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한수호는 신소이와 한 팀을 이루자마자 단둘이 숲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남은 44명의 D반 학생들은 11개 팀으로 나눠 크게 두 방향으로 흩어졌다.
7개 팀은 양소혜를 선두로 하여 숲으로 움직였고, 4개 팀은 최지혁을 선두로 해서 해변가 쪽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되자 숲에서 이들을 각개 격파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중 백윤후가 대장으로 있는 팀이 가장 혼란스러웠다.
“백윤후. 네 말만 믿고 B반 애들까지 져버리고 너와 합류했는데 이게 뭐야?”
백윤후는 서바이벌이 시작되자마자 D반 에이스들을 리타이어 시키자는 말로 B반의 에이스인 박현수를 끌어들였던 것이다.
“이제 시작인데 무슨 불평이냐? 뭉쳐 있어야 할 에이스들이 세 방향으로 흩어졌으니 우리한테는 오히려 이득이야.”
“그럼 어디부터 칠 건데?”
“당연히 장태산부터지! 다른 녀석들은 너무 많이 몰려 있어서 우리가 불리해.”
“그런데 이상하네. 장태산, 그 녀석은 뭘 잘못 먹었나? 단둘이 팀을 짜서 뭘 하겠다는 거지?”
“뭐긴 뭐겠어. 저 혼자 잘났다고 생각해서 우릴 유인하려는 뻔한 수작이지.”
백윤후는 한수호의 생각을 잘 아는 것처럼 자신 있게 말했다.
“단둘이 5인 팀을 상대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놈이 강하다고?”
“그럴 리가 있겠냐? 아무튼 걱정 말고 빨리 놈을 따라가기나 하자.”
백윤후는 바로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 한수호가 사라진 곳을 향해 움직여 갔다.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 자리로 28명이나 되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다름 아닌 D반 학생들이었고, 그들을 이끌고 있는 건 양소혜였다.
“여기 맞아?”
양소혜가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한 여학생이 눈을 빛냈다.
“응. 방금 전까지 여기에 백윤후 팀이 있었어.”
여학생은 특이하게도 사람을 신호로 찾아낼 수 있는 특성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그 특성으로 한 번이라도 접촉한 적이 있으면 5분마다, 목표로 삼은 인물의 위치를 파악해 내는 게 가능했다.
“녀석들이 움직인 방향은?”
“저기. 태산이가 간 쪽이야.”
“예상대로네. 좋았어. 우린 이제 최대한 천천히 녀석들의 뒤를 쫓는다. 분명 다른 반 녀석들도 우릴 뒤따르고 있을 테니까 모두 정해진 위치에서 벗어나지 말고. 알았지?”
그녀의 말에 27명의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탱커 2팀, 3팀, 4팀이 선두에 서고 지원 5팀, 6팀은 그 뒤에, 원거리 7팀은 언제라도 지원이 가능하게 따라붙어. 난 근접 1팀하고 가장 후미에 붙는다.”
“오케이!”
학생들은 양소혜의 말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D반의 팀들은 다른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하게 벗어나는 구도였다.
보통은 한 개 팀에 근접, 방어, 원거리, 지원 등의 인원을 골고루 배치하지만 D반의 7개 팀은 팀마다 특성을 몰빵시켰다.
세 개 팀 12명을 모조리 탱킹 관련 특성을 지닌 학생들로 구성했고, 두 개 팀 8명은 죄다 지원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었다.
한 개 팀 4명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학생들로만 이루어졌으며, 그녀 자신이 속한 팀은 4명이 모두 근거리 전투에 특화된 인원들이었다.
이렇게 구성해 놓으니 28명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는데도 명령을 내리는 게 매우 쉬웠다.
방금처럼 팀 단위로 지시하면 모두가 바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이런 구성은 최지혁이 이끄는 4개 팀도 유사했다.
대신 그쪽 팀에는 탱커가 한 명도 없었다.
오로지 빠른 움직임과 공격 쪽에 특화된 인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으며, 만약을 위해 지원 특성을 가진 학생 4명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지원 특성 4명을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학생 4명이 곁에 붙어서 돕는 구도였다.
D반의 이런 팀 구성은 다른 반 학생들과 이를 지켜보는 교수들을 모두 당황하게 만들었다.
팀별로 뿔뿔이 흩어져서 자력갱생하려 들지 않고 D반 46명 전원이 딱 세 그룹으로만 나뉘어 움직일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팀 구성 방법도 상당히 의외였다.
그리고 그 의외성이 시험 첫날부터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11시 방향에 한 팀 발견. 2팀, 3팀 앞으로. 4팀은 후방 지원.”
양소혜는 반경 50미터 거리에서는 5분 간격으로 생명체를 발견해 낼 수 있는 특성을 지닌 학우를 훌륭하게 써먹고 있었다.
그 학생은 마나력 충원이 가능한 학생의 도움을 받아 5분마다 주변을 스캔했고, 적을 발견하는 족족 완벽한 수비 태세를 취해 단 한 명도 리타이어 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원거리 팀과 협조해서 C반의 저티어 팀 하나를 리타이어 시키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먼저 상대 팀의 위치를 파악한 뒤, 원거리 특성으로 정신을 빼놓고 빠른 접근으로 기습을 가했다.
