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76화 (76/375)

76화

듀라한의 상처를 흡수한데다가 한꺼번에 많은 마나력까지 사용해서일까?

한수호는 눈이 흐릿해짐을 느껴야 했다.

그래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타깃을 응시했다.

듀라한은 한수호의 손에서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창검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는지 황급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야, 이 빡대가리 새끼야. 가려면 말이지….”

한수호는 창검을 든 손을 뒤로 크게 젖혔다.

“목은 내놓고 가라고!”

쾅!

손을 뿌린 순간 그곳에 강렬한 소닉붐이 터졌다.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커다란 소닉붐의 충격에 주변 몬스터가 일제히 튕겨 나갔다.

어둠 속에서 빛이 번쩍했다.

한수호와 듀라한 사이의 공간에 하얀 궤적이 그려졌고, 그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창검은 정확히 듀라한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퍼어억-

캬악!

창검은 큰 덩치의 듀라한을 그대로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통로 천장에 듀라한을 통째로 박아 버렸다.

쿠르르르릉.

던전이 크게 뒤흔들렸다.

한수호는 가누기도 힘든 몸을 움직여 듀라한을 향해 달려갔다.

통로 천장에 듀라한을 꼬치 꿰듯 꿰어 박아버린 창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칭

창검은 다시 단검 형태로 변해 한수호의 손에 쥐어졌다.

쿠웅

듀라한의 몸통이 바닥에 떨어지고,

데구르르르

놈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러 한수호의 발 앞에 멈췄다.

키아악

그 상황에서도 듀라한은 입을 벌려 괴성을 내질렀다.

놈의 몸통은 화염에 휩싸여 불타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스탯 수치는 다시 상승하고 있었다.

한수호는 혼미한 와중에도 듀라한의 머리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오른손을 움켜쥐며 특성 ‘쇄혼’을 발동시켰다.

파앙

오른손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 상태로 한수호는 듀라한의 머리통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리꽂았다.

꽈아아아아앙.

주먹은 듀라한의 머리통을 박살 내며 바닥까지 파고들었다. 순간.

즈아앙.

주먹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커다란 동심원이 퍼져나가더니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꽈과과과과광.

바닥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한수호는 무너진 구멍 속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런 그의 귓가로 누군가의 음침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긱슬레이…. 놈을 향한 복수를 채 펼치기도 전에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게 될 줄이야. 하지만 나, 쿠마는 절대 혼자 가지 않는다. 너 또한 이 던전과 함께 소멸되고 말리라….]

듀라한의 것으로 생각되는 한 맺힌 음성이 끝난 직후, 한수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 공략 완료 - [암흑기사, 듀라한의 소멸]

>>던전이 보유한 포인트 50,000(+30,000)LP를 획득합니다.

>>스탯(정신+5,감지+3,면역+8,초감각+5)이 상승합니다.

>>특별 보상으로 포인트석이 주어집니다.

어김없이 등장한 공략 완료 메시지.

위험도 상승으로 보상 수준도 크게 상승했다. 네 종류의 스탯이 상승한 데다가 포인트석까지 보상으로 떴다.

그런데 전과는 달리 60초 후에 게이트가 등장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설마 쿠마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수호는 지하 3층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개조 특성을 확인해 본 결과 던전의 봉인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27초.

자신이 떨어진 구멍을 올려다보니 까마득한 높이다.

어떡하든 던전 출구로 가기 위해 마나력을 끌어올려 봤다.

“으윽!”

폐를 찌르는 듯한 고통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마나력은 더 이상 운용할 수가 없었고, 쿠마의 썩은 상처를 흡수한 탓에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남은 시간 안에 출구까지 가는 건 불가능한 상황.

“하아….”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쿠마가 어떤 놈인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긱슬레이라는 자한테 얼마나 큰 원한이 있길래 그와 상관없는 한수호 탓을 하며 저주를 내린 건지 그것이 억울할 뿐이었다.

“시발.”

욕 밖에 안 나온다.

온 힘을 다해 자기 몸까지 희생해 가며 보스를 해치웠는데.

모처럼 엄청난 보상을 획득했는데.

