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120화 (120/375)

120화

월과 여학생들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야, 네 주인이 언제 올 줄 알고 그냥 기다리는 건데?”

양소혜는 자신을 곰, 무식 같은 단어로 표현한 월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인 곧 온다. 느낌적으로.]

“이런, 씨! 봇이 무슨 느낌을 느끼냐고! 됐으니까, 얼른 비켜. 저 마공사분들 괜찮은지 확인 좀 하려니까.”

양소혜가 기절한 마공사들 쪽으로 다가가려 하자, 범이와 살이가 막아서고 월도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주인 친구들한테 손을 쓰고 싶지 않다. 멈춰라.]

“자꾸 막으면 정말 박살 내 준다?”

[양소혜. 여기서 네가 가장 약하다. 고로 난 박살 나지 않는다.]

월은 여학생들의 마나력을 죄다 스캔한 뒤라 누가 가장 강한지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소혜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약해? 이 쥐방울만 한 고블린 녀석이 사람 보는 눈이 없네? 한설이나 하윤인 몰라도 신소이 보다는 내가 강하거든?”

객관적으로 봤을 땐, 분명 양소혜가 강하다.

하지만 실질적인 마나력은 신소이가 양소혜보다 높았다.

양소혜는 그걸 모르고 있으니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한 것이고.

[그건 네 생각이고.]

월은 사람 속을 긁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았다.

월의 눈이 한 말에 양소혜는 또다시 버럭 화를 내려 했다. 그때, 장한설이 말렸다.

“그만해. 장태산이 곧 온다잖아. 태산이 부하니까 거짓말은 안 할 거 아니야?”

“거짓말을 왜 안 해? 지금 나 열 받게 하려고 일부러 소이보다 약하다고 말하는 거 못 봤어?”

“푸흡. 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뭐. 너무 신경 쓰지 마. 흐흣. 큭.”

장한설은 고블린 봇의 말에 발끈하는 양소혜가 너무 재밌어서 피식거렸다.

“야, 장한설! 너까지 그럴 거야?”

“소혜 언니. 잠시만요. 근처에 누가 접근하고 있어요.”

이하윤의 놀라운 감각이 양소혜의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모두 자세를 낮추고 이하윤이 가리킨 방향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부스럭.

그쪽 방향의 수풀이 크게 흔들리더니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뭐야? 니들이 여기 왜 있냐?”

그는 백윤후였다.

백윤후도 낯선 기운을 느끼고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는 자세였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소이 뒤쪽에서 가벼운 탁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 한수호가 나타나 있었다.

“잠 안 자고 다들 여기서 뭐 해? 설마, 우리 뒤따라온 거냐?”

“장태산! 너야말로 뭐야? 왜 우리만 쏙 빼고 너희 둘만 따로 야간 이용권을 쓰냐고?”

양소혜는 월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한수호에게 풀려고 했다.

“뭔 소리야? 그럼 너희들 야간 이용권도 우리가 사줘야 한다, 뭐 이런 거냐?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 어? 그건 아닌데.”

양소혜는 바로 할 말을 잃고 버벅거렸다.

“소혜가 따지는 건, 이곳까지 함께 온 일행인데, 왜 개별 행동을 하냐고 그걸 묻는 거잖아.”

“우리가 무슨 수학여행이라도 왔냐? 각자 숙소로 들어간 이상 그때부턴 자유 시간이나 마찬가진데 개별 행동을 하든 말든 뭔 상관?”

한수호는 다짜고짜 뒤를 쫓아와서는 따지기부터 하는 태도에 살짝 화가 났다.

엄밀히 따져서 야간 이용권을 사용하는 건 자유의사인 거고, 내일 아침에 보자고 인사까지 했는데 그 이후에 뭘 하든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같이 야간 이용권 써서 구경하자고 하면 좀 덧나냐?”

장한설도 한발 물러서서 기분이 좀 그래서 그렇다는 식으로 살짝 무마시키려 했다.

“그건, 내가 생각 못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사과하지.”

한수호도 친구들, 특히 장한설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쯤에서 물러서기로 했다.

“자자. 다들 친구끼리 얼굴 붉히며 다툴 필요 없지 않나? 숲에 들어온 지도 꽤 됐으니까 이제 돌아가는 게 어떨까?”

백윤후가 중재를 하며 나서자 시간을 확인한 장한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11시 넘었네. 지금 안 가면 늦잠 자겠는데?”

“뭐? 11시! 아, 이를 어째! 12시 전에 잠 못 자면 피부 트러블 생긴다고!”

양소혜의 반응이 가장 격했다.

그때, 정신을 잃고 있던 마공사 둘이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수호가 급히 월과 범이, 살이를 데리고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너 또 어디가?”

“얘네 돌려보내려고.”

“돌려보내? 어디로?”

“잠시 기다려.”

