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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97화 (97/375)

97화

월은 여전히 집 공사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그사이 꽤 진척이 이루어져 1층 공사가 끝나고 2층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월은 한수호를 보자마자 2층에서 훌쩍 뛰어내려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한수호에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코어는?]

눈으로 글자를 새기는 모습이 오늘따라 박력 있어 보인다.

“2층 공사 시작했다고 뻐기는 거지, 너?”

월은 뒤쪽의 집을 슬쩍 돌아봤다가 다시 눈으로 말했다.

[내 졸개는?]

“졸개? 아, 다른 몬스터 봇? 그건 내일 소개해 주마.”

[후. 알았다.]

월은 한숨이나 다름없는 글자까지 새겨 보이고는 허리에 꽉 매달고 있던 아공간 주머니 두 개를 건넸다.

[그런데, 주인. 출력이 전보다 상당히 떨어졌다.]

월이 자신의 가슴팍을 빤히 바라보며 꺼낸 말에 한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대로라면 한수호의 마나 수치는 487에 도플갱어의 코어값인 265가 더해져 752로 읽혀야 정상이었다.

월이 코어의 마나 수치를 읽어 내지 못한다 해도 녀석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수치는 487이었으니 출력이 떨어졌다는 말은 나올 수가 없었다.

“월. 내 마나량이 몇으로 읽히지?”

한수호가 그렇게 물으며 새로 업그레이드된 개조 특성으로 월의 마나량을 확인해본 결과, C급의 최고치인 99까지 꽉 차 있었다.

‘그래서 A급 마나 코어를 달라고 난리였구만?’

월 입장에선 C급의 마나량이 꽉 찼는데 더 올릴 수가 없었으니 답답할 만도 했다.

[주인 출력 265.]

“265?”

놀랍게도 월은 도플갱어의 코어 수치만을 한수호의 마나량으로 읽고 있었다.

즉, 이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마나량을 측정할 것을 대비해서 굳이 가슴 스탯을 낮출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출력이 낮아졌는데, 왜 기쁜 얼굴인가?]

월은 한수호가 히죽거리는 걸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다, 아니야. 알았으니까 하던 거나 마저 해라.”

[주인. 머리 다친 것 같다.]

예의를 지킨답시고 정신 나갔냐고 묻는 대신 머리를 다친 것 같다는 글자를 써 보인 월은 바로 공사장으로 되돌아갔다.

한수호는 혼자 주먹을 꽉 쥐며 ‘예스’를 외쳤다.

안 그래도 마나량은 계속 높아지는데 남들 신경 써가며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는 게 영 껄끄러웠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마나 스캐너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지 한번 정도 재확인은 해 봐야겠지만, 어쨌든 마나량 때문에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런 횡재가 없다.

한수호는 얼른 주머니에서 착용구와 묘목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열매부터 따서 입에 넣었다.

-보유 포인트: 101NP / 2,410LP

소원으로 NP를 요구하니 바로 10이 늘어났다.

‘좋아. 20만 남기고 싹 배분하자.’

한수호는 101이나 되는 스탯 중 11을 배에 배분시켜서 머리와 가슴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110으로 통일시켰다.

그리고 남은 90에서 70만 떼어 가슴에 전부 때려 넣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아악

한수호의 몸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전보다 훨씬 더 강렬한 고양감이 느껴지며 머리와 몸이 싹 다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삐링.

묘한 알림음 같은 것이 머릿속으로 들리는 듯하더니,

>>마나량이 1차 한계를 돌파하였습니다.

>>한계 돌파로 육체가 진화합니다.

>>모든 디버프가 사라집니다.

>>추가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20NP / 100,000LP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라운 메시지가 한수호의 눈앞에 떠올랐다.

우드드득.

한수호의 몸 안에서 뼈가 비틀리고, 근육이 압축되기 시작했다.

고통은 없었지만 그걸 멀쩡한 정신으로 고스란히 느끼게 되니 상당히 묘한 기분이었다.

잠시 후, 한수호는 너무도 청량한 기분을 느끼며 자신의 신체 스탯을 살펴봤다.

[머리] : 113

[왼팔] : 110

[오른팔] : 110

[가슴] : 130(+36)

*[마나] : 1,180(+301)

[배] : 110

[왼발] : 110

[오른발] : 110

‘어? 코어 수치도 같이 늘었어?’

가슴 스탯만 늘어난 게 아니라 도플갱어에게서 빼앗은 코어의 수치도 함께 증가했다.

그 덕에 총 마나 수치는 1,400이 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육체가 진화한다더니 몸에 정말 변화가 생겼다.

코어를 박아 넣으며 생긴 가슴의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졌고, 근육은 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온몸에 힘이 넘쳐흘렀다.

맨주먹으로 쇠도 때려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 원래 쇠는 우그러뜨릴 수 있었구나.’

