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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75화 (75/375)

75화

“다 왔다!”

안기보는 부상을 입은 고태석을 업은 채 절룩이면서도 열심히 뛰고 있었다.

이제 고지가 코앞이었다.

던전 입구까지의 거리는 약 30여 미터.

안기보는 살 수 있다는 희망에 찢긴 다리의 고통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상처 개선 특성은 이미 너무 남발을 해버려서 장시간 쿨타임에 들어갔다.

최대 10회까지는 충전을 시켜 놓고 필요한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10회를 다 사용해 버리면 6시간의 쿨타임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는 물론이요, 고태석의 어깨가 쩍 갈라진 상처에도 더 이상은 특성을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너무 성급했어.’

평소 친했던 고태석이기에 그가 뭘 하려는 건지는 금방 알아챘다.

이왕 던전에 들어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건 그도 원치 않았으니 가볍게 몬스터 몇 마리 잡아서 용돈벌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감옥 안에서 튀어나온 케르벨크는 무려 11마리였다.

그때만 해도 특급 마공사 다섯이서 케르벨크 11마리를 상대하는 건 큰 위협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재희는 정면 돌파 대신, 후퇴를 선택했다.

결국 3층까지 물러섰지만 고태석과 안기보는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케르벨크를 때려잡으려 했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원래는 팀원 모두와 힘을 합쳐 탈출을 감행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윤재희와 다른 팀원 둘이 이들이 벌인 짓을 눈치챘기 때문에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이대로 던전을 나간다면 지시 불이행에 명령 불복종 등의 죄목이 붙여져 특무부 감사실에 넘겨질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안기보와 고태석의 마공사 인생은 끝장이었다.

그래서 그 셋을 몬스터들 앞에 내던져 고기 방패로 삼았다.

몬스터들이 그들을 잡아 죽이는 틈에 두 사람은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 던전의 보스로 보이는 듀라한이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고 자신들 뒤만 쫓기 시작한 것이다.

놈은 두 사람을 쫓아오면서 쇠창살을 부셔 몬스터들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를 잡듯이 약한 몬스터들을 먼저 덤벼들게 만들어 두 사람의 힘을 먼저 소진시키려 했다.

충분히 죽일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듀라한은 두 사람에게 계속해서 적당한 상처만 입히기만 했다.

그것이 안기보가 상처 개선의 특성을 남발하게 만들기 위한 함정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드디어 1층에 도달했을 때, 안기보의 특성이 쿨타임에 들어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졌다.

이를 알아본 듀라한은 전력으로 두 사람을 쫓아 죽이려 들었다.

안기보가 힐끗 뒤돌아보니 듀라한이 벌써 20미터 뒤까지 따라붙었다.

온갖 폭발물로 방해를 했음에도 놈은 더욱 멀쩡해진 모습으로 두 사람을 쫓아왔다.

출구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10미터.

몇 미터만 달려가다 점프하면 바로 밖으로 나가 던전 입구에 설치된 고압 철망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

그때였다.

지지직-

던전 출구 바로 앞으로 돌연 커다란 구체가 등장하더니 그 안에서 세 사람이 번쩍하고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들은 죽었어야 할 윤재희와 김재우, 그리고 아카데미 학생이었다.

“뭐, 뭐야! 니들 거기서 안 비켜”

안기보가 소리치며 검을 휘두르려 했고, 고태석은 아예 한 손으로 총을 꺼내 그들을 겨눴다.

하지만 그들은 다음 행동을 옮길 수가 없었다.

쉬익-

아카데미 학생이 그들 앞에서 귀신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의 섬뜩한 파공음.

스칵.

서걱.

“끄아아아악!”

총을 거머쥔 고태석의 팔이 공중으로 날았다.

그래도 그는 고통에 찬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었지만, 안기보는 그럴 수조차 없었다.

푸슈슈슈슛

머리가 사라진 목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한수호는 목 없는 안기보의 시체를 발로 뻥 차내고 소리를 내지르는 고태석의 목을 콱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주하여 달려오고 있는 듀라한을 향해 고태석을 힘껏 내던졌다.

“두 분은 빨리 밖으로 나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같이 나가야지!”

김재우는 이게 뭔 소린가 싶어 소리쳤다.

“이대로 저까지 나가면 이 던전 폭발합니다.”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거짓도 아니다.

한수호는 지금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있었으니까.

>>발자크의 무한한 관심으로 던전이 10일간 봉인됩니다.

