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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116화 (116/375)

116화

예상과 다르게 이하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쪽으로 보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구역질 나는 광경이었다.

전체적인 구조는 도플갱어가 잠들어 있던 실험실과 동일했다.

중앙에 큼지막한 캡슐로 보이는 장치가 있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모든 걸 제쳐 놓고, 정말 기괴하게 생긴 생물체가 실험실 한쪽을 꽉 채우고 있다는 게 너무 달랐다.

얼핏 보기엔 거대한 심장처럼 생겼다.

위쪽으로 여섯 개의 굵은 혈관이 보이고, 아래쪽으로도 여섯 개의 혈관이 튀어나와 캡슐을 포함해 실험실 바닥으로 넓게 깔려 있었다.

새빨간 그것은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마치 심장이 박동하듯 일정한 간격으로 꿈틀대는 그건, 뭔가를 안에 품고 있는 고치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한수호와 백윤후는 안으로 뛰어 들어간 뒤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확실히 이하이는 보이지 않는다.

“백윤후. 너 저게 뭔지 알아?”

한수호는 혹시나 싶어 백윤후에게 물었다.

개조 특성으로 정보를 살피기 전에 백윤후에게서 먼저 답을 구해보려 했다.

“나도 처음 본다. 저거 외계생명체 아닐까?”

엄한 소리를 해대는 백윤후.

한수호는 하는 수 없이 개조 특성을 사용했다.

포인트가 있어서 정보가 읽히길 기대하면서.

그런데, 정보가 읽혔다.

[알파 #108(진화 중)]

-보유 포인트: 514,000LP

-보더쉘터 #108의 결계 에너지를 흡수 중입니다.

-알파 개체가 진화를 마치면 게이트를 향해 웨이브가 발생합니다.

-진화까지 남은 시간 [0001:09:14:22:43:51]

>>포인트를 흡수하면 진화 속도가 늦춰집니다. 포인트를 흡수하겠습니까?

YES/NO

눈앞의 심장같이 생긴 생명체는 놀랍게도 알파 개체였다.

그것도 1년 9개월 후면 지구로 웨이브를 일으킬 수 있는 엄청난 존재.

한수호는 서둘러 캡슐 쪽으로 달려갔다.

새빨간 혈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뒤덮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캡슐인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캡슐 안을 살펴보니, 역시나 없다.

원래 알파는 캡슐 안에 담겨 있어야 하는데, 안이 비었다.

그렇다는 건, 저 구석에서 꿈틀꿈틀 박동하고 있는 심장이 바로 캡슐 속에 있던 몬스터라는 의미였다.

“여기에 왜 이런 게 있지?”

백윤후도 당황스러워했다.

한수호는 그런 백윤후를 보다가 손가락으로 심장 형태의 고치를 가리켰다.

“저 안에, 너 있다.”

“…!”

한수호의 되도 않는 농담에 백윤후가 기막히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소 어색해진 한수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흐흠. 아무래도 캡슐 속에 있어야 할 알파 개체가 저 괴상망측한 고치 속에 들어 있는 것 같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한텐 보이니까.”

“보인다고? 뭐가?”

“정보.”

짧게 대답한 한수호는 포인트를 흡수하겠냐는 질문에서 YES를 선택했다.

안 그래도 포인트가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딱 알맞은 시점에 포인트가 등장했다.

>>포인트를 흡수하였습니다.

>>획득 포인트: 514,000LP

>>알파 개체의 진화 속도가 늦춰집니다. [0005:09:14:22:41:16]

>>보더쉘터에 결계 에너지가 다시 차오릅니다.

예상대로 진화가 4년이나 늦춰졌다.

한수호가 포인트를 흡수하면서 알파 개체와 결계 에너지의 연결이 끊어진 모양.

‘지금은 끊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연결되어서 에너지를 흡수하게 되는 거로군.’

한수호는 5미터는 되어 보이는 심장 고치를 올려다보며, 저걸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때, 한수호의 감각에 강력한 기운이 걸려들었다.

“누가 온다!”

보지 않아도 이 기운의 주인이 노랑머리 이하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들킨다.

주변을 빠르게 훑은 한수호는 몸을 숨길 장소를 찾았다.

뚜껑이 깨어진 캡슐.

한수호는 급히 백윤후를 끌고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쉿!”

자세를 낮추고 숨을 죽이자, 띠링 소리가 나며 실험실을 빙 두른 문들 중 한 곳이 활짝 열렸다.

