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무기 소환.
이 특성은 사용자에게 개인적인 아공간을 제공하게 되는데, 그 아공간에 미리 무기를 넣어두면 언제 어디서라도 마음껏 무기를 소환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게다가 아공간에 넣어진 무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나력이 자동으로 충전되어 몬스터나 마공사들에게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도록 변화된다.
단, 현재 이윤철의 특성 단계는 2단계여서 가로, 세로, 높이가 2미터인 아공간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윤철에게는 충분했다.
그의 아공간에는 50정이 넘는 총기류에 각종 폭탄, 그리고 첨단 장비들을 잔뜩 담을 수 있었으니까.
“팀장님!”
현은 이윤철이 팀원의 죽음에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현 또한 박원효 선배의 죽음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당장 이곳을 뜨지 않으면 꼼짝없이 죽는다는 걸 알기에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현. 넌 지금 당장 여길 도망쳐 본부로 향해라!”
“팀장님은요?”
현이 묻자 이윤철이 웃는다.
“너와 나. 둘이 함께 도망치면 둘 다 잡힌다. 하지만, 내가 여기 남는다면,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이윤철은 그 말과 함께 바로 유탄발사기의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겨버렸다.
퍼버버버벙.
오중현을 중심으로 총 다섯 발의 유탄이 불을 뿜었다.
그러자 적들도 곧바로 반격을 시작했다.
양복 사내들이 들고 있던 총에서 일제히 탄환이 발사됐다.
그들이 들고 있는 총기류는 일반 무기였기에 이윤철과 현의 근처로 날아들었다가 그대로 벽에 막힌 듯 투명한 막에 걸려 도탄되었다.
이는 두 사람이 입고 있는 스텔스 로브가 지닌 두 번째 기능이었다.
하지만 이윤철이 쏜 유탄은 달랐다.
꽈앙! 꽈과과광!
강력한 폭발을 일으켜 반경 5미터 범위 내에 큰 충격을 가했다.
이곳에 온 모두가 마공사이긴 하나, 실력의 고하는 분명했다.
특급 아래의 마공사는 마나가 담긴 유탄의 폭발력을 견딜 수 없었고 몸통이나 팔에 큰 상처를 입으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반면, 특급 이상의 마공사들은 자신의 마나력을 외부로 방출시켜 자체적인 방어막을 형성시켰다.
자욱한 연기와 함께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쓰러지자 이윤철은 급히 현을 밀어냈다.
“다 같이 죽을 셈이냐! 빨리 뛰란 말이다!”
“크윽….”
현은 이를 악물었다.
모든 게 자신 때문이었다.
이번이 공식적인 첫 임무였던 현은 적을 가볍게 보는 실수를 저질렀다.
애초에 이번 임무는 적의 규모와 화력 수준,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자가 누구인지 정도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은 더 훌륭한 성과를 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너무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적들의 정보가 담긴 데이터 칩을 빼 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팀원 셋이 붙잡혔고, 이제는 팀장마저 적들의 손에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내가 죽어야 갈 테냐?”
이윤철이 유탄발사기를 자신의 목에 겨눴다.
당장 여길 떠나지 않겠다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다는 협박.
“꼭,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
현은 연막탄 세 개를 꺼내 들었고, 안전핀을 제거한 뒤 세 방향으로 힘껏 내던졌다.
피쉬쉬쉬쉬쉿
연막탄에서 연기가 뿜어지기 시작하자 적들의 시야가 가려졌다.
그 틈에 현은 힘껏 땅을 박차며 오른쪽 숲을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그때, 이윤철이 유탄발사기를 내던지고 다시 무기 소환 특성을 사용했다.
슈슉
아무것도 없던 그의 손에 들린 건 대전차용 RPG.
탄두를 장착시킨 그는 동료 둘이 무릎 꿇려져 있는 장소를 겨눴다.
자욱한 연기가 시야를 가렸지만, 이윤철의 눈은 정확히 팀원들의 얼굴을 향했다.
그들도 어찌 된 일인지 이윤철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괄괄하지만 알게 모르게 팀원들을 뒤에서 늘 챙겨주었던 유일한 여성 대원 임향기.
말수가 적을 뿐, 팀원이 위험에 빠지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구하려고 하는 열혈 대원 최민우.
‘더는 고통받지 않도록 내 손으로 끝내주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윤철의 눈빛에 비장함이 서렸다.
그런 이윤철의 뜻을 읽었는지 임향기와 최민우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괜찮으니 쏘라고.
고문을 받아 국가수호대의 비밀을 털어놓느니, 여기서 깔끔하게 죽는 게 훨씬 명예롭다고.
달칵.
방아쇠가 당겨졌다.
