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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133화 (133/375)

133화

그 시각,

박윤배는 이창선과 서은채를 데리고 꼭대기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당신들은 따라오지 말고 이곳에 있어!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저 위에서 이 가녀린 여자애가 추락하는 광경을 보게 될 거다.”

박윤배는 이창선이 말한 책이고 뭐고 상관없이 직접 저 위에 올라가서 뭐가 있는지를 확인할 셈이었다2.

“가봐야 아무것도 없다. 넌 헛걸음만 하게 될 거야.”

이산이 일부러 그런 말을 건네자 박윤배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딴 말에 내가 아이고 그렇습니까 할 거 같아?”

박윤배가 이산의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이산은 이하이와 함께 뒤로 슬그머니 물러서기 시작했다.

“박윤배! 그 아이는 놔주고, 차라리 날 인질로 잡아라! 앞길이 창창한 어린애를 데리고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김성태는 어린 조카를 위해 뭐든지 할 각오였다.

애초에 이 위험한 곳에 서은채를 데려온 것이 실수였지만, 지금은 실수를 후회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박윤배는 김성태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퍼억

멀쩡히 걸어가던 이창선이 머리에 뭔가를 얻어맞고는 그대로 나자빠졌다. 당연히 서은채를 잡고 있던 손도 풀렸다.

서은채는 이것이 한수호가 말한 ‘무슨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특성을 발휘했다.

츄아악

서은채의 몸이 잔상을 흘리며 길게 쭉 늘어났다.

그걸 목격한 박윤배가 큰 소리를 내질렀다.

“어떤 놈이냐!”

그도 눈치를 챈 것이다.

이 장소에 그들 말고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미지의 존재를 찾는 건 둘째치고, 서은채가 도망가 버리면 모든 게 끝이었다.

‘젠장!’

박윤배는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는 수없이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으아아아!”

지금껏 꽁꽁 숨겨왔던 특성의 발휘였다.

키이이이이잉

그가 몸을 웅크리며 마나력을 뿜어내자 약 100미터나 되는 엄청난 범위로 거대한 마나의 파동이 출렁였다.

그 출렁임은 5층에 있는 모든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춰 섰다.

가속으로 세 뿔 가고일 쪽을 향해 달려가던 서은채도, 투명화 반지를 이용해 이창선을 때려눕히고 자리를 뜨려던 김재우도, 급반전한 상황에 이하이의 손을 잡고 4층으로 달려가려는 이산도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그건 석상 옆에서 서은채에게 얼굴을 살짝 내보이고 있던 한수호도 마찬가지였다.

박윤배는 자신의 특성, ‘행동 고정’이 제대로 발휘되자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그의 특성 행동 고정은 사실상 ‘무적기’나 다름없었다.

단 2분뿐이긴 하지만, 반경 100미터 안에 존재하는 모든 움직이는 것의 행동을 멈춰버리는 특성이었다.

그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해당하며, 예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특성으로 적을 해치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움직임이 고정되면 그 어떤 상처에도 면역이 되어 칼도, 마법도, 직접 타격도 전혀 먹히지가 않아 절대 해칠 수가 없게 되기 때문.

즉, 이 행동 고정 특성은 적을 한곳에 묶어두고 안전하게 대피할 시간을 버는 용도로만 사용이 가능한 것이다.

박윤배가 이 특성을 사용했다는 건, 더는 이곳에 미련이 없다는 것이고, 혼자서만 살아서 도망가겠다는 의미였다.

“흐흐흐. 너희들은 모두 여기서 죽게 될 거다. 생존자는 나 하나로 충분하지.”

박윤배가 혼자 중얼거리더니 이하이와 이산에게 다가가 그들의 소지품을 뒤졌다.

그리고 1층부터 4층까지의 시련을 거치며 얻어낸 보상들을 죄다 챙겼다.

B등급의 마나 코어 100개가 담긴 상자와 마나 추출기능을 갖춘 주사기, 점멸 능력을 5회까지 연달아 사용할 수 있는 귀걸이, 거기에 그 어떤 공격도 한 번은 무조건 막아줄 수 있는 베리어 브롯치까지.

그걸 모두 챙긴 그는 가방에서 사람 머리통만 한 폭발물을 꺼냈다.

폭발물에는 시한 장치가 되어 있었고, 박윤배는 30초로 시간을 맞췄다.

행동 고정 특성의 효력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28여 초.

특성의 효력이 끝남과 동시에 폭탄이 터지게 하여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여버릴 생각인 것이다.

그는 폭발물의 타이머 버튼을 누르고는 서은채가 있는 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이곳에 또 어떤 새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다 함께 죽여주마. 흐흐흐.”

박윤배는 그 말을 끝으로 재빨리 4층 계단 쪽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때였다.

