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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85화 (85/375)

85화

토요일 점심.

한수호는 전투 영역에서 마나 회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다가 시간 오버로 튕겨 나왔다.

‘아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말이지.’

살짝 아쉬웠다.

30분에서 40분으로 늘렸을 때는 비교적 쉬웠는데, 그 이상으로 시간을 늘리는 건 몇 배나 어렵다.

그래도 간신히 실마리를 잡아 해결할 것 같았는데 하필이면 그때 전투 영역 시간이 다 지나고 말았다.

한수호는 갈증을 느끼고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때, 미리 켜 두고 있던 랩톱에서 메일 도착음이 울렸다.

“오, 드디어!”

한수호는 바로 뛰어가서 메일을 열어봤다.

메일을 보낸 이는 사기환이었다.

마침내 사기환의 특성 쿨타임이 끝나 한수호가 의뢰한 세 인물에 대한 정보 확인 결과를 보내온 것이다.

그런데 내용이 꽤 의외였다.

1. 지평학 – 정보 확인 불가

2. 장한설 –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부분적 기억 상실(PTA)

3. 권열 – 큰 사고로 인해 다리를 잃은 후 대대적인 수술을 받은 흔적이 있음.

굉장히 단편적인 정보였고, 한수호가 생각하는 결과와는 차이가 좀 있었다.

인물마다 추가적인 세부 정보가 딸려 있었지만, 그건 열어보지도 않고 바로 사기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벨이 울리자 사기환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너, 통화는 불편하다며?

“이젠 괜찮아요. 그보다, 형. 보내준 내용 사실이에요?”

한수호는 그제야 세부 정보를 클릭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야. 내가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쿨타임 돌자마자 네 부탁부터 해결해 줬는데, 반응이 좀 그렇다? 내가 보낸 세부 내용까지 다 살펴보긴 한 거냐? 내가 그가 정리하느라 얼마나 애썼는데.

“고생하신 거 잘 알죠. 제 부탁 들어줘서 얼마나 감사해하는데요. 근데 지평학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는 너무 없는데요?”

-네가 보내준 인물은 어째 하나같이 좀 이상해. 그 지평학이라는 사람 말이야. 저번에 알아봐 준 인물들하고 매우 비슷한 방법으로 정보가 보호되고 있더라고. 아무래도 강력한 아티팩트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내 특성이 안 통하는 것 같아.

이건 한수호도 예상하고 있었다.

사기환의 정보 수집 특성은 미리 알고 차단하는 게 불가능하다.

항시 정보를 차단하는 효과를 지닌 아티팩트가 아니고서는 피할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

한수호는 아티팩트라는 단어에 마공뇌산 이산을 떠올렸다.

그 또한 단체 사진 속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으니, 어쩌면 그가 주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이제 그 대상에 지평학, 아니 김무광까지 추가된 셈.

어쩌면 지평학도 그 단체 사진 속 인물들과 깊은 관계가 있을지 몰랐다.

“장한설은…. 9살 때 이후의 기억만 존재한다 이건가요?”

세부 정보에는 그렇게 기재되어 있었다.

-어. 9살 때 무슨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야. 그 일로 이전의 기억이 날아간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알아낸 정보는 죄다 9살 이후에 대한 것뿐이고.

“장한설의 아빠가 장현오는 맞지만 친아빠는 아니다?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9살 때 입양한 거로 보인다. 이거 틀림없죠?”

한수호가 보고 있는 세부 정보엔 분명 그렇게 나와 있었다.

그게 사실이면 장한설이 한설아일 확률은 거의 99.9%였다.

모든 정황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9살에 겪은 큰 충격은 아버지의 죽음일 것이고, 장현오라면 한설아를 가면인들 속에서 충분히 구해낼 수 있는 강자였으니까.

-내 특성으로 알아낸 정보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거, 너도 잘 알잖냐.

“알죠. 형이 알아낸 정보에서 오류를 찾는 것 보다, 차라리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게 빠를 거라는 거요.”