* * *

이하이는 실험실 주변의 모든 시설을 직접 확인했다.

‘이미 몬스터들이 꽉 들어찼어. 당장 웨이브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 보더쉘터가 최초에 만들어졌을 때의 목적은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지 않게 몬스터의 숫자를 조절하며, 그 몬스터들에게서 마나력을 끌어모아 결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에겐 오히려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보더쉘터에 엘로이라는 대마법사가 장치를 추가함으로써 역할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지상의 몬스터 개체가 최소 숫자 이하로 떨어지면 알파 개체 내보내 결계 폐쇄 절차를 밟아야 정상인데, 지금은 알파 개체가 쓰러지면 쉘터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새로운 몬스터를 사로잡아 알파로 진화시킨다.

게다가 이 보더쉘터 #108의 경우엔, 새로 붙잡아 온 알파 개체에게 더욱 강한 마나력을 부여함으로써 게이트 등급보다 최소 두 배 이상 강력한 놈으로 탈바꿈시키는 중이었다.

중앙 쉘터 주변엔 번식한 몬스터들을 가둬두는 감옥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하이는 방금 그 시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다.

시설엔 몬스터들이 가득했다.

알파 개체가 진화를 마치가 깨어난다면 그 몬스터들을 데리고 언제든지 지구로 쳐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거의 끝나 있는 셈.

이하이는 다소 복잡한 표정이 되어 실험실 안으로 들어섰다.

“후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없는데?”

시선을 돌려 알파 개체가 진화 중인 고치를 바라봤다.

그녀는 오른쪽 눈에 착용한 ‘스캔 렌즈’를 이용해 한 번 더 고치의 상태를 점검했다.

[알파 #108]

-보더쉘터 #108의 결계 에너지를 흡수 중입니다.

-알파 개체가 진화를 마치면 게이트를 향해 웨이브가 발생합니다.

-진화까지 남은 시간 [0005:09:14:22:37:28]

간단하지만 필요한 정보가 모두 들어있는 메시지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하이가 사용한 건 스캔 렌즈로 아버지인 이산이 단 세 개만 제작한 특별한 아티팩트였다.

이 렌즈만 착용하고 있으면 마나력이 허락하는 한, 마나력을 소유한 어떤 것의 정보도 읽어낼 수가 있었다.

아티팩트의 정보를 비롯해 몬스터와 마공사의 정보까지도 읽는 게 가능했다.

스캔 렌즈를 통해 알파 개체의 진화 상태를 확인한 이하이.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팍 일그러졌다.

‘시간이 변했어?’

감옥 시설 점검 전에는 분명 1년 9개월 정도 남았다고 표시됐었는데, 지금은 5년 9개월로 바뀌었다.

크게 놀란 이하이는 캡슐 옆쪽에 설치되어 있는 컨트롤 박스로 달려갔다.

그리고 패널을 조작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바뀐 건 시간만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알파 개체와 결계의 축을 연결하던 고리가 잘려나갔다고?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녀는 수 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온갖 게이트를 돌며 보더쉘터의 안정성을 끊임없이 체크해 왔기에 이곳의 시설물을 사용하는 데 매우 익숙했다.

특히, 이프리트라는 조직이 일부러 던전에 마나 폭발을 일으킨다거나, 게이트 내의 보더쉘터를 조작해 몬스터 웨이브를 강제로 앞당기는 짓거리를 하는 것도 여러 차례 막아왔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벌어진 현상은 완전 반대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이하이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이프리트. 이 자식들이 여기까지 숨어들어서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여기까지 말하던 이하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이 실험실에서 자리를 비웠던 건 불과 10여 분.

그사이 이프리트 비밀 요원이 침투다면 아직 여길 빠져나가지 못했을 터다.

이하이는 표정을 차갑게 굳히며 주변을 쓸어봤다.

그러다 뚜껑이 깨어진 캡슐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쥐새끼 같은 놈. 기껏 숨은 곳이 거기냐?”

이하이는 캡슐 안에서 다른 존재의 호흡을 느꼈다.

관심을 갖지 않을 땐 몰라도, 그녀가 관심을 갖고 주의력을 기울이면 숨어있는 누군가를 찾아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시퍼런 빛을 내는 얇고 긴 검으로 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캡슐을 향해 다가섰다.

