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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142화 (142/375)

142화

한수호는 확신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백진성이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면, 십중팔구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백윤후의 집을 방문했을 것임을.

백윤후에게 백진성이 성형수술을 한 것이 맞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지만 아직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

이런 시점에 백진성의 감시를 알게 된다면, 마음이 조급해져 직접 정보를 캐기 위해 백윤후의 집을 찾아갔을 게 뻔했다.

즉, 백진성은 일부러 감시 사실을 백윤후에게 흘려 한수호로 하여금 제 발로 집에 찾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너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하게 하냐?”

“어? 아니. 뭐, 그냥 이것저것. 그런데, 백윤후. 네 아버지 말이야. 성형수술을 한 이유는 아직 알아내지 못한 거냐?”

“추측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검증하지 못해서 아직 너한테 말을 못 해주고 있다.”

“뭔데? 혹시 어떤 특별한 아티팩트 때문에 그런 거 아냐?”

한수호가 던진 물음에 백윤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냐? 나도 그거 알아낸 지 며칠 안 됐는데, 넌 뭔 수로 그걸 그리 쉽게 예측해 내지? 비법이 뭐야? 나도 좀 알자.”

“비법? 그야 여기, 이게 좋으면 간단해. 그런 의미로 봤을 때, 넌 안 돼.”

한수호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

“하여튼, 대단한 녀석이야.”

“그건 진작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고. 그래서. 어떤 아틱팩트가 네 아버지로 하여금 성형을 하게 만들었지 좀 알자.”

“그건…. 특별한 장갑이래. 정확히는 장갑에 박혀있던 코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 장갑이 엄청난 아티팩트인 걸 모르고 착용했다가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다 하더라고. 우리 집안을 쭉 돌봐준 집사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한테 어렵게 얻어낸 정보야. 근데 내용이 좀 허무맹랑해서 검증을 하려 했던 거고.”

장갑과 코어.

이 두 단어만 가지고도 한수호는 바로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염마갑이구나!’

다른 7대 마화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용마검과 염마갑의 코어는 부모의 비밀 액자에서 찾아내 이미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무구인지 잘 안다.

특히, 염마갑의 코어는 불 내성이 약한 자가 사용할 경우엔 신체가 녹아내릴 정도의 심각한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백진성이 화상을 입었다는 사실과 바로 연결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염마갑의 코어는 어머니인 이태희의 소유였다.

설사 백진성이 염마갑 본체인 장갑을 가지고 있다 해도 코어가 없는 이상 화상을 입을 일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게 가능하려면 두 가지 상황 중 하나여야 했다.

백진성이 염마갑을 이태희에게 빼앗으려다가 화상을 입었거나, 원래 염마갑이 백진성의 소유였으나 이를 컨트롤 하지 못해 화상을 입게 되었고 이태희에게 넘어간 걸 수도 있었다.

‘후자일 경우는 상관없지만, 전자일 경우엔…. 백진성이 이프리트의 수장일 가능성이 높아지겠는데?’

그렇다면 괜히 백진성의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그의 집을 찾아가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그 특별한 장갑이 어딨는지는 알아냈어?”

“그랬으면 진작 너한테 연락했겠지.”

“코어는?”

“입 아프다. 자꾸 같은 대답하게 만들래?”

“그렇군. 어쨌든 좋은 정보 고맙다.”

“말로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 해줄 수 있으면 해줄 테니까.”

한수호는 백윤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미 그의 생명과 같은 코어를 몸에 박아넣은 상태라 부하처럼 부려도 상관없지만, 그건 한수호가 바라는 관계가 아니었다.

아무리 도플갱어가 위험도가 높은 몬스터라 해도, 백윤후를 먹어치우면서 그의 모든 지식까지 흡수했으니 하나의 지적 생명체로 인식해야 했다.

더군다나 그런 지적 생명체가 적이 아닌 아군으로 움직여 주고 있으니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훗날, 도플갱어의 코어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여전히 한수호의 편에 설 수 있도록 말이다.

“아까 보니까, 오늘 최지혁이 만나려는 거 같던데…. 나도 좀 끼면 안 될까?”

이제 보니 백윤후는 함께 떠들며 웃어줄 친구가 필요했던 모양.

지난번 가양 게이트에서 1박 2일을 보내면서 한수호의 친구들과 어색한 관계가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까진 편하게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내일 저녁에 보자고 말하려던 한수호는, 화요일인 내일 서은채를 만나기로 했다는 걸 기억하고는 말을 급히 바꿨다.

“모레 어때? 그날 다 같이 내 컨테이너 하우스로 초대하지.”

“다 같이? 신소이, 그 녀석도 부르는 거냐?”

백윤후가 갑자기 한 사람을 지목했다.

이건 백윤후가 신소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한수호는 일부러 모른 척했다.

“아마도 불러야겠지? 그날 저녁은 배달시켜 먹을 거니까 돈은 네가 내고.”

“구두쇠 같은 놈.”

