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92화 (92/375)

92화

뱀파이어.

게이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몬스터로 마공사들이 두말없이 꼽는 존재가 바로 뱀파이어였다.

이 시기만 해도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기승을 부리는 중이었고, 놈들로 인해 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상황이었다.

뱀파이어들은 웬만한 공격으로는 쉽게 죽지도 않는다. 또한, 어떤 상처도 하루 이틀이면 재생시키는 끔찍한 몬스터였다.

그나마 개체 수가 쉽게 늘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런 뱀파이어보다 더 지독한 몬스터가 2054년에 처음 등장한 일이 있었다.

2054년.

한수호가 회귀한 시점에서 2년 전이었다.

당시 독도에서 처음으로 게이트가 열린 적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게이트에서 아무런 몬스터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워낙 외진 곳이어서 마공사가 도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 그 시간 동안 아무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다.

독도에는 민간인이 없었고, 군인만 상주하는 상황.

정의국 마공사 6명이 특수 임무를 띠고 독도 게이트를 넘어가 폐쇄를 시도했었다.

그런데 게이트를 넘어간 마공사들은 일주일이 넘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정의국은 특무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총 11명의 마공사가 팀을 이루어 다시 게이트에 진입했다.

그들이 그곳에서 찾아낸 건 상당량의 피를 빨린 다섯 명의 시체였다.

천만다행으로 한 명은 생존했지만, 그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급히 그를 게이트 밖으로 데리고 나와 서울의 큰 병원으로 이송시켰다.

당시 그곳에 파견된 마공사들은 이 게이트가 뱀파이어 소굴이라고 판단, 재빨리 폐쇄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게이트는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폐쇄되고 말았다.

게다가 희생된 다섯 명의 시체의 상태도 이상했다.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면 목 주변에 두 개의 구멍이 생기게 되고, 피를 완벽하게 빨려 미라화된다.

그런데 이 시체들의 목에는 구멍이 네 개였다. 게다가 피는 절반 정도만 빨렸고, 대신 근육량이 50%나 감소하는 이상 현상을 보였다.

이 상황은 정의국과 특무부 윗선으로 보고되었고, 요직에 있는 마공사들이 생존자를 찾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병원을 찾아갔을 때 마주한 건 또 다른 희생자들이었다.

생존자를 포함한 네 명의 희생자.

그들의 시체는 모두 똑같은 모습이었다.

목에는 네 개의 구멍이 있었고, 피와 근섬유가 절반 정도 사라진 상태였다.

그로 인해 특무부와 정의국이 발칵 뒤집혔다.

최초에 독도 게이트로 향했던 마공사들이 폐쇄를 위해 알파 개체를 깨웠고, 그 알파 개체가 바로 강력한 뱀파이어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놈은 새로운 마공사들이 나타나자 모습을 숨긴 채 게이트를 빠져나갔으며, 그로 인해 게이트가 자동으로 폐쇄된 거라고 추론했다.

독도 게이트에서 탈출한 알파 개체 뱀파이어 사건은 그렇게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났을 때, 그 사건의 진실이 한수호의 손에 의해서 밝혀졌었다.

당시 한수호는 희생자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최초로 게이트에 진입한 마공사들 중 한 명이 생존했고, 그 생존자는 병원에서 살해당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한 명이 얼마 가지 않아 자기 집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희생되었으며, 그 희생자의 친구 또한 한 달 후에 살해당했다.

이상한 일은 계속 이어졌다.

그 친구가 죽기 직전에 잠시 스쳤던 마공사가 한 달 뒤 사망했고, 그 마공사가 죽기 직전 출근했던 정의국에서 한 달 뒤 또다시 희생자가 나왔다.

한수호는 이건 뱀파이어 짓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만약 뱀파이어라면 이렇게 계속 연관되는 인물들이 특정 기간에 맞춰 죽어 나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수호는 그 가설을 토대로 한 달이라는 시점에 맞춰 가장 의심되는 인물을 찾아 함정을 파놓고 기다렸다.

그 또한 최종 희생자가 죽기 직전에 마주친 인물이었다.

한수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 인물은 최종 희생자를 죽인 범인이 맞았고, 인간도, 뱀파이어도 아니었다.

도플갱어.

독도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알파 개체는 훗날 시체 강탈자라고 불리게 되는 도플갱어였다.

도플갱어는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아 완전히 똑같은 인물로 행세할 수 있는 존재였다.

육체를 빼앗으면 본래 주인의 기억과 능력까지 모조리 사용할 수 있었으며, 기본적인 능력 자체가 뛰어나 오히려 더 강해질 수도 있었다.

