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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64화 (64/375)

64화

한수호는 옆 테이블에 백윤후와 몇몇 A반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지길 원한 것이 바로 한수호였으니까.

“상관 말고 그냥 조용히 밥 먹고 가라.”

시선도 돌리지 않고 툭 던진 말에 백윤후는 비웃듯이 웃음을 그렸다.

“어이쿠. 이거 무서워서 밥이 넘어가질 않겠는데? D반 찌꺼기 무서워서 아카데미 다니겠나, 이거?”

“말 함부로 하지 마. 내가 보기엔 네가 더 찌꺼기 같으니까.”

찬바람이 쌩쌩 부는 음성은 이하윤의 것이었다.

한수호는 이하윤의 별명이 얼음 마녀라는 걸 이제야 떠올렸다.

친한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이하윤의 태도는 늘 차갑다.

그냥 보기엔 얼굴의 흉측한 상처와 소심한 성격 때문에 따돌림을 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녀 스스로가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철벽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하윤. 넌 생긴 것만큼이나 입도 지저분….”

이하윤이 테이블을 손으로 내리쳤다.

“그 입 더 놀리면 다시는 열지 못하게 꿰매주겠어.”

“쳇.”

이하윤의 냉기가 풀풀 날리는 말에 백윤후가 물러났다.

대신 한수호를 향해 눈으로 독기를 쏘아내는 건 잊지 않았다.

백윤후가 자기 테이블 쪽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이하윤이 표정을 풀었다.

“다들 미안해요. 좋은 자리인데 괜히 저 때문에 분위기 망쳤네요.”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저딴 녀석 말은 신경 쓰지 마, 하윤아.”

장한설이 등을 토닥이자 이하윤이 눈으로 미소를 그려 보였다.

그 눈을 슬쩍 바라본 한수호는 흉측한 얼굴이 아닌 그 상처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상처만 없었으면 장한설보다도 예뻤을 텐데….’

한수호가 짧게 감상하고 있을 때,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하게 변해갔다.

테이블이 부러질 정도의 엄청난 음식이 나오고 부위별로 마음껏 골라 입에 넣으며 음미했다.

과연 샤크우마의 고기는 달랐다.

입에 넣고 한입 물자마자 사르르 흘러나오는 육즙에 쫄깃하면서도 미각을 자극하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최고의 음식을 즐기며 친구들의 대화도 점점 무르익어갔다.

대부분의 대화는 장한설과 양소혜가 주도했다.

장한설은 성장 배경이나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털털하고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서로 어떻게 자랐고 마공사가 되기 위해 무엇을 배웠는지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부끄럼쟁이를 연기하는 최지혁도 그 대화에 끼어들어 소리비도문의 지독한 훈련법을 낱낱이 불기까지 했다.

반면 이하윤은 말을 아꼈다.

그저 지병 때문에 과격한 운동을 할 수 없으며, 지금도 그 병이 진행 중이라는 다소 안타까운 사정을 담담히 말했을 뿐이었다.

이에 양소혜는 과격한 운동을 할 수 없는데도 오크 봇과의 대결에서 보여준 체술은 굉장했다며 너스레를 떨어 분위기에 변화를 주었다.

한수호의 이야기는 가장 짧았다.

섬에서 자랐고, 자연을 벗 삼아 비교적 자유롭게 성장했다는 게 끝이었다.

친구들은 좀 더 많은 것들을 알기 원했지만 한수호는 자신에 대해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음식이 하나둘 사라지고, 코스 요리의 마지막 후식이 나왔다.

굵은 빨대를 꽂은 음료와 함께 쿠키를 즐기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이 음료, 아카데미에서도 팔면 정말 좋겠다.”

장한설이 음료 잔을 들어 올려 살살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흔들림에 따라 파란 액체가 찰랑대는 모습을

황홀한 듯 바라봤다.

“이 음료에 들어가는 재료가 마공사한테는 안 좋은 거라 아카데미엔 들일 수 없을걸?”

“황제나비의 날개 가루 때문에?”

양소혜에게 되묻는 장한설은 빨대를 빙빙 돌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잘 아네. 황제나비의 날개 가루엔 마공사들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향정신성 성분이 들어 있으니까.”

“그래도 이거 한 잔 정도는 아무 영향 없다며?”

“그렇긴 하지. 하루에 이걸 백 잔씩 마시지 않는 이상은 아무 영향 없다는 실험 결과까지 나왔고.”

양소혜는 의외로 박학다식했다.

오로지 근력 강화류 훈련에만 관심을 가진 줄 알았는데 이런 쪽에도 아는 것이 꽤 많았다.

“그럼 아카데미에서 음료를 팔아도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직접 건의해 볼까?”

장한설은 이 파란 음료에 진심이었다.

그러자 양소혜가 웃으며 맞장구를 쳐 줬다.

“그거 허가 나면 내가 아카데미 안에 판매점 차린다! 거기에 지분 얹을 사람?”

양소혜가 둘러보며 묻는 말에 최지혁이 살며시 손을 든다.