탄두가 불을 뿜어내며 쏘아졌고, 50여 미터 밖의 언덕을 향해 날아갔다.
“모두 피해!”
오중현도 설마 같은 편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RPG 같은 무기를 대놓고 사용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손에서 갑자기 무기가 등장할 줄은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오중현과 그의 수하들은 포로들을 내팽개치고 RPG의 타격 범위 밖으로 힘껏 도망쳤다.
아무리 그들이 진급의 마공사라고 해도, RPG의 폭발력까지 막아내는 건 쉬운 게 아니었으니 당연한 조치였다.
모두의 눈앞에서 RPG 탄두가 궤적을 그리며 날아드는 그때였다.
파바바밧
누군가가 궤적을 따라 섬광처럼 날아들더니 탄두를 덥썩 잡아버렸다.
그리고 그 탄두를 도망치는 사내들 쪽으로 힘껏 던져 버렸다.
탄두는 좀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이를 보고 경악한 사내들의 머리 위에서 번쩍 섬광을 일으켰다.
꽈와아아아앙
“크아악!”
“으악!”
“커헉!”
한 번의 폭발에 거의 열 명 가까운 인원이 전투 능력을 상실했다.
팔이 날아간 자.
머리가 터진 자.
폭발에 휩쓸려 상체 절반이 찢겨나간 자.
너무도 끔찍한 광경에 적들은 지금이 전투 중이라는 사실마저 잊고 움직임을 멈췄다.
“정신 차리고 놈을 잡아! 사살해도 상관없다!”
오중현이 크게 소리치고 나서야 양복 사내들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들이 갑작스레 등장해 RPG 탄두를 집어던진 사내를 찾으려 했을 때, 그는 이미 두 명의 포로를 양손으로 낚아채 이윤철 쪽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오중현은 기가 막혔다.
국가수호대 놈들을 태워 여기까지 데려다준 자까지 잡기 위해 차량 쪽으로 특급 마공사 8명을 보냈다.
그런데 아무 보고도 받은 게 없는데, 그자가 되려 이쪽을 공격했다.
그렇다는 건, 놈을 쫓아간 8명은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의미.
‘젠장. 어디서 저런 놈이?’
가볍게 생각했던 추격전인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그가 각주로 있는 천살궁 사령각의 수하들보다는 실력이 떨어지긴 해도, 이곳에 끌고 온 자들도 나름 천살궁의 정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을 혼자서 소리 소문도 없이 해치우고, 지원까지 오다니.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오중현은 손님으로 와 있는 당채룡에게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자신이 직접 상황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촤앙
오중현은 자신의 애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포로였던 자들의 밧줄을 풀어주는 마스크 사내를 노려보며 한발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던 어느 순간.
콰앙
오중현이 땅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 * *
“여긴 저한테 맡기고 모두 도망치세요.”
한수호는 임향기와 최민우의 포박을 풀며 다급히 말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
임향기는 안면 마스크와 후드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한수호의 정체가 궁금했고, 최민우는 RPG 탄두를 잡아 내던지는 실력에 크게 놀란 듯했다.
사실 누구보다 놀란 건 이윤철이였다.
“이미 여길 떠난 게 아니었나?”
이윤철은 한수호가 이미 이 주변을 완전히 벗어났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자신들을 도와 여기까지 와준 것만도 고마운데, 괜히 이 일에 휘말려 잘못되면 너무도 미안했으니까.
그런데, 한수호는 떠나지 않고 오히려 다시 돌아와 팀원까지 구해주었다.
이는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였고, 빚이었다.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현 씨가 도망친 방향으로 한꺼번에 뛰세요! 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한수호는 전투에 뛰어들기 전, 감지 능력으로 사방을 확인했고 이곳에 강력한 적이 둘이나 존재한다는 걸 알아냈다.
바로 박혜리와 당채룡.
그 둘도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위치를 놓쳤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 그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들이 끼어드는 순간, 이윤철과 그의 팀원은 이곳을 탈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알았다. 살아난다면 반드시 이 빚을 갚겠다. 향, 우. 당장 여길 벗어난다. 향이 후위를 맡고, 우는 전방을, 난 좌우를 맡는다. 이동!”
이윤철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고, 세 사람은 신속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자리를 막 떠났을 때,
콰앙
멀지 않은 곳에서 폭음이 터지더니 한 사내가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오중현!’
한수호가 그를 알아보고 눈을 빛냈다.
10년 전, 지리산에서 가면을 쓰고 나타났던 무리 중 한 명으로 의심되는 자.
그가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모습 위로 10년 전 그 가면인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 같았다.
뿌드득
저절로 이가 갈리고,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신체 수치 평균 96의 강자.
