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71화 (71/375)

71화

“어제 외박했어?”

아침 일찍 기숙사에 돌아가니 이하윤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외박은… 아닐걸?”

컨테이너 하우스도 어차피 한수호의 집이니 당연히 외박이 아니다.

“내 연락은 왜 씹는데?”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

“얼굴은 또 왜 가리고 있어? 상처라도 난 거야?”

이하윤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녀는 어제 정말 너무 놀랐다.

던전에서 한수호에게 회생 특성을 사용한 뒤 정신을 잃었다가 일어났는데, 어느새 자신의 방에 와 있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건 한수호가 죽지 않았음을 의미했기에 일단 안심한 이하윤은 급히 장한설에게 연락을 취했다.

안 그래도 이하윤을 찾아 기숙사로 달려오고 있던 장한설은 연락을 받자마자 한달음에 도착했고, 그녀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고 크게 안심했다.

이하윤은 장한설에게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던전 안에서 네이롤 퀸을 마주했으며, 정체불명의 괴물 사내를 만나 죽을 뻔했던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줬다.

그러다 장한설 덕분에 자신의 얼굴에 흉터가 예전에 비해 많이 사그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더할 나위 없이 놀라고 말았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회생으로 되돌렸으니 흉터가 더욱 악화되어야 정상인데 오히려 상태가 좋아지다니.

그 원인이 한수호에게 있음은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보냈는데 결국 씹혔다.

늦은 시간까지 잠도 안 자고 연락을 기다렸지만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직접 전화를 걸어봤지만 한수호의 전화기는 꺼져 있는 상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녀는 날이 밝자마자 한수호가 있는 기숙사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한수호는 방에 없었다.

결국 입구에서 한수호가 돌아오길 무작정 기다린 것.

“좀 긁혔지 뭐. 오늘내일 안에 없어질 거라 괜찮아.”

“네이롤 퀸한테 당한 거면 빨리 치료받아야 해.”

“괜찮다니까?”

“….”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한수호는 이하윤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고, 이하윤은 한수호의 냉정한 반응에 살짝 마음이 상했다.

“크흠. 어쨌든 어젠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살았어.”

“아니야. 제대로 도움이 되지도 못했는데 뭐.”

“네가 없었으면…. 죽었을 거라는 거 너도 알잖아.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마라. 앞으론 남보다 네 목숨부터 챙겨. 그게 정상이야.”

“오빠가 죽었으면 나도 죽었을 텐데? 그땐 오빠부터 살리는 게 정답이었어.”

“어쨌든.”

대화는 다시 끊겼다.

뭔가 다른 말을 더 해보려고 하는 이하윤에게 한수호가 뭔가를 꺼내 건넸다.

“이거 한번 먹어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그건 파란 액체가 찰랑거리는 손가락만 한 유리병이었다.

“포션?”

“응. 상처 회복에 효과가 좋을 것 같긴 한데, 나도 안 써봐서 잘은 몰라.”

“고마워. 그리고 나도 이거 돌려줄게.”

이번엔 이하윤이 너클팽을 꺼내 넘겼다.

하지만 한수호는 그걸 받지 않았다.

“그건 네가 써. 나한텐 필요 없는 물건이거든.”

말이 그렇지 정말로 필요 없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너클팽을 주려는 의도였다.

“꽤 좋은 무기던데….”

“나보단 네가 쓰는 게 더 어울려.”

근접전을 위해 체술을 익힌 이하윤에겐 너클팽만 한 무기가 없었기에 한수호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말? 그럼, 고맙게 쓸게.”

“아, 그리고. 언제 한번 시간 좀 내. 그 흉터 좀 더 봐줄 테니까.”

“시간을…. 내라고?”

이하윤이 우물쭈물했다.

한수호는 이하윤의 얼굴 흉터를 약탈로 흡수하려는 것이지만 이하윤의 귀에는 데이트 신청으로 들린 것이다.

“바쁘면 더 나중으로 미뤄도 되고.”

“아니, 안 바빠. 조만간 시간 내 볼게.”

“그래, 그럼. 연락 주고.”

한수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기숙사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하윤은 들릴락 말락 작게 소리쳤다.

“내 얼굴…. 고마워! 오빠한테 이런 특성이 있다는 건 비밀로 할게.”

이하윤은 한수호가 엄청 강력한 치유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어떤 약이나 치료술로도 어쩌지 못한 얼굴의 흉터를 단번에 호전시킬 수 없었으니까.

한수호는 그게 오해라는 걸 알지만 아니라고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가볍게 손을 흔들며 기숙사로 들어가 버렸다.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던 이하윤은 손에 쥔 너클팽을 꼭 움켜쥐고선 발길을 되돌렸다.

* * *

‘어우, 간질거려.’