모두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이 던전은 소멸한다.

하지만 한수호는 던전을 빠져나갈 수가 없으니 던전의 소멸과 함께 그 자신도 사라지는 것이다.

저 멀리 통로 안쪽에서 몬스터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입을 크게 벌리고, 타액을 줄줄 흘리며, 마치 물속을 유영하듯 느릿한 동작으로.

‘어? 물속을 유영해?’

갑자기 떠오른 의문.

이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이. 한수호를 뺀 모든 세상이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느려졌다.

흉물스런 모습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들도.

허공에 풀풀 날리고 있는 먼지들도.

한수호 혼자만 정상적인 속도였고 모든 게 정지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느렸다.

‘이게 초감각?’

보상으로 얻은 초감각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다시 개조 특성으로 던전 봉인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00:00:26]

적어도 10초는 지났어야 할 현실이 고작 1초밖에 흐르지 않았다.

‘엄청나긴 하네.’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지다니, 정말 놀라운 감각이었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이 초감각의 효과는 금방 사라질 것이고, 그땐 시간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래도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한수호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곳곳이 썩어 문드러진 몸을 이끌고 비틀대며 통로를 걸었다.

달려들고 있는 몬스터들은 느린 걸음으로도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30초 정도를 움직였을 때, 3층을 벗어나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초감각 현상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거기까지 가는데 줄어든 현실 시간은 고작 3초.

아직도 23초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헉…. 헉….”

하지만 한계였다.

더는 한수호의 몸이 버티질 못했다.

당장 포션으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몸 상태는 심각했다.

가만히 누워서 24시간을 요양해도 모자를 판에 억지로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상처가 악화되는 건 당연했다.

‘시발. 아직 복수도 못 했는데…. 내 가족을 망친 놈들이 누군지도 밝혀내지 못했는데!’

분하고 원통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니 이대로 죽을지도 모르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분통했다.

어딘가에 살아 있을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고, 형과 동생들 얼굴도 떠올랐다. 그리고 스승 부부의 얼굴까지 연달아 떠올랐다.

한 팔을 잃고서도 마공사의 꿈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고생, 서은채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 녀석, 꼬맹이치고는 정말 당찼지.’

서은채 얼굴 위로 이하윤의 상처투성이 얼굴이 겹쳐졌다.

‘그 상처…. 꼭 없애주고 싶었는데….’

이젠 사기환과 김재우의 얼굴도 떠올랐다.

회귀 전에는 두 사람 다 죽었지만 이번만큼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 시발. 그러고 보니 월 녀석한테 아직 책도 못 가져 줬잖…. 어?’

몽롱한 사념 속에서 떠오른 존재, 월.

왜소하지만 주인인 한수호의 명령에 따라 묵묵히 전투 영역에 남아 집을 짓는 데 여념이 없는 고블린 봇.

녀석이 떠오르자 자신에게 전투 영역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런 멍청한 새끼를 봤나!’

지난번에도 가면인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전투 영역을 사용해 놓고, 이 위급한 상황에서 그걸 잊고 있었다니.

한수호가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는 그 순간이었다.

피잉-

사방이 출렁하는 느낌과 함께 느려진 세상이 본래의 시간으로 되돌아왔다.

쿠워어어엉

몬스터들의 괴성도 이제 정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00:00:13]

짧게 생각에 빠진 사이 10초가 사라졌다.

‘당장 전투 영역으로 이동해야 해!’

한수호는 폐가 찢어지는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며 마지막 마나력을 끌어내 전투 영역을 활성화시켰다.

‘전투 영역 전개!’

화아아아악.

허공의 한점에서 시작된 투명한 구체가 순식간에 커지더니 한수호를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우르르르르르릉.

던전이 통째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 * *

“헉…. 헉….”

한수호는 새하얀 세계에서 희미하게 눈을 떴다.

가까스로 전투 영역으로 들어왔다.

소멸될 던전 안에서 사용한 거라 전투 영역 전개 시간이 끝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당장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게 중요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뭐지?’

한수호는 기었다.

저 멀리 그동안 자신이 가져다 놓은 가구들이 가득한 곳을 향해.