“최지혁 1타! 다른 사람은? 어라, 장태산. 너 뭘 그렇게 보냐?”

장태산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고 있다가 흠칫했다.

방금 장한설이 음료 잔을 들어 올렸을 때, 빨대에 절반쯤 가려진 그녀의 얼굴에서 과거의 기억이 번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장한설의 얼굴 위로 검귀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거지?’

빨대에 가려진 장한설의 얼굴은 놀랄 만큼 검귀 ‘율’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검귀 율.

이자는 한수호가 회귀 전에 마주했던 악랄한 살인귀였다.

2054년 당시 아카데미 4학년이었던 한수호는 특무부 마공사 선배들과 함께 실전에 투입된 적이 있었다.

그 작전은 황도13궁에서도 쌍자궁의 암살부대를 소탕하는 거였다.

이미 황도13궁의 모든 궁주들이 처단된 상황이어서 잔당을 처리하는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쌍자궁의 검귀 ‘율’과 권마 ‘건’.

이 두 사람은 오직 궁주의 명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살인 기계였고, 궁급 초반에 오른 강력한 실력자였다.

일대일로는 같은 궁급 초반의 마공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암살 전문인 살인귀.

그중 검귀 율의 얼굴이 장한설과 겹쳐 보인 것이다.

검귀 율의 얼굴엔 절반을 비스듬히 가르는 흉한 검상이 새겨져 있었다.

왼쪽 눈썹 위에서부터 코를 거쳐 오른쪽 입꼬리까지 이어지는 1인치 넓이의 기다란 검상.

그 검상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장한설의 얼굴과 똑같았다.

‘설마…. 회귀 전의 검귀 율이 지금의 장한설?’

가능성이 있었다.

한수호가 회귀함으로 인해 뭔가가 바뀌었고, 그로 인해 장한설이 황도13궁의 검귀 율이 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은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검귀 율이 활동했던 건 2054년까지.

앞으로 3년이나 남은 시간에 어떤 변화가 생겨 장한설이 검귀 율로 변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회귀 전의 검귀 율은 정말 강했다.

사왕오패급은 아니었어도 그에 준하는 실력자였고, 권마 건과 함께 수많은 마공사를 잔인하게 살해한 인물이었다.

과거의 특무부 작전에서 검귀 율은 권마 건과 함께 게이트로 도망쳤고, 거기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한수호도 그 작전에 참여했고 몇 차례 검귀 율과 검을 섞어봤기에, 그녀의 흉악하고 살기등등한 얼굴을 비교적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정말 검귀 율일까?’

둘이 정말 같은 인물이 맞다면, 귀부암왕 장현오의 딸 장한설이 쌍자궁의 소속이라는 말이었다.

귀부암왕 장현오는 회귀 전의 삶에선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만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회귀 전과 뭔가 상황 같은 게 바뀔 순 있어도 아예 없었던 존재가 새로이 발생하는 일은 없었다.

즉, 장한설과 검귀 율이 동일 인물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것.

‘아무래도 예의 주시해야겠어.’

한수호가 그렇게 마음먹고 있을 때, 양소혜가 말을 건 것이다.

“아니야.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

“무슨 생각을 사람 얼굴 보면서 하는데? 한설이 얼굴에 반한 건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하고 좀 닮은 것 같아서 그래. 갑자기 그 사람 얼굴이 떠올랐거든.”

대충 그렇게 무마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그 말에 이하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수호와 장한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혼자 작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 이렇게 보니까 좀 닮은 거 같긴 하네요.”

“어? 그래? 그러고 보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양소혜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두 사람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이에 한수호는 피식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쌍둥이 동생을 잠시 떠올렸다.

‘설아, 그 녀석도 지금쯤은 저렇게 성장해 있을 텐데….’

동생 한설아를 떠올리자 그녀의 어렸을 적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장한설의 얼굴 위로 살며시 겹쳐졌다.

‘…?’

한수호의 눈이 갑자기 급속도로 커졌다.

귀신을 본 것처럼 크게 놀란 표정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한설아…? 장한설?’

이렇게 놓고 보니 이름도 비슷하다.

‘저 녀석이 설마 설아라고?’

검귀 율의 얼굴이 겹치더니 이젠 동생 한설아의 얼굴까지 겹쳐진다.

회귀 전의 검귀 율. 지금의 장한설. 그리고 한수호의 쌍둥이 동생 한설아.

이 세 사람의 모습이 하나로 이어졌다.

한수호와 한설아는 이란성 쌍둥이라 외모가 그렇게까지 닮지는 않았었다.

게다가 회귀 직후인 10년 전 9살 때 잠깐 봤을 뿐, 실제로는 무려 27년 동안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금방 알아보는 건 무리였다.

한수호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가족이, 한설아가 살아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거라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진정하자. 아직 설아가 맞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당장이라도 한설아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걸렸다.

가면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찾아 죽이려고 사방을 감시 중이다.

자칫 여기서 티를 냈다가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한설아까지 위험했다.

