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154화 (154/375)

154화

점프 포털(Jump Portal).

이건 게이트와는 다른 개념의 터널이었다.

게이트는 시간과 공간을 잇는 차원의 문으로, 지구와 전혀 다른 시간대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까지 이을 수 있는 통로를 의미한다.

하지만 점프 포털은 뉴에르다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사용이 가능했고, 현실에서의 거리도 7킬로미터가 최대였다.

하지만 이현승이 만들어낸 점프 포털은 평범한 게 아니었다.

게이트 점프석에 박아 넣은 막대는 점프 포털의 사용 거리를 최대 15배까지 늘려주는 강력한 부스터였다.

포털이 열리는 광경을 목격한 비돈귀살 부부.

그들은 황도13궁이 이곳에서 뭔가 엄청난 걸 꾸미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점프 포털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이 부스터라는 물건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잘 안다.

만약, 이 부스터를 소지한 채로 포털을 건너면 폭발을 일으킬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그래서 황도13궁은 안전하게 부스터를 이곳까지 배달할 목적으로 비돈귀살 부부와 거래를 한 것이리라.

[여보. 아무래도 우리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주태란은 장한구에게 마나전음으로 생각을 전했다.

[이제 보니 단순한 배달이 아니었군. 황도13궁은 여기서 대체 뭔 짓거리를 하려는 거지?]

[우리가 그냥 가버리면 뭔가 큰 문제가 생길 거 같아.]

[그런다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두 사람은 마나전음으로 계속 이야기하며 활짝 열린 점프 포털을 바라봤다.

잠시 후, 그 포털이 더욱 밝은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포털이 빛을 뿜어낼 때마다 거기서 사람이 나타났다.

마치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가 포털이 열리자 통과하는 것처럼 줄줄이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포털을 통해 나타난 사람이 열 명이 넘어가고 스무 명이 넘어갔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독특한 외모의 사내가 나타났다.

가면인.

포털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하얀 달걀 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었고, 이마에는 보라색 꽃이 그려진 자였다.

그가 등장하자 이현승을 비롯해 그 옆에 있던 조훈과 안서윤까지 직접 나서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오랜만이군, 천갈 소궁주.”

“천갈 소궁주. 많이 기다셨습니다.”

“간만에 보네요?”

그들은 천갈 소궁주라는 사내를 잘 아는 듯 보였다.

“지금 상황은?”

가면의 사내는 주변을 둘러보며 질문은 던졌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훈에게서 나왔다.

“일단, 예상대로 대한맹의 주력 마공사 100여 명이 게이트를 넘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인원이 먼저 움직인 모양이더군요. 벌써 이 근처까지 도달한 자들이 있습니다.”

“일부 인원? 너희 사자궁은 이런 중요한 작전에 그리 불투명한 숫자를 보고해도 상관없나 보지?”

서늘한 말에 흠칫한 조훈이 급히 말을 정정했다.

“정확한 인원수는 현재 파악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저기, 저자들은 왜 아직도 저기에 있나?”

가면인은 비돈귀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스크롤을 사용하지 않아서 붙잡아 놓고 있는 거다.”

조훈과 안서윤은 가면인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했지만, 이현승은 친구처럼 대했다.

“그럼 물건은?”

“보다시피, 아직 발굴이 끝나지 않았다. 물건이 워낙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어서 저 대형 몬스터들이 며칠째 때려 부수고 있는데도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어.”

“이건,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된 일이 없지 않나? 우리 천갈에서 어렵게 구한 게이트 점프석까지 줬는데도 말이야.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마갈 소궁주?”

가면인은 이현승을 마갈 소궁주로 부르며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했지만, 이현승은 딱히 변명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친구처럼 지내긴 했지만, 실질적인 관계에선 가면인이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가면인은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놓인 게이트 점프석과 부스터 막대를 주워들더니 가볍게 분리시켰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포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점프석과 부스터를 챙겨 넣은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비돈귀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주변의 사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모두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서 발견되는 자는 모조리 죽여라. 물건을 찾기 전까진, 그 누구도 이 근처에 다가올 수 없도록 말이야.”

“네, 소궁주님.”

가면인의 말에 앞서 포털을 건너온 21명의 사내들이 3인 1조가 되어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 * *

고니의 움직임은 기가 막힐 정도로 영민하고, 날쌨다.

진급 마공사들이 그 뒤를 쫓는 데에 무척이나 힘들어할 정도.

반면, 한수호만은 아무렇지 않게 고니의 뒤를 잘 쫓아가고 있었다.

“장태산 학생. 저 여우같이 생긴 녀석이 우리 놀리려고 같은 데 빙빙 돌고 있는 건 아니지?”