하지만 지금은 한수호가 그보다 훨씬 강하다.
자신을 쫓아온 적들을 오로지 신체 능력만으로 간단히 해치워버린 한수호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
그건 다름 아닌 오중현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해득실을 따진다면, 돌아오지 않고 조용히 떠나는 게 맞다.
40명이 넘는 양복 사내들과 당채룡, 박혜리까지 숨어있는 이곳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나타난 건, 오중현이 그 가면인이 맞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적어도 위험이 닥치면 얼마든지 이곳을 빠져나갈 자신이 있기도 했다.
‘오늘 네놈의 그 가증스러운 가면을 벗겨주마!’
한수호는 허리에 찬 그랑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랑검.
50센티 길이의 정글도가 뽑혀 나온 순간, 주변으로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하얀 기운이 검날을 휘감으며 뼈를 파고들 정도의 냉기를 뿜어냈다.
한수호는 그랑검을 한차례 휘젓고는 오중현을 향해 힘껏 뿌렸다.
촤아아
비단 폭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랑검에서 새하얀 냉기가 검기처럼 발사됐다.
그걸 본 오중현은 가볍게 보지 않고 마나를 가득 담은 검을 사선으로 빗겨 베었다.
카앙
단지 하얀 기운을 쳐냈을 뿐인데,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오중현의 전진이 그 자리에 막히고 말았다.
“크윽!”
오중현의 인상이 단번에 구겨졌다.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 우열이 판가름 났다.
오중현은 이 강력함이 한수호가 들고 있는 무기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무기의 힘으로 날 찍어누르겠다? 오만한 놈!’
오중현의 검도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마나를 끌어올리며 애검 ‘쉐도우’를 힘차게 뿌려냈다.
콰과과과과
한 번의 흩뿌림에 무려 다섯 개의 검기가 뿜어져 나갔다.
이건 그의 검 쉐도우가 지닌 그림자 검술로 사용자의 마나력을 15%나 높여준 채로 네 개의 잔상을 함께 날리는 효과를 지녔다.
이 검술을 맞이한 자는 실초와 허초를 제대로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어이없이 당하고 만다.
하지만, 한수호는 오중현이 만났던 그 누구보다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한수호는 단숨에 허초 네 개를 파악해 냈고, 자신의 목으로 날아드는 실초를 향해 그랑검을 휘둘렀다.
파캉!
새파란 불꽃이 튈 정도의 강력한 반탄력.
오중현의 오른팔이 위로 크게 들리고 말았다.
“이런!”
한수호는 당황한 오중현의 가슴을 목표로 그랑검을 힘껏 내리그었다.
후아앙
무시무시한 냉기에 휩싸인 검이 날아들자 오중현은 눈을 부릅떴다.
“이노옴-!”
순간, 오중현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나가 뿜어지더니 사방으로 검의 꽃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촤라라라라랑
오중현의 몸이 춤을 추듯 하늘거렸고, 그 움직임에 따라 허공에 화려한 꽃송이들이 잔뜩 그려졌다.
꽃송이의 숫자는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카가가가가강
한수호의 그랑검은 꽃송이에 가로막히는가 싶더니, 오히려 튕겨 나왔고 그 기세를 살려 오중현은 더욱 화려한 검화를 피워냈다.
한수호는 수많은 검화를 다 막아낼 수 없어 뒷걸음질 치며 가까스로 방어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한수호가 딱 멈춰서더니 눈을 번쩍 떴다.
오중현이 피워낸 수많은 검화는 멈춰선 한수호를 향해 폭격하듯 떨어져 내렸다.
꽈과과과과과광
바위는 물론, 철판까지도 짓이겨버릴 정도의 엄청난 위력.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한수호를 완전히 뒤덮었다.
오중현은 자신의 이번 공격이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하며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달랑 검 하나만 들고 이 공격에 맞았으니 상대의 두 팔은 걸레짝이 되어 있을 것이고, 도망칠 마나력도 남아 있지 않을 터.
특성, ‘매화만개’가 발휘된 이상 적의 반격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오중현이였다.
“살고 싶으면 당장 항복해라!”
오중현은 이미 끝난 싸움이라 생각하고 상대의 팔 하나를 날려버리려고 했다.
흙먼지가 가라앉자마자 달려든 오중현.
그런 그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만신창이의 모습이어야 할 한수호가 커다란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아무렇지 않게 우뚝 서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방패.
새하얀 기운을 뿜어내는 방패 뒤에서 한수호의 두 눈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그 눈동자 속에선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듯 복수심이 들끓고 있었다.
한수호는 방패 뒤에서 얼굴을 살짝 내밀며, 크게 당황한 오중현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역시, 너였구나.”