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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108화 (108/375)

108화

18만 5천원.

김재우가 한수호와의 한 끼 식사로 지불한 금액이었다.

여자친구인 윤재희와도 이렇게까지 비싼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김재우는 기분 좋게 정말 크게 한턱냈고, 한수호를 아카데미 정문까지 데려다주었다.

“무리한 거 아니죠?”

“어차피 잘 먹고, 잘 싸려고 돈 버는 거다. 먹는 거엔 돈 아끼는 거 아니라더라.”

“그거, 재희 누나가 한 말 같은데….”

“아무튼! 오늘 고생했다. 이번 주 수업 잘 듣고. 주말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

김재우는 던전 클리어의 짭짤한 보상에 맛을 들렸는지, 먼저 나서서 약속을 잡으려 들었다.

“재희 누나는 안 만나요? 그러다 재희 누나 바람나면 저한테 책임 돌리려고요?”

“재희? 걔는 바람 피울 재목이 아니라 괜찮아. 그리고, 어차피 특무부에서 매일 보는데 뭐.”

“그래도 너무 안심하다가 큰코다쳐요.”

“그럼 금요일 저녁에 데이트하지 뭐. 토요일은 너랑 만나고.”

“이번엔 재희 누나도 같이 보는 걸로 하죠. 어차피 서울엔 이제 8, 9등급 던전은 몇 개 안 남았잖아요?”

8, 9등급 던전은 세 개만 더 돌면 끝이다.

그럼 7등급짜리 던전을 돌아야 하는데, 그러면 김재우 한 명으로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되는 거면, 나야 좋지. 네 녀석이 하도 비밀 유지 어쩌고 해서 재희한테도 쭉 숨겨왔거든.”

이럴 줄 알았다.

김재우는 감이 좋고, 판단이 날카로운 반면 융통성이 상당히 부족했다.

한수호 딴에는 윤재희한테는 던전의 위험성에 대해 대충은 언질을 해줘도 된다는 의미였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행하고 있었으니.

“그럼 토요일에 봬요. 이번엔 좀 일찍이요.”

“그래, 알았다. 수고!”

김재우는 차를 몰아 도로로 사라져 갔다.

한수호는 시간을 확인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평소였다면 컨테이너 하우스에 들렀겠지만 오늘은 바로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했다.

‘내일부터 또 수업이니까 좀 일찍 쉬지 뭐.’

그렇게 한수호는 곧장 기숙사로 향했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대충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공법폰을 확인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친구들한테도 연락 한 번 없다.

한수호가 어제 사기환을 만나느라 약속을 펑크 내서 삐진 것도 같았다.

‘내일 점심 쏴서 풀어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한수호는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서 침대에 올라갔다.

그리고 테블릿으로 마공사 전용 마켓에 접속한 다음, 세이렌의 심장을 상품으로 올렸다.

적정 가격은 천백만 원.

하지만 한수호는 그걸 2천만 원에 올려 버렸다.

정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비싸도 사려고 할 테고, 살짝 네고에 응해주는 척하면 적어도 천오백에는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상품을 재빨리 올린 한수호는 곧바로 전투 영역을 발동시켰다.

지이이이잉

이젠 자연스럽게 눈앞에 둥실 떠서 등장하는 전투 영역의 구체.

한수호가 손을 대자마자 그의 모습은 지워지듯이 사라졌다.

* * *

‘범이랑 살이가 있어서 그런지 진척 속도가 엄청 빠르네.’

한수호는 전투 영역 안에서 집이 척척 지어지는 모습에 감탄했다.

2층 공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마무리 단계다.

재밌는 건 이제 월은 무거운 자재를 전혀 들지 않고, 공사 현장 관리자처럼 노란 안전모를 쓴 채, 설계도와 펜을 들고 지시만 내리고 있다.

자신보다 두세 배는 커다란 덩치의 범이와 산이를 일사불란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니, 잘 키운 봇 하나 열 수하 안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필요한 자재는 이번 주 내로 다 채워 줘야겠어.’

월이 요구한 자재 목록이 상당한 터라, 그걸 다 사들이면 수억은 필요할 터.

그래도 안전 가옥을 짓는데 들어가는 돈이라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때, 범이와 살이에게 작업 지시를 마친 월이 한수호가 있는 곳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자재는?]

손부터 내밀며 자재 내놓으라고 말하는 월이 귀엽기만 하다.