하지만 양소혜는 5명을 리타이어 시키는 걸 독식하지 않았다.
기습으로 상대방 다섯에게 충격을 입혀 이동 속도를 급감시킨 뒤, 5개 팀이 한 명씩 공격해 리타이어 시키는 방법을 썼다.
그 결과 D반의 5개 팀 20명은 단숨에 5점씩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최지혁 쪽은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그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섬의 후방까지 치고 나갔고, 그곳에서 놀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하지만 놀이 3~4마리 이하일 경우에만 사냥을 시도했고, 5마리 이상 모여 있을 땐 두말없이 후퇴했다.
그 결과 하루가 저물어 갈 때, 최지혁이 포함된 4개 팀은 7마리의 놀을 사냥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점수를 획득한 학생은 거의 가 D반이었다.
다른 반에서도 점수를 획득한 학생들이 나왔지만 그 성과는 매우 미미했다.
지금까지 리타이어 된 학생은 9명.
사냥된 놀은 14마리였다.
야영을 준비하며 랭크를 확인한 학생들은 모두가 놀랐다.
상위 랭커 대부분이 D반이었기 때문.
그로 인해 다른 반 학생들도 작전을 변경해야 했다.
팀별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D반처럼 몇 개 팀이 뭉쳐 그룹으로 움직이는 작전 말이다.
* * *
야심한 밤.
한수호는 이 섬의 유일한 산의 중턱까지 올라 높은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한수호와 팀을 이룬 신소이는 검고 긴 머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채 굵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저기…. 태산아.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신소이의 물음에 한수호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나뭇가지에 기대어 편안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얼마든지.”
“왜 나를 골랐어? 너라면 나보다 더 강한 애하고 팀을 먹는 게 좋지 않았을까? 나 때문에 너도 점수 하나도 못 챙겼잖아.”
신소이는 굉장히 말수가 적고, 숫기가 없어 D반에서도 친구 하나 없는 학생이었다.
붙임성도 없는 데다가 분위기까지 음침해서 누구도 먼저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유난히 거무스름한 피부에 이국적인 용모로 순수 한국인과 거리가 멀어 보였기에 다른 학생들에게 묘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4일이나 남았는데 지금 점수가 무슨 상관? 그리고 너랑 팀을 먹어야 다른 반 녀석들이 좋다고 덤벼들 테니 낚시하기엔 딱이잖아.”
“아, 낚시? 그렇네. 내가 미끼 역할을 하면 네가 뭣 모르고 꼬여 드는 녀석들을 잡으면 되겠구나. 후우….”
신소이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한수호의 이어지는 말에는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끼는 네가 아니고 난데? 아마 다른 녀석들은 널 굉장히 무시하고 있을 거야. 내가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어도 널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그때 네가 나서서 놈들을 잡는 거야. 그게 내 계획이고.”
“내, 내가? 난 D반에서도 가장 실력이 달리는데?”
“누가 그래? 다른 녀석들 말은 신경 쓸 거 하나도 없어. 난 알아. 네가 실력이 결코 낮지 않다는 걸 말이야. 게다가 너 열아홉 살이지? 그 나이에 마공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던 건 높은 마나량 때문 아니었어?”
한수호는 신소이라는 이 여학생에 대해 이미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신체 수치만으로도 신소이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슴] : 79
다른 신체 부위는 평균 50이 안되는 평급 수치를 보이지만, 특이하게도 가슴만 진급에 이르고 있었다.
아티팩트는 모두 뺀 알짜배기 수치였으니 79라는 수치는 그녀의 마나량이 유별나게 높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신소이가 지닌 특성은 속박.
자신보다 마나량이 낮다면 백발백중으로 속박에 걸려서 이동 속도를 느리게 한다.
그녀와 마나량 차이가 크면 클수록 현저히 느려지게 되는데, 한수호가 알기로 이 특성이 몬스터를 대상으로 할 때는 거의 정지에 가까운 효과를 낸다.
그것도 한 명만 대상이 아니라 여러 명을 한꺼번에 속박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상대방의 마나량이 더 높을 경우엔 좀 위험한 페널티를 받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경우엔 반대로 신소이의 이속이 대폭 감소하는 역효과가 있으니 조심해서 사용해야 했다.
즉, 상대보다 마나량이 높다는 확증이 없이는 쉽게 특성을 사용할 수 없다는 크나큰 약점이 있는 것이다.
“내가…. 마나량이 아주 조금 높긴 하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아카데미에 입학이 가능했던 것도 순전히 운이었다고.”
“그래도 튜토리얼까지 성공시켰잖아. 속박이라는 훌륭한 특성도 얻었고 말이지.”
“그, 그것도 그저 반쪽짜리라는 거 너도 알잖아. 상대방 마나량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내 발목을 잡는 특성이란 말이야.”
“그건 걱정 마. 내가 신호하면 의심 말고 특성을 사용하기만 하라고.”
“저,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물론이야.”
