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나선형 계단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400미터 이상의 높은 건물이라 생각했는데, 200미터쯤 내려오니 바닥이 나타났다.
건물 아래쪽은 엄청나게 넓었다.
축구장 세 개 정도를 합쳐 놓은 크기.
한수호는 바닥에 내려왔지만 어디에도 나가는 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
1층 외벽은 텅텅 비어 있는 도서관 같았다.
벽 중간에 빛을 발하는 돌들이 있어서 주변을 살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수호는 바닥에 내려서서 벽을 둘러봤다.
건물 내벽은 무려 20층이나 되는 책장처럼 나뉘어 있었는데, 오래전에는 그곳에 수많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어느 한 곳에도 책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수십 년 이상 버려져 있었던 것 같은데?”
“전 중심부에 가볼게요.”
“어, 그래.”
한수호는 아까 떨어진 샹들리에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건물 중심부로 향했다.
그때, 거대한 책장들을 둘러보던 김재우가 뭔가를 발견했다.
책장의 가장 높은 곳.
거기서도 가장 구석진 장소.
거기에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한수호를 부르려고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저만치 멀리 가 있어 부르기가 뭐했다.
김재우는 뭐 이런 것까지 일일이 한수호를 부르나 싶어 혼자서 책장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약 10여미터를 올라가자 드디어 책이 손에 닿았다.
김재우는 그 책을 꺼내서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손에 쥔 책을 내려다보는 김재우는 다소 긴장한 상태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인류 중 첫 번째로 이세계인이 남긴 기록을 보게 되는 상황이라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책은 비교적 얇았는데, 겉표지엔 알 수 없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써 있었다.
글자는 당연히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책 안의 내용도 알아볼 수 없겠지만, 그림이라도 있으면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처음으로 이세계의 책을 열어본 김재우는 첫 장부터 숨을 헉 하고 들이시고 말았다.
[나, 아캄은 이 세계의 미래를 책임질 그대에게 아스루나의 역사와 이 도시가 세워진 이유, 그리고 그대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해주고자 한다….]
경악스럽게도 김재우의 눈에 보이는 첫 장의 글자는 다름 아닌 영문이었다.
* * *
그 시각, 한수호는 중심부에 다다랐다.
그곳엔 예상대로 박살 난 샹들리에가 널브러져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바닥에는 커다란 원형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샹들리에의 중앙에 달린 뾰족한 침이 정확히 마법진의 중앙을 때렸는지, 그 부분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보기엔 정확히 계산되어 마법진의 중심으로 떨어지게끔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근데 아무 일도 없잖아?’
샹들리에가 거길 때리게 만들어진 거라면,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지금껏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이상하기만 했다.
그때, 한수호의 시야에 음침한 느낌의 그림자가 걸려들었다.
책장으로 된 벽과는 정반대의 방향.
그쪽으로 다가서자 거대한 뭔가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가고일이었다.
그것도 그냥 가고일이 아니라, 세 개의 뿔을 지니고 일반 가고일보다 세 배는 커 보이는 특별한 가고일의 석상이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모습의 세 뿔 가고일을 보자 이곳이 결코 평범한 장소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때였다.
“장태산! 빨리, 빨리 좀 와봐야겠다!”
김재우가 저 멀리서 한수호를 불렀다.
세 뿔 가고일을 슬쩍 바라본 한수호는 그게 진짜가 아닌 석상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김재우 쪽으로 뛰어갔다.
“무슨 일인데요?”
김재우는 책자 하나를 들고 서서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여기, 이걸 좀 봐봐.”
한수호는 김재우가 내민 책을 받아 펼쳐봤다.
그리고 방금 김재우가 본 영문으로 된 장문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김재우는 영어에 약했지만, 한수호는 그렇지 않았기에 영문으로 된 글을 바로 해석할 수 있었다.
책 속의 내용은 이러했다.
아캄력 8,413년.
아스루나는 대마법사 엘로이의 사악한 마법으로 인해 멸망에 빠져들고 있었다.