“며칠만 기다려. 자재 부족하면 하루 이틀은 쟤들 데리고 좀 쉬어도 되고. 심심하면 니들끼리 대련이라도 하던가.”

그 말에 월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눈으로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판, 콜?]

희한한 말투로 한수호와 대련하자고 제안하는 월.

“오늘은 별로. 내일부터는 약속대로 여기 올 때마다 대련해 줄게.”

[알았다. 기대하겠다.]

월은 누구처럼 징징대지 않고 바로 한수호의 말에 수긍했다.

의연하게 다시 공사장으로 향하는 월을 보며, 한수호는 라라도 월처럼 고분고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가슴 부근을 누가 간질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눈앞으로 이상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라라가 묻습니다. 이 야심한 밤에 잠은 안 자고 왜 자길 떠올리냐고.

‘이게 무슨…? 설마, 이게 텔레파시?’

>>라라가 말합니다. 텔레파시 맞다고. 그러니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생각하면 서로 피곤할 뿐이라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텔레파시라고 해서 생각으로 대화를 하는 그런 방식을 생각했는데, 이건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마치 제삼자를 사이에 두고 말을 전달하는 방식에 한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야 했다.

>>라라가 웃습니다. 텔레파시로 직접 대화하려면 아직 백 년은 더 지나야 한다고. 이 정도도 훌륭하니 만족하라고 합니다.

한수호는 눈앞의 메시지는 더 이상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원래는 텔레파시로 라라에게 아스루나에 대한 것과 발자크에 대한 걸 좀 더 물으려고 했지만, 나중에 직접 만나서 확인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한 단계 거쳐서 전달하는 방식의 대화는 그다지 내키지가 않았으니까.

‘나도 잘 테니 너도 빨리 자라.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라라를 떠올리며 속으로 이런 말을 생각하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라라가 서운해합니다. 잘 자라는 말 한마디 못 해주냐고.

한수호는 이번 텔레파시는 그냥 씹기로 했다.

대신 김재우에게 받은 나노 음료를 꺼내서 코스트를 부여했다.

[이산의 나노 음료]

-코스트: 4

-이산이 제작한 나노 정수기에서만 만들어지는 특별한 음료입니다.

-피로 회복, 체력 회복, 정신력 강화, 회복력 증가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음료를 흡수한 시간으로부터 96시간 동안 효과를 유지합니다.

-추가 효과로 음료를 흡수한 사람의 신체 상태를 체크하여 나노 정수기로 정보를 전송합니다.

역시나 이산이 제작한 아티팩트라 그런지 효과가 굉장히 좋다.

네 종류의 버프에 바이탈 체크 효과까지 지녔으니 특무부 요원들끼리 이 음료를 챙기려고 경쟁이 심할 만도 했다.

‘이걸 어떻게 개조할까나?’

그때부터 한수호는 온갖 방법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한수호는 이 음료를 백윤후에게 먹일 생각이었고, 백윤후가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지 철저히 감시하고자 했다.

그러니 버프 효과는 있어 봐야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네 종류 버프를 주는 문장을 삭제해 버렸고, 그 덕으로 무려 10만 포인트를 환수받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마지막 문장에서 바이탈 체크 대신 ‘감정’ 상태를 체크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정수기로 정보를 전송하는 게 아니라 ‘코어의 주인’에게 정보를 전달하게끔 조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효과가 96시간이 아니라 960시간까지 유지되도록 조치했다.

그 결과 소모되는 포인트는 20만 포인트.

환수받은 10만 포인트에, 이미 가지고 있는 18만이 있으니 아무 문제없이 정보 개조가 가능했다.

[개조된 나노 음료]

-이산이 제작한 나노 정수기에서만 만들어지는 특별한 음료입니다.

-음료를 흡수한 시간으로부터 ‘960’시간 동안 효과를 유지합니다.

-추가 효과로 음료를 흡수한 사람의 ‘감정’ 상태를 체크하여 ‘코어의 주인’에게 정보를 전송합니다.

한수호는 완벽하게 바뀐 나노 음료의 정보를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전투 영역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50분이나 된다.

그 시간 동안 차분하게 용의 박동 호흡법을 수련하기로 한 한수호는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언제나처럼 일일미션을 수행하고 소원의 열매를 먹어 NP를 축적시킨 한수호.

가볍게 빵과 우유로 아침을 떼운 그는 강의실로 향하며,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신체 스탯을 확인해 봤다.