“너, 왜 그래? 귀신이라도 봤냐? 얼굴이 허옇게 떴잖아?”

“오늘따라 이상하긴 한데? 무슨 일이냐, 장태산?”

양소혜와 최지혁이 한수호의 반응에 깊은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건 장한설과 이하윤도 마찬가지.

“쟤 무슨 신내림 같은 거 받았어? 날 보는 눈이 좀 무섭네?”

“언니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거겠지.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넌 또 그게 뭔 소리니?”

이하윤의 엉뚱한 소리에 장한설이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때 정신을 차린 한수호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헛걸 본 것뿐이야. 요즘 잠을 잘못 잤더니 영….”

“잠을 못 자? 밤에 너 뭐 하고 다니는데? 소문에 듣자 하니 아카데미 밖에 따로 집까지 얻었다며? 매일 밤 거기서 늦게까지 머물다가 온다고 말들이 많아.”

양소혜는 별걸 다 알고 있었다.

스토커도 아니고 꼭 전문 탐정을 한수호한테 붙여놓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건 뭘 좀 연구할 게 있어서 장소를 마련한 거고. 내가 그런 거 일일이 설명해줄 이유도 없지 않나?”

“뭐, 그렇긴 하다만…. 수상하긴 수상해. 한설이 바라보는 눈빛도 이상하단 말이지. 이하윤한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장한설이었어? 남자 마음은 갈대와 같….”

“잠깐, 조용히 해봐.”

한수호가 양소혜의 말을 끊었다.

모두 의아해할 때 그들의 귀로 소란스러움이 스며들었다.

“…. 그래서 아직도 음식 준비가 안 됐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뭔 음식을 30분이 넘게 기다리냐고!”

꽤나 성질이 난 백윤후의 목소리였다.

슬쩍 칸막이 틈으로 보니 음식점 매니저로 보이는 양복 사내가 연신 허리를 숙이며 죄송해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직원이 이미 설명해 드렸겠지만,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손님께서 주문하신 쿠롤크 요리는 거의 안 팔리는 음식이라 지하 저장고 깊숙한 곳에 보관돼서 그렇습니다. 저희 대한 식도락에서는 지하 1층부터 4층까지가 모두 재료 저장고로 되어 있으며, 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마법 결계까지 쳐져 있지요. 그렇다 보니 지하 4층까지 내려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아, 됐고. 여기 사장님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친구들 불러놓고 사람 창피하게 이게 뭡니까? 얼른 가서 백윤후가 찾는다고 전해요!”

“손님. 저희 사장님은 지금 외부에 계십니다. 따로 전화라도 드리라고 말씀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매니저도 백윤후가 누구의 아들인지를 아는지 최대한 예의를 차려 대응하고 있었다.

이 소란에 3층에 있는 손님들 대부분이 구경난 것처럼 모여들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강장제로 유명한 크롤프 요리.

하지만 딱히 효과를 봤다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은 거금을 주고 그걸 사 먹으려는 손님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대한 식도락에선 크롤프 고기를 가장 깊숙한 곳에 보관 중인 모양이었다.

“전화 필요 없고요. 직접 오라고 하세요. 직접!”

백윤후도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이는지 욕지거리를 날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장태산. 너 한 눈치 한다?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니까 관심을 이렇게 돌리냐?”

양소혜가 툭 치며 하는 말에도 한수호는 인상을 펴지 않았다.

그가 지금 주목하고 있는 건 옆 테이블의 소란이 아니었다.

이 건물 지하 깊숙한 곳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마치 칼로 철판을 긁는듯한 듣기 싫은 소리였다.

그 소리가 점점 위로 향하고 있었다.

뭔가가 지하에서 지상 쪽으로 빠르게 뛰어오르는 중이었다.

그 뭔가는 한둘이 아니었다.

“빨리 여기서 사람들을 내보내야 해!”

한수호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어?”

“뭐래?”

“…?”

친구들이 어이없어할 때, 한수호는 칸막이를 발로 뻥 차버렸다.

“모두 여기서 나가요, 당장!”

그렇게 외치고는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야! 장태산!”

“어? 갑자기 왜 그래?”

“아래에 무슨 일 생겼나?”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가만히 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이하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몬스터야!”

“…!”

“열 마리, 아니. 그 이상의 몬스터들이 지하에서 뛰쳐나오고 있다고!”

이하윤은 그렇게 소리치며 한수호를 따라 뛰어 내려갔다.

이에 상황을 인지한 장한설과 양소혜, 최지혁까지 모두 뛰었다.

반면 3층에 남은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는 듯 웅성대고만 있었다.

특히 매니저는 긴급히 무전을 켰다.

“보안 요원! 여기 계산 안 하고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층에서 붙잡아….”

-치이익

-꺄아아아악

무전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비명은 순식간에 2층에서 3층 쪽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모, 몬스터다!”

“도망쳐!”

“꺄아악!”

사람들이 마구 뛰어 올라왔다.

어떤 사람들은 물감인지 피인지 모를 새빨간 액체로 온몸을 뒤집어쓴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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