세 뿔 가고일 석상 뒤에 숨어있던 한수호가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는 행동 고정 특성이 발휘된 직후, 이 속박을 풀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몸은 멈춰졌지만 머리마저 멈춰진 것은 아니었기에 긴박한 상황 속에서 개조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

한수호는 개조로 자신의 신체구속력을 최대한 약화시켰다.

-행동 고정에 의한 구속시간(2분)을 20% 줄이는데 200,000LP가 필요합니다.

이미 1분 30초가 지난 시점이었기에 그 이상은 줄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20%의 시간을 줄여버렸고, 그 결과 곧바로 행동 고정의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정확히 1분 36초만에 행동의 자유를 찾게 된 한수호.

그는 가장 먼저 서은채 앞에 떨어진 폭발물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걸 책장 위쪽으로 던져버렸다.

그 모습을 본 박윤배가 경악했다.

“넌 뭐야!”

행동 고정의 효과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움직이는 자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박윤배는 눈치가 빨랐다.

괜히 머뭇거리거나, 갑자기 등장한 한수호를 상대하지 않고 중앙의 커다란 구멍에 뛰어들기 위해 붕 날아올랐다.

“어딜!”

한수호는 박윤배를 놓치지 않았다.

이미 그가 도망부터 칠 것을 예상했기에 바로 세라믹 단검을 튕겨내 거머쥔 다음, 파랑격과 벽력권을 합친 분뢰섬으로 허공을 갈라버렸다.

부아아아악

뇌전을 뿌리며 날아간 벼락의 기운이 파도처럼 박윤배를 뒤덮는 순간,

지지지지징

이하이에게서 훔쳐낸 ‘베리어 브롯치’가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베리어의 힘은 대단했다.

사용 후 쿨타임이 24시간이나 되긴 하지만, 1회에 한해선 그 어떤 공격도 무조건 막아낼 수 있기 때문에 또 하나의 목숨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방어막은 한수호의 분뢰섬을 완벽에 가깝게 막아냈다.

꽈과과과과과광

하지만 충격파까지 모두 튕겨내지는 못했다.

“커억!”

박윤배는 엄청난 충격을 맨몸으로 견뎌야 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 먼 곳까지 튕겨 나가고 말았다.

그가 튕겨 난 장소는 높게 위치한 책장 위였다.

책장 위의 벽에 부딪힌 박윤배는 입으로 피를 흘려내면서도 재빨리 손을 놀려 ‘점멸의 귀걸이’를 얼른 귀에 착용하려 했다.

그걸 사용해 단숨에 이곳을 벗어나려는 속셈.

그때, 박윤배의 눈에 이상한 물건이 보였다.

그의 바로 옆.

책장 위쪽에 놓인 큼지막한 그건, 다름 아닌 폭발물이었다.

하필이면 한수호가 폭발물을 던져놓은 곳 바로 옆으로 튕겨진 박윤배는 크게 경악하며 점멸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00:00]

타이머는 이미 0이 되었고,

“시발.”

그 말이 박윤배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시점엔 다른 사람들의 행동 고정 또한 이미 풀린 상태였기에 모두 몸을 내던져 폭발을 피할 수 있었다.

단 한 사람.

박윤배만 제외하고.

후두두두둑

폭발을 피하지 못한 박윤배의 신체가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조각들 속엔 박윤배가 훔쳐 도망가려던 아티팩트들도 섞여 있었다.

“오빠!”

서은채가 가장 먼저 한수호를 알아보고 달려왔다.

한수호는 그런 서은채를 잠시 멈춰 세웠다.

“자세한 이야긴 좀 있다 하자.”

“네? 네….”

서은채가 살짝 서운한 얼굴로 멈춰서자, 한수호는 김재우를 찾았다.

김재우는 투명화를 풀고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형. 저자 좀 부탁할게요.”

한수호는 박윤배의 배신과 그의 죽음을 한 번에 경험하고는 넋이 나간 듯 멍청하게 서 있는 이창선을 가리켰다.

김재우가 그 자에게 다가가 무기를 빼앗자 김성태가 서은채를 향해 허겁지겁 뛰어왔다.

“은채야, 서은채! 괜찮아? 다친 데 없어?”

김성태는 천만다행이라는 얼굴로 서은채의 안위부터 챙겼다.

그사이 한수호는 바닥에 나뒹구는 아티팩트를 하나하나 챙기고 있었다.

마나 추출기와 베리어 브롯치, 점멸 귀걸이와 사방에 굴러다니는 수많은 마나 코어까지.

그걸 챙긴 뒤 이산과 이하이 앞으로 다가섰다.

“오랜만이군. 이하이.”