-아는 녀석이 뭘 물어?

“흠. 그럼 혹시 장한설이 PTA로 기억을 상실한 게 아니고 마공사의 특성이나 아티팩트 같은 거로 기억이 제거되었을 확률은요?”

-그럴 가능성도 생각해 봤는데, 특성이나 아티팩트로 사람의 기억을 10년이나 통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서 어렵다고 봐. 궁급에 해당하는 마나량을 가지고 있어도 기껏해야 몇 개월 수준이거든. 아예 머릿속에 아티팩트를 박아넣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그 말에 한수호는 번쩍하고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방태식!’

회귀 전, 기계 조작이라는 특성을 지녔던 인물로 수많은 마공사들의 신체를 마치 실험체처럼 사용해 반인반계로 만들어버린 미친 과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몸을 자르고 갈라 무기를 부착시키거나, 머리를 기계로 바꾸는 등의 끔찍한 짓을 저지른 악마, 그 자체였다.

2055년.

방태식을 처치하기 위해 그의 아지트를 공격했던 정의국 마공사 87명 중 32명이 희생당했고, 14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18명이 실종됐다.

그런데도 방태식은 살아서 도망쳤다.

1년이 지났을 때, 방태식은 실종된 정의국 마공사 18명을 모조리 반인반계의 무시무시한 무기로 만들어 정의국으로 자살테러를 실행했다.

그 결과 정의국은 다시 40여 명의 희생자를 만들고 말았다.

정의국 국장인 백진성과 대한맹 맹주 서한광까지 나서서야 간신히 방태식을 처리할 수 있었다.

머리에 아티팩트를 박아넣는 방식은 바로 방태식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반인반계로 만든 마공사를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했던 방태식이 불현듯 떠오른 한수호는 섬뜩함에 잠시 말을 잊고 말았다.

-야, 장태산? 너 뭐 하는 데 갑자기 말이 없냐?

사기환의 목소리에 한수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형. 혹시 이름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위치나 현재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요?”

-또? 너 대체 뭔 짓을 하는데 그런 정보를 자꾸 요구하는데? 뭐, 가능은 하다만, 이렇게 띄엄띄엄 요구하지 말고 한 번에 몰아서 하면 안 되겠냐? 나 내 특성으로 할 거 많은 사람이다. 덕분에 2주째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고.

“미안해요. 이번엔 급한 거 아니니까, 형 여유 있을 때 알아봐 줘요. 이름은 방태식. 지금 나이가 서른 후반쯤 됐을 거예요.”

-방…태식?

사기환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마치 방태식이라는 이름을 아는 듯한 목소리.

“그 사람 알아요?”

-음…. 어. 알긴 알지. 같이 몬스터 봇 개발하는 동료들이 하는 말을 들었거든. 기계 조작인가 하는 특성을 가지고 생체 실험을 하는 악당이라 정의국에서 혈안이 돼서 찾고 있다던데?

“맞아요, 그 사람. 그런데 벌써부터 정의국에서 그자를 찾고 있다고요? 너무 빠른데.”

한수호가 중얼거린 말에 사기환이 살짝 의아해했다.

-빠르긴 뭐가 빨라? 그런 악당은 한시라도 빨리 잡아서 감옥에 처넣든가, 사형을 시켜야지.

“어, 그러네요. 하하하.”

한수호는 아차 했다.

회귀 전엔 방태식의 잔인한 짓이 세상에 드러난 시기가 2052년도였다.

그전까지는 철저하게 자신의 범죄를 숨겼고, 황도13궁의 보호를 받고 있어서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었다.

그러나 2052년에 염의 마녀 황가련과 함께 대한맹의 고위 마공사 넷을 살해하게 되면서 실체가 드러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방태식에 대한 정보가 1년이나 일찍 밝혀지다니.

‘내가 황가련을 각성하지 못하게 막아서 그런 건가?’

황가련은 월미도 게이트 사건으로 특성을 각성하면서 염의 마녀로 재탄생되지만, 한수호가 그녀의 가족을 모두 살림으로써 각성을 막았다.

