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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158화 (158/375)

158화

그 뒤로 2시간이 흘렀다.

한수호를 비롯한 다섯 사람은 2시간 동안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계곡 안에서 몬스터들의 심장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심장을 빼냈지만, 한수호는 제법 덩치가 큰 몬스터들만 골라서 심장을 취했다.

한수호가 챙긴 심장은 대략 200여 개.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이 챙기고 싶었으나, 그 이상 챙기면 나중에 고니를 아공간에 넣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가 있어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수호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앞에 산처럼 쌓인 몬스터의 심장을 두고도 챙길 수가 없었다.

그나마 비돈귀살이나 이서준은 비좁은 아공간 기능을 지닌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어 20여 개까지는 챙겼다.

하지만, 박진수와 정혜인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아공간 아티팩트가 없어서 중형 몬스터의 심장 7개를 챙기는 게 최대였다.

그래서 계곡 밖에는 남아도는 심장이 한쪽에 가득 쌓여 있었다.

그때쯤 대한맹의 맹도 50여 명을 이끌고 서한광과 신명우, 이한위 등이 도착했다.

그들은 엄청난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전으로 대충 보고를 받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 참상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던 것.

서한광은 맹도들에게 주변 정리를 부탁하고는 한수호 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계곡 입구 쪽에 수백 개나 되는 몬스터 심장을 잔뜩 쌓아놓고는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결사! 이서준 외 2명, 임무를 완수하고 휴식 중입니다.”

이서준이 서한광을 보자마자 경례를 붙였다.

그의 뒤로 박진수와 정혜인도 정 자세로 시립해 있었다.

“그래. 셋 다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대체 어떤 몬스터가 나타났길래 저 많은 몬스터를 몰살시킬 수 있었던 건가?”

“저희가 본 건, 굉장히 거대하고 하늘도 날아다니는 초대형 몬스터였습니다. 생김새는 처음 본 것이었고요. 2급이나 3급 게이트에서나 볼 수 있는 놈이었습니다.”

이서준은 한수호와의 약속대로 고니에 대한 건 비밀에 붙였다.

고니는 쿨타임 2시간이 지나서 서한광이 도착하기 전에 작은 사막여우로 변할 수 있었고, 지금은 아공간에 들어간 상태였다.

“네. 생긴 건 그다지 무섭진 않았는데, 목청 하나는 끝내주더라고요. 소리만 질렀는데도 트롤 몸통이 터졌거든요. 게다가 트윈헤드 오거나 미노타우르스를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더라니까요?”

정혜인이 살짝 과장을 섞어가며 이서준의 장단에 맞춰줬다.

“여긴 5급 게이트인데, 어찌 그런 엄청난 몬스터가 등장할 수 있지?”

이한위는 정보책략실 실장답게 쉽게 믿으려 들지 않았다.

“에이. 그렇게 따지면 저 안에 있는 트윈헤드 오거랑 미노타우르스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최소 4급 게이트에서나 볼 수 있는 놈들이 여기에 나타난 것도 어차피 말이 안 되잖아요.”

정혜인이 한마디 덧붙이자 이한위도 더는 따지고 들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황도13궁 놈들은? 놈들이 여기서 무슨 일을 벌이려고 했는지는 확인됐나?”

이번엔 신명우가 이서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놈들은 우리 대한맹을 노린 게 분명합니다. 장태산 학생 말대로 맹주께서 이곳에 오셨으면 크게 위험할 뻔했습니다. 초대형 몬스터가 갑자기 등장해 놈들을 쫓아버리지 않았다면, 저희 모두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하늘이 도왔군. 그런데, 몬스터들을 끌어들인 힘이 뭔지는 확인했나?”

“그건…. 매혹의 힘이 담긴 돌조각이었습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저희가 한발 늦었습니다.”

이서준의 이번 대답 역시 한수호와의 약속대로였다.

차마 황도13궁에게 빼앗겼다는 거짓말은 할 수 없었기에 ‘한발 늦었다’는 애매한 대답을 한 것이다.

실제로도 고니가 한발 빠르게 집어삼킨 것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흐음.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그 엄청난 위험 속을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버텨내다니, 정말 대단들 하군. 자네들이 자랑스럽네.”

서한광은 이서준과의 대화를 대충 마무리하고 한수호를 바라봤다.

“장태산 학생도 고생 많았네.”

“저야 뭐, 대한맹 요원분들 따라서 여기저기 뛰어다닌 것밖에 없어 고생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겸손해할 거 없네. 자네의 활약이 대단했다는 건 이미 다 들어서 알고 있으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한수호는 끝까지 자신을 크게 내세우지 않았다.

이서준 등이 한수호의 활약을 어떻게 묘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아무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수호를 칭찬해도 과장된 거라고 생각할 게 뻔했으니까.