[머리] : 113

[왼팔] : 110

[오른팔] : 110

[가슴] : 184(+39)

*[마나] : 1,718(+320)

[배] : 110

[왼발] : 110

[오른발] : 110

‘내 순수 마나만으로도 이제 곧 2천이네.’

라라와 운명의 끈으로 연결이 되면서 얻은 마나력 500이 컸다.

그 덕에 가슴 스탯은 거의 200에 근접한 상태.

이 상태라면 한 보름 정도면 마나량 2천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용형 4식 중 두 번째까지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충족되는 건데….’

용의 비늘과 용의 숨결.

하지만 아직은 용의 비늘조차 술식을 제대로 새길 수가 없는 상태라 펼쳐볼 수도 없다.

‘술식 수련에 집중해야겠다.’

한수호는 당분간 다른 짓은 하지 않고 술식 수련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강의실 앞이었다.

그런데 D반 강의실 앞은 많은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 장태산! 마침 잘 왔다.”

최지혁이 한수호를 반겨준다.

“다들 여기서 뭐 해?”

최지혁 옆에는 뚱한 표정의 양소혜가 있었다.

“궁금하면 너도 가서 보던가.”

확실히 삐진 티를 내고 있는 양소혜.

“쟤는 신경 쓰지 마. 별것도 아닌 일에 뭘 삐지고 그러는지.”

“근데, 뭘 가서 보라는 건데?”

“1학년 전체 공고문. 너도 일단 가서 확인해 봐.”

“어….”

한수호는 게시판에 다가가 큼직하게 써 붙여진 공고문을 확인했다.

공고문의 내용은 간단했다.

지난주에 치러진 중간 평가 결과가 게시된 공고문이었고, 1등부터 50명 단위로 커트하여 반을 새롭게 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1등은 신소이였다.

2등은 이하윤이었고, 양소혜와 최지혁이 3등과 4등을 차지했다.

장한설은 5등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50등의 대부분을 D반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사실 그건 당연했다.

양소혜와 최지혁이 훌륭한 작전으로 D반 학생을 케어했기 때문에 90% 가까이 끝까지 생존했고, 그 덕에 생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한수호는 자신의 이름을 17등에서 찾을 수 있었다.

블랙박스가 심어진 가슴 보호대가 망가지면서 리타이어로 처리되었음에도 그 전에 쌓아둔 점수와 막판에 알파 개체를 해치운 덕분에 그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재밌는 건, 백윤후가 딱 50등에 턱걸이했다는 것이다.

아카데미엔 소문이 파다했다.

중간 평가 마지막 날.

섬의 곳곳에서 중형 놀을 출현시키고, 알파 개체까지 깨운 장본인이 바로 백윤후라는 소문이었다.

그로 인해 백진성의 아들이지만 무거운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소문까지 돌았는데, 결국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특무부에 끌려갔다는 백윤후는 그날 바로 풀려났으며, 여전히 A반 학생으로서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이 일로 공고문 앞에서 웅성대는 중이었다.

“너 아는 거 없냐?”

최지혁이 50등에 걸쳐진 백윤후의 이름을 눈짓하며 물었다.

“나도 저 자식이 특무부 요원한테 끌려가는 것밖에 못 봤어.”

“교수님들은 뭐래? 그날 네가 가장 오래 교수님들하고 같이 있었잖아?”

“글쎄. 홍수빈 교수님 말로는 아무리 백윤후라도 이번엔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하시던데? 근데, 결과는 이러네. 확실히 백은 좋고 볼 일이야.”

한수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넌 분하지도 않냐? 신소이 말 들어보니까 너 백윤후 때문에 죽을 뻔했다면서?”

“소이가 그래?”

D반 꼴찌였던 신소이는 이번 평가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그녀의 속박 특성으로는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없지만, 강력한 딜러가 곁에 있으면 그 어떤 특성보다 무서운 위력을 보일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증명해낸 것이다.

그래서 벌써 부터 그녀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고위 마공사들이 상당히 많았다.

물론, 그 관심의 대상엔 한수호는 물론이요, 장한설과 이하윤, 양소혜와 최지혁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신소이가 다 봤다던데?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하윤이도 사실로 인정해 줬고.”

“뭐, 조금 위험했던 건 사실이지만 죽네 마네 할 정도는 아니었어.”

“어쨌든, 너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한 놈이잖아. 그런 자식하고 계속 한 반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냐?”

최지혁이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흥분하며 말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는 이미 진짜 백윤후를 죽임으로써 자신이 당한 걸 모두 되갚은 상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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