어쩌면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방태식의 악행이 일찍 세상에 드러난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방태식에 대한 정보 좀 챙겨줘 봐요.”

-정보 알아봐 주는 건 어렵지 않다만…. 너 설마 네 손으로 그놈 잡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에이. 제가 무슨 수로 그런 거물을 때려잡아요? 요즘 그놈에 대한 말이 하도 많이 돌아서 특무부에 도움이나 줘서 눈도장 좀 찍어보려는 거죠.”

-뭐? 그럴 리가….? 연구실 동료 말로는 방태식에 대한 실체가 파악된 건 특무부에서도 최근의 일이라던데?

대충 둘러대려다가 말이 꼬였다.

한수호는 서둘러 변명거리를 찾았다.

“아, 그거요? 제가 최근에 아주 멋진 특무부 요원하고 친해졌거든요. 그래서 저도 들었어요.”

-…. 그래? 뭐, 그러면 그럴 수 있지. 암튼 알았다. 바로는 못 해주니까 그건 이해해라.

“네.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죠. 뭐. 흐흐.”

-그렇게 웃지 마라. 정든다. 큭큭큭.

한수호와 사기환은 서로 괴상한 웃음을 흘리며 통화를 마쳤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한수호는 소파 깊숙이 등을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방태식. 설마 설아가 기억을 잃은 것과 그 지랄 맞은 놈이 관계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명색이 장현오 양녀인데, 아무리 방태식이라도 그 정도로 간덩이가 부었을 리는 없잖아?’

한수호는 자신이 억측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설아의 기억 상실이 어떤 외부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기환의 예측처럼 PTA에 의한 거라고 믿기로 했다.

‘설아야. 네가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이 오빠가 널 꼭 지켜주마.’

한수호는 자신이 쌍둥이 오빠라는 건 나중에 밝히기로 했다.

지금은 밝혀봐야 믿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한설아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고, 그 잔인한 가면의 무리들에게 정체를 발각당할 위험도 있었으니까.

‘다른 가족들도 다 찾아내서 전부 지켜내고 말 테다!’

한수호는 한설아를 찾아낸 것에 한없이 기뻤고, 이를 기점으로 형과 막내, 그리고 엄마까지도 모두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 * *

한수호는 일요일을 참 바쁘게 보냈다.

평소와 다름없이 미션을 수행하고, 소원의 열매를 먹은 다음, 전투 영역에 들러 마나 회로를 연구했다.

전투 영역 제한 시간이 끝나면 거실에 앉아 김재우가 넘겨준 정보를 차근차근 살피며 부모님이 남긴 사진 속 인물들과 비교 분석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원래는 중간에 컨테이너 하우스에 가서 사기환이 발송한 몬스터 봇 두 기를 인수하려 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운송이 중단되고 반송되었다는 통보가 날아왔다.

이에 그 이유를 알아보니 사기환이 직접 회수조치를 했다는 것이다.

한수호는 바로 사기환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사기환으로부터 몬스터 봇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게 뒤늦게 발견되어서 회수 조치한 거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기환은 크게 미안해하며, 다음 주말까지는 꼭 도착하게 해주겠다고 단단히 약속했다.

그렇게 한 가지 즐거움이 날아가 버린 한수호는 저녁에 다시 전투 영역에 들어갔고, 거기서 월과 신나게 대련을 펼치며 아쉬움을 달랬다.

월도 주구장창 공사만 하다가 대결을 해서 그런지 꽤나 적극적으로 대쉬했다.

이젠 주인의 제어 없이도 스스로 자신의 능력치를 조절할 수 있는 월이었기에, 한수호에게 밀리는 듯하자 곧바로 능력치를 높여 맞대응을 해왔다.

그래서일까?

한수호는 월과 꽤 만족할 만한 수준의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월의 잔상 기술도 한층 더 발전해서 이젠 잔상이 아니라 거의 분신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투 영역에 들 수 있는 40분 내내 월과 전투를 벌인 한수호는 전에 가져다 놓은 어항의 물고기와 개구리가 여전히 잘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자료 분석에 매진했다.

