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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105화 (105/375)

105화

“형. 큰일 났는데요.”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감지한 한수호는 김재우를 불렀다.

“뭐? 왜? 무슨 일인데?”

“아무래도 제가 무슨 실수를 한 모양이에요. 던전 위험도가 확 뛰었어요.”

“어?”

말하는 한수호도, 듣는 김재우도 황당한 표정.

“네가 뭘 했다고 위험도가 올라?”

“제가 여기 온 것 자체가 문제였던 모양이에요.”

에둘러 말하긴 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한수호가 여기에 와서 포인트를 흡수한 탓에 몬스터 라라가 깨어났고, 발자크가 라라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니까.

“저번처럼 시급한 거냐?”

“네. 당장 들어가서 던전을 폐쇄해야 해요.”

“또?”

김재우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번엔 위험한 일 없을 거라더니, 어김없이 사고가 터졌다.

‘내가 그거 플래그라고 했잖아!’라고 한수호에게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한수호는 미안한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진압팀 호출하마.”

“그럼 늦어요.”

“늦어도 할 수 없어! 또 저번처럼 반쯤 죽어서 나오려고?”

김재우가 화를 냈다.

이번엔 한수호를 위험 속에 끌고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 던전에 진입하면 형이랑 저만으로도 충분히 폐쇄할 수 있어요. 하지만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이 던전은 위험해질 거고, 진압팀이 올 때쯤이면, 진급 마공사 10명이 와도 해결하기 어려워질 거에요.”

“…. 뭐라고?”

김재우는 그 말이 사실인지 의심했다.

물론 한수호는 크게 과장되게 한 말이었지만, 위험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발자크가 라라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이프리트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이고, 놈들은 이 던전을 마나 폭발시키려는 작업을 진행할 게 뻔했으니까.

“재우 형. 제가 부모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릴게요. 지난번 같은 상황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당장 도망쳐 나오면 되잖아요? 지금이 바로 골든 타임이라고요!”

“….”

김재우는 고민에 빠졌다.

던전이 폭주하기 시작하면, 한수호의 말처럼 골든 타임이라는 게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시간을 지나칠 경우, 몇 배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해결하기 어려워지는 법.

특무부의 마공 요원이라면 진압팀을 호출한 뒤 혼자서라도 던전에 들어가 상황부터 파악하는 게 맞다.

게다가 한수호는 부모님 이름까지 걸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이 정도면 속는다 해도 한 번은 더 믿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아…. 네가 트러블 메이커냐, 아니면 나인 거냐? 매번 널 만날 때마다 사고가 끊이질 않는구나.”

“그거 따질 시간에 얼른 해결부터 하자고요.”

한수호의 재촉에 김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 말대로 하마. 하지만, 이번에도 또 같은 문제가 생기면 두 번 다시 너랑 던전은 돌지 않을 거다. 약속할 수 있겠니?”

“약속해요.”

“알았다. 빨리 준비해라. 난 우선 진압팀부터 부르마.”

“네.”

김재우는 바로 본부에 비상을 걸었다.

던전이 더 위험해질 것을 대비해 진급 마공사로 5명 이상을 요청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빠르게 마쳤다.

한수호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착용구를 꺼내 허리에 둘렀고, 혹시 몰라 용마검 팔찌도 손목에 채웠다.

이에 반해 김재우의 진입 준비는 좀 더 복잡했다.

항상 매고 다니는 커다란 백에서 전투용 장비를 꺼내 몸에 착용했다.

야간투시경에 수중 호흡도 가능한 장치가 달린 특수 헬멧에 팔다리를 뺀 신체 대부분을 보호해주는 방검복, 거기에 대몬스터용 대구경 소총과 검까지.

지난번 경험 이후 김재우는 만약을 대비해 필요한 장비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

“준비 끝?”

“네.”

“이번엔 내가 앞장선다. 넌 백업이고.”

“알았어요.”

한수호는 실제로 전면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던전이 7급으로 올랐다고는 해도 김재우는 진급 마공사였고, 6급 몬스터인 라라만 조심하면 김재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던전을 클리어해서 그 보상을 김재우도 얻을 수 있게 하려고 일부러 시급한 척 말한 것이었다.

게이트 앞에 선 두 사람.

김재우가 먼저 소총을 견착한 상태로 게이트에 진입했고, 그 바로 뒤에 한수호가 따랐다.

* * *

싸아아아아

안개로 가득한 호수 위를 소형 고무보트가 천천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안개가 워낙 짙어 속도를 냈다가는 암초에 걸릴지도 몰랐고, 괜히 세이렌의 이목을 끌 수도 있었기에 조심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이미 세 차례나 전투가 있었다.

요마의 호수는 말 그대로 거대한 호수.

이곳이 호수가 아니었다면 던전이 아니라 일반 게이트와 다름없는 탁 트인 세계였다.

호수를 따라 결계가 쳐져 있어서 육지 면적은 매우 좁다.