엘로이는 대악마 발자크의 봉인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아캄이 만들어 낸 포탈을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본래 아캄이 포탈을 만든 건, 다른 세계와 연결해 그 세계의 인간들과 힘을 합쳐 함께 발자크를 따르는 대규모의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엘로이는 이 포탈을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
다른 세계를 몬스터로 아예 초토화시키고 그 세계의 황제가 되겠다는 허황된 생각이었지만, 아무도 그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이제서야 가까스로 이세계인 지구와 포탈을 이을 수 있었건만, 엘로이가 욕망을 이루게 둘 수 없었던 아캄은 아스루나의 멸망을 담보로 최후의 한 수를 준비했다.
설사 대악마 발자크의 봉인이 풀리더라도 세계 멸망은 아스루나 하나로 끝나게끔, 모든 포탈을 일시적으로 폐쇄한 것.
그리고 엘로이가 노리는 7대 마화기를 은밀한 곳에 숨기고, 대영웅 아스의 무기도 알 수 없는 곳에 숨겨두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혹 7대 마화기가 세상에 드러날 것에 대비해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 혼돈의 무구 5개를 제작해 곳곳에 뿌려두었다.
그리고 이곳 ‘재건의 도시’에서 최후의 전쟁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부질없었다.
발자크의 힘은 봉인이 풀리기 전임에도 너무나도 강대했고, 엘로이는 그런 발자크의 힘까지 등에 업고 엄청난 마법을 부릴 수 있었다.
수만의 몬스터를 이끌고 재건의 도시를 찾아온 엘로이.
그는 아캄에게 포탈을 열 것을 요구했다.
이미 항전할 힘을 잃은 재건의 도시엔 너무도 많은 사람이 죽음 앞에 놓여 있었다.
결국, 아캄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포탈을 여는 열쇠를 넘겨주었고, 엘로이는 포탈을 열기 위해 그 즉시 도시를 떠났다.
그가 떠나자 몬스터들은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될 것임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엘로이의 악랄한 짓거리에 아캄은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캄은 도시 전체를 미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도시의 중심, 센트럴 타워에 아스루나를 구해줄 영웅이 찾아와주길 희망하며 엄청난 무기와 아티팩트들을 준비해 두었다.
아캄이 준비를 모두 마쳤을 때, 도시엔 더 이상 살아남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 생존자였던 아캄은 이 도시를 모래 폭풍 속에 가두어 버린 뒤, 자신의 생명을 쏟아부어 발자크의 봉인을 강화하기 위해 암흑섬으로 떠난 것이다.
“뉴에르다의 진짜 이름이 아스루나였구나.”
김재우는 한수호가 해석해준 말을 들으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이 책에는 없지만, 재건의 도시에서의 일을 기점으로 하여 아스루나의 인류가 멸종했다는 것을 알기에 한수호가 그 내용까지 말해준 것이다.
책자의 내용은 그 뒤로도 더 있었다.
그건 이 센트럴 타워에 준비된 영웅을 위한 시련과 보상에 대한 것이었다.
그 내용을 확인하던 한수호는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기막힌 상황에 처했는지를 깨닫고 어이없어했다.
“또 무슨 내용이 있길래 장태산이가 이렇게 당황하시나?”
김재우가 묻자 한수호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저 위에서 우리가 찾아낸 보상들은 원래 다섯 개의 시련을 거친 뒤에야 획득할 수 있는 거였어요. 그런데, 우린 시련을 단 하나도 거치지 않고 그냥 꿀꺽한 거죠.”
“그게 문제가 되는 거냐?”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있는 이곳은 1층이 아니라 5층입니다. 원래는 4층에서 드레고니안이라는 몬스터 봇을 쓰러뜨리고, 놈의 마나 코어를 4층의 중앙 마법진에 박아서 출입구를 열어 올라와야 하는 거고요.”
김재우는 무슨 상황인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건너뛰었다고 왜 문제가 되는지는 몰랐다.