이놈들은 네 개의 송곳니를 지녔는데, 정기적으로 피와 근육을 섭취해야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도플갱어가 뱀파이어와 상당히 유사한 습성과 생리를 가지고 있지만 피를 주입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복종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

도플갱어를 직접 사로잡은 마공사가 바로 한수호였기에 누구보다도 그런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한수호가 봤을 때, 캡슐에서 나온 괴물은 도플갱어가 분명했다.

근섬유가 모조리 드러나는 상태인 것은 놈이 육체를 갈아타야 하는 시점이 임박해 있다는 걸 의미했다.

“나의 종, 뱀파이어여. 당장 저 앞에 있는 인간을 죽여 피를 빨아라!”

백윤후는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고 생각하는지 중2병스러운 대사까지 남발하며 공격을 명령했다.

하지만 근육 괴물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괴성을 질러대며 백윤후를 향해 손을 뻗어 냈다.

“무, 무슨 짓이야!”

백윤후가 깜짝 놀라 몸을 피했다.

하지만 근육 괴물은 백윤후를 쫓아 계속 달려들었다.

이제 막 소량의 피를 흡수한 탓에 괴물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다.

생혈 덕분에 근육은 재생되었으나 아직 온전한 능력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놈의 몸은 거구였고, 어떤 공격에도 지치지 않는 강한 체력을 지녔다.

백윤후는 당황했다.

자신의 피를 흡수한 뱀파이어가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공격하고 있으니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괴물 새끼가! 내가 아니라 저 자식을 때려잡으라고!”

백윤후의 외침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한수호.

그의 머릿속에 그럴싸한 계획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수호가 백윤후를 죽자고 쫓아온 이유는,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참교육을 시전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렇지 않게 팀원들을 배신하고, 한수호와 이하윤, 신소이 등을 죽이려 했던 백윤후를 그냥 둘 수 없었다.

회귀 전의 백윤후도 당연히 인성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둬도 그 파탄 난 인성 때문에 몇 년 뒤 게이트 안에서 사고로 죽고 만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놈이라 참교육 정도로 끝내려 했다.

블랙박스가 모든 걸 촬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백윤후를 지금 죽여 백진성과 등을 질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가슴 보호대에 부착된 블랙박스는 녹화용이 아니다. 한수호가 알기로 이건 실시간 감시용이었다.

즉, 지금 이 상황을 교수들이 시작 지점의 막사 안에서 모조리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더더욱 백윤후를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도플갱어라는 훌륭한 위장막이 등장한 이상 아무 문제 없이 백윤후를 죽여 없애버리는 게 가능했다.

이 시기엔 도플갱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2054년에 열릴 독도 게이트에서 다른 도플갱어가 등장하게 되더라도 지금은 아무 상관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한수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실을 캐지 않는다면 도플갱어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드러나는 건 더욱 늦어질 것이다.

한수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회귀 전처럼 사람 좋게 살아갈 생각을 버린 그였기에 치워야 할 건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없애버리기로 했다.

한수호는 근육 괴물을 응시했다.

신체 정보를 확인해 보니 평균 스탯이 66이나 된다.

팔과 다리 스탯이 유독 낮아 움직임이 둔할 뿐, 피와 근육을 한 번이라도 흡수한다면 최소 80은 넘어갈 놈이었다.

그런데 한수호의 시야에 뜬 도플갱어의 신체 스탯에 처음 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체 스탯은 고정된 것으로 변화하지 않는 게 정상.

그런데 저 도플갱어의 신체 스탯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하나의 수치 때문이었다.

‘(+32)’라는 수치가 계속해서 여기저기로 옮겨 다닌다.

머리에 있다가 가슴으로, 다음은 팔로, 다시 가슴으로, 또는 배와 다리로 3초마다 옮겨 다니고 있었다.

‘저게 생명 코어로구나!’

한수호는 회귀 전에 도플갱어로부터 이 생명 코어에 대한 걸 직접 확인했었다.

그 당시엔 지금과 같은 개조 특성이 없었기에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그때 붙잡힌 도플갱어의 말에 의하면 뱀파이어를 포함한 모든 흡혈 몬스터들에겐 생명 코어가 존재한다고 했다.

이 생명 코어는 수시로 몸 곳곳을 옮겨 다니기 때문에, 이 코어가 파괴되지 않는 한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목이 잘릴 경우에 한해서는 생명 코어로도 케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생명 코어의 움직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저걸로 놈을 협박하면 되겠어.’

한수호의 머릿속에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그려졌다.

한수호는 백윤후를 향해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도와줄 테니까 내 쪽으로 놈을 유인해!”

이는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는 블랙박스를 감안한 거짓 연기였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백윤후는 조금이나마 안심했다.

“정말 날 도울 거냐?”

정신없이 도플갱어의 공격을 피하는 와중에도 일말의 의심은 버릴 수가 없었던 모양.