대신 호수 중앙에 섬이 존재했으며, 일반적으로 마공사들은 그 섬에 올라 세이렌을 사냥하는 방식을 썼다.

세이렌은 그 개체 하나로는 전투력이 높지 않다.

평급 마공사라고 해도 세이렌 서넛은 충분히 잡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이렌의 무서운 점은 음파를 이용한 정신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안개 속에 숨어서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사람을 유혹하는데,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노래에 홀려 바로 세이렌의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수년 전, 처음으로 이 던전이 등장했을 땐, 많은 마공사들이 멋모르고 진입했다가 어이없는 인명 피해를 낳기도 했다.

지금이야 세이렌에 대해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어서 준비만 단단히 한다면 던전 공략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던전을 국가에서 폐쇄하지 않고 그냥 두고 있는 건, 이 던전에서 나오는 이익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세이렌이라는 몬스터는 그 자체가 큰돈이 된다.

세이렌은 몬스터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외형 때문에 돈 많은 호사가들이 관상용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마공사에게 생포된 세이렌은 성대가 제거된 채 튼튼하고 커다란 어항에 넣어져 길러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세이렌의 심장을 요리해 먹으면 미용과 주안의 효과가 큰 것으로 소문이 나 있어서 인기가 대단했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정기적으로 팀을 꾸려 세이렌 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니 이 던전은 항상 마공사들로 북적이는 게 정상이겠지만, 실상은 또 달랐다.

세이렌은 똑똑했고,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되면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즉, 마공사들이 제대로 된 준비를 해서 팀을 짜 들어온다 해도 이를 눈치챈 세이렌들이 나타나질 않으니 사냥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엔 바글대던 마공사들도 이젠 여기서 시간 낭비할 바에야 확실하게 돈이 되는 게이트 사냥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고요하군.”

김재우는 여러 가지 투시경을 번갈아 사용하며 호수 중앙의 섬을 향해 보트를 움직이는 중이었다.

“지금은 조용해도 금방 난리 칠 겁니다.”

한수호의 말에 김재우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세 마리 세이렌의 시체에서 심장을 꺼내는 한수호를 노려봤다.

“나 같아도 동족 시체를 그렇게 만드는 놈을 보면 난리 치겠다.”

“이거 몬스터예요. 사람 아닙니다. 생긴 건 딱 사람 같지만 노래에 홀린 사람 산채로 뜯어먹는 몬스터라고요. 감정 이입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끄응…. 그래도 좀 너무한 거 아니냐?”

한수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상체는 가녀린 여자와 다름없는데, 그런 생명체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는 장면을 보니 속이 좋질 않았다.

“심장 하나에 못 해도 천만 원이에요. 벌써 전 삼천만 원을 번 거고요. 그래도 형한테까지 심장 꺼내라고는 안 하잖아요.”

“넌 나이도 어린놈이 뭔 비위가 그리 좋냐? 난 정말 수억을 줘도 세이렌 심장은 못 꺼내겠던데.”

“절박하면 하게 될걸요? 아무튼 슬슬 섬이 나올 때가 됐는데….”

한수호는 심장을 꺼낸 세이렌의 시체를 다시 호수로 던져 버렸다.

세이렌의 피가 호수로 번져나가자 안개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

또다시 노래가 시작됐다.

마치 오페라 가수가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듯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한수호는 정신 스탯이 11이라 꿈쩍도 안 했지만 김재우는 바로 반응을 보였다.

비틀,

경계 자세가 무너지자마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더니 한쪽을 멍하니 바라본다.

한수호는 급히 김재우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꽉 눌렀다.

“형!”

“윽!”

“긴장하세요. 저 없었으면 쟤들한테 끌려갔다고요.”

한수호가 가리킨 방향에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낸 세이렌 열두 마리가 모여 있었다.

놈들은 근처 10미터 내로는 접근하지 않았다.

이미 세 차례에 걸쳐 그렇게 접근했던 세이렌 중 여덟 마리가 죽었기 때문.

여덟 마리 중 다섯 마리는 김재우의 헤드 샷에 머리에 구멍이 뚫렸고, 세 마리는 한수호가 열화기로 세이렌의 수분을 단숨에 기화시켜 죽였다.

위험을 감지한 세이렌들은 더 이상 무턱대고 덤비지 않았다.

멀리서 기회를 엿보다가 노래를 부르거나 배가 섬으로 가지 못하게 물의 흐름을 마구 흩트릴 뿐이었다.

하지만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통하지 않았다.

한수호는 거의 면역에 가까웠고, 김재우는 그런 한수호가 옆에 있으니 홀리더라도 바로바로 정신을 차렸으니까.

“저기, 섬이다.”

안개로 인해 시야가 10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섬이 코앞에 나타나서야 알아본 김재우는 조금 속력을 냈다.

보트가 섬에 닿자마자 땅 위로 보트를 끌어 올려 근처 바위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섬 안쪽을 보니 살짝 경사진 언덕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제 보스 잡으러 가볼까?”

