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황도13궁? 그럼 비돈귀살 부부가 그 사특한 집단의 하수인이라는 것이냐?”
신명우가 표정을 굳히며 한수호를 노려봤다.
비돈귀살이 황도13궁과 거래를 한 것이면, 양자인 한수호 또한 그들과 무관하지 않을 테니까.
“제 양부모님은 그들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끊어내기 위해 거래를 한 겁니다. 황도13궁에서는 이번 일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을 테고요.”
“비돈귀살 부부는 30분 전에 이미 게이트에 진입했다. 놀랍게도 2급짜리 게이트 출입 허가증을 가지고 있더군. 그럼 황도13궁이 2급짜리 허가증을 내줄 수 있는 정부 기관과도 깊게 관계되어 있다는 건데….”
신명우는 단순히 서한광을 호위만 하는 인물이 아닌 듯했다.
마치 맹주의 보좌관처럼 정보를 분석하고, 뭔가를 예측하며 서한광이 쉽게 판단할 수 있게 계속 소스를 던져주고 있었다.
“황도13궁은 정부 기관에만 발을 걸치고 있는 게 아닙니다. 특무부나 정의국도 그들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죠.”
“그렇다면, 우리 대한맹에도 놈들의 끄나풀이 숨어들었을 거라는 말이군.”
서한광은 한수호가 하려는 말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양부모님께서도 황도13궁의 위험성을 알기에, 오늘 일에서 맹주님이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혹시라도 황도13궁이 맹주님을 노릴 수도 있으니 게이트에 들어오지 않기를 원했고, 저를 통해 맹주님의 안전을 확보해 달라고 부탁하셨죠.”
이건 거짓말이었다.
스승 부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상황이 크게 불거졌을 때, 스승 부부의 구해낼 명분이 없어진다.
“그건 좀 이상하군. 비돈귀살은 그래도 이름 있는 마공사인데, 이런 중요한 일을 어찌 어린 아들에게 맡긴 거지? 직접 맹주님께 연락을 취해 사실을 알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을 텐데?”
신명우가 살짝 의심을 하자 한수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양부모님이 직접 움직였다면 황도13궁에서 먼저 알아채고 거래를 무효화시켰을 테니까요.”
한수호의 말은 대한맹 내부의 첩자가 고위직 인물일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 점은 나도 인정하네. 비돈귀살이 뜬금없이 나에게 연락을 취해 황도13궁에 대한 이야길 꺼낸다면 오히려 믿는 게 쉽지 않았겠지. 내 딸아이와 인연이 있는 장태산 학생이 접근했기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고.”
서한광은 한수호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가만히 상황을 가늠해 보던 한수호는 왠지 모를 찝찝함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게이트에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아티팩트가 숨겨져 있고, 황도13궁이 그걸 차지하기 위해 스승님들을 이용했다고 하기엔 모든 상황이 너무 어설퍼.’
한수호는 오늘 이 상황이 황도13궁에서 일부러 만들어 낸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고의로 대한맹에 정보를 흘리고, 대한맹이 게이트 출입을 막게끔 유도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다.
‘그럼 그들이 원하는 건 대체 뭘까?’
한수호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신명우가 서한광에게 말했다.
“맹주님.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지금 당장 대내대응부를 호출해 게이트에 진입하겠습니다.”
“흐음. 자넨 그 정도로 상황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가?”
대한맹의 대내대응부는 숫자에 있어서는 대외대응부보다 적다.
하지만, 소속된 마공사 하나하나의 능력이 굉장히 우수해 실질적인 대한맹의 핵심 전력이라 볼 수 있었다.
“더 이상은 황도13궁이 대한맹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놈들의 뿌리를 뽑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
“좋네. 그럼 나도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도록 하지. 어찌 아랫사람들을 위험 속에 들여보내고 나만 이곳에서 편히 쉬겠는가?”
“아닙니다, 맹주님. 맹주님께서는 장태산 학생의 말처럼 게이트에 들어가지 말고 이곳에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주십시오.”
“허어. 신 호법. 나 혼자 여기 남아서 무얼 대비할 수 있겠나? 수많은 마공 가문이 날 맹주로 추대한 것은 이런 상황에 직접 나서서 어려움을 해결하라는 의미라네. 그러니 겁쟁이처럼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지.”
“어쩌면 황도13궁은 그걸 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맹주님이 스스로 위험 속으로 들어서길 말이죠. 그러니 이곳에 남아계셔야 합니다.”
서한광과 신명우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한수호의 머릿속으로 뭔가가 번쩍하고 스쳐 갔다.
‘설마?’
