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끼아아아아악.
네이롤 퀸이 더욱 거칠게 발버둥 쳤다.
상태를 보니 구속에서 풀려나기 직전이었다.
한수호는 메시지를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이하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안심한 한수호는 일단, 괴물 사내와의 전투 시에 벽력권을 사용하면서 획득한 포인트가 얼마인지를 확인했다.
-보유 포인트: 17.8NP(+15)/23,860LP
예상대로 괴물 사내와의 전투로 NP가 15나 상승해 있었다.
이로써 양팔의 스탯까지 모두 99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수호는 머뭇거리지 않고 두 팔에 각각 6포인트를 배분했다.
[왼팔] : 99
[오른팔] : 99
신체 외적인 부분의 모든 스탯이 99로 일제히 맞춰진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드득
온몸의 뼈가 마구 뒤틀리고, 근육이, 혈관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높은 수치의 스탯을 한 번에 배분할 때처럼 높은 고양감이 느껴지며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그의 몸에 가득했던 육체의 피로도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걸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메시지까지 등장했다.
>>특성 ‘개조’의 단계가 상승합니다.
>>단계 상승으로 육체가 새롭게 재구성됩니다.
>>모든 디버프가 사라집니다.
>>특성 ‘개조’의 1단계 제한 수치가 확장됩니다.(+999)
>>특성 ‘개조’의 2단계를 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단계 스탯 배분율은 포인트당 10%입니다.
드디어 2단계 항목에도 스탯을 배분하는 게 가능해졌다.
더불어 광폭화 사용으로 인한 패널티도 초기화되었고, 개조의 1단계 항목의 최대치는 999까지로 크게 늘어났다.
‘2단계 스탯 배분율이 좀 걸리지만….’
10% 배분율이니 최소 10NP가 있어야 2단계 스탯 1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스탯 배분이 가능해졌으니까.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포인트를 벌면 되는 거니까.
‘일단, 저놈부터 처리해야겠지?’
한수호는 마지막 쇠사슬을 끊어내려고 발악에 가까운 몸부림을 치는 네이롤 퀸을 바라봤다.
그런데 또다시 한수호를 당황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눈앞으로 네이롤 퀸의 전신 해부도가 등장했다.
마치 소를 부위별로 나눈 그림을 보듯, 네이롤 퀸의 전신이 수십 개의 칸으로 나눠지며 그 안에 숫자가 새겨졌다.
그 구분은 무척이나 세밀한 것이라 얼굴만 해도 눈과 코, 턱, 볼 등으로까지 구분되어 있었다.
게다가 가장 수치가 높은 곳은 검게, 가장 낮은 곳은 하얗게 칠해져 한눈에도 어느 부위가 약한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개조가 또 한층 진화했구나.’
이것만 봐도 상대의 약점이 어딘지 단번에 파악하는 게 가능했으니, 정말 사기적인 특성이 아닐 수 없었다.
네이롤 퀸의 몸에서 가장 약한 곳은 목 바로 아래였다.
다른 부위는 모두 60 이상이었지만, 목 아래의 스탯은 불과 12.
면적은 주먹 하나 정도 크기로 놈의 덩치에 비해선 턱없이 작은 부위였다.
하지만 지금의 한수호에겐 어렵지 않은 목표였다.
한수호는 발광하는 네이롤 퀸 앞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유엽비도 여섯 자루를 모두 챙겨 들었다.
한수호가 다가서자 네이롤 퀸이 속박에서 풀린 손과 발을 이용해 공격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더 이상은 한수호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광폭화 패널티는 사라졌고, 몸의 상처도 완전히 나았다.
가벼운 동작으로 네이롤 퀸의 공격을 피해 접근한 그는 바닥을 톡 찍어 차며 날아올랐다.
양손에 세 자루씩, 총 여섯 자루의 유엽비도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그는 네이롤 퀸의 목 아래를 향해 왼손을 힘차게 휘둘렀다.
카아아앙-
위험을 직감한 네이롤 퀸이 단단한 금속의 송곳 팔로 목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꽈앙
유엽비도를 쥔 손에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앞을 가로막은 송곳 팔을 통째로 터트려 버렸다. 뒤이어 오른손이 활짝 열린 공간을 파고들었다.
콰득
세 자루 유엽비도가 네이롤 퀸의 목 아래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끼야아아아악-
놈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를 때, 다시 한수호의 왼손이 날아들었다.
콰직
유엽비도 여섯 자루가 모두 박혔다. 그 순간 한수호는 양손을 앞으로 세차게 내지르며 벽력권을 발동시켰다.
빠지지지지직
목에 박힌 유엽비도를 통해 엄청난 뇌전이 뿜어졌고,
퍼어엉-
네이롤 퀸의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어 허공을 날았다.
쿠웅
네이롤 퀸의 머리 없는 거구가 바닥에 쓰러졌다.