고니가 잠시 멈춘 틈을 이용해 정혜인이 투덜거렸다.

그녀가 보기엔, 길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기 때문.

“거의 다 온 것 같네요. 저기, 저 계곡 보이죠?”

한수호가 고니를 지나쳐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서며 자세를 낮췄다.

우거진 풀들을 옆으로 밀쳐내자 그 틈으로 200여 미터 앞의 정경이 비쳤다.

그걸 본 정혜인이 헉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들.

폭 20미터 정도의 좁은 계곡 앞쪽에는 축구장 정도 크기의 공터가 있었는데, 그 공터에 중소형의 몬스터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숫자로 따지면 대충 천 마리 정도.

이 정도 규모의 몬스터는 처음 보는 것이기에 정혜인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중형견 크기의 소형 몬스터부터, 3미터를 넘어가는 중형 몬스터까지 바글바글 모여 있는데도 소란 하나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대신 몬스터들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계곡 안쪽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커다란 굉음이 터져나왔다.

꽈앙!

꽈광!

이쪽으로 오면서도 계속 들었던 굉음.

처음엔 천둥소리인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계곡 안에서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런데, 몬스터들은 신기하게도 그 굉음에 움찔하기만 할 뿐,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몸을 흔들흔들거리며 계곡 안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계곡 안에 있는 뭔가가 몬스터들을 홀리고 있는 모양인데?”

이서준이 한수호 옆으로 다가와 대규모 몬스터 군단을 바라보며 한 말이었다.

“여기까진 용케 들키지 않고 잘 왔지만, 저긴 도저히 뚫고 지나갈 수 없을 것 같군요.”

박진수도 옆으로 다가와 한마디 했다.

“그런데도 비돈귀살 부부는 저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는 거잖아요? 대체 어떻게요? 몬스터들하고 부딪친 흔적도 전혀 안 보인다고요.”

정혜인이 다시 몸을 추스르며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언급했다.

“제가 보기엔, 저 계곡 안에 있는 물건이 매혹과 관련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스루나에서 구할 수 있는 아티팩트 중에 드물게 매혹 효과가 있는 물건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효과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몬스터에게도 효과가 있어서 위험을 타계할 수단으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를 한꺼번에 매혹시키는 아티팩트를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사람한테는 영향을 안 미치고, 몬스터한테만 영향을 끼치는 아티팩트라니.

“학생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저놈들 앞에 나타나도 공격당할 일이 없을 거라는 말인데….”

이서준이 중얼거리자 정혜인이 화들짝 놀랐다.

“설마, 저 무시무시한 놈들 사이를 무방비 상태로 그냥 지나가자는 거예요?”

“자극만 하지 않으면 공격받을 일은 없을 거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아니죠. 그냥 여기서 비돈귀살 부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그때, 가만히 주위를 살피던 고니가 계곡 쪽을 노려보며 작게 캬르릉거렸다.

한수호는 재빨리 시각 능력을 이용해 계곡 쪽 틈새를 6배율로 당겨서 자세히 살폈다.

순식간에 확 당겨진 시야.

그곳에서 몇몇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었다.

은밀하면서도 빠른 움직임으로 사방을 들쑤시고 있는 행동을 봐서는 마치 무언가를 찾는 모양새였다.

급기야 9개의 그림자가 몬스터들 사이로 스며들더니 세 그룹으로 찢어져 흩어졌다. 그중 한 그룹은 정확히 한수호 등이 숨어있는 방향이었다.

“적들이 움직입니다. 이곳은 안전하지 않겠어요. 계곡 위쪽을 통해서 접근하는 게 오히려 낫겠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자고? 자살이라도 하자는 거니?”

정혜인은 가기 싫다는 표정을 대놓고 내비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계곡의 폭은 20미터 정도지만 높이는 200미터가 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거의 90도에 가까운 절벽 대부분이 칼로 자른 듯 매끈한 바위로 되어 있어서, 아무리 진급 마공사라 해도 타고 내려가기는 어려웠다.

“제가 먼저 내려가서 받아주면 되잖아요. 빨리 갑시다. 이러다 들키겠어요.”

한수호가 히죽 웃으며 하는 말에 정혜인은 우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못 하겠으면, 혜인이는 절벽 위에 남아 있으면 되지. 자, 이동!”

이서준의 말에 한수호는 고니의 귀에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고니야. 적들이 알아차릴 수 없는 방향으로 우릴 안내해 줘. 목표는 저 계곡 위쪽이다.”

캬르릉!

고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한수호와 마공사들이 잽싸게 따라붙었다.

* * *

‘이거 너무 이상한데?’

