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김무성은 최지혁이 모든 걸 말하는 동안 한수호의 반응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그리고 한수호의 반응을 통해, 그가 상당 부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심지어 김명중이 회귀자라는 사실까지도 이미 예상한 듯 보였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얼마 전 한수호를 비롯한 친구들이 메디컬 게이트가 소유하고 있는 가양 게이트를 찾아간 것부터가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사실, 김무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최지혁이 한수호와 함께 미래를 지켜내고자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 아직 김명중을 백프로 믿고 있는 게 아니었기에, 괜한 사람을 이 일에 끌어들여 위험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최지혁을 통해 한수호와 이하윤의 관계가 조금 특별하게 발전하는 것 같다는 소릴 듣게 된 이후로 생각을 바꿨다.
김명중의 말에 의하면, 이하윤은 살의 열쇠에 해당하는 존재다.
고작 17살에 불과한 이하윤을, 아무것도 모르고 얼굴의 흉터로 인해 고독한 삶을 살아온 불쌍한 아이를 그저 죽여야 할 대상으로만 봐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수호가 이하윤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에 오히려 기뻐했다.
잘하면, 한수호로 인해 이하윤의 미래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오늘 최지혁이 한수호를 자신들의 일에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걸 말하려고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뒀다.
다만, 최지혁이 자칫 실수라도 하여 한수호로 하여금 반감을 갖게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몰래 따라온 것이었고.
한수호를 바라보는 김무성은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었다.
이미 많은 걸 알고 있었던 걸로 보이는 한수호가 과연 어느 편에 선 인물인지 장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수호가 김명중에 대한 걸 알고 있었다면, 그의 스승이자 양부모인 비돈귀살도 이 상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돈귀살이 안다면, 그들이 잠시나마 소속되어 있었던 악의 원천, 황도13궁도 내막을 알고 있을수도 있기에 불안한 마음까지 들고 있었다.
그런 김무성의 속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한수호는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대답을 못 하느냐?”
마음이 조급해진 김무성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한수호가 담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분은, 지평학 교수이십니까? 아니면, 권존 김무성이십니까?”
의외의 질문.
김무성은 한수호가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잠시 가늠해 봤다. 하지만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모든 걸 떠나서, 내 질문에 대한 답부터 내놓아야 할 거다.”
김무성은 눈매를 살짝 좁히며 무거운 음성으로 되받아쳤다.
그 말에 한수호가 눈에 이채를 발했다.
“지금은 권존 김무성이시군요. 그럼 그에 맞는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최지혁이 한 이야기 중 30%. 딱 그 정도만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김무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 자신이 지평학 교수로서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말했다면 대답이 달라졌다는 말일까?
“애매한 대답이군.”
“간단한 문제입니다. 20년 전, 그 대단했던 권존 김무성이 미국의 위협이 두려워 모습을 감췄으니 두 번 다시 권존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 이 자리에 계신 분이 지평학 교수님이라면 제 대답은 솔직하지 못했을 테고요.”
“그럼 방금 네 대답은 솔직했다는 것이냐?”
“네. 제 앞에 계신 분은 권존 김무성이니까요. 제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제 어린 시절의 영웅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죠.”
한수호가 환하게 웃는다.
그제야 김무성도 한수호의 뜻을 이해했다.
만약, 김무성이 권존으로서의 기백을 잃은 평범한 교수로 보였다면 한수호는 모든 사실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한수호의 눈에는 여전히 권존 김무성의 모습이 보였고, 그 모습을 믿고 솔직한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전, 권존 김무성 어르신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한수호는 김무성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한수호는 지금 김명중 회장이 아닌, 김무성의 뜻에만 따를 것임을 선언하고 있었다.
“이 녀석…. 확실히 난 놈이구나. 하하. 하하하!”
김무성은 크게 웃었다.
이렇게 웃은 적이 얼마만인가?
지평학으로 살아온 20년 동안엔, 최지혁을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 외에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한수호도 웃고 최지혁도 웃었다.
하지만 최지혁이 웃은 건 다른 의미에서였다.
“이제 장태산, 이 녀석도 스승님 제자가 되는 건가요? 그럼 당연히 제가 사형이겠죠?”
엉뚱한 소리에 두 사람이 최지혁을 쳐다봤다.
한수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고, 김무성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지혁아.”
“네, 스승님.”
“태산이는 내가 거둬도 될 만한 그릇이 아니다.”
“네? 이 녀석 자질이 그 정도로 형편 없나요?”
“그 반대다, 이놈아.”
“…. 네?”