“이 5층에도 시련이 있어요. 4층 마법진에 마나 코어를 박으면 저기, 저 끝에 있는 세 뿔 가고일의 석화 마법이 풀리게 된답니다. 석화 마법이 풀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에요. 그 안에 선택을 해야 하는 거죠. 마나 코어를 이용해 세 뿔 가고일을 폭파해 기본 보상만 얻고 끝내거나, 10분 내로 건물 꼭대기에 올라 준비된 보석들을 취해서 샹들리에가 떨어뜨리거나.”
“그럼 우리는 선택 없이 그냥 두 번째를 진행해 버린 거네?”
“네. 맞아요. 그것도 제대로된 진행이 아니에요. 원래는 샹들리에가 떨어지면 4층에 있는 마법진과 중앙의 마나 코어까지 한꺼번에 박살 나게끔 되어 있죠. 그래야 세 뿔 가고일과 밖에 있는 수천의 가고일들까지 다시 석화되는 겁니다.”
여기까지 듣고 있던 김재우도 이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5층.
그런데 샹들리에는 아무것도 없는 5층 바닥에 떨어져 이미 박살이 나버린 상태다.
즉, 누군가가 이제라도 4층에서 드레고니안을 쓰러뜨리고 마나 코어를 마법진에 박으면, 세 뿔 가고일의 석화 마법이 풀리는 걸 막으려면 마나 코어를 폭파시키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의미였다.
“그럼 우리가 4층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닐까? 괜히 내려가서 시련이 시작되면 안 되잖아?”
“대신 저희도 이곳에 갇혀서 밖으로 못 나가는 거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자 한수호는 답답해졌다.
아캄이 남긴 책에 따르면, 세 뿔 가고일은 유적지 상공을 뒤덮고 있는 수천의 가고일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세 개의 뿔 하나하나에 엄청난 능력을 담고 있어서 사실상 이 고대도시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라는 것이다.
그 파괴력을 감안했을 때, 세 뿔 가고일의 등급은 최소 2급 게이트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게 틀림없었다.
‘위험하더라도 여길 들어올 때처럼 벽을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는 건가?’
한수호는 최대한 안전한 방법으로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았다.
“여기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거 없을 것 같네요. 그래도 세 뿔 가고일보다는 일반 가고일이 나으니까 위험 좀 감수하죠, 뭐.”
한수호는 아캄의 책자를 챙겨 넣은 뒤 벽 쪽으로 다가섰다.
그때였다.
쿠궁
갑자기 엄청난 진동이 일더니 중심부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이 세 조각으로 나뉘며 바닥 틈새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신 그곳에는 나선형 계단이 등장했다.
“이게 뭐….”
김재우가 말을 하려는 걸 한수호가 달려들어 급히 입을 막았다. 그리고 재빨리 달려가 세 뿔 가고일의 석상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런데,
쩌적. 쩌저적.
석상에 수많은 균열이 생기더니 돌조각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누가 4층에서 마나 코어를 마법진에 박아 넣은 모양인데?’
세 뿔 가고일은 지금 빠르게 석화가 풀리고 있었다.
* * *
세 뿔 가고일의 석화가 풀리기 5분 전.
한수호와 김재우가 있는 5층의 바로 아래에 여섯 명이 모여있었다.
두 패로 나뉜 그들의 분위기는 굉장히 심각했다.
“흐흐흐. 이런 상황까지 오게 만들다니…. 모두 네놈들이 자초한 거다!”
박윤배는 4층 중앙의 마법진 앞에서 서은채의 두 팔을 뒤로하여 움켜쥔 채, 그녀의 목에 단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박윤배! 네가 이런 놈일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내 손에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은채를 풀어 줘!”
김성태는 분기탱천한 얼굴로 박윤배를 노려봤다.
김성태의 옆에는 인상을 찌푸린 이산이 있었고, 조금 떨어진 장소엔 이하이가 바닥에 엎어진 거대한 드래곤의 몸통 위에 올라가 있었다.
“네 손에 내가 죽어?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이제 평급에 불과한 네놈이 날 어찌할 수 있을 거 같냐? 네놈 특성이 특출나지만 않았어도, 네가 우리 길드에 입단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박윤배는 서은채를 뒤쪽에 있는 길드원 이창선에게 맡겼다.
