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84화 (84/375)

84화

표는 가장 위에 2047년도 내용부터 정리되어 있었다.

2047년도 1학년 중간 평가 종목은 ‘생존 서바이벌’이었다.

내용을 보니 9급 게이트에 1학년 전체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가 6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방식이었다.

학생들은 4인 팀으로 구성되며 안전을 위한 타격 감지복을 입고서 대련용 무기로 서로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2048년도에는 1학년 학생 2명이 한 팀이 되어 졸업반 선배 한 명을 상대로 대전을 펼치는 것이었는데, 기록을 보니 최고 점수를 따낸 강우진은 혼자서 나섰고, 심지어 상대인 졸업반 선배를 쓰러뜨리기까지 했다고 되어 있었다.

2049년도엔 아카데미가 자랑으로 여기는 ‘마공 64관’ 체험이 1학년 중간 평가로 치러졌다.

원래 마공 64관은 4학년에 오르게 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종의 관문으로,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세워진 64층의 높은 탑을 의미했다.

이 64층을 모두 통과하면 졸업반 과정도 필요 없이 바로 졸업이 가능하지만, 아직까진 64층을 완벽하게 통과한 학생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이 마공 64관의 시험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2049년도에는 1학년에게도 이 마공 64관을 체험할 기회가 주어졌었다.

당연히 10층 이상을 오른 학생은 없었다.

하지만, 서중이라는 학생이 홀로 10층을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 세간에 이름을 떨쳤었다.

그리고 2050년.

바로 작년에는 미궁 탈출이 중간 평가로 등장했었다.

‘뫼비우스의 미궁’이라는 명칭으로 유명한 9급 던전으로 학생들을 들여보내 빠르게 통과하는 순서대로 점수를 부여했다.

말이 뫼비우스의 미궁이지 평급 마공사만 되어도 미궁을 통과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2050년도의 시험 도중 학생 한 명이 던전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그로 인해 이 던전은 학생이나 평급 이하의 마공사들에겐 출입이 금지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시험에서 최고의 성적을 낸 학생은 송유나였는데, 그녀의 공식적인 기록은 7분 16초.

평균 기록이 10분대였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빨리 미궁을 통과한 것이었다.

내용을 쭉 살펴본 한수호는 내심 마공 64관을 오르는 시험이 채택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귀 전, 한수호는 4학년이 되었을 때 이 마공 64관을 오른 적이 있지만 당시엔 지금처럼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기에 51층에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당시 한수호의 기록은 역대 14위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었다.

‘이번 평가로 뭐가 나올지를 미리 알고 있는 내가 괜히 짜증 나네.’

한수호는 이번 중간 평가가 어떤 종목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회귀 전과 동일하게 흘러간다면 47년도에 치러진 생존 서바이벌과 유사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복잡하고 여러 변수를 만들 수 있는 5인 팀전이 될 터였다.

‘장소도 일반적인 게이트가 아닌 섬으로 된 곳이었지.’

180명 정도의 인원이 커다란 섬에 흩어지고, 그 안에서 5일을 생존하는 것이 이번 중간 평가로 채택될 가능성은 99%.

하지만 한수호는 그걸 친구들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그때 양소혜가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난 생존 서바이벌이었으면 좋겠어. 4인 팀전이니까 우리 셋하고 장한설이나 이하윤을 팀으로 끌어들이면 최고 점수는 따 놓은 당상 아니겠냐?”

“그러면 한 명은 혼자 떨어지게 되잖아? 장한설하고 이하윤이 엄청 친하니까 한 명만 우리 팀으로 들어오진 않으려고 할걸?”

최지혁의 말에 양소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러네. 그럼 졸업반 선배하고 2대 1 대결은 어때? 내가 장태산하고 팀 먹고, 최지혁이 너는 손미영인가? 암튼 그 애랑 한 팀 먹으면 되겠다, 그치?”

손미영은 이전에 A반과 합동 수업을 할 때, 최지혁과 함께 팀이 되어 몬스터 봇을 쓰러뜨렸던 내성적인 여학생이었다.

“야. 최고 점수 타이틀 따려면 나랑 태산이가 한 팀이 돼야지! 네가 태산이랑 한 팀이 되면 오히려 점수 깎아 먹을 텐데?”

“뭐가 어째? 체격으로 보나, 마나량으로 보나 내가 너보다 한 수 위인 거 몰라? 어디 마나량 120짜리가 180이 넘는 이 누나한테 까불고 있어?”

“하다 하다 이젠 마나량까지 따지냐? 마나량이 높다고 다가 아니라는 거 모르냐? 그럼 마나량이 아직 70도 안 되는 태산이는 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최지혁은 마나량을 언급하면서 슬쩍 한수호의 눈치를 봤다.

그는 한수호의 진짜 마나량이 480을 넘고 있다는 걸 안다. 그 또한 400이 넘는 마나량을 가지고 있었기에 솔직히 양소혜의 120이라는 마나량은 우스웠다.

