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123화 (123/375)

123화

월은 친절했다.

배움을 구하는 한수호에게 핀잔을 주지도 않고, 성심성의껏 파동권과 뇌격을 가르쳐 주었다.

파동권은 파랑격의 권법 버전이었는데, 직접 타격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만큼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한수호에게 파동권은 맞춰 입은 옷처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한 번의 타격으로 네댓 번 이상의 연속 충격을 일으키는 기술이라 한수호의 입맛에 딱 맞았다.

뇌격은 벽력권을 원거리에서 공격하게 변형한 기술이었다.

마나 회로를 건드려 머리 위에 뇌전 마법진을 형성시킨 뒤, 손으로 그 뇌전을 끌어들여 원하는 목표에 발출하는 것이 뇌격의 원리였다.

뇌격이 순간적으로 뿜어내는 최대 파괴력은 쇄혼을 상회할 정도로 강력했다.

한수호가 로크 단검을 건틀릿으로 변화시켜 마나력을 총동원해 쏘아내는 권격만큼이나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만한 위력을 담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뇌격의 위력은 한수호가 지닌 다른 특성이나 기술보다도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수호는 전투 영역 체류 시간을 꽉 채울 때까지 파동권과 뇌격을 수련했다.

전투 영역 밖으로 튕겨 나가기 5분 전, 월이 한수호에게 다가와 할 말이 있다며 눈으로 말했다.

[범이와 살이의 방어력 증강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금속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져다주길 바란다.]

월은 그렇게 말하며 수련장 구석에서 발전기에 연결한 채로 신체를 복구 중인 범이와 살이를 가리켰다.

“뭐든지 말해. 다 구해 주마.”

한수호는 파동권과 뇌격을 배운 기쁨에 월의 요구는 뭐든 들어줄 생각이었다.

[잘 기억해라. 가장 먼저 오스텔나이트 10kg. 니켈 10kg. 크롬 10kg. 텅스텐 카바이드 15kg….]

월이 요구한 금속은 무려 10가지나 되었다.

무슨 로보트 태권브이를 제작하려는 건지, 필요한 금속이 하나같이 인장강도가 대단히 높은 것뿐이다.

대부분 구하기 쉽지 않은 금속들뿐.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구해 줘야지. 이 녀석들이 업그레이드하면 내가 강해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한수호는 월이 요구한 금속을 정확히 기억해 두고는 전투 영역을 빠져나왔다.

* * *

토요일은 그렇게 지났고, 일요일도 특별할 게 없이 흘러갔다.

한수호는 월이 요구한 금속, 모두를 온라인 마켓을 이용해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소비된 비용은 무려 1억5천.

24억에 가까웠던 잔고가 22억으로 떨어졌다.

‘다음 주부터는 돈 좀 벌어야겠다.’

한수호가 돈을 벌 방법은 던전을 돌면서 아티팩트를 얻거나, 보상으로 특성석 또는 각성석을 얻어 그걸 파는 것이었다.

몬스터 사냥은 노력에 비해 벌어들이는 금액이 적어서 시간이 부족한 한수호에게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혹시 라라한테 보물 창고 같은 거 없나?’

문뜩 떠오른 생각.

라라를 떠올리자마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라라가 의아해합니다. 갑자기 보물 창고는 왜 찾냐고.

‘왜는 왜야. 균열 바깥세상에선 돈 만큼 소중한 게 없으니까지.’

>>라라가 묻습니다. 주인이 말하는 돈이라는 게 보물이냐고. 보석 같은 것도 해당되냐고.

‘보석? 그야 당연한 거 아니야? 너 쓸 만한 보석 좀 가지고 있냐?’

>>라라가 웃습니다. 명색이 세이렌의 여왕인데 반짝이는 보석류가 어디 한둘이겠냐고.

라라의 말에 한수호는 쾌재를 불렀다.

세이렌의 여왕인 라라가 보석을 가지고 있다면, 보통 보석이 아닐 터.

그걸 가져다 팔면, 단숨에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마나력 600을 꽉 채운 마나 코어를 가져다 줄 테니까, 네가 가진 보석을 나한테 넘기는 거로.’

>>라라가 대답합니다. 마나 코어를 받는 보답으로 보석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고.

‘좋아. 그럼 그때 보자.’

한수호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한시름 던 표정을 지어 보였다.

라라에게 받는 보석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졌을지는 모르나 분명 보통 보석은 아닐 것이리라.

일요일까지 온전히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보낸 한수호.

그사이 두 번이나 더 전투 영역에 들어갔다.

들어갈 때마다 월과 범이, 살이와 함께 대련을 벌였고, 그때마다 범이와 살이는 몸체가 파손되었다.

