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네가 원한 정보는 개인 메일로 보냈다. 근데 의외네? 너 마공사 될 생각 아니었냐? 갑자기 왜 그 이상한 회사하고 관련된 차 번호를 조회하고 난리냐?]
한수호는 김재우가 보낸 메시지를 빠르게 읽었다.
어제 요청한 대로 특무부에 출근하자마자 한수호가 부탁한 차량 번호 조회를 끝내고 연락했던 것.
[저 몸값 비싸요. 돈 많이 주는 곳으로 갈 거니까 스카우트 제안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겁니다. ㅎㅎㅎ]
우스갯소리를 담아 회신을 보내자마자 경고음이 뜨며 메시지가 등장했다.
삐링-
>>폰으로 통신이 이루어졌습니다. 개발자에게 통신 내용을 전달하겠습니까?
YES/NO
‘당연히 NO지.’
김재우와 주고받는 메시지 정보는 절대 이산에게 전달되어선 안 되기 때문.
[으이그. 말이나 못 하면 말을 안 해요. 암튼, 알았으니까. 내가 준 정보 잘 써먹어라.]
김재우의 회신을 확인한 한수호는 바로 메일 계정을 열어서 김재우가 보낸 정보를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위에는 한수호가 넘긴 차량 번호가 있었고, 그 아래로 차종과 브랜드, 연식 등이 주르륵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단에 소유주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꽤나 생소했다.
‘김명중? 누구지?’
스포츠카의 소유주는 이산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 김명중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가장 아래에 적혀 있었다.
-메디컬 게이트 최고 경영자
‘뭐야? 갑자기 뭔….’
메디컬 게이트.
김재우가 한수호에게 왜 이상한 회사에 관심을 가지냐고 물었던 이유가 이거였다.
‘메디컬 게이트’는 설립된 지 20년이 다 된 기업이지만, 얼마 전까진 명함도 제대로 내밀지 못할 정도로 별 볼 일 없었다.
하지만 약 5년 전, 이 회사를 김명중이라는 젊은 경영자가 거액으로 사들이면서 전과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자금이 생긴 것인지, 용인의 한 연구 시설 단지를 매입하더니 각종 첨단 의료 기계와 수많은 연구 장비들을 사들였다.
그것도 모자라 서울 가양대교에서 발생한 7급 게이트를 경매로 낙찰받아 사설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메디컬 게이트는 돈 많은 일반인이나 수입이 좋은 마공사들에겐 매우 유익한 기업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겐 그림의 떡과 같은 이질적인 존재였다.
이익을 위해선 게이트 너머의 뉴에르다에서까지 한정식집을 오픈하는 여러모로 정신나간 기업.
그것이 바로 메디컬 게이트였기에 김재우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수호는 오후 수업이 예정된 강의실에 미리 들어와서 개인용 랩톱으로 김명중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사해 봤다.
유명인이라 그런지 그에 대한 정보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정보를 쭉 나열해 놓고 보니 뭔가 굉장히 이상했다.
[메디컬 게이트 CEO 김명중, 알고 보니 로또 당첨자!]
[메디컬 게이트의 최고 경영자 김명중,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 행진!]
[김명중, 그분이 알고 싶다! 모든 예측을 적중시키는 신비인. 그는 과연 인생 2회차?]
[예언의 왕자, 김명중. 2046년 월드컵 우승팀 맞춰 배당금 수익만 수백억?]
….
대부분의 뉴스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행운, 예지, 예언.
한 번도 아니고 최근 10년 동안 무려 열 번이 넘는 예상 적중을 이뤄 냈다.
뒷골이 싸하다.
한수호도 사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던 일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미래 지식으로 돈을 버는 행위는 가급적 하지 않았고, 10년을 수련에만 힘을 쏟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수호가 하려고 했던 일을 먼저 해버린 사람이 있다?
‘이 자…. 회귀자 아니야?’
이 정도면 회귀자가 아니라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로또에 당첨되고, 투자한 회사가 갑자기 커지고 사업은 죄다 대박. 거기다 이산과도 관계가 있다면 답은 하나야.’
한수호는 김명중이라는 사람이 회귀자일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었다.
나이도 스물여섯밖에 안 될 정도로 젊다.
‘아무래도 이산이 이 자하고 손잡고 짝짜꿍하는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말이지.’
방태식에 이어 회귀자로 의심되는 두 번째 인물의 등장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한수호는 저들의 존재를 눈치챘지만, 저들은 한수호에 대한 걸 전혀 모른다는 것.
최근 이산이 제작한 아티팩트 때문에 살짝 위험한 상황이 있었지만, 개조 특성으로 정보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할 방법은 찾아냈다.
회귀자가 자신 하나가 아니라면, 더더욱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다.
‘김명중이라는 사람을 좀 더 파보긴 해야겠는데….’
4월 중순에 벌어질 대법원 게이트 사건과 김명중에 대한 것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한수호는 그 답을 빠르게 찾아냈다.
‘백윤후!’