“와, 최지혁 너 되게 치사하다. 거기에 왜 태산이를 끼워 넣냐? 너랑 태산인 기본이 달라요, 기본이. 비교할 사람하고 비교를 하면 내가 말이라도 안 하지.”

“어이쿠, 그러세요?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 내 촉으로는 이번 중간 평가로 마공 64관이 나올 것 같은데?”

“그럼 차라리 잘됐네. 누가 더 높게 오르는지 내기할래? 지는 쪽이 1년간 종처럼 지내기로. 어때?”

한수호는 둘 사이의 말씨름은 전혀 상관도 안 하고 그냥 헛웃음만 흘리고 있었다.

‘최지혁, 저 녀석. 내 마나량이 70은 넘는다는 거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연기하는 거 좀 보소.’

그래도 밉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권존 김무광의 제자인 만큼 최지혁이 나쁜 인물은 아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다.

회귀 전의 기억으로 권존 김무광도, 그리고 최지혁도 전혀 드러난 정보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회귀 전에는 김무광이 지평학으로서 끝까지 신분을 숨기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했고, 최지혁 또한 김무광의 제자인 걸 감춘 채 평범한 마공사로 조용히 활동했다는 얘기였다.

그때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진동으로 해 둔 공법폰이 마구 떨어댔다.

주머니에서 꺼내 보니 장한설이었다.

한수호는 최지혁과 양소혜가 티격태격하는 걸 내버려 둔 채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응? 뭐야? 난 줄 모르고 전화 받은 거야? 네가 그러니까 우리 관계가 갑자기 소원해진 느낌이 드는데? 슬픈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

장한설은 시작부터 농담이었다.

“아, 왜?”

장한설이 동생 한설아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그녀를 대할 때면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도 기뻤고, 건강하고 예쁘게 성장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괜히 퉁명스럽게 대했다.

-너, 요즘 수상해. 나한테 부쩍 퉁명해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용건이나 말씀하시죠, A반 에이스님.”

-치잇. 기껏 생각해줘서 전화했더니 이 멜랑꼴리한 반응은 뭐래? 아무튼, 내가 손수 너한테 전화를 건 이유는…. 바로 중간 평가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얻어냈기 때문이라 이거지.

“너도?”

-너도라니? 나 말고 정보를 얻은 녀석이 있다고?

“아니. 신경 쓰지 마라. 그런데 어디서 중간 평가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데?”

한수호가 정보라는 단어를 꺼내자 최지혁과 양소혜가 말싸움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둘 다 입 모양으로 ‘누구?’냐고 묻고 있었다.

-있어. 졸업반 선밴데, 이번 1학년 중간 평가 종목 선정에 직접 참여한 선배라 100% 확실하다 이 말씀.

“졸업반 선배라…. 혹시 권열?”

한수호는 바로 그 선배가 누구인지 감을 잡았다.

장한설을 흑기사처럼 지켜주려 하는 이상한 선배, 권열.

그가 아니고서는 시험 종목 누설이라는 위험한 짓을 각오할 인물은 없었다.

-우왓. 너 뭐야? 내 몸에 무슨 도청 장치나 감시장치 같은 거라도 달았냐?

“맞나보네? 그냥 물어본 건데 바로 반응을 해주니 고맙다.”

-뭐? 야, 이…. 휴. 뭐 이런 거로 화낼 일은 아니지. 어쨌든 일단 들어봐. 옆에서 지금 하윤이도 같이 있거든.

“아, 그래? 그럼 이거 스피커 폰으로 돌려도 되겠네. 내 옆에도 최지혁이랑 양소혜 들러붙어 있다.”

-들러붙… 풉! 뭐, 잘됐네. 다 같이 들어 그럼.

한수호는 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스피커 폰으로 변경시켰다.

-에헴. 다들 잘 들으라고. 시끄럽게 하면 말 안 할라니까 셧 더 마우스 해 주시고.

그렇게 이어진 장한설의 말은 한수호의 예상 그대로였다.

이번 1학년 중간 평가 종목은 게이트 안에 들어가서 치러지는 생존 서바이벌이었다.

게이트는 8급으로 여의도보다 조금 큰 크기의 섬이었다.

그 섬 안에 A반부터 D반까지 모두 함께 들어간 뒤, 5일간 생존하는 게 목적이었다.

학생들은 마음껏 팀을 짤 수 있으나 5인이 최대 인원이라고 했다.

2명도 되고 3명도 된다는 것이니 47년도에 치러졌던 생존 서바이벌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섬에는 매우 약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 수는 많지 않지만 혼자일 경우에는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학생들은 5일 동안 생존하면서 몬스터를 잡아야 하고, 한 마리를 사냥하면 3점, 막타를 치는 학생에겐 추가로 2점이 부여된다고 한다.

더불어 몬스터의 심장을 구해오면 심장에 축적되어 있는 마나량 수준에 따라 최소 5점에서 20점까지를 추가로 얻을 수가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학생들끼리도 서로 싸울 수 있으며, 상대 학생을 리타이어 시키면 단숨에 5점을 얻게 된다.

또한 리타이어된 학생이 몬스터의 심장을 갖고 있다면 그걸 빼앗는 것도 가능했다.