그때, 캡슐 안에서 손 두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잠시만요. 우리가 몰래 숨어들긴 했어도 잘못한 건 없는데 왜 쥐새낍니까?”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듯 양손을 번쩍 들고 일어서는 건 백윤후였다.

그런데 그의 말 중에 이상한 단어가 섞여 있다.

‘우리?’

이하이의 감각에 걸려든 호흡은 한 명뿐.

그렇다면 그녀의 감각도 속일 정도의 강자가 더 있다는 걸까?

흠칫 놀라는 그녀의 눈으로 또 다른 사람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프리트랑 친한 사이는 아닌가 봅니다?”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연 인물은 다름 아닌 한수호였다.

이하이는 크게 놀랐다.

이 보더쉘터는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시설이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전체를 따져도 보더쉘터에 대해 아는 인물은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안일함으로 인해 아카데미 학생 둘이 보더쉘터의 심장부까지 숨어들어왔다.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 전체를 흙탕물로 만든다더니, 네놈들이 딱 그 꼴이구나.”

이곳을 목격한 이상, 이하이가 할 수 있는 처리는 단 두 가지뿐.

이들을 회유해 입을 다물게 하거나, 아예 입을 열지 못하게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초면인데 왜 반말이실까? 아무리 봐도 우리 또래로밖에 안 보이는데 말이지.”

한수호는 캡슐 밖으로 나서며 빈정이 상한 듯 투덜댔다.

“지금부터 내가 질문을 하겠다. 어떤 대답이냐에 따라 너희들 생사가 달렸으니 잘 생각하고 답해라.”

이하이가 두 사람 앞으로 다가서며 눈을 흉흉하게 빛냈다.

“우린 여기서 아무것도 본 게 없고, 이것들이 다 뭔지 아는 것도 하나 없다. 자, 이러면 대답이 된 건가?”

한수호는 이하이가 뭘 물을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설렁설렁하게 대답하는 말투와는 달리, 한수호의 손은 라뮬의 검집 버튼에 이미 닿아 있었다.

이하이가 공격하면 언제라도 라뮬을 뽑아 반격할 수 있게끔.

얼굴은 평온해 보였지만, 지금 한수호의 몸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그만큼 이하이의 신체스탯과 마나력 수치는 대단했으니까.

“너. 정체가 뭐야?”

이하이는 한수호를 노려봤다.

스캔 렌즈로 보이는 마나력은 고작 362.

이미 2천이 넘고 있는 자신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몸으로 느껴지는 이 말 못 할 긴장감은 뭐란 말인가?

마치 궁급을 벗어난 강자를 마주한 것처럼 몸이 먼저 반응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나? 장태산. 여긴 백윤후고.”

“내가 네 이름을 몰라서 물은 거 같아!”

“알아도 한 번 더 각인하라고 말해준 거다. 이.하.이.”

한수호는 일부러 이하이를 자극했다.

이대로 이하이가 공격을 개시하면 방어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선수를 치기로 했다.

그래서 이하이가 심적으로 혼란을 느낄 만한 말을 던졌다.

그 생각은 적중했다.

한수호가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한수호는 라뮬의 버튼을 꾹 눌렀다.

티잉

검이 튀어 나갔다.

방향은 이하이가 있는 쪽.

검이 튕겨진 순간 한수호도 달려나갔다.

단숨에 라뮬을 낚아챈 그는 손에 불의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화르륵

라뮬이 강력한 화염을 뿜어 낸다.

한수호는 검과 한 몸이 되어 이미 이하이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심적으로 흔들린 지금이라면 한수호의 일격에 이하이는 크게 낭패를 보게 만들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파캉

힘껏 내려친 라뮬이 이하이의 푸른 검에 튕겨졌다.

엄청난 반응속도.

불과 눈 한 번 깜빡일 찰나의 순간에 날아든 공격인데 당황한 상태에서도 그걸 막아냈다.

거기다 반격까지.

이하이가 올려친 검을 한차례 크게 떨쳐내더니 강렬한 기세로 베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한수호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튕겨진 라뮬과 함께 몸을 핑그르르 휘돌려 이하이의 검세를 마주했다.

검과 검.

푸른색과 붉은색의 충돌이었다.

꽈앙

두 검이 허공에서 엑스자로 마주치며 강력한 폭음이 터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평균 스탯 170의 이하이가 인상을 팍 구긴 채 뒤로 주르륵 밀려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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