>>봉인 중에는 발자크의 사도만이 던전을 출입할 수 있습니다.

>>봉인까지 남은 시간: [00:04:56]

메시지는 한수호에게만 보여지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개조 특성이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5분 뒤면 이 던전이 잠긴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즉, 지금 한수호가 김재우와 함께 던전을 벗어난다면 10일 동안은 이 던전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10일 뒤 발자크의 사도에 의해 마나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이니 어찌 도망칠 수 있을까.

“태산아. 차라리 폭발하게 두자.”

김재우도 한수호가 말한 던전 폭발이 어떤 것인지 안다.

아카데미 역사관 폭발을 목격했고, 합정역 근처의 지하던전도 폭발 직전에 간신히 폐쇄된 걸 직접 봤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한수호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이대로 한수호를 두고 여긴 벗어난다면 왠지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절 믿고 먼저 가세요.”

한수호는 김재우에게 등을 보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선 듀라한은 마치 한수호를 기다리는 듯했다.

“태산아!”

“나가자마자 고압 철망 가동시켜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수호가 듀라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재우는 어두운 통로 속으로 사라져 가는 한수호를 지켜보다가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

김재우는 혼자서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윤재희를 돌아봤다.

정신이 혼미한지 눈빛이 다시 흐릿해져 있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장태산!’

김재우는 윤재희를 똑바로 업은 뒤 던전 출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 * *

키에에엑!

크허어엉!

라뮬이 휘둘러질 때마다 몬스터들이 빠르게 죽어 나갔다.

듀라한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수호가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걸 지켜만 봤다.

‘저건 평범한 보스가 아니야.’

듀라한은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들과 사뭇 달랐다.

언데드 몬스터라는 점만 빼면, 거의 인간에 준하는 지성을 지닌 것 같았다.

상황을 읽을 줄 알고,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위협이 되는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4분 뒤면 이 던전이 잠긴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일부러 하급 몬스터들을 먼저 내보내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다.

던전이 잠기면 누구도 이 던전에 들어올 수 없고, 나갈 수도 없게 될 테니 그때부터 한수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생각이리라.

‘그렇게는 안 되지!’

한수호는 남은 4분이 지나기 전에 듀라한을 처치하고 던전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놈을 빠르게 약화시킨 뒤,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일격에 놈의 숨통을 끊어야 했다.

‘핵은 머리에 있겠지?’

언데드의 특성상 신성력이 없으면 처치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신성력이 없더라도 강력한 마나력을 담아 핵을 파괴한다면 아무리 언데드라도 소멸시키는 게 가능했다.

한수호는 라뮬로 주변의 몬스터들을 산산이 조각내는 한편, 듀라한을 처치할 방법을 빠르게 모색했다.

‘남은 포션은 두 개뿐이야.’

포션 두 개로 더욱 강력해진 듀라한을 얼마나 약화시킬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놈을 약화시킨 뒤 라뮬을 이용해 핵을 파괴시켜야 했다.

‘시간 끌 필요 없이 바로 끝장낸다!’

한수호는 마나력을 힘껏 끌어올렸다.

푸하아아악

그 힘에 라뮬이 뿜어내는 화염이 더욱 거대해졌다.

“타하!”

한수호가 기합성을 내지르며 라뮬을 수직으로 휘두른 순간 거대한 불의 칼날이 통로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촤아아악!

그곳에 몰려있던 몬스터들 대여섯 마리가 단숨에 찢겨나갔고, 한수호는 그 틈을 이용해 듀라한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도 듀라한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타고 있는 말을 몰아 뒤로 빠르게 물러섰다.

하지만 이는 한수호가 오히려 바라던 상황이었다.

째앵!

듀라한이 물러서는 지점으로 미리 던져 놓은 포션이 깨지며 푸른 액체가 확 뿜어졌다.

치이이이익

포션액을 뒤집어쓴 듀라한은 고통스러운지 괴성을 내지르며 한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악!

“하나 더 있다, 이 새끼야!”

곧바로 마지막 포션을 통로 천장으로 던졌고, 그것도 깨지며 듀라한을 포션액으로 뒤덮었다.

캬아악! 키아아아악!

듀라한은 온몸으로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대검을 휘둘렀다.

위험을 느꼈는지 직접 한수호를 해치우려 나선 것이다.

‘127, 125, 121….. 117!’

듀라한의 신체 스탯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었다.