신명우의 불같은 성격과 맹주를 향한 충정을 봤을 때, 게이트에는 신명우만 진입하고 서한광은 게이트 바깥쪽에 남게 될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호위부 경호실에는 신명우와 맞먹는 호법이 둘이나 더 있었으니, 맹주의 호위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신명우를 맹주에게서 떼어놓고, 바깥쪽에서 맹주를 치려는 건가?’
한수호는 황도13궁의 계획이 이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한수호가 아는 미래와는 차이가 크다.
서한광은 게이트가 3급으로 진화하게 되면서 그 웨이브를 막고, 게이트를 폐쇄하기 위해 안에 진입했다가 회복 불능의 부상을 입었으니까.
‘그게 아니면 먼저 신명우를 쳐서 위험에 빠뜨린 뒤, 서한광까지 게이트로 불러들여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걸지도 모르고.’
대충 가닥이 잡혔다.
뭐가 맞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서한광과 신명우를 떨어뜨려 놔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게이트 안에 들어갈 사람들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게이트 안에 황도13궁이 얼마나 많은 인원을 배치했을지였다.
“신 호법님. 지금 대법원 게이트 안에 마공사가 몇 명이나 잔류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한수호가 묻자 신명우는 바로 대답했다.
“두 명이다. 좀 전에 진입한 비돈귀살 두 명 말고는 아무도 없지.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말이다.”
“그럼 기록 외적으로는 게이트 안에 마공사들이 존재할 거라는 뜻인가요?”
“아마도…. 사실 조금 전까지 정보책략실의 이 실장과 함께 서울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게이트의 출입 기록을 확인해 봤는데, 진입은 했으나 밖으로 나오지 않은 소속 불명의 마공사가 11명이나 되더군.”
서울에 존재하는 모든 게이트를 통틀어 11명.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법원 게이트로 진입한 게 아닌데, 어떻게 그 안에 마공사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 답은 서한광이 알려줬다.
“학생에겐 생소하겠지만, 얼마 전에 ‘게이트 점프석’이라는 게 등장했네. 그건 말 그대로 게이트에서 게이트로 바로 이동이 가능한 아티팩트라네. 이곳 지구에서 게이트 사이의 거리가 7킬로미터를 넘지만 않는다면 최대 5명을 한 번에 다른 게이트로 점프시킬 수가 있지. 쿨타임이 굉장히 길긴 하지만, 게이트에서 게이트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지.”
“그 점프석을 황도13궁에서 가지고 있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서울 내의 모든 게이트 출입자 명단을 조사한 거라네.”
이제 대충 이해가 간다.
한수호도 이 게이트 점프석이 무언지는 잘 알고 있다. 다만, 한수호가 알기로, 이 게이트 점프석이 세상에 출현한 건 2054년이었다.
그전까진 어디에도 등장한 적이 없었기에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미 2051년도부터 이미 게이트 점프석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서울 내 게이트 출입 기록만 가지고 황도13궁 소속의 마공사가 딱 11명만 대법원 게이트에 숨어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상당히 위험했다.
한수호가 알기로, 이 게이트 점프석은 7킬로미터 이내에 다른 게이트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징검다리처럼 계속해서 점프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
게이트 점프석을 1회 사용하는 데에는 마나력 1천이 소모되고, 쿨타임도 이틀이나 되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만 충분하다면 부산에 있는 게이트에서 서울의 게이트까지 한 번도 지구로 귀환하지 않고 점프로만 이동하는 게 가능하단 소리다.
‘황도13궁이 숨기고 있는 게이트는 8개. 그중 서울에서 가까운 게이트는…. 두 개로군.’
한수호는 황도13궁 소유의 게이트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중 서울에서 그나마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게이트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서해의 덕적도였고, 다른 하나는 춘천에 있는 붕어섬이었다.
이중 덕적도 게이트는 7킬로미터 이내에 다른 게이트가 존재하지 않으니 제외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춘천의 붕어섬뿐.
‘최소 한 달 전부터 준비했을 테니 붕어섬에서부터 게이트 점프석을 사용해 계속 점프한 거라 생각한다면 적어도 20명 이상은 있다고 봐야겠어.’
20명도 최소로 잡은 숫자다.
한수호는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 황도13궁의 궁도들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봤다.
‘특급 30%에, 진급이 15% 정도였던가?’
대부분은 평급이었지만, 중요한 건 궁급이 3%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대법원 게이트 안에 황도13궁의 마공사가 20명 정도 숨어들었다고 가정한다면, 궁급 1명에 진급 3명, 특급 6명은 있다는 의미.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노리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한맹의 전력을 투입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맹주님. 게이트 안에는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학생 혼자서?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맹주님. 제가 대내대응부의 진급 마공사 열명을 데리고 가서 황도13궁의 쓰레기들을 모두 처단하겠습니다!”