방으로 돌아온 한수호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팔다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특별히 그럴 만한 행동이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하윤과 단둘이 서서 고맙네, 네 덕분이네 하며 감사를 표하는 상황이 왠지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날 살렸으니까 얼굴의 흉터는 치료해 주는 게 맞겠지?’

한수호는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는 살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그만한 보답을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하윤의 눈빛을 대하자니 심장이 막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뭐, 아무튼.’

조만간 이하윤을 따로 만나게 되면 약탈만 사용하고 얼른 헤어지자고 내심 마음먹었다.

한수호는 서둘러 할 일을 했다.

방에 있는 옷장 깊숙한 곳에 잘 숨겨 놓은 라뮬, 그랑, 로크를 꺼내 착용구에 잘 끼웠다.

혹시나 싶어 빈 상자에 그걸 담아놓고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보려 했으나, 역시나 코스트 오버로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라뮬만 착용구에 끼워 걸치고 나머진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소용량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소원의 묘목’을 꺼냈다.

새로 하루가 시작되어서인지 묘목엔 작은 딸기처럼 생긴 열매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이걸 먹으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이거지?’

비물질적인 것으로 한정이 되어 있다지만, 그게 된다면 정말 엄청난 물건이었다.

한수호는 김재우와의 약속 시간인 9시까지 아직 2시간이나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열매를 땄다.

입으로 가져가자 달콤한 향기가 식욕을 불러일으켰다.

열매의 크기는 작아서 한입에 쏙 들어갔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는다.

꿀처럼 단맛이 느껴지면서도 시원한 청량감도 상당했다.

금세 녹아버린 열매는 순식간에 식도를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바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비물질적인 것에 한하여 소원 하나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소원을 말하세요.

한수호는 살짝 당황했다.

열매를 섭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목록이 객관식처럼 나올 줄 알았는데 주관식이다.

어쨌든 소원을 말하라고 하니 그러기로 했다.

‘지금 나한테 가장 필요한 건…. 이프리트에 대한 정보지.’

물질적인 것을 제외한다면 그게 가장 중요했다.

“이프리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

그렇게 말을 꺼냈을 때, 곧바로 다른 메시지가 등장했다.

>>소원이 너무 포괄적입니다. 좀 더 명확한 소원을 말씀해 주세요.

‘포괄적이어서 안 된다라….’

하긴 열매 하나 먹었다고 저런 소원을 바로 들어준다면 말도 안 되긴 했다.

“내 아버지 한철형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려줘.”

>>소원이 너무 포괄적입니다. 좀 더 명확한 소원을 말씀해 주세요.

이것도 불가능했다.

한수호는 그 후로도 계속 이런저런 소원을 말해봤지만 포괄적이라서 안 된다는 대답만 반복적으로 나왔다.

‘뭐야, 씨. 소원을 들어준다더니 순 뻥이네.’

도대체 어떤 소원이어야 가능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뜩 떠오른 생각에 아주 명확한 소원을 말해보기로 했다.

“1천만 LP를 올려줘.”

레벨 업 포인트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데다가 포괄적인 사항도 아니니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반만 맞았다.

>>감당할 수 없는 소원입니다. 최대 1만 LP까지만 가능합니다. YES/NO

가능은 했지만 고작 1만까지란다.

입맛을 다신 한수호는 NO를 선택하고 이번엔 NP를 올려보기로 했다.

“1천 NP를 올리겠다.”

>>감당할 수 없는 소원입니다. 최대 10NP까지만 가능합니다. YES/NO

그나마 이게 좀 나았다.

1만 LP로는 뭔가 해볼 만한 게 없지만, 10NP로는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바로 YES를 선택하자 10NP가 상승했다는 알림이 떴다.

한수호는 그 10NP를 이용해 개조 특성의 2단계 항목인 ‘시각’ 수치를 6에서 7로 올렸다.

순간 한수호의 눈에서 찰나간 빛이 번쩍했다.

따끔한 느낌에 눈을 살살 비비던 그는 천천히 시야로 들어오는 사물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10미터나 떨어져 있는 기숙사 문손잡이의 열쇠 구멍이 마치 코앞에 있는 것처럼 크게 확대되어 보인다.

마치 눈에 6배율의 저격용 스코프를 단 것처럼 주변의 모든 사물이 당겨진 것.

한수호는 머리를 흔들었고 그제야 확대된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와…. 이게 시각 스탯 7의 효과라고?’

정말 엄청난 효과였다.

처음 시각 스탯 5를 얻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을 겪긴 했다.

하지만 그땐 4배율 정도였다.

‘그때보다 스탯 2가 늘면서 6배율로 바뀐 건가?’

스탯 6에선 큰 변화가 없었지만 7은 달랐다.

아마도 2 스탯마다 변화가 생기는 모양.

일단은 그렇게 이해하면 될 듯했다.