던전 버프를 받아 131까지 치솟았던 수치는 어느새 11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잠시 115까지 내려갔던 스탯 수치는 거기서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한수호는 듀라한의 무자비한 대검 공격을 피하면서 놈을 올려다봤다.

썩어 문드러져 있던 놈의 신체 일부가 치료되면서 멀쩡한 피부를 잠시 가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부는 다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광

라뮬로 대검을 쳐낸 뒤 머리를 꽉 껴안고 있는 듀라한의 왼팔을 베어냈다.

살짝 얕았는지 놈의 팔은 반만 베어졌다.

그런데 그 즉시로 놈의 스탯이 117로 상승해 버렸다.

‘젠장…. 포션 두 개로는 부족한 건가?’

지금 한수호의 오른팔 스탯은 119다.

이 힘으로는 듀라한에게 얕은 상처만 입힐 수 있을 뿐,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상처를 입을수록 듀라한은 온몸이 썩어들어가며 더욱 강력해진다.

오죽했으면 치료계열 특성을 지닌 안기보를 단칼에 죽여버린 걸 후회할까.

‘다른 방법은…. 없나?’

남은 시간은 2분여.

서두르지 않으면 듀라한을 해치우지 못하고 던전을 탈출해야 할지도 몰랐다.

뒤를 힐끔 돌아보니 그런 한수호의 속내를 예상이라도 했는지, 던전 출구 앞으로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도망치는 것도 쉽지가 않겠어. 치료 특성으로 놈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핵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 잠깐!’

갑자기 떠오른 생각.

생각해보니 한수호 자신에게도 치료와 다름없는 특성이 있었다.

약탈[1].

상대의 상처나 상태 이상을 약탈해 오는 이 특성이면 듀라한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걸 사용하면 한수호 자신도 상처가 가득한 몸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흡수한 상처를 내가 버텨만 낸다면….’

그게 가능하면 마지막 일격을 날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해보자.’

이건 도박이었다.

그것도 실패하면 바로 죽음과 직결되는 위험성이 다분한.

하지만 한수호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해내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버티면 되는 거다!’

이를 꽉 앙다문 한수호는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듀라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악

듀라한의 머리통이 괴성을 지르며 강력한 풍압이 담긴 대검을 휘둘렀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갗이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한수호는 그런 건 상관도 하지 않았다.

대검을 피해내면서 말 몸통에 바짝 붙어선 뒤 듀라한의 발목을 왼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가장 먼저 벽력권을 일으켜 놈의 몸에 짧게나마 경직을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약탈[1]을 발동시켰다.

화아아악

듀라한의 다리에서 시작된 찬란한 빛이 순식간에 놈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 빛에 휩싸이자 듀라한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끼아아아아아아악!

듀라한이 발버둥치고, 놈이 타고 있던 말 역시 펄쩍 뛰었다.

그럼에도 한수호는 다리를 놓지 않았다.

‘110, 103, 92, 88!’

듀라한의 스탯이 한순간에 88까지 떨어졌다.

약탈로 놈의 썩은 상처가 한수호에게로 전이되었고, 그로 인해 치료가 진행되면서 놈의 몸은 정상적인 피부로 빠르게 바뀌었다.

후우웅

놈이 대검으로 한수호의 팔을 잘라내려 했다.

스탯을 더욱 낮추고 싶었지만 이 공격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한수호는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때,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내성을 한가지 선택하세요.(독/불/물/멀미/구토/고통)

이하윤에게 약탈을 사용했을 때에는 보지 못했던 내성이 몇 개 추가되었다.

‘이번에도 고통 내성으로!’

한수호가 빠르게 고통 내성을 선택하자,

>>‘고통’에 대한 내성이 생성됩니다.

>>내성효율은 21%입니다.

무려 21%나 되는 고통 내성이 추가되었다.

“크윽!”

내성이 추가되면서 약탈한 상처들이 한수호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도합 34%나 되는 고통 내성이 있음에도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끔찍했다.

뜨겁고, 추웠으며, 현기증이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온몸으로 개미가 기어 다니며 신경을 마구 물어뜯는 것 같았다.

한수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모든 걸 참아냈다. 그리고 약화한 자신의 신체를 돌아보며 당황해하는 듀라한을 응시했다.

“잘 가라, 빡대가리.”

한수호가 라뮬을 쥔 손으로 ‘얼음불’ 특성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파캉!

라뮬이 수천 조각으로 깨져나가더니 재결합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한수호의 손에는 총 길이가 3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장창이 쥐어져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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