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147화 (147/375)

147화

얼핏 보니 케이스 안에는 목함 외에도 크고 묵직한 느낌의 저격총이 들어 있었다.

‘델링그를 케이스에 넣고 다니는구나?’

어린 여학생이 버젓이 총을 들고 다닐 수 없으니 당연한 조치였다.

그래도 이산이 한 번 눈독을 들인 이상 아공간에 넣지 않으면 빼앗길 위험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먼저 이거부터 받아요.”

서은채가 작은 목함을 한수호에게 건넸다.

“이게 내가 너한테 델링그를 준 대가인 거냐?”

“아니요. 제가 줄 대가는 다른 거고. 이건, 우리 아빠가 주는 선물이에요.”

“선물…?”

한수호는 살짝 놀랐다.

서한광이 자신에게 선물을 줬다는 건, 도봉구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서은채가 모두 말했다는 뜻이 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대한맹의 맹주가 딸을 통해 직접 선물을 전달할 거라고는 예상을 못 하고 있었다.

한수호는 목함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두 가지 물건을 보고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목함 안에는 두 가지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나는 손톱만 한 크기의 새하얀 코어였고, 다른 하나는 직경 3센티 정도되는 디지털 칩이었다.

한수호는 코어부터 들어올렸다.

코스트가 부여되지 않아서인지 읽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코어(B)]

-보유 마나량: 1/900

놀랍게도 B급 코어다. 그것도 저장 가능한 최대 마나량이 900이나 되는.

지난번에 월에게 건네준 코어는 A급이었지만, 그것도 최대 마나 저장량은 1000까지였다.

단순히 돈으로 환산해 보면 거의 5억이나 되는 엄청난 물건.

지금의 한수호에겐 돈보다 이런 아티팩트가 훨씬 도움이 되기에 딱 알맞은 선물이었다.

한수호는 코어를 잘 챙긴 뒤 옆에 있던 디지털 칩을 집어 들었다.

그 아래엔 명함이 놓여 있었는데, 대충 살펴보니 대한맹 맹주 `서한광의 VIP 명함이었다.

서한광은 두 개의 명함을 쓰고 있었고, 이 VIP 명함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는 귀한 물건이었다.

디지털 칩을 살펴보니 그건 홀로그램 장치였다.

그걸 탁자에 놓고 칩 중앙의 버튼을 꾹 누르자 허공으로 홀로그램이 쏴지며 한 사람의 얼굴이 등장했다.

사내는 굉장한 미중년이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잘생김이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은 유명한 영화배우를 닮아 있었다.

홀로그램 속 중년 사내는 한수호 쪽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갑군. 난 서한광이네. 나에 대해선 잘 알 테니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듣자 하니 못난 내 딸아이가 큰 신세를 졌다던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말이야. 자네 덕분에 각성했다는 것도 다 들었네. 다른 건 몰라도 그 점은 정말 고맙기 그지없군. 나도 해주지 못한 걸 열아홉 청년이 해줬으니 말이야.

서한광은 마치 한수호를 마주 보고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비록 주고받는 대화는 아니었지만, 대한맹의 맹주가 홀로그램으로 직접 이런 영상을 전달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기에 한수호는 꽤나 놀란 상태였다.

-내 딸아이에게 베푼 은혜에 대한 대가로 충분하진 않겠지만, 부디 그 코어를 잘 사용해 주기 바라네. 굳이 코어가 필요 없다면 시세보다 훨씬 좋은 가격으로 내가 구매해 줄 테니, 은채한테 원하는 바를 말해주면 좋겠군.

확실히 서한광은 통이 컸다.

A급 코어를 선뜻 내주는 것도 모자라, 혹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는 뜻을 밝히고 있었다.

-자네가 은채를 통해 한 가지 부탁을 한 모양이던데, 솔직히 난 자네가 그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그게 더 궁금하군. 아, 그렇다고 은채가 나한테 고자질한 건 아니네. 나보고 뜬금없이 대법원 게이트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도 난리를 치길래 그 이유를 캐물어서 알게 된 것이니까.

한수호는 서은채를 향해 눈을 얇게 떠 보였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한수호가 그런 부탁을 했다는 걸 서한광에게 말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서은채는 한수호의 시선을 받자 또 한 번 혀를 내밀며 헤실거렸다.

-사실, 얼마 전 대한맹 내의 정보부서로부터 한 가지 첩보를 받았네. 나흘 뒤, 그러니까 금요일이 되겠군. 그날 대법원 게이트에서 불법적인 일이 일어날 거라는 내용이었지. 그래서 맹도를 데리고 직접 현장에 나가보려던 참이었는데, 은채 녀석이 날 말린 것이지.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내가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는 맹의 일급 비밀 사항을 자네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말이야.

서한광의 말에는 한수호도 놀랐다.

대법원 게이트에서 뭔가 일이 벌어질 거라는 첩보가 있었다니.