터져나간 목에서는 핏물이 울컥울컥 솟아 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던전 공략 완료 - [네이롤 퀸의 박멸]
>>던전이 보유한 포인트 35,000LP를 획득합니다.
>>스탯(감지+3, 면역+2)이 상승합니다.
>>60초 후 원하는 장소로 이동이 가능한 게이트가 열립니다.
마침내 끝이었다.
죽을 뻔한 상황을 겪어서인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난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어. 저 녀석이 없었다면….’
이하윤이 이 자리에 없었으면 한수호는 가슴에 구멍이 뚫렸을 때 이미 죽었을 터였다.
우르르르릉
신전이 무너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네크로맨서의 실험실 던전은 조정석의 자폭으로 소멸되었지만, 이 던전은 공략이 끝나면 자동으로 소멸되는 것 같았다.
한수호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뭔가 놓치고 가는 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런 한수호의 시선에 뭔가가 잡혔다.
‘저건….?’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두 가지 물건이 있었다.
엄지손가락 정도되는 검은 보석과 손바닥만 한 주머니 하나.
네크로맨서의 실험실 던전 때와 오버랩 되는 장면이었다.
‘아까 그 괴물 같은 놈이 남긴 건가?’
놈의 몸이 통째로 폭발하면서 워낙 많은 살점이 흩뿌려져 아깐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
한수호는 얼른 두 가지 물건을 챙겨 들었다.
[비밀 서랍장]
-보유 포인트: 5,000LP
-마검사 ‘블라칸’이 수집한 각종 아티팩트가 담긴 중형 아공간 주머니다.
>>포인트를 흡수하여 아티팩트를 파기하겠습니까? YES/NO
[특성석]
-보유 포인트: 6,000LP
-마검사 ‘블라칸’의 특성과 기술이 집약된 새로운 특성이 구성되었습니다.
-특성, ‘쇄혼’이 새겨져 있습니다.
>>특성을 흡수하고 포인트를 획득하겠습니까? YES/NO
전과 유사한 내용의 아티팩트형 아공간 주머니와 특성석이었다.
난이도로 치면 이번이 훨씬 힘들었지만 얻은 보상은 왠지 더 하향된 느낌.
‘이렇게 살아난 것만으로도 큰 보상을 받은 거야.’
한수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정신을 잃은 이하윤을 안아 들었다.
그때 한수호 앞으로 게이트가 나타났다.
우우웅-.
잔 떨림을 보이는 푸른 물결의 게이트를 보자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제 돌아가자.’
한수호는 이하윤과 함께 게이트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 * *
‘또 여기네?’
한수호는 두 번째로 보는 이하윤의 기숙사 방을 둘러보며 머쓱했다.
자기도 모르게 이동을 원하는 장소로 이곳을 떠올린 모양.
혼자서 입맛을 다신 그는 이하윤을 침대에 눕히고 밖으로 나서려다가 멈칫했다.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이하윤을 바라보자 그녀의 흉측한 얼굴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날 위해 희생을 감수하다니….’
그냥 저 상태로 두기엔 너무 미안함이 컸다.
이하윤이 대체 어떤 능력이 있어 죽음에 이를 정도의 상처를 회복시켰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의 얼굴을 망가뜨리면서까지 한수호의 목숨을 살렸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보답이라 생각하고 사용해 보자.’
한수호는 이하윤에게 ‘약탈[1]’을 사용하기로 했다.
바로 침대로 다가가 옆에 걸터앉은 그는 손을 그녀의 얼굴에 가만히 가져다 댔다. 그리고 약탈[1]의 특성을 발동시켰다.
투웅
한수호의 몸이 튕기듯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이하윤의 상처 가득한 얼굴에서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와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끄으으….”
지독한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상처를 약탈한다더니 고통까지 함께 가져오는 모양이었다.
네이롤 퀸의 송곳에 가슴을 관통당할 때 느꼈던 고통과 맞먹는다.
심장은 불타는 듯 뜨거웠고, 머릿속에선 천둥이 내려쳤다.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어야 했다.
온몸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5분? 10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한수호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옷은 피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후아아…. 젠장할.”
정신이 들자마자 욕부터 나왔다.
이건 정말 할 짓이 아니었다.
이 약탈 특성으로 아무리 내성을 얻을 수 있다지만 매번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한다면 두 번 다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제길. 내 얼굴도 맛이 갔잖아?’
얼굴을 더듬어 보니 왼쪽 볼에 이하윤과 비슷한 피딱지 같은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이 얼굴로 24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거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흉터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때, 한수호의 눈앞으로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내성을 한가지 선택하세요. (노화/독/감속/불/고통)
‘이거구나?’
약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내성이 5가지나 나왔다.
이걸 다 가질 수는 없고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노화 내성이 좀 끌리긴 하지만, 일단은 고통 내성이 먼저겠지?’
한수호는 큰 고민 없이 고통을 선택했다.
그러자 바로 알림 메시지가 등장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이 생성됩니다.
>>내성 효율은 13%입니다.