한수호는 쇄혼 특성으로 H빔까지 완전히 휘게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혼자 피식거렸다.

‘NP 20에 LP까지 10만이 생겼네? 대박!’

안 그래도 LP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10만이 딱 들어왔다.

한수호는 자신이 정말 운은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마나량은 이제 완전한 궁급에 올랐다.

게다가 이젠 다른 걱정 없이 마음껏 가슴 스탯을 높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뿌듯한 고양감으로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가구들을 모아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놓아둔 킹사이즈 침대 위에 폴짝 올라간 한수호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품에서 공법폰을 꺼냈다.

‘이제 이걸로 함정을 팔 시간인가?’

이산의 딸이 바꿔치기한 스티커의 마나 회로를 조정하려면 폰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빼면 된다.

곧바로 공법폰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폰에는 코스트가 생겼고, 이젠 개조 특성으로 공법폰의 정보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강력한 해킹 방지 스티커가 부착된 공법폰]

-코스트: 5

-모든 종류의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하게 개발된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외부의 어떠한 해킹에 대해서도 철저히 보호됩니다.

-통신상으로 주고받는 모든 정보는 스티커를 통해 무조건 개발자에게 전달됩니다.

-한 번 부착된 스티커는 제거가 불가능합니다.

-스티커의 기능에 변동 사항이 발생할 경우, 즉시 개발자에게 경고합니다.

생각보다 코스트가 높게 책정되었다.

그래서인지 스티커의 기능도 지난번보다 한 단계 높았다.

‘요걸 어떻게 바꾼다?’

한수호는 한참 동안 정보를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한수호는 우선 ‘즉시 개발자에게 경고합니다.’라는 문구에서 ‘즉시’를 ‘선택적으로’로 바꾸었다.

이 변경에 필요한 LP는 3만.

생각보다 소모되는 LP 수치가 적었다.

수정한 내용을 저장시키는 순간,

>>스티커의 기능에 변동이 생겼습니다. 개발자에게 경고하겠습니까? (YES/NO)

“됐다!”

한수호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했다.

이제는 이 스티커의 기능을 변경해도 이산에게 경고가 가지 않게 직접 차단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바로 NO를 선택한 한수호는 이번엔 ‘무조건 개발자에게 전달됩니다.’라는 문구를 수정했다.

-통신상으로 주고받는 모든 정보는 스티커를 통해 (선택적으로) 개발자에게 전달됩니다.

이번에도 선택적으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자 이 변경에는 LP가 2만밖에 소모되지 않는 거로 나왔다.

그 이유는 바로 ‘선택’ 덕분이었다.

선택에 따라 기존 기능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LP 소모가 크게 줄어든 것이 분명했다.

>>스티커의 기능에 변동이 생겼습니다. 개발자에게 경고하겠습니까? (YES/NO)

기능이 변경되었으니 당연히 선택 문구가 또 등장했다.

이번에도 NO를 선택했다.

‘내가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그때 이걸로 이산을 끌어내자.’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우선 딸이 타고 다니는 차의 번호판을 이용해 최대한 정보를 캐낼 필요가 있었다.

이제 이 공법폰은 다시 안전해졌다.

폰을 사용할 때마다 선택 문구를 봐야 하는 귀찮음이 있겠지만, 정보가 넘어가지 않게 하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이제, 월한테 선물을 줄 시간인가?’

한수호는 저 멀리 공사장에서 열심히 2층 골조를 세우고 있는 월을 불렀다.

“잠깐 나 좀 볼까, 월?”

월의 소리 감지 능력은 한수호에 맞먹고 있어서 금방 이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갸웃한 월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붕 날아올랐다.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착지한 녀석은 한수호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섰다.

[바쁜 월을 왜 자꾸 찾나?]

“하, 자식. 이럴 땐 네가 주인 같다니까? 아무튼, 됐고. 이거나 받아라.”

한수호는 공법폰 슬롯에 끼워 둔 마나 코어를 빼냈다.

그걸 본 월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A급 코어?]

“그래. 그런데, 아직 마나량이 꽉 채우지 못했어. 700은 넘어가는데, 어떡할래? 지금이라도 줄까? 아니면, 마나량 다 채워서 줄까?”

이왕 주는 거, 999까지 꽉 채워주고 싶었지만 월이 워낙 코어를 원하고 있어서 선택을 하게 했다.

[주인. 내 말 오해했다.]

“무슨 오해?”

[내가 필요한 건 코어다. 마나가 채워져 있지 않아도 상관없는.]

“…. 응?”

이번엔 한수호의 눈이 커졌다.

A급 마나 코어가 필요하다고 해서 마나량도 당연히 채워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코어 자체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니.

[마나는 월이 직접 채울 수 있다.]

“우워…. 너 그것도 가능해? 무슨 마나 수련법이라도 터득했냐?”

[아크로의 동력을 이용해 조금씩이지만 마나량으로 정제가 가능하다.]