시기도 스승 부부가 서울에 올라오는 시점에서 딱 하루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게이트의 등급이 격상했기 때문에 서한광이 대법원 게이트로 향한 게 아니었구나!’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회귀 전의 서한광은 대법원 게이트에서 뭔가 일이 벌어질 거라는 정보를 미리 받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섰던 것이다.

-난 자네가 우리 대한맹의 정보를 몰래 빼돌린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분명 다른 루트로 그 사실을 알았다고 보고 있지. 은채를 통해 내가 게이트에 가지 못하게 말리려는 걸로 봐선,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서한광은 보통이 아니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에 대한 파악이 무척이나 빠르고 정확하다.

서한광은 한수호를 아군으로 파악했고, 자신을 해치거나 일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걸 바로 알아봤다.

-그래서 자넬 만나고 싶어졌네. 강제로 자넬 내 앞으로 끌고 올 생각은 없으니 자네 발로 직접 날 찾아와주게. 난 사흘 뒤, 대법원 게이트로 갈 것이네. 그러니 내가 게이트 안에 들어가는 걸 막고 싶다면 자네가 직접 날 설득해 보게나.

서한광이 홀로그램 영상 속에서 한수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단순한 영상일 뿐인데도 서한광의 기세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잘된 건가? 잘하면 서한광 맹주의 허락을 받아 정정당당하게 대법원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겠어.’

한수호는 스승 부부가 서울에 올라오는 목적이 바로 그 대법원 게이트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승 부부가 먼저 게이트에 진입하면 어떡하든 뒤를 따라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잘하면 서한광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난 이미 자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봤다네. 자네 스승이자 양부모인 비돈귀살 부부가 사흘 뒤에 서울로 상경한다는 사실도 다 알지. 한때, 그들 부부가 좋지 않은 곳에 발을 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싶군.

대한맹의 맹주가 괜히 맹주가 아니었다.

서한광이 이 영상을 준비한 건 월요일이다.

영상 속에서 나흘 뒤가 금요일이라고 했으니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단 이틀 만에 자신에 대한 모든 걸 파악했다는 소리였으니, 정보력이 정말 엄청나다 볼 수 있었다.

-자네나 자네의 양부모에게는 그 어떤 위협도 없을 것이네. 난 자네가 나와 같이 세상의 정의를 위한 길을 걷기 원한다고 믿고 싶네. 시간은 딱 4일이네. 아니군. 자네가 이걸 볼 시점이면 3일 남았겠어. 아무튼, 그 안에 꼭 날 찾아와 주었으면 하네. 직접 볼 날을 기대하지.

퓨웃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한수호는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상대가 자신에 대한 걸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이상, 이것저것 재가면서 거짓말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나보고 직접 전화하라고 VIP 명함까지 챙겨준 거군.’

한수호는 서한광의 VIP 명함을 잘 챙겨서 지갑에 넣었다.

그때,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살피던 서은채가 한마디 했다.

“미리 말하는데, 저도 그 영상은 지금 처음 본 거예요. 그 목함은 열어본 적도 없고.”

“넌 잘 좀 둘러대지, 대 놓고 게이트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거냐?”

한수호가 짐짓 화난 척 한 소리 하자, 서은채는 어색하게 웃음을 그렸다.

“제가요. 되바라진 얼굴과는 다르게 거짓말을 잘 못하거든요. 거짓말하면 바로 티가 나서 아빠가 금방 알아봐요.”

“에휴. 알았다. 이게 뭐 네 잘못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니니까 탓할 것도 없지.”

“진짜요? 아빠한테 들켰다고 문제 되는 건 아닌 거죠?”

서은채의 표정이 바로 환하게 밝아졌다.

“네 아버지한테 전해. 코어는 감사히 잘 쓰겠다고. 그리고 게이트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꼭 찾아뵙겠다고.”

“네! 내일 집에 돌아가면 꼭 전할게요.”

“그리고 이거나 받아라.”

한수호는 서은채에게 주려고 준비해 둔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코스트 총 한도가 100이나 되는 대용량 주머니.

막상 그걸 서은채에게 주려니 손이 선뜻 나가지 않는다.

그런 한수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은채는 복주머니처럼 생긴 예쁜 주머니를 냉큼 채갔다.

“이게 뭐래? 오빠가 직접 수놓은 거예요? 와, 예쁘다!”

서은채는 아공간 주머니의 기능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다.

“그거, 아공간 주머니야. 코스트 한도 이내에서는 어떤 물건도 그 안에 숨겨놓을 수 있지.”

“아공간 주머니요? 우와!”

서은채가 눈을 크게 뜨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델링그 간수 잘 하라고 주는 거니까 엄한 데 쓰지 말고.”

“아, 델링그! 저번에 본 그 언니 아빠라는 분 때문에 그러시는구나? 그분이 제 델링그를 노릴 수 있으니 여기다 잘 숨겨두라는 거죠? 알았어요. 간수 잘~할 테니 걱정 마세요. 선물 감사합니다!”

서은채는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기타 케이스를 통째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케이스튼 코스트가 1인가 봐요? 델링그 코스트가 91인데, 주머니 용량이 8밖에 안 남네요?”