“아껴야 잘 사니까. 난 누구처럼 금수저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냐?”

“쓰읍. 알았다.”

백윤후는 이제 볼일을 다 봤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백윤후. 앞으론 좀 더 조심해라. 특히, 네 아버지한테 들키지 않게 잘하라고.”

“갑자기 왜?”

“만사는 불여튼튼이니까.”

“싱거운 놈. 알았으니까, 나 먼저 간다.”

백윤후는 그렇게 먼저 강의실을 떠났다.

* * *

그날 저녁.

한수호의 기숙사로 최지혁이 찾아왔다.

그는 라면을 다섯 봉지나 들고 왔다. 그것도 모두 각기 다른 종류로.

“이걸 하나씩 다 끓여 먹으려고?”

“아니. 한꺼번에. 넌 요즘 유행하는 라면 체인지도 모르냐?”

“라면 체인지?”

“라면 종류별로 하나씩 한꺼번에 다섯 개 넣고 친구랑 싹싹 긁어먹는 체인지 몰라?”

한수호는 그런 쪽에 별 관심이 없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런 거 해서 뭐 하는데?”

“우정 테스트? 뭐 그런 거라더라. 둘이서 다섯 개 깨끗하게 비우면 우정이 절대 깨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최지혁의 말에 한수호가 큭 하고 웃었다.

“야, 너 지금 나랑 우정 깨질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웃으며 던진 말인데 최지혁의 표정이 이상하게 무겁다.

오전에 봤던 표정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깨질지도 모르니까.”

시선도 맞추지 못하고 담담하게 하는 말에 한수호도 장난기를 지웠다.

“아무래도 밥 먹기 전에 대화부터 해야겠는데?”

한수호는 최지혁과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았다.

“할 말 있으면 해 봐. 난 준비되어 있으니까.”

한수호는 최지혁이 뭔가 밝히지 못했던 비밀을 말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 비밀이 바로 권존 김무광에 대한 것이 아닐까 예측하고 있었다.

“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조금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최지혁은 마치 큰 비밀을 밝히려는 것처럼 무게를 잔뜩 잡고 있었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둔 공법폰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잠깐만.”

한수호는 폰을 꺼냈고, 폰 화면에 떠 있는 작은 문자를 확인했다.

[2]

표시된 숫자는 침입자 알림을 위해 창문과 문에 붙여 놓은 호랑이 스티커의 번호였다.

‘2번이면, 내 방 창문인데?’

지금 누군가가 방 창문을 열고 이 집으로 숨어들었다.

한수호는 바로 기감을 펼쳐냈다.

방까지의 거리는 10미터도 안 되는데 아무 기척을 느낄 수 없다는 게 너무도 이상했다.

그런데, 기감을 넓게 펼쳐내도 느껴지는 존재가 아무것도 없었다.

‘이거 뭐야?’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오도도 돋아났다.

침입자 알림용 스티커가 오작동했을 리는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지금 방에 숨어들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누구지?’

짧은 순간 한수호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쳐 갔다.

이프리트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 암살자를 보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산이 아티팩트를 빼앗기 위해 숨어든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백진성이 한수호를 감시하는 걸 그만두고 직접 손을 쓰기로 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들 모두 확률이 너무 낮았다.

한수호는 자신의 앞에 앉은 최지혁을 바라봤다.

뜬금없이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기숙사를 찾아온 최지혁.

그리고 마치 이때를 노린 듯 방으로 스며든 침입자.

‘혹시…?’

한수호의 촉이 뭔가를 캐치했다.

“최지혁.”

한수호가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최지혁이 흠칫하며 침까지 꿀꺽 삼킨다.

“왜? 지금 이야기할까?”

“그보다, 너 말이야….”

한수호가 말꼬리를 늘이며 자리에서 슥 일어섰다.

그리고 마치 고민거리가 있는 사람처럼 거실 한쪽을 왔다 갔다 하며 손가락으로 자기 턱을 톡톡 두드렸다.

“할 말 있으면 먼저 해. 난 어차피 급한 게 아니라서.”

“급한 게 아니다? 넌 급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은 아닌 모양인데?”

뜬금없는 말에 최지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한수호가 별안간 바닥을 박차며 문 쪽으로 돌진했다.

한수호는 이미 특성 ‘돌파’를 일으킨 상태였기에 그의 속도는 가히 섬광과 같았다.

콰직

문이 단번에 부서지며 가려져 있던 공간이 확 뚫렸다.

한수호는 문 바로 뒤에 붙어 있다가 튕겨 나간 그림자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단으로 자신의 방에 침입했고, 허락도 없이 남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으니 충분히 무례를 범했다.

그런 상대와 신사적인 대화를 나눌 정도로 한수호의 마음은 넓지 않았다.

후웅

한수호의 주먹은 이미 상대의 얼굴에 닿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 또한 만만치 않았다.

쩌엉

그의 몸에서 반투명한 파장이 뿜어지며 주변을 반원의 돔으로 감싸버렸다.