“….”

할 말이 없다.

이젠 하다 하다 아크로의 동력으로 마나까지 정제한단다.

“너…. 봇 아니지?”

[난 고블린 워리어다. 주인이 월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하아…. 너님 짱이시네요.”

[월은 원래부터 짱이다.]

날름 코어를 채간 월은 바로 자신의 가슴 부위를 활짝 열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고블린의 가슴팍이었지만, 그곳이 반으로 갈라지며 커버처럼 열리자 뭔가 그로테스크하다.

활짝 열린 가슴팍 중앙엔 푸른빛을 찬란하게 뿜어내는 주먹만 한 아크로가 자리했다.

월은 그 아크로에 마나 코어를 그대로 밀어 넣었다.

치징. 우우우우웅-

마나 코어를 단숨에 흡수한 아크로가 굉장한 울림을 일으켰다.

다시 가슴 커버가 닫혔을 때, 월의 눈으로 녹색의 글자와 숫자들이 매트릭스처럼 쏟아져 내렸다.

피이이이이잉

이번엔 월의 머리 위에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나 회로처럼 얽히고설킨 수많은 선이 가득한 마법진.

그건 단숨에 반경 1미터 크기로 커졌고, 월의 머리부터 시작해 발끝까지를 천천히 훑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훑고 지나간 월의 몸이 완전한 생명체의 것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고블린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월의 몸은 곳곳에 기계의 흔적이 보였었다.

관절 부위나 접합부 같은 곳엔 작은 나사가 있었고, 턱 아래쪽에도 공간이 비어 있어서 속이 들여다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겉으로 봐서는 완벽한 고블린이었다.

물론 진짜 고블린보다 훨씬 깔끔하고, 생긴 것도 괜찮았으며, 어떤 악취도 나지 않는다.

한수호는 월의 이러한 진화를 진심으로 반기는 입장이었다.

그를 더욱 기쁘게 하는 건, 월의 신체 스탯이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것이다.

평균 수치 83.

게다가 가슴은 91이나 되며, 마나량은 827이다.

이젠 월의 마나량은 진급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축하한다, 월.”

한수호가 진심을 담아 축하의 인사를 전하자 월은 눈으로 감사의 인사를 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화를 하긴 했지만 말은 아직 못하는 거냐?”

[그건 아직 적용하지 않은 기능이다. 주인이 원한다면 음성화 시스템을 추가하겠다.]

“아니, 아니다. 그건 그냥 둬. 지금이 더 좋을 거 같아. 하하하.”

한수호는 월이 반말을 찍찍 날리는 걸 귀로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가? 그럼 이대로 두겠다. 그런데, 주인. 월이 진화했으니 한판 붙어보겠나?]

월이 바로 한수호에게 도전을 걸어왔다.

지금은 딱히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한수호는 거절했다.

“다음에. 오늘은 이 형이 너무 피곤하거든.”

5일이나 뉴에르다, 아니 이제는 아스루나라고 불러야 할 곳에서 야영을 했더니 상당히 피곤한 느낌이었다.

[아쉽군. 그럼 졸개들 생기면, 녀석들 앞에서 한판 붙자.]

“응? 굳이?”

[관중이 있으면 전투는 더 치열해지는 법.]

“허….”

한수호는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주인. 다음에 올 때 건축자재를 더 보충해 주기 바란다.]

월이 갑자기 꺼낸 말에 한수호는 또 뭐냐는 눈빛을 보였다.

[집. 3층으로 확장하겠다. 그리고 집 옆에 거대한 지하 수련장과 지상 체육관을 짓겠다.]

한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월의 지시에 따라 힘을 써줄 몬스터 봇 두 기가 충원될 테니 공사 범위를 크게 늘려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들를 테니까 필요한 자재 목록 작성해 줘.”

[고맙다.]

“내가 고맙지 뭐. 식구가 늘게 될 테니 발전기도 더 필요하겠지?”

[내가 개량해서 괜찮긴 하지만, 예비로 하나쯤 더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느새 월은 예전에 사 둔 발전기까지 개량해 둔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이제 네 할 일 해.”

[수고해라.]

월은 한수호의 가슴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였지만 가슴을 딱 펴고 당당하게 걷는 모습을 보니 작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정말 훌륭한 친구를 뒀구나.’

한수호에게 월은 이제 친구나 다름없이 느껴지고 있었다.

월이 멀어져가자 한수호는 오랜만에 가족사진을 꺼내 봤다.

생일에 찍은 가족사진 속에서 아버지 한철형과 어머니 이태희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괜히 코끝이 찡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떠나셨지만, 다른 가족들은 제가 모두 잘 돌보겠습니다. 그러니 편안히 눈 감으세요.’

한수호는 잠시 한철형의 명복을 빌어드리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전투 영역이 끝나는 시간까지 부모에게 가르침 받은 호흡법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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