월은 워낙 눈치가 빠르고 자기 보호에도 철저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부상을 입는 일이 없지만, 범이와 살이는 달랐다.

좀 무식하다고 해야 할까?

월이나 한수호가 공격을 명령하면 자기 몸은 조금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공격하다 보니, 자잘한 파손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물론 몇 시간 휴식을 취하기만 하면 아크로의 동력이 파손 부위를 고스란히 원상 복귀 시킨다.

그래도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월의 말처럼 외부 장갑의 강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이 더욱 대두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일요일도 마감되었다.

한수호는 저녁까지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해결한 뒤, 조용히 기숙사로 복귀했다.

기숙사 입구에서 오랜만에 덕후 사감을 만나 눈인사를 나눈 뒤, 자신의 방에 들어가니 마치 긴 시간을 떠나 있었던 것처럼 낯선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이 계신 집이었다면, 늘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어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으리라.

부모님 생각이 들자 오랜만에 가족 사진을 꺼내봤다.

사진 속 부모님의 얼굴은 언제나 한결같다.

빠르게 성장해 나가는 자식들을 향해 힘내라고,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굴하지 말고 원하는 걸 이루며 살아가라고 웃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세 살 위의 형인 한성찬과, 쌍둥이 동생 한설아. 그리고 갓 태어난 한별이까지.

사진 속 가족들을 보고 있자면 과거의 그때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이제 곧 모든 게 밝혀질 겁니다.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요.’

한수호는 이산을 만나게 되면 가면인들의 정체에 대해서 뭔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를 알면, 그들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그 계획을 실행하면 헤어진 가족들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되리라.

한수호는 침대 위에 누워 가족 사진을 품에 안은 채 몸을 웅크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가족과의 행복했던 추억 속에 푹 빠져있고 싶었다.

* * *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이 왔다.

아카데미에서의 수업은 별다를 게 없었다.

여느 때처럼 학생들은 수업에 열중했고, 실습 시간엔 대련에 집중했다.

‘오늘이구나.’

한수호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장한설과 대련 중인 이하윤을 힐끔거렸다.

이하윤과 따로 만나기로 약속한 지 딱 사흘이 되는 날.

이번엔 까먹지 않고 이하윤을 만나 흉터에 약탈 특성을 사용해 줄 생각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배를 얻어맞은 한수호가 크게 휘청거렸다.

“장태산. 너 어디에 정신 팔고 있냐? 대련 수업에 왜 여자애들 쳐다보고 있는데?”

최지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마디 하자, 바로 옆에서 신소이와 대결 중이던 백윤후가 슥 다가오더니 한마디 했다.

“이 녀석, 이하윤 훔쳐보던데? 내가 봤다.”

딴짓하던 백윤후도 신소이의 공격에 얼굴을 얻어맞았다.

“너, 너나 잘…하세요.”

신소이가 소심하게 한마디 하고는 물러섰다.

“이건 반칙이라고!”

“대, 대련 중에 딴짓하는 게 잘못이지.”

“좋아. 그럼 제대로 한번 대련해 볼까, 신소이?”

이젠 완벽하게 백윤후가 되어버린 녀석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려는데,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짝짝짝.

지평학 교수가 손뼉을 치며 이목을 끌어낸 후, 크게 말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금요일엔 유명 마공사를 초청해 강의를 맡길 테니 오늘처럼 딴짓하는 놈들은 없길 바라마. 그럼, 해산!”

지평학은 학생들이 딴짓을 했다는 걸 알았지만 이번엔 봐줬다는 걸 강조하면서 수업을 마쳤다.

한수호는 재빨리 짐을 챙겨 기숙사로 향했다.

“야, 장태산! 혼자 어디가!”

최지혁이 불렀지만 한수호는 그마저도 씹어버렸다.

“수상하군. 또 우리 몰래 재미 보려는 것 같은데.”

백윤후가 또 최지혁에게 슥 다가와 한 말이었다.

“넌 말할 때 좀 떨어져서 해라. 자꾸 얼굴 들이미니까 이상하다고.”

최지혁은 예전보다 훨씬 외향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쑥스러워서 말도 잘 안 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고, 백윤후에게 큰소리까지 치고 있어 양소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태산도 그렇고, 최지혁도 뭔가 좀 달라졌어.”

“음? 뭐가?”

옆에 있던 장한설이 묻자 양소혜가 작게 소근거렸다.

“쟤 원래 소심함의 대명사였거든. 친구끼리 있을 땐 안 그랬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부끄럼쟁이였다고. 소이, 너랑 굉장히 비슷했지.”

“그랬나? 난 잘 모르겠던데.”