한수호로서는 참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서한광의 시선은 한수호를 지나쳐 비돈귀살을 향했다.

“비돈귀살께서도 고생하셨더군요. 지금까지 저희가 두 분에 대한 걸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황도13궁으로부터 비슷한 위협을 받게 된다면, 언제든 저에게 연락하십시오. 대한맹이 최선을 다해 돕울 것이니.”

“허헛. 그것참 반가운 소리로군요. 그동안 여기저기서 하도 무시를 당했던 터라 자식 보기가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이제야 기를 좀 펴고 살겠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오늘 여기 들어올 때도 대한맹 맹도들 시선이 어찌나 따갑던지,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니까요? 호호홋!”

주태란이 요란스럽게 웃음을 터트리자 두툼한 살집이 출렁거렸다.

그 모습에 서한광과 신명우 등 모두가 괜히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크흠.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맹주께서는 볼일 보시지요.”

장한구가 급히 주태란의 웃음을 진정시키고는 서한광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오늘 일에 대한 보답은 장태산 학생을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대한맹을 대표하여 두 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서한광은 참으로 올바른 사람이었다.

가문 내에서는 능력이 부족하면 친자식이라도 관심을 주지 않을 만큼 냉정하지만, 대한맹의 맹주로서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한수호는 서한광을 보며 서은채가 얼마나 힘겹게 자라왔을지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 우린 이만 가보겠소.”

“다음에 또 봐요, 맹주양반.”

주태란이 손을 흔들어 보이자 서한광도 마지못해 손을 흔들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한수호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곧 비돈귀살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그때였다.

“아, 맞다. 이현승, 그 자식한테 받은 스크롤 있잖아요. 그거 지금 다시 볼 수 있어요?”

한수호가 갑자기 멈춰서서는 비돈귀살에게 스크롤을 요구했다.

“옜다. 고작 이거 때문에 그동안 황도13궁한테 질질 끌려다녔다니, 참 바보 같다니까? 안 그래, 여보?”

주태란이 품에서 스크롤을 꺼내 넘기자 한수호는 그걸 잠시 응시했다.

서한광을 기다리며 이미 한번 정보를 살펴봤기에 이 스크롤이 어떤 물건인지는 자세히 알고 있었다.

[자유의 스크롤]

-코스트: 15

-황도13궁의 마갈궁에서 제작한 제약 해제용 스크롤입니다.

-스크롤을 찢으면 황도13궁의 제약이 해제됩니다.

-적용 범위: 반경 5미터

*히든 피스: 스크롤 내부의 마나 회로에 ‘마탄의 씨앗’이 숨겨져 있습니다. 스크롤을 찢으면 마탄의 씨앗이 문신에 스며듭니다.

정보에서 말하는 황도13궁의 제약은 다름 아닌, 문신이었다.

비돈귀살의 목덜미 쪽에 새겨진 문신이 바로 제약을 위한 것이었고, 이 문신이 있으면 황도13궁에서는 언제 어디서고 그 사람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상부의 지시를 어기거나, 배신 행위를 할 경우엔 그 문신을 이용해 손 하나 대지 않고 끔찍한 고통을 가하는 것도 가능했다.

자유의 스크롤은 그 문신의 효과를 없애주는 아티팩트였던 것.

‘문제는 히든 피스란 말이지.’

한수호만 볼 수 있는 정보인 히든 피스.

스크롤을 찢으면 ‘마탄의 씨앗’이 스며든다는 내용뿐이었지만, 뭔가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원래 한수호는 이 스크롤을 자신이 챙긴 뒤, LP가 좀 더 모이면 불길해 보이는 마탄의 씨앗 대신, 좋은 효과로 개조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을 떠나면, 박진수의 몸에 새겨진 황도13궁의 문신에 잠들어 있는 제약은 풀 수 없게 된다.

한수호가 보기에 박진수는 악인이 아니었다.

몸에 황도13궁의 문신이 새겨져 있지만, 그들에게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인물이었다.

한수호는 박진수의 몸에 문신이 있음을 알게 된 후부터 쭉 그를 감시해 왔다.

그런데 박진수는 한수호를 돕고자 하는 행동을 보였고, 다른 동료를 대함에 있어서도 늘 진심을 담고 있었다.

박진수는 자신의 몸에 황도13궁의 표식이 새겨져 있다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했으며, 그로 인해 자신들의 위치가 적에게 발각되고 있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보였다.

이는 한수호의 정신과 감지 스탯이 10을 넘어가게 되면서 생긴 상대의 감정 인식 능력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수호는 이곳을 떠나기 전,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의 제약도 함께 풀어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탄의 씨앗’이 마음에 걸린다.

‘마탄의 씨앗을 없애려면 20만 LP가 필요해.’

지금 한수호가 가진 LP는 2만3천 수준.