최지혁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결국 김무성도 한수호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하하! 최지혁, 네 덕분에 웃는다!”
“늘그막에 제자가 웃음으로 효도하는 구나. 허허허.”
* * *
한차례 웃음이 터진 이후부터 세 사람의 분위기는 한결 편안해 졌다.
“앞으론 어르신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호칭은 중요하지 않으니 알아서 하려므나. 그보다, 태산아. 넌 어떻게 김명중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냐?”
김무성은 더 이상은 가식없이 한수호를 대하고 있었다.
그건 한수호도 바라는 바였다.
“사실, 가양 게이트 안에서 김무성과 관계가 깊은 이하이를 만났습니다. 덕분에 김명중이라는 사람이 회귀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한수호는 사실, 그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만큼은 숨겨야 했기에 약간의 거짓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아까 이산이 뒤에 있냐고 물은 거였고?”
김무성은 권존이었던 인물인 만큼 상당히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산에게 두 딸이 있으며, 그중 하나가 이하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네. 원래는 이산을 직접 만나 많은 걸 확인해 볼 생각이었으나, 일이 어그러졌죠.”
“이산…. 그 친구는 만나 봐야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예전부터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적인 성격이었으니,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게다.”
“그래서 저도 이산을 통해 뭔가를 알아내려는 생각은 접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권존 김무성 어르신을 얻게 되었으니 큰 이득인 거죠.”
“날 얻어? 허헛. 지혁이 보다 네 혀가 더 달구나.”
“과찬이십니다.”
한수호와 김무성의 대화는 아무 막힘없이 척척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최지혁이 끼어들어 함께 대화에 참여했지만, 대부분은 한수호와 김무성이 대화를 주도했다.
한수호는 2058년, 인류의 최후 항전에서 다른 사왕오패의 강자들은 함께 자리하지 않았던 거냐고 물었다.
그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김무성 역시 그 점이 궁금했기에 김명중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엔 김무성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자도왕 송혁을 비롯해 태극검왕 서한광, 한울뇌왕 구천승, 귀부암왕 장현오까지 모두 살해당했다.
오패 중 절반은 인류를 배신했으며, 그들 또한 마지막 일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참히 죽임을 당했고.
김무성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악몽급 게이트를 막다가 희생된 것도 아니고, 같은 인간의 손에 살해당했다니.
김무성은 과연 어떤 존재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냐고 물었지만, 김명중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다만, 그들 모두 용갑에 2미터의 대검을 든 사내의 손에 죽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인류의 운명은 바로 그 용갑 사내의 손에 달렸다고 볼 수 있었다.
이프리트의 진정한 수장으로 생각되는 용갑의 사내.
그자가 누구인지를 찾아내 먼저 제거한다면 인류를 멸망으로부터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어르신. 20년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권존으로 최강의 명성을 누리셨던 어르신께서 어찌 미국의 위협에 은거를 택하신 거죠?”
한수호는 가장 궁금했던 사항을 질문했다.
그러자 김무성이 쇼파에 등을 깊숙하게 기대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건 모두 내 오만 때문에 벌어진 정해진 결과였다.”
그렇게 시작된 김무성의 과거는 한수호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정확히 21년 전.
김무성은 일존사왕오패 중 일존으로서 당당히 최강의 자리를 차지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당시 나이 43세였던 김무성은 1세대 마공사로서 그 누구보다도 드높은 명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으로부터 비밀스런 협조 요청을 받게 되었다.
미국의 마공 특무부와 직통으로 연결된 핫라인으로 연락을 받은 김무성은 아무런 사전 조사도 없이 무턱대고 협조 요청을 수락했다.
사실 협조 내용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5급짜리 게이트가 등장했는데, 게이트가 너무 변칙적이어서 미국의 마공사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번번히 탐사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김무성이 직접 방문해서 그 5급 게이트를 폐쇄하는 일에 앞장서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일을 하는데 미국 특무부가 제시한 대가는 무려 2천만 달러.
원화로 250억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김무성은 이 일을 쉽게 생각했고, 주변에는 잠시 여행을 다녀온다고 말하고는 미국 플로리다주로 향했다.
하지만 모든 건 김무성의 착각이었다.
미국이 폐쇄를 요구한 5급 게이트는 보통 게이트가 아니었다.
보통은 게이트 너머로 가게 되면 일정 지역에 결계가 쳐 있어서 게이트 등급 이상의 몬스터는 등장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게이트에는 결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말이 5급이지, 얼마든지 4급, 3급, 심지어는 1급에 해당하는 몬스터까지 나타날 수 있는 오픈형 게이트였던 것.