그날 밤, 한수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전투 영역에 들어갔고, 이번엔 이를 악물고 마나 회로를 파고들었다.

그 덕분일까?

그토록 바라던 전투 영역 제한 시간을 늘리는 데 끝내 성공하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건 늘어난 시간이 무려 40분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제 전투 영역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총 1시간 20분.

전과 비교해 상당히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이 전투 영역의 마나 회로 분석 및 수정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냥 생각하기엔 단순히 시간을 늘리는 것이니 한번 성공하면 그다음은 식은 죽 먹기 아니냐고 볼 수 있지만, 이놈의 전투 영역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제한 시간을 한번 늘리면, 마나 회로가 완전히 새롭게 바뀐다.

한수호 자신이 만들어낸 고유한 능력임에도 이 마나 회로가 한번 바뀌면 다시 파악해 내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1시간 20분까지 확 늘려놓은 성과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올해 안으로 12시간까지 확장하고야 만다!’

그게 한수호의 목표였다.

일요일을 기분 좋게 마감한 한수호는 그제야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꿀 같은 주말이 그렇게 끝나고 드디어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친구들에게 문자가 날아들었다.

[모두 최선을 다해서 꼭 1등 먹자고!]

이건 장한설의 단체 문자였고,

[수리수리 마하수리 알라리 알라! 승리의 여신이 우리를 돌봐줄 지어니!]

맛이 약간 간 것 같은 문자는 양소혜의 것이었다.

반면 최지혁은 ‘잘 해보자.’라고 소심하게 문자를 보냈고, 이하윤은 다들 다치지 말라는 걱정 가득한 문자를 보냈다.

한수호는 문자를 보내지 말까 하다가, 씁쓸하게 웃으며 짧게 문자를 썼다.

[1등보다 안전이 우선.]

투박한 말이었지만 한수호로서는 최대한 신경 써서 한 말이었다.

그 문자를 보내고 1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카데미 공식 채널을 통해 휴대폰으로 전체공지가 떴다.

[모든 1학년 학생에게 공지합니다. 금일 중간 평가가 시행될 예정이니 모든 1학년 학생들은 8시 30분까지 교문 앞으로 집합해 주세요. 단, 집합 시에 가벼운 복장을 준수해 주시고, 개인 무기나 아티팩트는 일절 소지할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개인 사물도 제한되니 착오 없기 바랍니다.]

내용을 확인한 한수호는 시간을 바라봤다.

[06:18]

8시 30분이 되려면 한참 남았다.

잘하면 일일 미션을 마칠 수 있는 시간.

한수호는 서둘러 전투 영역에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소원의 묘목을 꺼내 열매를 먹고, 바로 미션을 수행했다.

오늘 미션은 ‘턱걸이 1만 회’.

1시간 만에 미션을 마친 한수호는 모든 무기를 담은 아공간 주머니를 월에게 맡겼다.

“며칠 동안은 시간 맞춰서 여기 못 올 수도 있어. 알아서 잘하고 있고.”

[걱정 마라. 시험 잘 보기 바란다.]

월은 정말 평범한 A.I 답지 않게 한수호의 중간 평가까지 신경을 써주었다.

“짜식, 걱정해줘서 고맙네.”

한수호가 습관적으로 월의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후웅

언제나처럼 월의 크로스 카운터가 날아들었다.

콰앙!

폭음이 터졌지만 한수호도, 월도 튕겨 나가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한수호가 왼손으로 월의 주먹을 잡아낸 것이다.

“이젠 안 통한다니까?”

한수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월의 꿀밤을 때렸다.

[아깝다. 마나 코어만 있었으면 통했을 텐데.]

“아이구, 그러세요? 그건 비겁한 변명이라는 거 모르냐? 암튼 난 간다!”

한수호는 월에게 손을 흔들며 전투 영역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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