정체가 드러나도 상관없으며, 백진성이라는 막강한 배후를 둔 백윤후라면 대놓고 설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오늘 당장 만나야겠다.’
그 전에 사기환에게 연락하는 게 급선무였다.
한수호는 바로 사기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형. 나예요. 저번에 한 부탁 다시 한번 합니다. 이름 세 개랑 사진 하나 추가해요. 이름은 김명중하고 서한광, 오중현. 사진은 저녁에 따로 보내줄게요. 언제까지 확인 가능한지 알 수 있어요?]
한수호가 보내려는 사진은 바로 가족사진.
거기서 자신과 아버지, 한철형의 사진만 쏙 빼고 사기환에게 보내 줄 생각이었다.
공법폰의 안전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상황이라 가족들의 위치를 찾는 걸 더 늦추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답신은 바로 왔다.
[그래? 알았다. 한 방에 몰아서 의뢰하라니까 아주 노리셨구만? 암튼, 이름은 방태식, 김명중, 서한광, 오중현. 이 네 명 맞지? 거기에 사진까지 확인하는 거면 이번 주는 힘들고 다다음 주 초에 한 큐에 알아봐 주마. 괜찮지?]
[넵.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간단히 연락을 마쳤을 때, 강의실 안으로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수호는 백윤후가 언제 오나 기다리다가 조용히 문을 지나 뒷자리로 향하는 녀석을 확인했다.
[백윤후. 강의 끝나면 좀 남아. 할 얘기 있다.]
직접 말을 걸면 학생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문자로 연락했다.
[왜? 그냥 전화로 하지? 나랑 말 섞는 거 보이면 곤란하지 않나?]
[생사를 함께 넘나든 사이인데 뭐 어때서? 암튼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OK.]
그렇게 약속을 잡았을 때, 친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한수호와 눈이 마주치자 밝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최지혁만이 그늘진 얼굴로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 * *
수업은 정확히 5시에 끝났다.
오늘은 반 개편 이후 첫날이라 실습수업이 없었다.
다들 이론만 잔뜩 듣다 보니 피곤했는지 수업 종료와 동시에 칼같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건 한수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따로 재미있게 놀거리라도 찾았는지 양소혜, 장한설, 이하윤에 신소이까지 어울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지혁은 이번에도 굉장히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내쉬며 아련한 눈빛을 보였다.
이에 한수호도 더 못 참고 최지혁을 불렀다.
“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그러고 있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하지?”
“어? 흐음. 그게….”
여전히 머뭇거리던 최지혁은 결국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가양 게이트의 삼도천 한정식집 이름이 나온 순간, 한수호는 눈을 크게 떴다.
“거기서 밥을 먹겠다고?”
“어. 더 놀라운 게 뭐냐면, 그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이 바로 이하윤이라는 거다.”
“….”
한수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리는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안 그래도 김명중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그자의 메디컬 게이트 회사에서 운영하는 삼도천 한정식집을 간다면 기회가 될 수 있었다.
한수호가 장담하건대, 삼도천 한정식집은 단순한 식당이 절대 아니었으니까.
“놀랍지 않냐? 그 순해 보이는 하윤이가 너 골리겠다고 그 비싼 음식점을 예약할 생각까지 하다니 말이야.”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거기 가는데 아카데미 허락 안 받아도 되나? 7급 게이트 이상은 출입 허가서 받아야 하잖아?”
“너 잘 모르는구나? 거긴 예외야. 워낙 자체적인 보호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서 일반인이어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출입이 가능해.”
“그래? 잘됐네. 아무튼 말해줘서 고맙다.”
한수호는 정말 고마워했다.
지평학 교수, 아니 권존 김무광의 제자씩이나 되는 녀석이 친구라며 이렇게 신경 써 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지평학 교수의 지시로 한수호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긴 했지만, 그가 보이는 말과 행동이 모두 진심이라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기 괜찮겠냐?”
최지혁의 걱정 어린 말에 한수호는 웃었다.
“인당 5백만 원 정도면, 대충 케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좀 도와줄까?”
“괜찮다.”
“부담되면 얼마든지 말해. 많이는 아니어도 50% 정도는 지원사격 해줄 수 있다.”
유명하진 않지만, 그래도 소리비도가의 자식이라고 챙겨놓은 돈이 좀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정말 도움받을 생각이 없었다.
“아마…. 너보다 내가 더 돈이 많을걸? 그러니 걱정 마라.”
“자식. 사내라고 쫀심은 있어 가지고.”
최지혁은 피식 웃으며 먼저 강의실을 떠났다.
이제 강의실에 남은 건 둘뿐.
바로 한수호와 백윤후였다.
“다들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
어느새 다가온 백윤후가 한수호 바로 옆 계단에 엉덩이를 붙였다.
“부러우면 너도 끼던가.”
“내가 한 짓이 있는데, 그게 될까?”
이 도플갱어는 백윤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그의 모든 기억과 말투, 행동 패턴까지 똑같이 흉내 내고 있지만 알맹이는 다른 존재였다.