월이 쉼 없이 집을 짓고 있는 집터를 향해.

한수호가 기어가는 자리로 검붉은 액체가 자국처럼 남았다.

짓무른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고름이었다.

악착같이 쥐고 있던 라뮬도 더는 쥐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라뮬을 떨어뜨렸고 한수호는 머리마저 떨구고 말았다.

“하악…. 학….”

숨이 찬다.

이대로는 몸의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직…. 기회는 있어.’

한수호는 끝까지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포인트…. 포인트를 이용하면….’

지금 그에겐 14만이 넘는 LP가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듀라한의 발목을 잡았을 때, 벽력권을 운용한 덕분에 무려 15NP가 늘어나 총 19NP가 쌓였다.

한수호는 서둘러 포인트를 사용했다.

10NP를 가슴에 배분해 심장을 보호하고, 9NP는 머리에 배분해 뇌를 보호했다.

배분이 끝난 순간,

파아아아앗.

온몸으로 청량한 느낌이 퍼지더니 고통이 한결 가벼워졌다.

꽉 막힌 듯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듯했고, 천근처럼 무겁던 머리는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정신이 맑아졌다.

흐릿해졌던 시야가 다시 또렷하게 돌아왔다.

‘나한테 포션이 더 있어!’

한수호는 치료 포션 말고도 디버프 해제 포션과 체력 증강 포션이 있다는 걸 지금에서야 떠올렸다.

듀라한과의 전투 시에는 소용이 없었지만, 놈의 상처를 약탈해온 한수호에겐 너무도 유용한 포션이었다.

다행히 포션들은 배낭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포션 두 개를 단숨에 삼켰다.

목구멍으로 액체가 넘어가자마자 몸의 떨림이 멈추고 짓무른 상처에서 흐르던 피고름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듀라한에게서 약탈한 상처 중에는 디버프에 해당하는 것들이 꽤 섞여 있었다.

덕분에 한결 편해진 한수호는 벌렁 드러누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은 살긴 살았는데, 40분 뒤엔 어떻게 되는 걸까?’

한수호가 전투 영역 속에 들어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은 40분.

이미 7분여가 흘러 32분 뒤면 자동으로 전투 영역 밖으로 튕겨 나가게 된다.

그런 고민을 하며 새하얀 전투 영역 속의 하늘을 바라보던 한수호.

그의 귓가로 뭔가의 접근이 느껴졌다.

보폭이 좁고 걸음마다 기이한 기계음이 조금 섞여 있는 걸로 보아 월이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상태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그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한수호의 시야로 월의 얼굴이 나타났다.

월은 멀뚱히 한수호를 내려다보다가 눈으로 말을 했다.

[책은?]

월은 한수호의 몸이 어떤지는 상관도 않고 자신이 필요한 것부터 물었다.

“하아…. 얌마. 넌…. 새끼야. 주인이 지금 어떤. 후….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냐?”

힘겹게 입을 떼어 말을 했지만 월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오늘도 책은 없나?]

“…. 없어. 없다고… 새끼야.”

[알았다.]

월은 눈으로 그 말을 하고는 다시 걸음을 돌렸다.

“야, 월! 후…. 후….”

한수호가 월을 부르자 다시 되돌아왔다.

[월. 바쁘다. 기초공사 거의 마무리. 이제 벽 공사 시작.]

“그건…. 알았으니까. 후우…. 약 좀…. 내가 가져다 놓은 의료 상자 좀….”

한수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한계였다.

죽지 않을 정도만 나아졌을 뿐이지 상처는 여전히 지독했으니까.

“하….”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아직…. 아직 잠들면 안 되는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한수호는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월은 주인의 명령이 이어지지 않자 다시 발걸음을 집터 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방향이 좀 이상했다.

공사가 진행 중인 집터가 아니라 온갖 가구와 물건을 쌓아놓은 쪽으로 이동했다.

월은 거기서 잠시 물건들을 뒤적거리더니 붉은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상자를 흔들어 대던 월은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고통에 얼굴을 찌푸린 채 잠들어 있는 한수호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상자를 들고 한수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