절벽 위에 오른 한수호는 계곡을 이루고 있는 넓은 틈을 따라 안쪽으로 계속 이동하던 중에 어느 한 지점에서 딱 멈춰 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딱 그 시점에 맞춰 사방으로 흩어졌던 적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한수호 일행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듯 너무도 정확하게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쫓는 자들 숫자도 크게 늘었다.

총 21명.

3명씩 팀을 이룬 7개 그룹이 절벽 위의 울퉁불퉁한 바위산을 크게 둘러싼 채 천천히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한수호는 혹시나 싶어 일부러 방향을 틀기도 했고,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적들은 귀신처럼 위치를 파악해 어디로든 쫓아왔다.

‘놈들은 우리 위치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방향을 틀 때마다 정확히 따라서 방향을 변경할 수는 없었다.

한수호는 자신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대한맹의 마공사들을 슬쩍 훑어봤다.

셋 모두 평균 수치 80을 넘는 진급의 마공사들.

2차 해부도에 나타난 신체 내적인 수치는 모두 2에 머물러 있어 특이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들 중 적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있는 인물이 있는 게 확실했다.

‘개조 2단계의 마나력을 써서라도 세부 수치를 확인해 봐야겠어.’

지금까진 개조 특성의 1단계만으로도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어 딱히 2단계가 필요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나력을 조금 더 소비하더라도 개조 2단계를 사용해 대한맹 마공사들의 세밀한 정보를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한수호는 곧바로 개조 2단계를 발동시켰다.

우웅

그 자신의 귀로만 들리는 마나의 파동.

반경 20미터를 빠르게 훑고 간 마나가 한수호의 눈앞으로 엄청난 정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수호의 시야 자체가 스캐너라도 된 듯,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신체가 무려 108개로 분할되어 표시되고 있었다.

개조 1단계에선 ‘얼굴’로만 표시되던 게, 2단계 마나력을 사용하면 눈, 코, 입, 이마, 볼, 귀, 인중, 정수리 등으로 세분화되어 나타난다.

그 모든 구분에 수치가 새겨졌다.

한수호는 이서준부터 신체의 모든 부위를 훑어보며 이상한 수치가 보이면 그 위치를 찾아내고, 분석했다.

‘이서준 씨한테는 의심되는 정황이 없어.’

다음은 정혜인이었다.

정혜인의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쭉 훑어보던 한수호는, 그녀의 코에서 멈칫했다.

‘11?’

다른 곳은 최소 74에서 최대 88인데 반해, 정혜인의 코만 11이라는 유독 낮은 수치를 보였다.

한수호는 정혜인의 코를 빤히 바라봤다.

“너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니?”

절벽 위의 바위틈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정혜인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저기, 누나 코요. 잠깐 만져봐도 돼요?”

“뭐? 너 제정신이야? 사방에 적이 깔렸는데, 갑자기 내 코를 왜 만지려고? 이 코가 얼마짜린데!”

그녀의 과민 반응으로 보아, 성형수술로 코에 보형물을 넣은 모양이었다.

이로써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조 특성으로 성형수술 여부도 알 수 있었구나….’

다른 사람에겐 모르겠지만, 한수호에겐 참 쓸데없는 기능이었다.

마지막은 박진수였다.

그는 세 사람 중 가장 듬직해 보였고, 말수도 적어 황도13궁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아 우선 순위에서 제외했었다.

그런데 이제 의심 가는 사람은 박진수 한 명뿐이었다.

그의 신체를 훑어보던 한수호는 의외의 위치에서 특이점을 발견했다.

‘옆구리? 왜 옆구리 수치가 저렇게 높게 나오지?’

[왼쪽 옆구리] : 98

한수호의 경험상,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평균 수치보다 높게 나온다면, 그곳에 아티팩트가 숨겨져 있거나 그 분에만 과도한 마나력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수호는 박진수의 옆구리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일부러 자리를 옮기는 척하다가 발을 헛디뎌 쓰러졌다. 한수호가 쓰러진 위치는 박진수의 왼쪽이었다.

“헛!”

“조심!”

박진수가 놀라며 부축했고, 한수호는 그 틈을 이용해 손으로 박진수의 왼쪽 옆구리를 슬쩍 만졌다.

그 순간 한수호의 눈앞으로 뭔가의 정보가 떠올랐다.

[황도13궁의 문신]

-모든 황도13궁의 궁도들이 몸에 새기는 문신입니다.

그곳의 문신에 마나 회로가 새겨져 있었던 건지, 정보가 나타났다.

코스트가 있다면, 훨씬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었겠지만 지금 상태로도 충분한 정보였다.

‘황도13궁’이라는 단어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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