한수호는 옆에 있는 중년 사내가 이산임을 알면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 그러네.”

이하이는 한수호의 시선을 피했다.

“이거 네 거지?”

한수호가 아티팩트들을 넘기자, 이하이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이산이 한수호의 손에서 아티팩트들을 낚아챘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마나 코어 10개와 마나 추출기는 남겨두었다.

“그건 우리를 구해준 보답이다.”

이산의 목소리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처음 뵙네요, 이산 씨.”

“네 이름은 하이에게 들었다. 장태산이라고?”

이산도 이하이의 반응을 보고 눈앞의 청년이 장태산이라는 걸 금방 알아봤다.

“그동안 왜 아무 연락도 없었나 했더니, 이런 곳을 뒤지고 다니느라 시간이 없었나 보네?”

한수호는 이산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하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이산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연락 못 해서 미안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어.”

“피치 못할 사정이라…. 적어도 그 사정이라는 게 이하이, 네가 만든 사정은 아닌 것 같군.”

한수호의 시선이 다시 이산에게로 옮겨졌다.

“흐음. 장태산. 너도 예상하고 있듯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하이가 아니라, 나다. 널 따로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고. 나와 하이가 하는 일은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

“됐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어요. 이하이. 너와의 약속은 없는 셈 치겠다. 대신, 이후에 벌어지게 될 모든 일에 대해서는 너와 네 아버지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거다.”

한수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김재우를 바라봤다.

“전 내려가서 마나 코어부터 박살 내겠습니다. 그동안 그 자식, 잘 감시해 주세요.”

“그래, 걱정 마라.”

한수호는 세 뿔 가고일의 석화가 풀리기 전에 4층의 마나 코어를 박살 낼 생각이었다.

석화가 풀리기 시작한 지 벌써 6분이 흘렀으니 4분이 지나면 세 뿔 가고일은 완전히 되살아난다.

그 전에 마나 코어를 반드시 박살 내야 했다.

그때, 한수호의 앞을 이산이 막아섰다.

“뭡니까?”

“4층으로 내려가려고?”

“네. 가서 코어를 부숴야 저 가고일 석상이 되살아나지 못하니까요.”

“네가 그걸 어찌 알지? 역시, 저 책장 위에 있던 아캄의 책자를 가져간 게 너였구나?”

이산은 한수호가 타워 꼭대기에 있는 아캄의 보물들마저 모두 독식했다는 걸 이미 눈치챘다.

“그걸 대답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군요. 이만 비켜주시죠.”

“샹들리에 위에 있던 물건들도 모두 네 손에 있…. 그건, 설마 델링그?”

이산은 그제야 한수호가 어깨에 둘러메고 있는 것이 루나의 저격총, 델링그라는 걸 알아봤다.

후드티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살피지 못하다가 이제야 확인한 것이다.

“…?”

한수호는 큰 의구심에 빠졌다.

이산은 이곳 5층의 책장에 아캄의 책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데다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델링그를 알아봤다.

지구의 인류 중에서는 한수호가 최초로 이걸 얻은 것이기에 알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스루나에 남겨진 고대 서적에 델링그의 그림이나 사진 같은 것이 남아 있다거나, 이전에 한수호가 라그나로크를 얻은 신전에서 루나의 동상을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시…?’

한수호는 이산이 자신처럼 회귀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지고 있을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계속 앞을 막는다면, 무력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흥! 무력? 어디 해보려무나. 네 녀석이 강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하이의 무력은 너보다도 강하지. 내가 지닌 아티팩트들도 네 주변 사람들을 충분히 위험하게 만들 수 있고 말이야.”

“협박입니까? 그래서 얻는 게 뭐죠?”

한수호는 이산이라는 인물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마공전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마공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 고작 이런 인물이었다니.

한수호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떠오르는 걸 알아챈 이하이는 급히 이산을 말렸다.

“아빠. 장태산이 하려는 일을 막지 마요. 그러다 세 뿔 가고일이 되살아나기라도 하면….”

“내가 비키길 원한다면 위에서 얻은 아캄의 물건들을 모두 내놓아야지. 그건 원래 너와 내 것이었다.”

이산은 이제 대놓고 아캄의 보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자기들 것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말까지 하면서.

“보물에 주인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당신들 거라는 겁니까?”

“당신들? 허어, 이 어린 녀석이 어른한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네 놈은 애비 애미도 없느냐!”

이산은 자신이 생각해도 논리적으로 밀린다 싶자 괜히 나이를 따지며, 한수호의 부모까지 찾았다.

이에 한수호의 얼굴에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다.

“네. 없습니다.”

“…. 뭐?”

“아버진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생사조차 불명인 상태로 실종되신 지 오랩니다.”

한수호의 직설적인 대답에 이산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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