그는 그 반원을 형성시키는 데 주력한 나머지 한수호의 주먹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꽈앙!

주먹에 맞은 사내는 야구 배트에 맞은 공처럼 튕겨 나갔다. 그런데,

꽈아아아앙

뒤로 3미터 정도 날아가 반투명한 돔의 경계에 부딪치더니 더 이상 튕겨 나가지 않았다.

사내가 튕겨 나가는 힘을 고스란히 받아낸 결계.

잠시 후, 사내가 바닥에 내려서더니 고개를 뚜둑 소리 나게 움직이며 손으로 턱을 흔들었다.

“생각보다 주먹이 매운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걸걸한 음성.

한수호는 공격을 멈추고 눈앞의 사내, 지평학을 가만히 노려봤다. 이에 지평학이 피식 웃는다.

“날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이미 나인 줄 알고 있었나 보군. 그나저나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내 잠입술이 그리 쉽게 들킬 만큼 형편 없지는 않은데 말이야.”

지평학은 부서진 문 조각을 지려밟으며 거실 쪽으로 당당히 걸어 나갔다.

그가 방에서 나오자 쇼파에서 엉덩이를 반쯤 떼며 일어나려던 최지혁이 어리둥절해했다.

“교, 교수님?”

최지혁도 지평학이 한수호의 방으로 스며든 상황을 몰랐는지 꽤나 경악한 얼굴이었다.

“교수는 무슨. 장태산이는 벌써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연기할 거 없다, 이 녀석아.”

지평학은 소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그가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주변을 뒤덮고 있던 돔 형태의 결계가 조용히 사라졌다.

“대단한 결계네요. 아티팩트인가요, 아니면 특성인가요?”

한수호는 지평학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별로 놀라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준비했다.

“괜히 소란을 일으켜서 사람들 불러모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정말 이 결계가 어떤 기술인지 몰라서 나한테 묻는 것이냐?”

“권왕가의 보호 장막인가요?”

“역시나…. 네 녀석, 다 알고 있었구나?”

지평학이 묘한 표정으로 묻자 한수호는 방긋 웃음을 그리며 조용히 커피를 탔다.

권왕가.

이곳은 한때 대한민국 마공가 최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가문이었다.

권존 김무성이 실종되면서 가문의 위신이 추락하긴 했지만, 아직도 십대 가문의 하나에 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권왕가에서, 특히 권존 김무성의 능력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보호 장막술이었다.

한수호의 전투 영역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보호 장막을 펼치면 그 범위 안에서는 아무리 강한 파괴력이 발생하더라도 주변 사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지평학은 방금 그 보호 장막을 펼쳐서 한수호의 기숙사 방이 부서지는 걸 막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에 주먹이 쑤셔박히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한수호는 빠르게 준비한 커피를 세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놨다.

“백만 원 입니다.”

“커피가? 아니면, 저 문짝이?”

“전부 한꺼번에 계산했습니다.”

“고얀 놈. 저딴 문짝이 그리 비쌀 리는 없고…. 커피가 금으로 된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비싸?”

“제가 사정을 봐 드린 값입니다.”

“…. 뭐, 틀린 말은 아니군.”

한수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방금 일격을 날렸을 때, 마지막에 힘을 빼지 않았으면 아무리 지평학이라도 큰 부상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아직 광폭화 5단계가 패시브로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격에 담긴 힘은 궁급을 상회하고 있었다.

물론, 지평학 또한 본래 능력을 모두 발휘했다면 또 사정은 달라졌겠지만.

“대금은 잊지 않고 치러주마.”

“감사하군요.”

“자, 그럼 어디 내 제자 놈이 널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부터 들어볼까?”

지평학의 시선이 최지혁에게 향했다.

움찔한 최지혁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스승님께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점은 마음속 깊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젠 장태산이도 진실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그 사람 말만 믿고 이렇게 숨만 죽이고 있는 건, 분명 잘못된 겁니다.”

“그래서 네가 아는 모든 걸 장태산, 이 녀석한테 말해주려고 했다 이거냐?”

“네. 장태산이라면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할 밑거름 정도는 될 수 있을 거라고요!”

최지혁은 평소답지 않게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친구들 앞에서도 자신의 의견보다는 친구들 의견을 존중했던 최지혁이라, 지금 모습은 한수호에게 생소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 이 모습이야말로 진짜 최지혁일지도 몰랐다.

“그럼 해 봐라. 네 말을 듣고 장태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도 무척이나 궁금하구나.”

“…. 정말입니까?”

최지혁이 갑자기 달라진 스승의 태도에 의문을 표하자, 지평학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녀석도 참. 이 스승이 이런 진지한 상황에서 농담하는 걸 본 적 있느냐?”

그런 지평학을 멀뚱하게 쳐다보던 최지혁.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네. 있는데요.”

“…뭐라?”

최지혁의 단호한 대답에 당황한 건 오히려 지평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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