“정말이라니까? 그런데 요즘 완전히 달라졌다고. 예전 같았으면 백윤후가 옆에서 귀찮게 해도 그냥 확 뿌리치고 혼자 도망치듯 사라졌을 녀석인데, 지금은 대놓고 면박을 주잖아?”

“에이. 친구끼리니까 그런 거겠지.”

장한설은 최지혁의 변화에 크게 관심이 없는지 대충 대답했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야, 신소이. 너는 알잖아? 애초부터 같은 D반에 있었으니까.”

“어? 으응. 소, 소혜 말이 맞는 것 같아…. 최지혁은 소심한 편이었어.”

“소심남이 자신남이 된 거면 좋은 거지 뭐. 난 오늘 일이 있어서 먼저 좀 간다!”

장한설도 무슨 일이 있는지 서둘러 실습실을 빠져나갔다.

곧이어 이하윤도 언니들한테 인사를 꾸벅 하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뭐야? 다들 뭔 약속 있는 사람들처럼 휙 가버렸네?”

“나, 나는 아직 안 갔는데?”

신소이가 음침한 얼굴로 대꾸하자, 양소혜가 푸하하 웃었다.

“맞네. 우리 소이는 아직 여기 계시구나. 그럼, 소이야. 우리 오붓하게 저녁 같이 먹으러 갈까?”

“두, 둘이서?”

신소이가 흠칫 놀라며 묻자 양소혜가 눈매를 좁혔다.

“설마, 너도 일 있다고 먼저 갈 생각은 아니겠지?”

“음. 어…. 일은 없는데, 요즘 속이 별로 안 좋아서.”

“그럼 나 밥 먹는 거 구경이라도 해라. 자, 얼른 가자고!”

양소혜는 머뭇거리는 신소이의 팔을 잡아서는 쿵쾅대며 실습실을 벗어났다.

* * *

한수호>>저녁 7시. 교문 앞에서 보자.

이하윤은 한수호에게 온 칙톡을 확인하고는 혼자 미소지었다.

안 그래도 오늘이 약속한 사흘째 되는 날이었기에 연락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번엔 약속을 지켰네.’

이하윤은 괜히 심술을 부려 그 비싼 가양 게이트의 삼도천 음식점을 가게 한 사실이 미안해졌다.

‘오늘 저녁은 내가 사야겠다.’

지금 시간은 5시 30분.

약속 시간 까지는 아직 1시간 반이나 남았지만, 기숙사에서 서둘러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떤 옷을 입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편안하게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를 입는 거로 결정했다.

‘소혜 언니 말로는 태산 오빠가 좀 보수적이라고 했지?’

이번에 균열 너머에서 1박을 하게 되면서 양소혜와 이런저런 이야길 많이 나눴었고, 그 중엔 한수호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양소혜는 장태산을 이렇게 평했다.

[장태산, 그 녀석 말이야. 생긴 건 아이돌 뺨 때리게 생겼는데, 사고방식은 옛날에 파묻혀 사는 아재나 다름없다니까? 보수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녀석이 사귀게 될 여자는 골치 좀 썩을 거야. 뭐, 발랑 까진 양아치 같은 녀석들보다야 보수적인 게 낫긴 하지만, 그것도 좀 적당해야지. 때론 상남자 같다가도, 남녀 역할에 대한 구분이 너무 확실해서 좀 재수가 없거든.]

이하윤이 보기엔 그다지 보수적인 면이 보이지 않았지만, 아카데미 내에서 그래도 가장 친하다고 볼 수 있는 양소혜의 견해인지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럼 처음 만났을 때, 대놓고 내 몸매 훔쳐보던 건 뭘까?’

한수호는 특히 가슴 부분을 유독 뚫어지게 쳐다봤었다.

당시 옷을 너무 헐겁게 입고 있었던 탓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한수호가 여자 혼자 있는 기숙사를 멋대로 들어온 것이 잘못이었다.

‘던전에서 날 살려준 은혜가 있으니까 음흉한 시선 정도는 넘어가 줘야 하나?’

이하윤은 혼자서 별의별 상상을 하다가 퍼뜩 놀랐다.

‘엄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곧 정신을 수습한 이하윤은 시간을 확인했다.

[18:42]

어느새 약속 시간이 코앞이었다.

서둘러 채비를 마친 이하윤은 기숙사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는 하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여기서 교문 앞까지는 도보로 10분.

6시 52분이면 도착하겠지만, 약속 시간에 일부러 늦게 도착하는 해괴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교문에 도착했을 때, 이하윤은 이미 약속장소에 나와 있는 한수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소 5분 전쯤에는 먼저 나와 있는 듯한 모습.

자신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는 한수호에게 이상하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오빠.”

이하윤이 한수호를 부르자,

“어, 이하윤. 왔구나.”

그가 밝게 웃으며 이하윤을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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