눈으로 스코프처럼 당겨서 보는 방법은 의외로 쉬웠다.

그냥 보고자 하는 목표를 집중해서 보면 알아서 6배율로 확 당겨져 보였으니까.

‘매일 열매 따 먹으면서 2단계 스탯만 줄기차게 올려도 엄청나겠는데?’

하루에 1 스탯씩만 올려도 앞으로 석 달 정도면 시각을 99로 채우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다.

2단계 스탯을 올리는 NP의 배분율이 10%밖에 안 되서 언제 올리나 걱정했는데, 소원의 묘목 덕분에 간단히 해결됐다.

‘일일 미션으로 얻는 포인트는 1단계 스탯에 쓰고, 열매로 얻는 포인트는 2단계 스탯에 쓰면 딱이네.’

거기다 가끔 급할 때, 열매로 1만 LP를 얻어내면 아주 제대로 꿀을 빨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수호는 크게 만족했다.

가장 원하는 소원은 해결할 수 없었지만 NP를 10씩 얻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1단계는 죄다 99에 맞춰졌고, 2단계는 시각만 7이군.’

간만에 자신의 신체 스탯을 살핀 한수호는 남은 포인트도 확인했다.

-보유 포인트: 3.8NP / 13,666LP

열매로 얻는 NP 외에는 당분간 쌓아놓기로 했다.

전날의 경험을 봤을 때, NP를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배분하게 되면 많은 변수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디버프를 한 번에 없애버린다거나, 쿨타임까지 초기화하는 등의 부가적인 효과와 같은 변수를.

이제 1단계 스탯은 999까지로 확장되었으니 크게 급할 것도 없었다.

아직까진 신체 스탯이 99를 넘어가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 대단한 사자도왕 송혁조차 99가 최대치였으니까.

‘이건 됐고. 이제 미션을 해결할 차롄가?’

오늘의 미션은 모처럼 매우 간단했다.

손뼉 치며 팔굽혀 펴기 5천 회.

1시간 정도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미션이었다.

‘바로 시작하자.’

한수호는 곧바로 미션을 실행했다.

거실에선 한수호의 숨소리만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사이 친구들과 사기환에게 전화가 왔지만 모두 관심 밖이었다.

그렇게 57분이 지났고, 미션은 완수되었다.

간단히 샤워를 마친 한수호는 NP 수치가 4로 상승한 것을 확인하고는 생수를 마시며 폰을 확인했다.

[미수신 통화]

최지혁X3

양소혜X5

장한설X1

사기환X2

목록에 장한설의 이름이 있는 걸 확인한 한수호는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어? 아니, 아니야. 하윤이가 방에 없길래, 혹시 너랑 같이 있나 해서 전화해 본 거야. 좀 전에 하윤이 만났으니까 됐어.

장한설도 뭔가를 느낀 걸까?

어째 통화상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느낌이었다.

“너 혹시 지리산 가본 적 있어?”

한수호는 돌직구를 날렸다.

장한설이 동생 한설아가 맞다면 지리산이라는 말에 반응이 없을 수가 없었다. 지리산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가족 모두와 헤어졌으니까.

-응? 지리산? 이 시국에 거길 왜 가? 5년 전이면 모를까. 지금은 깊은 산 중엔 십중팔구 몬스터들이 숨어 사는 거 몰라?

“그럼 10년 전에는? 어릴 때, 다른 형제랑 같이 지리산에 놀러 간 적 없냐고.”

아직까지 반응이 없어서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 뭐래? 무슨 옛날 고려적 얘길 꺼내고 그래? 게다가 난 무남독녀거든요? 이상한 소리 하려거든 끊어. 나 바쁘다.

장한설은 짜증 난다는 듯 그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뭐지? 왜 아무 반응이 없지?’

솔직히 이 정도 말했으면 뭔가 반응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장한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반응이었다.

뭔가 움찔하는 기색이라던가, 잠시 생각하는 머뭇거림도 없다.

‘설마 기억이 없는 건가?’

이 정도 무반응이면 장한설이 해리성 기억상실로, 과거의 끔찍한 충격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장한설이 한설아가 아닌 것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긴 한데….’

동생 한설아가 맞다면 왼쪽 어깨에 삼각형 모양의 작고 붉은 점이 있을 것이다.

피부 이식을 하지 않은 이상 붉은 점은 그대로 있을 것이니 그걸 확인하면 간단했다. 하지만 19살 여자애의 어깨를 한수호가 무슨 수로 확인해 볼 수 있을까?

‘강제로라도 까보는 수밖에.’

그걸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장한설이 정말 한설아라면 힘을 합쳐서 어머니와 형, 그리고 막내 한별이까지 찾아내야 했다.

한수호는 우선 김재우와의 약속부터 끝마친 뒤 장한설을 직접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