즉, 결계 내의 몬스터를 10마리 이하로 떨어뜨려서 알파 개체를 불러들이고 그 알파 개체를 처치함으로써 게이트를 폐쇄하는 방식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몬스터들과의 전투는 끝이 없었다.
처음엔 6급, 7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들만 등장하더니 김무성 파티가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몬스터들의 등급이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무성은 자존심 때문에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버티려 했다.
함께 간 파티원들이 하나둘 죽어가기 시작했음에도 자신의 무력을 믿고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24명이나 되는 파티원 중 절반이 죽었을 때, 더 이상 억지로 버틴다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김무성은 자신이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끄는 동안 생존한 12명을 귀환시키고자 했다.
뉴에르다의 협곡 깊은 곳으로 이동한 김무성은 그곳에서 3급 몬스터 20마리를 상대로 죽음을 건 혈투를 벌였다.
그러다 너무 강력한 마나력이 격돌한 충격으로 협곡이 무너져 내렸다.
김무성은 무너진 협곡 안에서 오래된 유적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유적지 안에는 몬스터들이 즐비했지만 대부분이 7급 이하의 몬스터였기에 처치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유적지 안의 대신전에서 강력한 무구 하나를 손에 넣게 되었다.
무구의 이름은 혼마귀부.
그건 무게 5킬로그램에 손잡이 길이가 1미터나 되는 은색의 도끼였다.
무구의 설명에 의하면 7대 마화기라는 강력한 무구를 상대하기 위해 뉴에르다의 고대 문명이 만들어낸 물건이었다.
김무성은 혼마귀부를 들고 지구로 귀환했다.
다행히 미국 특무부는 이번 일의 실패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게이트의 속성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못한 잘못이 있었으니까.
대신 김무성에겐 약속된 대가의 50%만 지불했고, 더는 관여하지 말라며 한국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애초에 미국 특무부는 그 게이트 안에서 혼마귀부를 차지하고자 작전을 꾸몄던 것이고, 김무성이 혼마귀부를 몰래 숨기고 나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
하지만 혼마귀부에 대한 걸 공식적으로 오픈할 수 없었던 것인지, 계속해서 비밀라인을 통해 혼마귀부를 내놓으라고 김무성을 협박했다.
처음엔 엄청난 거금을 제시하며 자신들이 구매하겠다고 하더니, 김무성이 계속 거부하자 은밀히 요원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대한민국의 수많은 마공사들까지 돈으로 매수하여 김무성에게서 혼마귀부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김무성이 누구인가.
그는 권존이라는 명성에 알맞게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미국 특무부 요원들과 마공사들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자 김무성은 지칠 대로 지쳤다.
반년 동안 김무성이 죽인 마공사만 해도 150명이 넘었다.
거의 하루에 한 명씩 죽인 꼴.
결국 김무성은 스스로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무의미하게 사람들을 죽일 수 없었기에 사고로 위장해 자신을 숨김으로써 희생자를 줄이고자 한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한수호는 세 가지 사실에 크게 놀랐다.
첫째, 김무성이 아스루나의 대신전 안에서 혼마귀부라는 혼마기를 손에 넣었다는 것.
둘째, 미국 특무부에서는 그 게이트 안에 혼마귀부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셋째.
게이트 중에 결계가 없는 오픈형 게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혼마귀부라는 무구. 제가 좀 볼 수 있겠습니까?”
한수호의 말에 최지혁이 흠칫 놀랐다.
혼마귀부는 스승인 김무성이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물건이었고, 자신이 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절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김무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왼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러, 시계 뒷면에서 코어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한수호 쪽으로 튕겼다.
“옛다. 제대로 보고 싶으면 코어에 마나를 주입하면 된다.”
한수호는 코어를 받아 바로 마나를 밀어넣었다. 순간,
파캉
코어가 사라지고 대신 큼직한 도끼 한자루가 짠 하고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은빛을 띄고 있는 도끼는 무게도 상당해 묵직함이 느껴졌다.
한수호는 곧장 도끼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다행히 도끼엔 이미 코스트가 부여되어 있어 정보를 볼 수 있었다.
[혼마귀부]
-코스트: 72
-7대 마화기를 상대하기 위해 아캄이 제작한 혼돈의 무구 중 하나입니다.
-강력한 마나가 깃든 금(金) 속성의 도끼입니다.
-손잡이에 20미터 길이의 쇠사슬이 숨겨져 있어 원거리 공격 후 자유로운 회수가 가능합니다.
-도끼를 쥔 자의 팔 힘을 두 배로 높여주며, 필요시 권갑으로 변형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