20만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그래서 마탄을 다른 단어로 바꾸는 방법을 써보니 다행스럽게도 2만 LP면 수정이 가능했다.

‘마탄을 선의로 바꾸자.’

한수호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고, 곧바로 개조를 이용해 ‘선의의 씨앗’으로 변경시켰다.

“어…. 잠시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한수호는 박진수가 있는 쪽으로 조금 다가갔다.

스크롤의 효과가 적용되는 거리는 5미터.

그 범위 안에 스승 부부와 박진수가 모두 포함되는 장소에 자리를 잡은 뒤,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스크롤을 부욱 찢어버렸다.

“어, 아들! 그걸 여기서 찢으면….”

“아직 검증도 거치지 않은 물건이야!”

스승 부부가 크게 놀라 했지만, 스크롤은 이미 찢어진 뒤였다.

화아아악

스크롤에서 뿜어진 은은한 빛이 주변을 빠르게 훑고 사라졌다.

비돈귀살은 빛이 몸을 훑고 지나가자 상쾌한 느낌을 받았고, 특히 문신이 새겨져 있던 목덜미 부근이 굉장히 시원해졌다.

그건 박진수도 똑같았다.

한수호가 뭘 하는 건가 싶어 시선을 돌렸는데, 빛이 몸을 스치고 지나간 직후 옆구리에서 느껴지던 찌뿌둥한 느낌이 깨끗이 사라졌다.

한수호는 스승 부부와 박진수의 표정으로 스크롤이 아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걸 바로 알아봤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서한광 맹주 바로 곁에 서 있던 이한위 실장이 갑자기 눈을 부릅뜬 채 한수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표정이 왜 저래?’

한수호는 첫 만남 때부터 이한위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욱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곧바로 개조 2단계를 사용해 이한위의 신체 수치를 정밀하게 살펴봤다.

그리고 의외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왼팔 상완삼두근] : 82

특정 부분의 신체 수치가 갑자기 15나 뚝 떨어져 버렸다.

그 현상은 스승 부부와 박진수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났었다.

스승 부부에겐 목덜미 부분이, 박진수에겐 옆구리 부분이었다.

‘이한위도 황도13궁의 문신이 있었던 거야?’

정말 뜻밖이었다.

이한위의 경우, 평균 수치가 93에 달하고 있어서 왼쪽 팔 수치가 97로 조금 높게 나오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평균치보다 4정도 높은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한위의 왼팔 수치가 높았던 건, 그곳에 황도13궁의 문신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지금 스크롤을 찢으면서 문신이 효력을 상실하면서 수치가 확 낮아진 것이다.

아마, 이한위도 그 사실을 느끼고 한수호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한위는 한수호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급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가 입을 꽉 앙다물고 있는 걸로 봐서는 굉장히 분노하고 있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정체를 까발려주고 싶지만….’

그래 봐야 대한맹에 숨어든 황도13궁의 첩자 모두를 발본색원하는 건 불가능했다.

황도13궁의 문신은 얼마든지 시야에서 감출 수 있기 때문에, 아무 증거도 되지 못한다.

이한위 잡겠다고 괜히 들쑤셨다가는 오히려 더 깊숙이 숨어들 뿐이라는 걸 한수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경고 정도는 해 줘야겠지.’

한수호는 딱 세 사람에게 똑같은 내용으로 마나 전음을 흘려보냈다.

[이한위 실장을 조심해야 할 겁니다.]

한수호가 마나 전음을 보낸 사람은 서한광, 신명우, 이서준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전해진 마나 전음에 흠칫 놀랐다.

마나 전음에 담긴 음성이 한수호의 것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던 것.

곧바로 한수호를 향해 마나 전음으로 질문이 날아왔다.

[방금 그 말…. 무슨 의도지?]

그런데 질문을 보낸 사람은 한 명이었다.

신명우만이 한수호에게 의도를 캐묻고 있었다.

이서준은 아직 마나 전음을 사용하지 못하니 대답이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서한광에게서도 질문이 없다는 건 이상한 노릇이었다.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지는 마시길.]

한수호는 한 번 더 마나 전음을 보내고는 다시 대한맹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어리둥절해 있는 비돈귀살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때, 멀어져 가는 한수호를 향해 누군가의 마나 전음이 짧게 전해졌다.

[조만간 만나러 가겠네.]

그 전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서한광이었다.

그의 말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자신감과 경고를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급할 것 없다는 여유로움까지.

만약 한수호의 말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었다면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한수호를 불러들이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한광은 자신이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이는 그가 한수호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걸 의미했으며, 대한맹의 눈을 피해 몰래 찾아가겠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과연 맹주로구나.’

한수호는 서한광의 배포와 현명함에 만족하며 게이트가 있는 장소로 기분 좋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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