아직 17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한 한수호는 고개를 세차게 저어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아, 씨. 내가 뭐에 씌웠나?’
지금껏 이성의 모습을 기억에 담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한수호는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파트너 지명은 빠르게 진행됐다.
43명인 A반에 비해 D반은 3명이 더 많았기에 남는 3명은 한 조가 되어 전투에 임하기로 했다.
파트너 결정은 그렇게 끝났고, 곧바로 첫 번째 조의 전투가 시작됐다.
백윤후와 고형태의 조.
이들의 전투는 시작부터 학생들을 크게 놀라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