“널 죽여서 내가 뭘 얻겠다고? 못 믿겠으면 그냥 뱀파이어한테 피 빨려 죽던가.”

“가, 갈게! 그쪽으로 갈 테니까 확실히 도와줘!”

백윤후는 급했다.

진작부터 그가 지닌 특성을 사용해 괴물을 공격했지만 뱀파이어답게 별다른 상처도 입지 않았고, 그나마 생긴 상처도 금세 회복해 버렸다.

한수호는 백윤후가 방향을 틀어 자신을 향해 뛰어오자 오른손에 열화기를 일으켰다.

아직은 블랙박스를 통해 모든 상황이 전송되고 있기에 일부러 보란 듯이 열화기를 일으킨 것이다.

대신 블랙박스가 촬영할 수 없는 각도에서 왼손에 뇌전을 일으켰다.

한수호는 백윤후와 근접하며 교차했고, 그 순간 차갑게 조소를 그렸다.

그 미소를 알아본 백윤후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움찔했다.

그 순간 도플갱어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한수호를 향해 괴성을 내지르며 큰 손을 휘둘렀다.

“이거나 먹어!”

한수호는 오른손의 열화기를 놈의 가슴팍에 때려 박았다. 하지만 가슴 스탯이 70을 훌쩍 넘는 도플갱어는 큰 충격 없이 기다란 손톱을 가진 팔로 한수호를 할퀴었다.

콰지직.

도플갱어의 손톱은 정확히 가슴 보호대를 찢어버렸다.

그 순간, 한수호는 뇌전이 담긴 왼손으로 다시 한번 가슴 보호대를 후려쳤다.

퍼엉!

완전히 박살 난 가슴 보호대가 허공에 흩날렸다.

“야, 이 씨발! 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백윤후는 멀찍이 물러나서는 한수호에게 소리쳐 물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일언반구도 없이 허우적거리는 도플갱어를 발로 툭 밀어 차며 백윤후와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 버렸다.

목표가 사라지자 도플갱어는 한수호와 백윤후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백윤후 쪽으로 달려들었다.

이 또한 한수호가 예상한 대로였다.

도플갱어는 적의 강함을 알아보는 감각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나타날 경우, 힘을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숨긴다.

그리고 육체를 갈아타야 할 상황이 오면 우선적으로 약한 상대를 찾아 무작정 공격한다.

근육 괴물은 그런 도플갱어의 특성을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었다.

도플갱어가 다시 달려들자 백윤후는 분노했다.

“장태산, 너 이 자식 일부러 그런 거냐!”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 이곳에 지켜보는 눈은 없다.

한수호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든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차갑게 대답한 한수호는 자신의 신체 스탯을 눈앞에 띄웠다.

그리고 157까지 상승해 있던 머리 수치에서 44를 빼내 두 팔과 두 다리에 11씩 균등하게 배분했다.

이건 지난번 지평학 교수방에서 가슴 수치를 내리면서 대신 올려놓은 수치였다.

한순간에 99였던 팔과 다리의 스탯이 모두 110으로 치솟았다.

팔과 다리의 스탯이 폭등하자 한수호의 움직임은 흡사 유령처럼 변했다.

한발을 슥 내딛는 순간 백윤후의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무리 멍청한 백윤후라고 해도, 지금 한수호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지 않았다.

살인멸구.

한수호가 가슴 보호대의 블랙박스를 완전히 박살 낸 건, 백윤후가 유적지에서 행했던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증거가 될 소지가 있는 블랙박스를 없애고 백윤후를 정말 죽여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장태산-!”

백윤후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한수호가 달려들 만한 방향으로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카라라라랑.

백윤후의 검이 여섯 개로 늘어나며 전방을 검의 그림자로 뒤덮었다.

그의 특성인 폭렬검이었다.

검의 그림자 하나하나가 모조리 실체였으며, 한 번에 엄청난 폭딜을 뿜어낼 수 있는 특성이 바로 폭렬검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고 펼쳐진 폭렬검은 조금도 위협적이지 못했다.

한수호는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검을 뻗어 내느라 왼쪽으로 완전히 드러난 가슴 앞에 한수호가 번쩍하고 나타나더니 하얗게 웃어 보였다.

“잘 가라.”

퍼억

한수호의 주먹이 백윤후의 명치를 정확히 후려쳤다.

콰지지직.

손에서 강력한 뇌전이 번뜩였고, 강한 전류에 감전된 백윤후는 온몸이 경직된 채로 튕겨 나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곳에 도플갱어가 있었다.

놈은 기다렸다는 듯이 백윤후를 두 팔로 콱 감싸 안았고 그대로 목을 물어뜯었다.

쮸우웁. 쮸웁.

도플갱어가 흡혈하는 소리는 5미터 정도 떨어진 한수호에게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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