신명우는 이 중요한 일을 아카데미 1학년 학생에게 맡길 수 없었다.
“제 생각이긴 하지만, 놈들은 맹주님과 신명우 호법님을 따로 떨어뜨리는 게 목적인 것 같습니다. 몰이사냥이나, 아티팩트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건 눈가림 용일 수 있다고요.”
“나와 신 호법을 떨어뜨려? 애초부터 대한맹이 목적이었다 이건가?”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보입니다. 그러니 게이트 안의 일은 저에게 맡기시고, 이곳에서 놈들이 또 어떤 일을 벌이는지 지켜보는 게 맞습니다.”
“흐음.”
서한광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한수호가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서한광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황도13궁은 대법원 게이트라는 미끼로 대한맹의 핵심인 서한광과 신명우를 떨어뜨린 뒤, 각개격파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잠시 생각을 거듭하던 서한광은 신명우에게 명령을 내렸다.
“신 호법. 장태산 학생의 게이트 출입을 허락해주게.”
“맹주님!”
“신 호법에게 묻지. 자네가 황도13궁의 지휘관이라면 게이트 안과 밖, 어디에 주력을 숨겨두겠나?”
“저라면…. 당연히 게이트 안에서 모든 걸 준비해 놓고 기다릴 겁니다.”
“하지만, 게이트 안에 몰래 숨어들어 갈 수 있는 인원은 최대 40명 정도지. 나와 자네를 비롯해서 호위부와 대내대응부까지 움직인다면 절대 그 인원으로 막아 낼 수 없을 것이고.”
서한광도 게이트 점프석을 이용한 연속 점프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걸 감안해도 게이트 안에 몸을 숨기고 있는 황도13궁의 마공사 숫자는 40을 넘기기 어렵다.
서한광은 게이트 안의 일은 함정이라 확신했다.
적이 노리는 건 두 가지.
대한맹이 게이트 안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것이 첫 번째고, 서한광 곁에서 신명우를 떼어내는 것이 두 번째였다.
한수호의 말을 통해 그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한 서한광은 게이트 안의 일은 차라리 한수호와 비돈귀살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맹주님 말씀은….”
“신 호법은 최소의 인원만을 남기고 장태산 학생과 일단 게이트에 진입하게. 대신 게이트 주변을 떠나지 말고 대기하고 있게. 만약 적들이 날 노리고 움직인다면 그때 전령을 보낼 테니 곧바로 귀환해 나와 합류해 주게나.”
확실히 맹주는 맹주였다.
단순히 적의 움직임에 맞대응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역으로 함정을 파서 적을 완벽하게 무너뜨릴 계획을 세웠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엔 신명우도 토를 달지 않았다.
곧바로 밖으로 나간 그는 채 10분도 되지 않아 모든 준비를 마쳤다며 보고했다.
“장태산 학생. 게이트 안에서 위험하다고 판단이 되면, 바로 귀환해야 하네. 내가 자네를 보내는 이유는 비돈귀살 부부의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서지, 자네보고 이 사건을 해결하라는 의미가 아니네. 내 말, 이해하겠나?”
“잘 압니다. 걱정 마시죠, 맹주님.”
“그럼 믿어보도록 하지.”
서한광과 한수호는 건물 밖으로 나섰다.
대법원 게이트는 두껍고 높은 금속 장벽으로 사방이 꽉 막힌 곳에 숨겨져 있었다.
마공사들이 진입할 수 있는 출입문만 존재하는 완벽한 정육각형의 장벽.
그 앞에 제복을 걸친 대한맹의 요원들 100여 명이 오와 열을 맞추고 도열해 있었다.
서한광은 그들의 모습을 뿌듯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신명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신명우가 서한광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결사!”
그 직후 100여 명의 대한맹 요원들도 일제히 경례를 붙였다.
“결사!”
서한광이 경례에 답하자 신명우를 필두로 하여 금속 장벽 출입문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게.”
한수호는 경례 대신 인사로 대신했고, 행렬의 중간쯤에 뒤섞여 금속 장벽으로 들어섰다.
출입문 안쪽은 10평도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 끝에 푸르스름하게 빛을 내는 게이트가 바닥 위에 살짝 떠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군.’
한수호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게이트를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게이트에 발을 디디기 직전, 아공간 관통 장갑에서 라그나로크의 착용구를 꺼내 허리에 둘렀다.
그 순간 한수호의 몸이 게이트의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