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거대한 글자의 벽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용의 박동과 용형 4식은 한수호의 머릿속에 각인되듯 새겨져 있었다.
벽이 사라진 뒤, 한수호는 어느새 전투 영역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게 뭔….’
말이 안 나온다.
용마검의 봉인을 푼다는 의미가 이런 것일 줄이야.
만약 한수호가 정신 스탯 6만 가지고 덤볐다면, 정말 마화기에 먹혔을지도 모른다.
‘와…. 십 년 감수했네.’
다행도 이런 다행히 없었다.
한철형이 왜 이 용마검을 봉인 상태로 영원히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수호처럼 정신 스탯을 크게 높일 수 없다면 마화기에 먹히지 않을 수 있는 인물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길래?’
한수호는 기억 속에 또렷하게 각인된 용의 박동부터 살펴봤다.
용의 박동.
이건 호흡법이었다.
이 호흡법을 제대로만 운용한다면 마나력을 끊임없이 상승시킬 수 있는 엄청난 호흡법.
일반적으로 마공사들이 마나량을 높이려면 마나 공법을 끊임없이 수련하거나 스스로 마나 회로를 연구하여 진화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때문에 마나량 증가는 무척이나 더딜 수밖에 없고, 고단한 수행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이미 포인트 배분이 가능한 ‘개조’라는 역대급 특성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이젠 호흡만으로도 마나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까지 생겼으니 다른 마공사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뒤로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용의 박동 호흡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정좌를 하고 앉은 채, 부동자세로 착실하게 용의 박동에 맞는 마나 회로를 호흡으로 그려내며 마나를 축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몸을 움직여서 용의 박동을 직접 사용하는 것인데, 이 방법에는 초당 10이라는 마나 소모가 발생한다.
대신, 마나가 버텨주는 한, 기존에 비해 20%나 향상된 육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어느 한 곳만 강화시키는 게 아니라, 모든 육체 능력 높여주는 것이니 실로 엄청난 효과였다.
한수호의 마나량은 1,400정도.
다른 특성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초당 10이면 2분 20초 동안 20% 증가된 육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어려운 상황을 뒤집거나, 위험을 벗어나기에는 충분했다.
한수호는 다음으로 용형 4식에 대한 걸 살펴봤다.
첫 번째 기술은 ‘시작식, 용의 비늘’인데, 이 기술은 일종의 방어 기술로 몸에 방어막을 형성시켜 상대의 공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을 펼치는데 필요한 마나는 무려 1천.
두 번째 기술은 ‘숙련식, 용의 숨결’이었다.
이 기술은 드래곤의 숨결을 자신에게 뿜어내 육체 능력을 30% 향상시키고, 숨결을 무기에까지 덧씌워 강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놀라운 기술이었지만 이 기술을 한번 쓰면 마나 2천이 날아간다.
세 번째 기술은 ‘명인식, 용의 폭주’였다.
용형 4식 중 가장 확실하게 적을 타격할 수 있는 기술로, 무려 5천의 마나를 소모해서 강력한 공격 세 가지를 펼쳐낼 수가 있었다.
마지막 기술은 ‘초월식, 용의 권능’.
이는 말 그대로 드래곤의 권능으로 염력류의 능력을 사용하는 기술이었으며, 어처구니없게도 마나 소모량이 1만이나 되었다.
지금보다 마나량이 10배는 높아져야 간신히 한 번 정도 능력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용형 4식은 내용만 봐도 정말 놀라웠다.
이걸 제대로만 펼쳐낼 수 있다면 사왕오패도, 사대광마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터.
문제는 마나 소모량이 턱없이 높다는 것이고, 이 기술들을 실전에서 쓰기 위해선 용의 박동으로 심장에 정확한 술식을 단숨에 새겨넣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빡세네.’
용마검을 손에 넣은 건 좋은데, 갑자기 해야 할 일들이 확 늘어나 버렸다.
틈나는 대로 용의 박동 호흡법을 익히면서, 용형 4식을 펼치기 위한 술식 연습도 해야 했다.
대충 마나 회로를 확인해 봤는데, 지금까지 본 무엇보다도 거대하고 복잡했다.
‘그래도 해야지. 강해질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쓰든 강해져야 해.’
한수호는 그렇게 다짐하며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하다.
단순한 팔찌일 뿐인데 왜 이름은 용마검일까?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이었다.
차르르륵. 채앵!
팔찌가 수천 조각으로 쪼개지더니 커다랗고 화려한 모습의 검으로 바뀌었다.
한수호의 손에 쥐어진 1.5미터 길이의 검.
검은 흰색 바탕에 붉은 문양이 잔뜩 새겨져 있어 굉장히 멋져 보였다.
검신은 손가락 네 개 정도 되는 넓이였고, 검막이가 있는 위치에선 백적드래곤이 여의주를 물고 있었다.
한수호는 본능적으로 검의 정보를 훑었다.
[진.용마검]
-코스트: 764
-용마검의 마화기를 이겨낸 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아스루나 최강의 검입니다.
-무엇이든 벨 수 있습니다.
-진.용마검 사용 시에는, 초당 100의 마나가 소모됩니다.
-진.용마검이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자는 착용 및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주인이 원하거나, 마나가 부족해지면 팔찌 형태로 되돌아갑니다.
>>진.용마검 소환을 위한 명령어를 지정하세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내용이었다.
코스트는 무려 764.
팔찌 형태일 때는 123이었는데, 검으로 변하자 6배가 넘게 뛰어올랐다.
‘이게 아스루나 최강의 검이라고?’
라뮬이나 그랑, 루크처럼 속성을 지닌 것도 아닌데도 감히 최강의 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코스트만 봐서는 최강이 맞다.