“코스트 8이면, 평범한 물건 여덟 가지를 넣을 수 있는 용량이다. 우습게 보지 마.”

“헤헤.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아무튼 잘 쓸게요.”

“아공간에 넣는 물건 최우선 순위는 무조건 델링그여야 해. 다른 거 넣겠다고 델링그 밖에 꺼내서 들고 다니면 전부 압수할 거다.”

한수호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서은채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넵! 각골명심하겠습니다!”

서은채는 한수호에게 믿음을 주려는 것인지 차렷 자세로 엉터리 경례까지 붙였다.

“그럼 믿는다. 시간 늦었으니까 얼른 씻고 쉬어. 난 기숙사로 가볼 테니까.”

시간을 보니 벌써 8시가 넘었다.

“좀 더 놀다 가면 안 돼요?”

“여기서 뭐 하고 놀아? 먹을 건 냉장고에 많이 있으니까 배고프면 알아서 꺼내 먹고.”

한수호가 일어나서 나가려 하자 서은채도 후다닥 일어났다.

“저기…. 오빠.”

서은채가 한수호를 불렀고, 무심코 고개를 돌린 한수호는 갑자기 온몸에 힘이 쫙 빠지는 느낌에 휘청했다.

광폭화 5단계 패시브가 딱 끝나는 시점이었다.

모든 근육이 잔뜩 응축되어 있다가 한순간 힘이 풀리면서 찾아온 현상이었다. 바로 그때, 서은채가 몸을 날려 한수호의 등을 껴안았다.

다른 때였으면 바로 반응해 피했겠지만, 패시브 해제로 인한 무기력증으로 아무런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서은채는 한수호의 등을 껴안은 채로 작게 속삭였다.

“이게 제 선물이에요. 헤헤.”

껴안은 손에 힘을 한차례 주고는 다시 뒤로 훌쩍 물러서는 서은채.

자기가 준비한 선물을 따로 있다더니 이런 선물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수호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 잘 쉬어라. 먼저 가마.”

한수호는 벌게진 얼굴로 황급히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은채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혼자 한참 동안 킥킥 웃음을 흘렸다.

* * *

다음 날.

수업을 마친 한수호는 최지혁, 백윤후와 함께 한발 먼저 컨테이너 하우스로 향했다.

서은채는 오전 내내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뒹굴거리다가 점심까지 알아서 챙겨 먹고는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인천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혹시라도 서은채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서둘러 움직인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백윤후가 흠칫 놀랐다.

“…. 이상한데?”

“왜? 뭐가?”

한수호는 설마 싶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집에 디퓨저라도 있냐? 왜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지?”

“내가 혼자 사는 남자라고 집에서도 퀘퀘한 냄새가 날 줄 아냐?”

“아니야. 이건 확실히 여자가 쓰는 향수 냄새인데….”

백윤후가 중얼거리자 한수호는 그의 등을 찰싹 소리 나게 쳐버렸다.

“헛소린 그만하고, 청소나 좀 도와줘. 그래도 여자애들 오는데 지저분하면 좀 그렇잖아.”

“뭔 청소? 내가 보기엔 청소할 것도 없겠는데?”

최지혁이 집 안을 둘러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는 이런저런 물건들이 집 안 여기저기 돌아다녔었는데, 지금은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집 안에서 신는 슬리퍼부터 화장실에 있는 칫솔 하나까지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잘 정리된 상태였다.

‘서은채…. 보기보다 깔끔하네.’

덜렁대고 털털한 성격이라 정리정돈에 취약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 의외였다.

그래도 하루 신세 졌다고 깨끗하게 청소에 정리까지 해놓고 간 것이다.

“뭐, 그럼 됐네. 백윤후. 넌 음식점에 전화 돌려. 애들이 사달라는 거 다 배달되려면 시간 좀 걸리겠다.”

한수호는 서은채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자 안심하고는 집 안 가구 위치를 조금씩 변경했다.

바닥에 음식을 깔아 놓고 먹으면서 홈시어터로 영화를 보기 위한 준비였다.

잠시 후 백윤후는 무려 20가지나 되는 음식을 일일이 주문했고, 얼마 안 있어 여자애들이 한수호의 집에 도착했다.

“올~ 드디어 장태산 개인 하우스에 입성하는 건가? 근데 뭐야, 여기 왜 이렇게 예뻐?”

양소혜는 선물로 가져온 아령 세트를 침대 위에 휙 던져 놓고는 집 구경에 한창이었다.

장한설도 낑낑대며 들고 온 큼직한 침구 세트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야, 장태산. 이 집 꾸미는 데 신경 많이 썼겠다? 그런데, 화장실은 어디냐? 뭐 먹기 전에 손부터 좀 씻어야겠다.”

장한설이 두리번거리자 이하윤이 무심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 옷장 옆으로 돌면 있어.”

이하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알려준 순간, 여학생들 모두의 시선이 이하윤에게 확 쏠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