나쁘지 않은 효율이다.
이전에 비해 고통이 13% 줄어드는 것이니 아픔을 더 잘 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
‘그런데 내성 효율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
생각하기 무섭게 눈앞으로 막대그래프가 짠 하고 등장했다.
왼쪽 세로 줄엔 효율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고, 오른쪽 가로 줄엔 ‘고통’이라는 글자와 함께 13%만큼 막대가 채워져 있었다.
‘뭐, 알아보긴 쉽네.’
생각을 떠올리면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방식이었다.
간단히 그래프의 확인을 끝낸 한수호는 잠시 이하윤의 얼굴을 살폈다.
눈까지 뒤덮었던 피딱지는 어느새 사라졌다. 하지만 코 아래 하관에 있는 상처까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전보다 많이 흐릿해졌으니 약탈의 효과는 확실해 보였다.
‘앞으로 두세 번은 더 해야 완전히 사라지겠는데?’
약탈로 인한 고통 체감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도 내 목숨을 살렸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너무 이기적이잖아?’
도덕적인 책임감과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 서로 맞부딪치며 한수호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일단, 하는 거 봐서.’
스스로 합의점을 찾은 그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시간을 보니 벌써 밤 11시가 거의 다 됐다.
얼굴에 생긴 흉터를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쓴 그는 꺼져 있던 공법폰을 켰다.
폰을 켜자마자 알림 메시지가 마구 떠오른다.
대부분은 양소혜와 최지혁이 전화를 건 것이었고, 간간이 장한설의 문자와 미수신 전화도 끼어 있다.
그중엔 김재우의 것도 있었는데, 5분 간격마다 연락한 걸로 봐서는 아주 난리가 난 듯했다.
한수호는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인 대한 식도락 음식점으로 이동하면서 김재우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벨이 울리자마자 덜컥 받아버렸다.
-너 어디야!!
귀청이 떠나가라 소리부터 친다.
이에 한수호는 폰을 귀에서 멀찍이 떼었다가 다시 붙였다.
“던전은 어떻게 됐어요?”
-야이, 씨! 살아 있었으면 재깍재깍 전화를 했어야지, 이제 와서 뭐 하는 거냐, 어!
“저 죽다 살아났어요. 던전 어떻게 됐냐니까요?
-후…. 내가 제명에 못 살지, 못살아. 던전이고 뭐 고 빨리 대한 식도락 건물 앞으로 튀어와. 네 친구들이 너 때문에 아주 난리다.
“목소리가 안정적인 거 보니까 잘 해결됐나 보네요. 지금 가는 중이니까 5분만 기다려요.”
한수호는 전화를 끊고 공법폰으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살아 있으니까 걱정 마라. 곧 도착한다. 기다려.]
그것만 딱 보내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
다시 회신이 오거나 전화가 오면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아예 안보고, 안 받기로 했다.
잠시 후, 한수호는 대한 식도락 앞에 도착했다.
그곳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경찰차 수십 대에 특무부 전술 차량 다섯 대, 거기다 정의국 전용 SUV도 다수 보이고 있었다.
바쁘게 오가는 마공사들도 많았다.
모두 몬스터들과 한바탕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다.
건물 앞 사거리는 엄청난 범위로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고, 그 주변엔 시민들이 꽉 들어차 난리 법석이었다.
한수호는 자연스럽게 바리케이트를 넘어 안쪽으로 접근했다.
그 모습에 경찰이 제지하려고 했으나 근처에 있던 김재우가 오케이 싸인을 보내주자 순순히 물러났다.
한수호는 김재우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검은 천으로 뒤덮인 물체들이 잔뜩 있는 곳에 있었는데, 가까이 가자 피 냄새가 진하게 피어올랐다.
“이게 다 네이롤 사체인가요?”
“그래. 희생자들은 건물 안에 있고. 그런데 너 대체 어디서 뭘….”
김재우가 정황을 물으려는 그때, 근처 구급차량에서 치료받고 있던 장한설이 한수호를 발견하고 그대로 달려 나왔다.
“야, 장태산! 하윤이는? 하윤이는 어딨고, 왜 너만 여기에 있는 건데! 너 설마, 혼자만 도망친 거야?”
그녀는 다짜고짜 한수호의 멱살을 잡아채 마구 흔들어 댔다.
악의가 없어 보여서 굳이 피하진 않았지만 뇌가 흔들릴 정도로 거칠어지자 그녀의 손목을 콱 움켜쥐었다.
그리고 담담한 얼굴로 장한설을 바라봤다.
“사람 목 함부로 잡아 흔들지 마. 그러다 손목 나간다.”
약간의 위협이 담긴 음성.
하지만 그의 속내는 더 복잡했다.
‘장한설. 이 녀석이 정말 내 동생 한설아일까?’
장한설을 바라보는 한수호의 눈빛엔 그리움과 애틋함, 그리고 의혹까지 온갖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눈빛에 움찔한 장한설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