원래는 다섯 명이었던 길드원은 이제 박윤배와 이창선을 빼고는 모두 죽어버렸다.
그 이유는 바로 김성태 옆에 선 반백의 중년인에게 있었다.
처음 이 유적지에 들어서기 전, 절벽의 위태로운 계단을 내려오다가 길드원 하나가 가고일의 먹이가 되었다.
그것도 김성태가 건가타 특성으로 원거리 공격을 마구 남발해 준 덕분에 그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거기다 서은채의 가속 특성도 크게 한몫했다.
그녀는 엄청난 움직임으로 김성태가 벌어준 시간을 이용해 사람들을 동굴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끝내 한 사람은 가고일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동료 하나를 잃고 간신히 동굴에 들어온 일행들.
그들은 동굴을 통해 유적지 지하로 내려갈 수 있었고, 거기서 거대한 규모의 미궁을 맞이했다.
폭 20미터, 높이 15미터의 커다란 동굴이 끝없이 이어진 미궁.
그 안에서 이들은 수많은 몬스터들을 마주쳐야 했다.
그나마 몬스터들의 등급이 낮아 별 탈 없이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러다 이산과 이하이를 만나게 되었다.
원래 이산과 이하이는 이들과 함께 이동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미 미궁의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던 이산은 아무 문제없이 고대 유적지의 중심인 센트럴 타워를 찾아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하이는 너무 어린 나이의 서은채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고작 15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여학생이, 어쩌다가 이 험난한 장소에 들어와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녀를 그냥 두고 가면 횡액을 면치 못 할 것임이 너무 명백해 보였다.
이하이는 이산을 설득해 이들에게 살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래서 동행을 하게 되었고, 센트럴 타워까지 함께했다.
하지만 이산은 속으로 불만이 굉장히 컸다.
자신과 이하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닌데, 불청객들이 여섯이나 존재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까?
더군다나 이산은 이미 이곳을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었고, 그땐 박윤배 일행은 물론, 서은채라는 여학생도 마주치지 않았었다.
이산은 끊임없이 이하이에게 이들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움직인다면 아캄의 보물을 얻는 게 불가능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하지만 이하이는 타워의 4층까지만이라도 서은채를 보호해 주자며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센트럴 타워 1층에서는 중형 몬스터 오거를 만났지만, 이하이의 활약으로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2층에서 마주한 건 사이클롭스.
10미터가 넘어가는 대형 몬스터인 사이클롭스도 이하이에겐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3층은 달랐다.
3층에서 등장한 몬스터는 무려 미노타우르스.
15미터의 거구에, 무엇이든 박살내는 파괴력과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막강한 방어력 때문에 이하이도 고전했다.
그 과정에서 박윤배의 길드원 한 명이 희생됐다.
어렵게나마 미노타우르스를 쓰러뜨린 일행은 4층에 올랐고, 아스루나의 대신관 아캄이 탄생시킨 드레고니안을 마주했다.
드레고니안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라 몬스터 봇이었다.
드래곤을 흉내 내어 만들어진 20미터 크기의 대형 몬스터 봇, 드레고니안.
놈은 공포스러웠고, 강력했으며, 무자비했다.
일행 중 누가 죽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을 정도로 무서운 괴물이었다.
이산은 이 드레고니안을 이용했다.
이미 드레고니안을 쉽게 상대할 방법이 있었음에도, 박윤배 일행을 살려서 타워를 오를 생각이 없었던 이산.
우연을 가장해 박윤배 일행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드레고니안의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걸 박윤배가 눈치챘다.
이산이 자신들을 함께 데려갈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챈 그는 길드원을 희생시켜 함정을 빠져나왔고, 곧바로 서은채를 인질로 붙잡아 버린 것이다.
‘나로서도 더는 방법이 없어….’
이하이는 엄청난 몬스터 봇, 드레고니안을 쓰러뜨렸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아버지라면 대의를 위해 어린 학생을 희생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할 터.
그나마 이하이가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여기까지 함께 올 수 있었던 거라, 더 이상은 방법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산은 계속해서 이하이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얼른 드레고니안의 마나 코어를 빼내서 자신에게 던져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