반면 리타이어 된 학생은 10점을 감점받게 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5일이 지나서 생존하게 되면 최종적으로 20점을 추가로 받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최종 점수를 모두 합산하여 순위를 매긴 다음, 그 순위를 기준으로 반 편성을 완전히 새롭게 한다는 게 장한설의 설명이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최지혁과 양소혜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오예. 5인 팀 전이면 내가 바란 최고의 상황인데? 우리 셋하고, 장한설, 이하윤 이렇게 다섯이 팀 짜면 무조건 우리가 1등 아니야?”

-냐하핫! 역시 소혜는 내 생각하고 어쩜 그리 똑같니? 다른 애들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어차피 도태되면 끝장인 세상인데, 최대한 꿀 빨 수 있을 때 빨아야지. 안 그래?

-그런데, 한설 언니. 이 정도 예상은 교수님들도 하고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각 반의 에이스들이 서로 짜고 팀을 먹어버린다던가, 아니면 A반의 상위 학생 다섯이 한 팀을 짜면 다른 학생들한테 너무 불리해지잖아.

이하윤이 조심스레 통화에 끼어들었다.

“하윤이 말에 일리가 있어. 나라도 어느 정도 제약은 걸어 둘 거 같은데?”

한수호는 바로 이하윤의 의견을 수긍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 선배 말로는 다른 제약은 없을 거라던데?

“권열 선배가?”

-응. 그 선배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거든.

장한설이 이렇게까지 권열을 두둔하니 한수호도 더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수호의 생각에 뭔가 중요한 게 빠진 느낌이었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자, 우리. 일단 한설이가 말한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질 경우엔 다섯 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데 모두 찬성인 거지?”

양소혜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모두가 찬성했다.

“좋았어! 우리가 이번에 아카데미 역사를 한번 새로 써 보….”

“그런데, 좀 걸리는 게 있어.”

최지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한마디 꺼냈다.

-뭐든지 말해봐.

“만약, 5일째 되는 날 가장 많은 몬스터를 사냥한 팀을 급습해서 리타이어 시킨다면 그 팀이 가진 심장을 챙기게 되고 단숨에 막대한 점수를 챙길 수가 있게 되잖아. 마지막 순간에 팀을 배신하면 다른 팀원들이 가진 몬스터 심장하고 리타이어 점수까지 챙길 수도 있고 말이지.”

-팀원 내에서 배신이 있을까 봐 그게 걱정인 거구나?

“뭐 그렇지.”

최지혁은 조심스러운 성격답게 최악의 상황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이에 양소혜가 최지혁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야! 넌 우리 다섯 중에 누가 배신할 거라고 생각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친구로서 실격이다, 이 자식아!”

“아, 씨! 왜 머리를 치고 지랄인데?”

-둘 다 그만. 친구들끼리 왜 싸우니? 지혁이 말도 일리는 있어. 그런데 팀 킬이 발생하면 엄청난 감점이 있다고 했어. 팀 킬 한 번에 50점 감점이라던데? 그 정도 감점을 각오하고 팀 킬을 하려는 녀석은 없지 않을까?

“50점? 그 정도면 안심이네.”

최지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 이제 이걸로 해결이지? 다들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보자. 아, 물론 오늘 내가 알려준 정보는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한다는 거 잊지 말고.

“물론이지. 나중에 봐.”

“오케이.”

모두 그렇게 인사를 하며 통화는 종료되었다.

“장태산. 너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양소혜의 물음에 한수호는 그냥 웃었다.

“주말에 잠이나 푹 자야겠다고 생각 중이었거든.”

“하긴. 너 하루에 7시간 이상 못 자면 하루 종일 힘들어하는 잠탱이었지? 앞으로 5일 동안은 수면이 충분하지 못할 테니 좀 걱정이긴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얼른 돌아가라. 난 좀 쉴 테니까.”

“알았다. 오늘은 이만하고 물러가 줄게. 가자, 최지혁.”

“어, 뭐. 그래.”

최지혁은 양소혜에게 다시 팔을 붙잡혀서 밖으로 끌려 나갔다.

혼자가 된 한수호는 다시 랩톱 앞에 앉았다.

그리고 사기환에게 받은 파일을 다시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계속 마음에 걸리네….’

한수호는 이하윤의 목소리를 듣게 되자 그녀의 상처가 떠올랐고, 목숨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하윤의 얼굴에 있는 상처를 완전히 없애려면 약탈을 최소 서너 번은 더 사용해야 했다.

‘뭔 핑계로 그 녀석을 만나지?’

약탈 특성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공개적으로 만나는 건 불가능했고, 이하윤의 얼굴에 손을 대고 있어야 하니 남들이 볼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만나야 했다.

그 조건에 딱 맞는 장소가 있긴 했다.

학교 근처에 마련해 둔 컨테이너 하우스.

몰래 그곳으로 불러서 약탈만 쓰고 돌려보내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중간 평가 끝나면 조용히 불러봐야겠네.’

한수호는 일단 그렇게 생각을 굳히고 이하윤에 대한 생각을 훌훌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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