“조심하세요. 세이렌도 그렇지만 보스는 더 강해져 있을 테니까요.”

“나도 안다. 네 걱정이나 해라. 내 뒤에 바짝 붙고.”

두 사람은 경계 자세를 유지한 채로 안개 속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나아갔다.

* * *

섬의 중앙은 마치 그리스 신전의 유적과 같은 신비로운 장소였다.

여기저기 굵은 기둥이 부러져 널브러져 있었고, 제단 같은 바윗덩이가 사방으로 굴러다니는 상태.

그곳에 보스가 있었다.

세이렌 퀸.

한수호가 보는 던전의 정보대로라면 ‘라라’라는 이름을 가진 몬스터였다.

라라는 붉은 머리카락과 매우 아름다운 얼굴에 남자의 시선을 빼앗기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뱀처럼 생긴 하체를 땅 위에 길게 늘어뜨리고, 덩치가 코끼리만큼이나 크다는 점만 빼면 무섭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네놈들이 감히 내 백성을 해치다니!”

라라는 예쁜 눈을 치켜뜨며 분노에 가득 찬 외침을 날렸다.

그것도 매우 유창한 영어로.

양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삼지창을 당장이라도 내던질 것처럼 라라는 흉포하게 행동했다.

꽈르르릉

굵은 꼬리에 맞은 돌기둥이 하늘을 날고.

쩌저적

삼지창에 맞은 바위가 반으로 쪼개졌다.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라라를 발견한 김재우는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나설까요?”

한수호가 한마디 하자 김재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한다. 넌 물러서 있어!”

김재우도 마공사다.

스무 살도 안 된 아카데미 학생을 앞에 내세울 정도로 못난 사내가 아니었다.

퉁퉁퉁.

김재우가 대구경 소총을 발사하자 라라를 향해 큼직한 탄환이 날아갔다.

라라는 그걸 피하지도 않은 채, 정면에서 입을 크게 벌렸다.

끼아아아아!

엄청난 음파 공격.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에 세 발의 탄환이 일제히 터져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라라가 꼬리로 땅을 쳐내더니 붕 날아올랐다.

“처참한 죽음을 선사하리라!”

라라의 양손이 번쩍했다.

거의 동시에 두 개의 커다란 삼지창이 한수호와 김재우를 향해 내리꽂혔다.

꽈앙. 꽝!

한수호는 가볍게 피해 냈지만 김재우는 완전히 피해 내지 못하고 허벅지를 창날에 베이고 말았다.

“윽!”

“형, 뒤로 빠져요!”

어느새 라라가 거구를 움직여 쏜살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김재우는 일단 뒤로 물러서면서도 그의 특성인 ‘정밀 분석’을 발휘했다.

그사이 한수호가 김재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열화기로 거대한 방벽을 세웠다.

이를 본 라라가 사람 몸통만 한 손으로 불의 벽을 후려쳤다.

콰가가가각

길고 날카로운 손톱은 불의 방벽마저 갈라냈지만 한수호는 이미 김재우를 데리고 멀리 물러난 상태였다.

“시간이 없어서 약점 하나밖에 분석을 못 했다. 저 괴물은 머리가 약점이야.”

김재우의 정밀 분석은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때 굉장히 쓸모가 많았다.

반경 10미터 안에 들어온 목표에 대해서만 발휘되고, 완벽한 분석을 위해선 적어도 3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 조건만 해결되면 상대의 거의 모든 걸 파악해 낼 수가 있었다.

“알았으니까, 뒤로 물러서요. 저놈은 전투에 능한 제가 처리할게요.”

한수호가 김재우를 안심시키는 그때, 분노한 라라가 바닥에 꽂힌 두 개의 삼지창을 뽑아 들며 두 사람을 향해 또다시 입을 쫙 벌렸다.

그런데 이번엔 음파 공격이 아니었다.

소리가 없다.

분명 입을 벌리고 있고, 주변 공기가 크게 떨리는 것으로 봐선 음파가 발출되고 있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한수호의 귀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히 여긴 한수호는 김재우에게 피하라고 소리치려 했다. 그때,

쿵.

김재우의 손에서 대구경 소총이 떨어져 내렸다.

그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고, 헤 벌린 입에선 침까지 흐른다.

“형! 정신 차려요, 형!”

팔을 꽉 붙잡아 소리쳤지만 김재우는 멍하니 라라를 바라볼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놈은 내 사이킥 웨이브에 당했다.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상태지. 너도 곧 똑같은 신세로 만들어 주겠다!”

라라는 삼지창 두 개를 허공에서 마주치며 살기를 뿌려 댔다.

그런데 한수호의 반응이 이상했다.

김재우가 라라의 마법 같은 수법에 당한 것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오히려 히죽거리며 라라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런. 친절하게도 눈과 귀를 알아서 막아 주셨네. 그 보답으로 깔끔하게 보내 주지.”

안 그래도 김재우가 볼까 봐 전력을 드러낼 수 없었던 한수호는 이제야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얗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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