한수호는 밝게 웃어주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신소이는 달빛에 비친 한수호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정말…. 괜찮은 녀석이잖아? 본래의 내 자신은 잠시 잊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신소이가 멍하니 한수호를 바라볼 때였다.
“음? 누군가 접근하고 있는데? 숫자는…. 여덟? 이 어정쩡한 숫자는 뭐냐? 아무튼,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방금 말한 대로 내가 신호하면 속박을 써. 가장 후방에 있는 놈들한테. 이해했지?”
“으, 응.”
신소이가 대답하자 한수호는 바로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숲은 울창했기에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시야는 상당히 좁고 짧았다.
하지만 한수호에겐 초감각이 있었고, 그 덕에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모조리 파악할 수 있었다.
‘6시 쪽에 셋, 2시 쪽에 다섯?’
총 여덞 명 중에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먼저 접근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특정 인물의 위치를 알아내는 특성을 지닌 학생이 팀원으로 있는 듯했다.
한수호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정글도로 수풀을 헤치며 일부러 2시 방향으로 움직여 갔다.
그가 먼저 접근하자 2시 방향에 있던 다섯 명이 일제히 물러났다. 대신 6시 쪽의 3명이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이 기묘한 움직임에 한수호는 상대가 노리는 게 무언지 바로 알아챘다.
‘6시 쪽 셋은 미끼라 이거군.’
세 명으로 한수호의 시선을 빼앗은 뒤, 다섯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꼼짝을 못 하게 하겠다는 작전.
이를 쉽게 간파한 한수호는 이걸 지휘하는 녀석이 누구인지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백윤후. 그 녀석이려나?’
한수호는 나무 위를 힐끔 올려다봤다.
10미터 정도 떨어진 나무 위에 신소이가 웅크린 채 한수호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수호의 예측대로 백윤후 쪽에서는 신소이를 그다지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신소이가 모습을 드러냈다면 숨어 있는 한수호를 걱정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겠지만, 지금은 그 반대였다.
부스럭.
그때 한수호 정면 쪽 수풀이 크게 흔들렸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상대 쪽에서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촤아아악.
수풀이 단숨에 갈라지며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좌우 측에서 화살과 단검이 날아들었다.
타이밍도 좋았고, 위력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한수호였다.
정글도를 꽉 쥔 채로 한수호가 특성을 일으켰다.
화르르륵.
칼에서 화염이 치솟았고, 그 불꽃에 주변이 확 밝아졌다.
그 순간 한수호를 노렸던 학생들은 찰나적으로 시야를 잃고 말았다.
“앗!”
“뭐야!”
두 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냈고, 한수호는 나무와 수풀 사이에 숨어 있는 그들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화살을 날렸던 B반 학생은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코앞에 당도한 한수호를 발견했고, 크게 놀라고 말았다.
회피는 생각도 못 했다.
훅하고 날아든 한수호의 정글도가 너무도 간단히 학생의 어깨 부위를 베어냈다.
터엉.
삐리릭.
충격음과 함께 괴이한 기계음이 나더니 학생의 가슴 보호대 중앙에 47이 새겨졌다.
“어?”
학생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한수호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자신의 뒤를 쫓아 달려드는 근딜형 학생은 무시한 채 단검을 날린 학생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학생은 이미 표적이 되었음을 깨닫고 바로 특성을 일으켰다.
자신을 중심으로 2미터 반경의 보호막을 형성시킬 수 있는 그는 다급히 손을 뻗어냈다.
손에서 뿜어진 빛이 그의 몸을 완전히 감쌌고, 한발 늦게 달려든 한수호는 엄한 보호막을 후려쳐야 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콰직.
시전자의 마나량 두 배까지는 거뜬하게 막아낼 수 있는 보호막이 찢겨나갔다.
보호막을 찢고 달려든 한수호는 그 학생의 머리 부위를 정글도로 내리쳤다.
터엉.
가슴 보호대에서 일으킨 보호 효과로 정글도는 튕겼지만 그 충격은 그대로 수치화되어 나타났다.
삐리릭
[49]
“윽!”
그 학생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세 번째 학생이 날아들었다.
화려한 검술을 펼치며 한수호에게 달려든 학생은 훌륭하게 빈틈을 공략했고, 그 공격에 한수호가 주춤하고 말았다.
그 순간이었다.
백윤후가 숨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수풀 쪽에서 세 줄기 섬광이 터져 나왔다.
두 개의 빛은 한수호를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고, 다른 한 개의 빛은 번쩍임과 동시에 한수호에게 디버프를 걸어버렸다.
“크읏!”
한수호의 표정이 일그러진 순간, 수풀 위로 세 사람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한수호가 디버프에 걸린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백윤후를 선두로 B반의 1위 박현수와 6위 에이스까지 합세한 공격이었다.
게다가 검술을 쓰던 학생도 아직 건재했다.
4인 합격.
거기다 수풀 속에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지원군이 두 명 더 숨어 있었다.
누가 봐도 한수호가 불리한 상황.
그때 한수호가 입꼬리를 올리며 크게 외쳤다.
“지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