눈치를 보아하니 한수호처럼 친구들을 갖고 싶은 모양.
“원하면 가능하게 해 줄게.”
“…. 또 무슨 조건 같은 게 붙을 거 같은데?”
확실히 백윤후보다 감이 좋다.
“귀신 되더니 귀신 다 됐네.”
시답지 않은 농을 던진 한수호는 자리 오른편에 설치된 미니 냉장고 안에서 음료 캔 두 개를 꺼내 백윤후에게 내밀었다.
혼자만 마시게 하면 의심할까 봐 겉만 똑같은 걸 하나 더 만들어 두었다.
“일단 목부터 축이자고.”
겉은 같지만 안에 든 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음료.
그중 나노 음료에 해당하는 걸 백윤후에게 넘기고 자신은 평범한 음료를 따서 마셨다.
“캬. 시원하네.”
한수호가 마시는 걸 보고서야 백윤후도 캔을 따서 마셨다.
그걸 본 한수호는 속으로 미소를 그리며 미리 생각해 둔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우연히 구한 사진이 있는데, 거기서 한 사람 얼굴을 좀 확인해야 하거든? 너라면 알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지.”
“사진? 아, 알겠다. 넌 지금 백윤후의 기억에서 누군가를 찾아내려고 하는 거로군?”
진짜 백윤후보다 배는 눈치가 빠르고, 머리도 좋다.
“맞아. 이 얼굴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는지 좀 봐봐.”
한수호가 폰에서 동그랗게 오려진 한 젊은 사내의 사진을 띄워 보여줬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젊은 백진성이었다.
지금의 백진성과 같은 인물이라 하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다른 얼굴이지만, 사기환이 확인해 준 것이니 틀릴 리는 없었다.
“이게 누군데?”
역시나 백윤후도 사진 속 인물을 알아보지 못했다.
“정말 몰라? 어슴푸레 기억나는 거 없어?”
“전혀.”
“이 사진…. 네 아빠다.”
한수호의 말에 백윤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젊었을 때, 성형이라도 하셨나? 지금과는 완전 다른데? 내 어렸을 때 기억에도 아버지 얼굴은 이 사진하고는 완전 달라.”
한수호의 예상대로다.
백진성은 모종의 이유로 젊었을 때, 얼굴을 한번 갈아엎은 것이다.
그 이유를 캐보면 뭔가가 나올 것 같았다.
단체 사진 속 인물들 절반이 죽고, 그나마 살아있는 인물들이 발자크나 7대 마화기와 관련돼서는 그 어떤 내용도 세상에 언급하지 않는 이유도 밝힐 수 있게 되리라.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사실 확인이야. 네 아버지가 정말 성형을 한 건지, 맞다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형을 한 건지를 알아봐 주라.”
“내가? 지금 나 자숙 기간인데? 또 나대다가 아버지한테 걸리면 아카데미고 뭐고 다 취소야.”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네가 백윤후인 이상, 이 일을 해 줄 사람은 세상에 너 하나뿐이다.”
한수호의 말에 백윤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그렇게까지 말하니 안 해줄 수도 없고….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알아서 해라.”
“문제가 생겨도 절대 내 이야기가 나와선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
“일 터지면 나보고 혼자 독박 쓰고 죽으란 소리 같다?”
“어차피 너 안 죽잖냐? 코어가 여기에 이렇게 안전하게 있는 이상은.”
한수호가 가슴팍을 툭툭 쳐 보이자 백윤후는 큭큭 소리 내며 웃었다.
“하긴, 목이 잘려도 죽을 일은 없지. 대신 대체할 육체가 생길 때까지 기나긴 동면에 들어가겠지만 말이야.”
“내 덕에 네 코어의 마나력도 쑥쑥 오르고 있다는 것도 모르진 않겠지?”
한수호의 가슴에 심어진 생명 코어는 한수호의 마나력이면서, 백윤후의 마나력이기도 했다.
처음엔 265에 불과했던 마나력이 이젠 320이나 되니 백윤후도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
“물론 잘 안다. 그래서 고마워하고 있고.”
“말로만 하는 감사는 한 번으로 족해.”
“알았으니까 그만 해라. 쪽팔리게.”
백윤후는 괜히 턱을 긁적거렸다.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한수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너 아까 가양 삼도천 어쩌구 하는 것 같던데? 거기 가려고?”
“귀도 밝네.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 다 데리고 갈 예정이야. 너도 초대할 테니까 약속 비워두고.”
“나도?”
“우리 사이에 끼고 싶다며?”
“아니, 그렇긴 해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데….”
“새끼. 좋으면서 아닌 척은. 나 먼저 간다.”
한수호는 금세 짐을 챙겨 일어났다.
바로 백윤후와 헤어진 한수호는 기숙사로 향하며 혼자 피식거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백윤후가 마신 나노 음료의 효과가 확실하게 전해지기 시작했기 때문.
>>대상의 감정이 ‘묘한 기대감’에 물들고 있습니다.
지금 한수호의 눈앞엔 백윤후의 감정 상태가 정확하게 표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