한수호는 장한설의 질문을 무시한 채 몬스터 봇들을 데리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1분도 되지 않아서 한수호는 혼자서 다시 나타났다.

그사이 전투 영역에 들어가 몬스터 봇들을 두고 나온 것이다.

“너, 요즘 굉장히 수상해…. 대체 좀 전의 그 봇들은 뭔데?”

“던전 좀 돌면서 얻은 아티팩트야. 정해진 횟수에 한해서 타깃으로 지정된 물건을 불러낼 수 있는. 뭐, 그런 거.”

“던전? 아티팩트? 그래서 주말에 잘 안 보였던 거야?”

“어.”

한수호의 단답에 장한설을 살짝 기가 막혔다.

아티팩트라면 설명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봇들이 자신들의 이름과 특징까지 알고 있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장한설이 뭔가를 더 물으려고 할 때, 뒤척이던 마공사들이 눈을 떴다.

“으음….”

“어우. 목이야.”

한숨 잘 잤는지 기지개까지 켜며 정신을 차린 이경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왜 전부 여기에…?”

그러다 주변을 바라보고는 아직 숲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조심스레 경계 자세를 취했다.

“뭔가가 우릴 기절시켰다. 그놈이 근처 어딘가에 아직 있을지도 몰라!”

“모두 내 뒤에 숨어요!”

조미란까지 나서서 때늦은 사주경계를 시작했다.

그 두 사람만 빼고, 그들을 기절시킨 게 한수호나 백윤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실을 알려줄 수는 없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의 행동에 동참했다.

“너무 늦었으니까 일단 돌아가죠.”

한수호가 제안하자 이경호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다. 가는 길에 기회가 되면 사냥 한 번 더 해보는 거로. 그런데, 너희들…. 마공사 없이 너희들끼리만 이곳에 온 거야?”

이경호는 여학생 넷이 갑자기 나타났는데, 다른 마공사들이 보이지 않자 의아해했다.

“함께 오신 마공사분들도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몬스터 떼를 만나서 잠시 헤어졌거든요.”

일부러 그들과 거리를 벌린 거였지만, 장한설은 대충 그렇게 설명했다.

“그럼 내가 신호를 보내보마.”

이경호는 가슴에 차고 있던 통신기로 주파수를 잡아 누군가를 호출했다.

통신기에선 지직 소리가 몇 번 울렸고, 잠시 후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이경호 팀장? 자네 어디야?

목소리의 주인은 장한설 등과 함께 야간 사냥을 나온 마공사 중 하나였다.

“어, 오진규 선배님? 선배님도 야간 나왔어요?”

-VIP 여학생 넷하고 나왔다가 전투가 벌어져서 흩어졌어. 혹시 괜찮으면 같이 학생들 좀 찾아주지 않겠나?

통신기 너머의 말에 이경호는 주변에 멀뚱히 서 있는 여학생들을 둘러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저희랑 함께 있습니다. 다행히 더 깊이 들어가진 않았네요. 위치 어디십니까? 좌표 찍어주시면 합류하겠습니다.”

-뭐? 거기에 있다고! 후아…. 천만다행이구먼. 정말 큰일 난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여긴 SE119 섹터야. 우리보다 안쪽이면 자네들이 이쪽으로 오는 게 나을 테지.

“전 SF204 섹터에 있습니다. 대충 6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네요. 저희가 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여기서 기다리겠네.

통신이 끝나고 이경호는 학생들을 불러모았다.

“이제부터는 절대 돌발 행동 하지 말고 조용히 내 뒤만 따라오거라. 갑자기 대규모 인원이 되긴 했지만, 오히려 이편이 사냥을 즐기기엔 더 나을 거다. 안전하기도 하고.”

“네. 그럴게요. 저희도 트롤이나 파이라 한 마리 정도는 사냥할 기회를 주면 좋겠습니다.”

한수호가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말하자, 이경호는 마주 웃어 보이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때, 이하윤이 한수호 옆으로 슥 다가서며 한마디 했다.

“오빠. 돌아가면 나랑 이야기 좀 해.”

“어? 뭐…. 그래. 알았다.”

왠지 이하윤의 표정이 차갑게 느껴져 한수호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하윤이한테 뭘 잘못했나?’

그런데, 한수호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하윤 혼자만이 아니었다.

“너, 있다가 나 좀 보자.”

양소혜가 이까지 뿌드득 갈며 노려봤고,

“물어볼 게 있으니까 있다가 시간 좀 내.”

장한설은 눈썹을 찌푸린 채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소이도 한수호에게 슬쩍 다가섰다.

“음, 어…. 뭐 좀 물어보고 싶은데, 시간 낼 수 있을까? 지금 말고, 있다가.”

하나같이 따로 보자는 이야기라 한수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걸 뒤에서 지켜본 백윤후마저 한수호에게 붙어서며 한마디 툭 던졌다.