하지만 단순히 모든 걸 벨 수 있다는 것만으로 최강이라 칭하는 건 조금 오버가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초당 100의 마나가 소모된다면 지금의 한수호는 이 검을 14초밖에 사용할 수 없다.
그 점을 떠올린 한수호는 화들짝 놀라 급히 검을 팔찌 형태로 되돌렸다.
바로 마나량을 확인해 보니,
*[마나] : 688(+10)
그 잠깐 사이에 마나가 800이나 날아가 버렸다.
‘이거 쥐고 용형 4식 쓰면 더 엄청나려나?’
예측이긴 했지만 거의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검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 이걸 들고 용형 4식을 펼치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뭐, 일단 용의 박동으로 마나량부터 높이는 게 정답이겠네.’
한수호는 팔찌로 되돌렸음에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메시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진.용마검 소환을 위한 명령어를 지정하세요.
‘소환을 위한 명령어라…. 거, 참. 게임 마려워지는 말일세.’
한수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월의 이름을 지었을 때처럼 대충 명령어를 지었다.
“진용.”
진.용마검이니 진용.
참 쉽고 간단한 명령어였다.
>>소환 명령어를 ‘진용’으로 하시겠습니까?
YES/NO
안 된다고 하면 좀 더 고민해 보려고 했는데, 바로 된단다.
그래서 그냥 YES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거 검으로 소환하려면 입으로 말해야 하는 거야?’
설마 하는 마음이 되어 속으로 ‘진용’이라고 말해 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검은 소환되지 않았다.
“젠장.”
적을 앞에 두고 폼까지 잡아 가며 ‘진용’이라고 말할 생각을 하니 자신의 몸에 중2병이 빙의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리기엔 너무 멀리 왔다.
“하아….”
괜히 한숨을 내쉰 한수호는 전투 영역의 잔여 시간을 확인했다.
[00:31:48]
‘아직 30분이나 남았네?’
그냥 나갈까 하다가 이런 엄청난 마화기가 6개나 더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마나량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한수호는 바로 용의 박동 호흡법을 실행해 보기로 했다.
각인된 기억을 끄집어내 보니 이 호흡법을 만든 누군가로 생각되는 인물의 전언이 함께 떠올랐다.
[…. 용의 박동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며, 집중력이 높을수록 빠른 마나 축적이 가능하다. 허나 집중력이 높지 않아도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마화의 기운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건 용의 박동을 사용할 최소한의 자격이 된다는 의미이니, 하루 6시간씩 꾸준히 용의 박동으로 호흡을 한다면 2년 내로는 마나량 1만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수호의 기대를 확 저버리는 내용이었다.
‘2년이나?’
용형 4식의 초월식을 한 번 쓰는 데만 앞으로 2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이니 참으로 답답했다.
‘그래도 내 정신 스탯이 좀 높은 편이니까 괜찮지 않으려나?’
한수호는 정신 스탯이 11이나 된다는 사실에 작은 희망을 품고 호흡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 * *
전투 영역 시간이 끝난 순간 한수호는 현실로 튕겨 나왔다.
컨테이너 하우스의 창문을 바라보니 벌써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야겠네.’
벌써 저녁 8시가 넘었다.
굳이 이 시간에 찬바람 맞아 가며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정한 그는 침대에 다시 털썩 주저앉아 방금 용의 박동을 통해 마나가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자신의 신체 스탯을 확인한 순간, 한수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슴] : 131(+37)
*[마나] : 1,188(+310)
‘뭐야? 30분 만에 이렇게나 오른다고?’
날아갔던 마나가 모두 채워진 것도 모자라 가슴 스탯은 코어까지 쳐서 1씩 총 2가 올랐고, 마나 수치 또한 각각 8씩 상승했다.
즉, 30분 호흡으로 마나 회복 800과 더불어, 스탯 2에 마나량 16이 상승이라는 기막힌 효과를 얻었다는 거다.
이 정도 효율이면 1시간이면 4에 32가 되는 거고, 열흘만 지나도 스탯 40에 마나량 320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효율은 한수호의 몸에 도플갱어의 생명 코어가 박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그게 없었다면 효율은 반토막 났으리라.
‘도플갱어 녀석의 생명 코어를 가슴에 박아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네.’
암만 생각해봐도 정말 너무 잘한 것 같다.
그 덕에 충실하고 강력한 수하를 하나 얻은 데다가 자신의 능력도 크게 높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슴 스탯도, 마나량도 한수호 자신의 수치를 높이면 생명 코어의 수치도 함께 늘어난다.
그 말은 백윤후로 변신한 도플갱어의 능력도 덩달아 강해진다는 의미다.
생명 코어가 자신의 몸에 박혀 있는 이상, 녀석이 배신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너무 강해져 버리면 컨트롤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추가적인 조치를 해 둬야 겠어.’
이렇게 불안해할 필요 없이 녀석을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두면 된다.
그 조치에 딱 알맞은 물건이 있었다.
‘이번에도 재우 형한테 신세 좀 져야겠는데?’
한수호에게 필요한 물건은 지금 특무부 아티팩트 창고에 있기 때문이었다.
도플갱어에 대한 걱정을 살짝 덜어낸 한수호는 다시 용의 박동에 집중했다.
‘어쨌든, 이 호흡법을 매일 1시간씩만 해도 10개월이면 1만 채울 수 있다는 말이잖아?’
예상보다 마나량 1만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확 앞당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2년은 왠지 까마득한 느낌이었지만, 10개월이라고 하니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좋았어. 매일같이 2시간씩 해서 5개월 이내로 확 당겨야겠어!’
한수호는 주먹까지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침대에 앉아 호흡법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좀 더 길게 가볼까?’
한수호는 호흡법과 더불어 용형 4식의 술식 연습까지 병행하며 무려 5시간이 지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