“인기 폭발이라 좋으시겠어?”

“그 입 다물어라.”

한수호는 괜히 백윤후에게 성질이었다.

* * *

한수호 일행이 스카이 우드캐슬로 귀환한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오진규 마공사 일행과 합류한 뒤, 맨손으로 돌아가기가 좀 그랬던 그들은 12명의 대규모 인원으로 트롤 사냥에 나섰다.

야행성인 트롤이 한창 활동할 시간이라 놈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많아 봐야 한두 마리씩 다니는 트롤들이 어쩐 일인지 네다섯 마리가 몰려다녔다.

그래도 구성 인원들이 모두 한 능력 하는 인물들이라 사냥은 어렵지 않았다.

VIP 손님을 데리고 야간 사냥에 나서면 보통은 한 팀당 두 마리 정도만 사냥에 성공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무려 9마리를 사냥했다.

그 덕에 손님용으로 주어질 여섯 마리를 제외하고도, 마공사들에게 세 마리가 주어지는 양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기분 좋은 상태로 귀환할 수 있었다.

귀환한 직후, 한수호는 혼자 여학생들 방을 찾아갔다.

네 명이 전부 자신을 보자고 했는데, 따로따로 만나려니 짜증도 나고 시간 낭비라 한꺼번에 해결할 생각이었다.

한수호가 숙소에 들이닥치자 여학생들이 모두 놀랐다.

분명 따로 보자고 했는데, 대놓고 한 번에 처리하자고 말하니 당황했던 것.

하지만 결국, 장한설부터 한 명씩 한수호에게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장한설이 궁금해했던 건, 마공사까지 기절시켜놓고 대체 어디를 다녀왔냐는 것.

이에 한수호는 특이한 몬스터를 발견해 백윤후와 둘이 독식하려고 뒤를 쫓아갔던 거라고 말했다.

결국 놓쳤지만, 잡았으면 이번에 지출한 비용을 모두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의 소득이 있었을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양소혜는 월과 몬스터 봇에 대한 걸 물었다.

그놈들한테 대체 뭘 가르친 거냐고.

왜 이하윤만 편애하고 자기나 장한설은 없는 사람 취급하냐고 따졌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가르친 게 아니라 A.I가 스스로 습득한 거라고.

게다가 월이 한 말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닌데 기분 나쁠 게 뭐 있냐고 말해 등짝을 두들겨 맞았다.

신소이가 궁금했던 건 조금 달랐다.

월이 혹시 마공사의 마나력을 읽을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월은 그녀가 양소혜보다 강하다고 했고, 그 말이 결코 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무슨 능력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한수호는 이 질문에 긍정을 표했다.

자신이 던전을 돌면서 얻은 아티팩트 덕분에 월이 A.I처럼 변했고, 다른 몬스터 봇들을 거느릴 수도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몇 번 더 소환한다면, 세 마리 봇 모두 이전으로 돌아갈 거라며 아쉬워하는 연기도 해 보였다.

이에 장한설은 도대체 왜, 위험하게 혼자 던전을 도냐며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고 물었다.

한수호는 이때다 싶어 특무부 요원, 김재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앞으로 함께 공항 자경단 역할을 수행하자고 제안까지 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다들 당황했지만, 평가 점수에 플러스가 될 거라는 말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이하윤에게 시선이 모였다.

과연 그녀가 한수호에게 묻고 싶은 건 뭐였을까?

그런데 이하윤은 질문을 안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대신 딱 한마디만 했다.

“사흘이라는 시간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인 것 같아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양소혜는 한수호와 이하윤 둘만의 비밀 신호라면서 소근거렸고, 장한설은 사흘이 3일이냐, 4일이냐를 놓고 셈을 따지며 괜히 딴청을 부렸다.

신소이는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채 이하윤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이하윤이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사흘.

이건 한수호가 한참 전에 이하윤과 따로 보자며 약속할 때 꺼낸 말이었다.

대한식도락 지하에서 있었던 사고 직후, 한수호는 이하윤의 얼굴 흉터를 호전시켜 주려고 사흘 뒤에 시간을 내라고 말했었다.

약속하듯 시간을 정했지만 그 뒤로 두 사람은 따로 만난 적이 없었다.

김재우와 던전을 도느라 이하윤과의 약속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한수호는 이하윤에게 굉장히 미안해 졌다.

자기가 먼저 약속을 해놓고,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 이하윤의 눈에는 어떤 놈으로 보였을까?

지금껏 욕 한마디 하지 않은 이하윤이 대단할 정도였다.

‘어차피 확인해야 할 것도 있으니 늦었지만 이제라도 약속을 지켜야겠어.’

한수호는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며 확고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 사흘, 내일부터 다시 셈하자.”

한수호의 말에 이하윤은 방긋 웃어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